라이다는 적외선을 이용해 사물을 분간하는 기술이다. 기기에서 발사된 적외선이 사물에 맞고 되돌아오는 시간을 이용해 거리와 형태를 파악한다. 라이다의 가장 큰 장점은 정밀도다. EX90에 적용된 라이다는 루미나 테크놀로지스(Lumina Technologies)에서 제조한 주행보조장치의 일종이다. 최대 250m 전방의 위험을 미리 감지해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어두울 때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카메라의 단점과 3D 형태로 물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레이더의 단점을 라이다가 보완한다. 운전자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진행 방향 위에 어떤 물체가 있거나 위험이 감지되면 라이다는 즉시 경고를 울려 위험을 알린다. 간단히 설명하면, 차는 시속 100km로 달릴 때 1초당 약 28m를 움직인다. EX90이 시속 100km로 달리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완전히 멈춰 서기까지 35m가 필요하다. 즉 시속 100km로 주행 중이더라도 운전자가 약 1.5초만 빨리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다면 어두운 밤 순록과 충돌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라이다는 인간의 눈이 하지 못하는 걸 가능하게 해준다. 참고로 EX90에는 라이다 외에도 8개의 카메라와 5개의 레이더, 16개의 초음파 센서가 장착되어 차 주변을 360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EX90은 카메라와 레이더, 센서 등을 범퍼 안쪽, 사이드미러 하단 등 차체 곳곳에 숨겨놨다. 그러나 라이다는 앞 유리와 지붕이 만나는 부분에 떡하니 보이도록 설치해두었다. 메르세데스-벤츠나 제네시스 역시 라이다를 쓴다. 그러나 범퍼 하단 또는 프런트 그릴 안쪽에 라이다를 넣어 가능한 한 보이지 않도록 했다. 낯선 디자인을 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자들을 향해 로빈 페이지(Robin Page) 볼보자동차 글로벌 디자인 총괄은 이렇게 말했다. “라이다는 자동차의 눈입니다. 그런데 눈이 무릎이나 허리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시야가 확 좁아지겠죠. 낮은 위치에 라이다를 설치하면 기능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서 라이다 설계 및 시스템 엔지니어링을 담당한 엘리아스 마렐(Elias Marel)은 “(라이다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설치한 것은)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다행히 라이다 기술은 지난 몇 년간 놀라운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크기는 작아지고 성능은 향상됐죠. 돌출되지 않게 루프 안쪽으로 밀어 넣는 것도 고려했지만, 그렇게 하면 성능을 100% 발휘할 수 없었어요”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볼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안전의 범위를 사람과 자연환경까지 확장한 것이다. 양방향 충전 시스템과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인테리어가 그 예다. 양방향 충전 시스템은 한마디로 자동차를 ‘바퀴 달린 보조배터리’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걸 말한다. 전쟁이나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전력 공급이 원할하지 않을 경우 전기차 배터리에 있는 전기를 끌어다 사용하는 식이다. 또한 EX90은 가죽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 소재와 재생 플라스틱만을 이용해 인테리어를 꾸몄다.
“안전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90을 소개하는 영상 인트로에 등장하는 문구다. 이것저것 건드리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볼보는 안전이라는 우물 하나에만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가장 잘하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볼보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이며 그들은 말이 아닌 결과물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2030년까지 모든 모델을 전동화하고 2040년에는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목표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EX90은 2023년부터 미국 찰스턴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다. 국내 출시 일정과 가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