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럭셔리' 취향 좋은 6인의 은밀한 호사 2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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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럭셔리' 취향 좋은 6인의 은밀한 호사 2

6명의 취향 좋은 사람들에게 아무도 모르게 혼자 즐기는 가장 조용한 호사품에 대해 물었다. 19세기에 만들어진 18K 골무부터 최신 외장하드까지 생각치 못한 대답들이 돌아왔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4.03.13
 
은성민 작가와 박종민 작가의 찻그릇. 최성우 대표는 개완으로 차를 마실 때 서로 다른 그릇을 겹쳐 탑처럼 쌓아보는데, 이는 그에게는 하나의 의식이다. 참고로 뚜껑이 있는 찻그릇(다완)을 개완이라 한다.

은성민 작가와 박종민 작가의 찻그릇. 최성우 대표는 개완으로 차를 마실 때 서로 다른 그릇을 겹쳐 탑처럼 쌓아보는데, 이는 그에게는 하나의 의식이다. 참고로 뚜껑이 있는 찻그릇(다완)을 개완이라 한다.

[ 최성우의 개완 ]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물은 남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그중 어떤 것들은 누군가의 지근거리에서 손끝의 움직임에 따라 나이 들어가고 길들여져가며 물리적 조건과 시공간을 초월한 무형의 가치를 지닌 사물이 되기도 한다. 간장인지 꿀인지도 모를 식물성 기름이 누런 얼룩으로 배어난, 훼손이라고도 볼 수 있는 백자대호 달항아리가 국보가 되고 수입억을 호가하고, 조선에서는 밥그릇인지 국그릇인지로 마구 쓰였던 사발이 일본에서는 국보로 추앙받는 것은 사물이 누구에 의해서 탄생했느냐의 문제만큼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쓰였는지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내게 차(茶)를 즐기는 일은 물, 불, 흙의 세계가 함께 움직여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소통의 과정이다. 불로 물을 끓여 흙으로 만든 찻그릇에서 우려 색, 향, 미를 드러낸 뒤 내 몸으로 받아들인다. 조금 현학적이지만, 찻잎을 우려 찻물을 담아내는 찻그릇은 찻물과 내 정서적 이데올로기를 결합시키는 중개 사물이고, 차를 마시는 행위는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물이 소통하는 소소한 연대를 포함한다. 한밤중에 차를 우리면 찻잔을 잡은 손에서부터 시작된 온기가 몸 안팎으로 스며든다. “사물 없이는 관념도 없다”라는 말은 철학적 과언이 아니다. 찻그릇은 나의 움직임을 담아냄과 동시에 내 관념도 담아낸다. 그런 이유로 유리나 경질백자 같은 무균질의 중성적인 재료보다는 물성적 주장이 분명한 흙을 사용한 찻그릇을 선호하게 된다. 차 마시는 쓰임의 도구가 완상의 조형적 가치를 지닌 사물로 서서히 변모하는 것은 사물과 나만의 소소한 연대에서 이어지는 결과다. 나는 결국 찻그릇에 찻물만 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담아내고 그 흔적은 물리적 흔적으로 찻그릇에 남아서 쌓여간다. 내겐 다종의 찻잔, 찻주전자, 숙우, 다완 등이 있고, 그들 조합의 경우의 수는 거의 무궁무진할 것이다. 혼자 있을 때면 나는 뚜껑이 있는 개완을 쓴다. 개완에 우린 차를 다른 찻잔에 따르는 일이 내게는 마치 흙과 흙이 만나고 작가와 작가가 만나는 일과 같다. 날마다 이 조합을 바꿔가며 찻그릇을 꺼내서 찻잔의 안부를 묻는 것은 흙과 작가에게 안부를 묻는 나만의 의식이다. 그렇게 찻그릇들은 나의 중계사물, 반려사물이 된다. 
최성우(보안1942 대표) 
 
 
1880년대에 만들어진 18K 골무는 천연 진주와 터키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가죽으로 된 전용 케이스가 있다. 가위와 자수용 송곳은 나폴레옹 3세 때 만들어진 반짇고리에 들어 있던 것들이다.

1880년대에 만들어진 18K 골무는 천연 진주와 터키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가죽으로 된 전용 케이스가 있다. 가위와 자수용 송곳은 나폴레옹 3세 때 만들어진 반짇고리에 들어 있던 것들이다.

[ 류은영의 골무 ]
 
나는 빈티지 재료를 찾으러 다니며 그것들을 모아 새롭게 조합해 또 다른 빈티지 가방을 만든다. 업이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오래된 물건에 호기심과 애정이 많은 편이다. 또 내 작업은 한땀 한땀이 손바느질로 이뤄지기에 바늘과 골무야말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들이다. 그동안 다양한 소재의 골무를 사용해보았다. 플라스틱 소재의 가볍고 저렴한 골무는 바늘의 힘에 맞서지 못해 구멍이 나곤 했고, 가죽 소재 골무는 손가락에 난 땀이 스며들어 개운치 못한 감촉을 주곤 했다. 한 친구가 네덜란드에서 선물로 사다 준, 핸드 페인팅이 아름답게 장식된 세라믹 골무도 써봤는데, 예쁘긴 하지만 세라믹 소재가 전달하는 투박한 감각 탓에 바느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나는 마음에 드는 골무를 찾지 못한 채 골무 유목민으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의 한 앤티크 페어에서 1860년대 나폴레옹 3세 시대에 만들어진 은 소재 골무와 가위, 바늘 등이 들어 있는 반짇고리 세트를 발견했다. 나폴레옹 3세 시대에 만들어진 우아하고 섬세한 디테일의 주얼리와 소품을 워낙 좋아하던 터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서 바로 구입했다. 사용해보니 골무의 사이즈는 내 두 번째 손가락에 맞춘 듯 딱 들어맞아서 바느질할 때도 조금의 흔들림이나 밀림이 없었다. 손가락 끝과 골무가 아름답게 결합되는 느낌이랄까?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18K 골드 소재의 1880년대 골무를 발견한 게 두 번째 사랑이었다. 테두리에 천연 진주와 터키석이 교차로 장식되어 있는 이 골무를 보고 사랑에 빠지지 않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골무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데, 그걸 금 소재로 만들고 3개의 진주와 3개의 터키석으로 장식을 했다니, 이것이 정말 조용한 나만의 호사가 아닐까? 
류은영(빈티지 가방 디자이너) 
 
 
김재훈이 벌써 4개째 구매한 라씨(Lacie)의 4TB 용량의 외장하드는 좀처럼 미끄러지지 않고 만지기에 아주 기분 좋은 질감으로 덮여 있다.

김재훈이 벌써 4개째 구매한 라씨(Lacie)의 4TB 용량의 외장하드는 좀처럼 미끄러지지 않고 만지기에 아주 기분 좋은 질감으로 덮여 있다.

[ 김재훈의 외장하드 ]
 
어쩌다 이것들을 살 마음이 들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애플스토어에서 맥의 액세서리들을 살펴보다 라씨(LaCie)의 SSD 외장 드라이브를 발견했다. 평소에도 애플스토어에서 이것저것 살펴보다 지름신의 계시를 받는 걸 즐기는 편이라 이 외장하드를 구입하는 게 아주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외장하드라는 것이 정육점의 고기처럼 한 근에 1만원이면 두 근엔 2만원인 건 아니지만, 대략적인 비례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다른 외장하드 중 가장 비싼 것들이 대략 2테라바이트에 20만원 정도였던 반면, 이 브랜드의 외장하드는 4테라바이트짜리가 당시 180만원이라는 사실에 어쩌면 모험심이 샘솟았는지도 모른다. 애플스토어의 설명에는 ‘기존의 SATA SSD보다 약 5배 빠른 속도를 구현할 수 있다’ ‘IP67 등급의 방수 기능과 3m의 충격 흡수 기능’ ‘2톤의 압력 저항’ 등의 설명이 쓰여 있었지만, 그런 게 내 관심을 끌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문제는 이걸 계속 사게 됐다는 점이다. 나는 그 뒤로도 4개나 이 외장하드를 더 샀다. 보통 우리는 외형의 디자인에 매료되곤 하는데, 내가 라씨에 매료된 이유는 이 외장하드가 가진 물리적인 특성 때문이다. 마치 아주 오래전 모토롤라의 스타텍이나 레이저 휴대전화를 손에 쥐었을 때처럼 내 손아귀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느낌, 아이폰 3S를 처음 손에 들었을 때처럼 적당하게 내 손을 누르는 무게감, 고무로 빚어낸 벨벳 천을 만지는 듯한 감촉. 촬영한 것들을 백업하기 위해 선더버드 케이블에 이 외장하드들을 꽂을 때마다 느끼는 그런 물성들이 내게 지속적이고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김재훈(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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