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당동'이 된 신당동에는 을지로와는 다른 바이브가 흐른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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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당동'이 된 신당동에는 을지로와는 다른 바이브가 흐른다

‘힙당동’이 된 점집의 거리 신당동. 그러나 신당동엔 을지로·성수와는 다른 새로운 바이브가 흐른다. 신당동 바이브 전격 분석 리포트.

김현유 BY 김현유 2023.01.30
 
 
이효리가 신당동에 건물을 샀다. 한남동 건물을 팔고 매입했다고 했다. 스몰 웨딩도, 제주도살이도, 요가와 렌틸 콩도 유행시킨 이효리가 무려 한남동 건물을 팔고 신당동을 선택했다는 건 일종의 신호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신당동의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신당동’을 검색하면 ‘힙당동’이라는 태그가 뜬다. 그러나 그저 ‘힙’하다는 것만으로는 신당동에 흐르는 기운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지디와 정형돈이 빈티지 쇼핑을 하던 곳, 80대 노인들이 1000원짜리 몇 장을 두고 싸워가며 바둑내기를 하던 곳, 중고시장 좌판에서 2020년까지도 박정희의 초상화가 팔렸던 곳, 점집의 깃발이 이태원의 만국기처럼 날리던 곳,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광경이 걸음으로 10분밖에 되지 않는 지역에 다 몰려 있기 때문이다.
신당은 서울에서 노령 유동 인구가 가장 높은 중구의 핵심 지역 중 하나였다. 거리를 가득 채운 한약방, 노래주점, ‘김창숙 부띠끄’ 스타일의 오래된 옷가게와 건어물을 파는 행상, 벌겋게 취한 어르신들이 가득한 동네였던 것이다. 내가 그곳을 처음 찾은 2013년, 신당동이 위치한 중구의 노령화지수는 142.6에 달했다. 0~14세 인구보다 65세 인구가 1.426배 많다는 의미로, 그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다. 그 시절에 지금의 신당을 상상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상현 셰프의 선견지명은 대단했다. 2020년의 어느 날 미국과 독일 등 각국을 경험한 미슐랭 출신의 최상현 셰프가 오픈한 ‘디핀’을 취재하기 위해 신당동을 찾았다. 그의 레스토랑으로 향하며 나는 시장 인근의 생선 가게와 양말 가게를 지났다. “대체 왜 파인다이닝 셰프가 이런 동네에…” 여과 없이 던진 질문에 최 셰프는 상냥하게 답했다. “나름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믹스매치죠. 바깥은 올드한데, 실내는 모던하고 세련된 공간이잖아요.”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제2의 을지로 같지 않나요?” 당시 디핀 옆에는 그야말로 을씨년스럽게 꾸며놓은 ‘신당(神堂)’ 콘셉트의 술집 ‘주신당’이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해가 지기 시작한 주신당 앞에는 이미 웨이팅이 길게 늘어섰다. 그때 나는 최 셰프의 말을 곱씹어봤다. 신당동이 제2의 을지로가 될 수 있을까?
3년여 만에 디핀과 주신당이 있던 골목을 찾았다. 얼핏 보기에 골목은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오래된 건물에선 안쪽만 뜯어고친 새로운 ‘힙플’들이 자라고 있다. ‘심세정’ ‘모구모구과자점’ ‘발리닭’ ‘하니칼국수’ 등 인스타그램에서 이미 핫한 가게들이 기존 건물의 골조와 익스테리어를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시장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목요일 오전이라는 애매한 시간이었음에도 골목에는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대는 힙스터들이 가득했다. 내가 간 날은 대부분이 2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방학이라 오랜만에 동기들끼리 만나기로 했는데, 요즘 신당동이 핫하다고 해서 일찍 와봤어요.” 한 여학생 무리에게 물었더니 유튜브에 신당동이 종종 나와서 흥미가 생겼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확실히 이 골목은 과거 을지로가 막 ‘힙지로’라고 불리던 시절과 흡사해 보였다. 그러나 신당은 제2의 을지로가 아니다. 을지로와는 또 다른 유동 인구 구성을 가진 도심이다. 공업사들 사이사이에 노포와 새로 생긴 인스타그래머블한 바들이 섞여 있는 게 을지로의 매력이라면, 신당에는 사람들이 산다. 서울에서 유명한 시장 중 하나인 신당중앙시장에서는 가정주부들이 장을 보고, 조금만 걸어가면 주택가가 나온다. 해가 지면 공업사들이 문을 닫아 공동화하는 을지로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 흐른다.
 
확실히 이 골목은 과거 을지로가 막 ‘힙지로’라고 불리던 시절과 흡사해 보였다. 그러나 신당은 제2의 을지로가 아니다. 을지로와는 또 다른 유동 인구 구성을 가진 도심이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이 ‘을지로’보다 ‘성수’를 더 많이 언급한 이유기도 하다. “‘싸전거리’는 지난 몇 년 사이 권리금이 엄청 올랐어요. 단위가 달라졌죠.” 중앙시장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A씨의 말이다. ‘싸전거리’는 쌀집 건물을 다수 품고 있는, 디핀과 주신당이 위치한 골목의 본래 이름이다. 실제 근방 부동산마다 붙어 있는 상가 매매 관련 안내에는 권리금에 대한 설명이 꼭 붙어 있었다. “가게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충 몇천만 원씩 올랐죠. 그런데도 사업 준비하는 젊은 사장님들이 많이 물어봐요.”
장사가 잘된다는 그의 말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 서비스를 보면, 싸전거리 인근의 2022년 3분기 유동 인구 밀도는 1헥타르당 22만2463명이었다. 2021년 3분기 19만8547명에서 1년 사이 꾸준하게 늘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쌀가게와 가구점이 혼재해 있어 소매업이 활성화된 지역이었으나 최근 들어 외식업 매장이 급증했고, 비슷한 시기 20대의 외식업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 현재 이 지역 외식업의 주 고객은 20대가 41%, 30대가 39%를 차지하고 있다. 같은 지역 소매업 매출의 98%가 50대에게서 나온다는 것과 비교하면 극명한 차이다. 다만 임대료는 많이 비쌌다. 싸전거리 상가 1층 임대료는 3.3㎡(1평)당 38만8600원 수준이었다. 서울시 상가 평균 임대료 15만1400원은 물론, 중구 전체의 평균 임대료 26만7900원과 비교해도 확실히 높았다.
“싸전거리는 매물도 적고, 임대료도 상대적으로 비싸다 보니까 그 옆 골목 상가 문의도 꽤 들어와요. 한 골목만 가도 차이가 크거든요.” A씨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싸전거리를 제외한 중앙시장 내의 상권 임대료는 3.3㎡(1평)당 15만7400원 수준이었다. 싸전거리는 물론, 중구 전체의 평균 임대료와 비교해도 상당히 낮았다. 덕분에 싸전거리만큼은 아니지만, 시장 곳곳에 ‘힙’한 가게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는 지난해 9월, 10월 연달아 문을 연 편집숍 ‘핍스마켓’과 ‘세실 앤 세드릭’이다. 핍스마켓은 의류 브랜드 ‘피지컬 에듀케이션 디파트먼트(Phyps)’의 첫 오프라인 매장으로, 얼핏 보면 시장 내 슈퍼마켓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는 모양새다. 인근의 다른 가게들처럼 건물의 외형은 살린 채 내부만 고쳤기 때문이다. 부식 일체가 있어야 할 쇼케이스에 각종 의류와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전시했다. 업체 관계자는 젊은 유동 인구가 꾸준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 이곳에 첫 번째 오프라인 매장을 냈다고 말했다. 가드닝 편집숍인 ‘세실 앤 세드릭’은 핍스마켓과 달리 건물의 뼈대만 남긴 채 내외부를 완전히 새롭게 뜯어고쳤다. 쌀포대가 가득 쌓인 오래된 쌀가게와 시장 내 가구점 가운데 프렌치 감성을 구현한 것이다. 핍스마켓이 자연스럽게 시장과 어우러진 것과 반대로 세실 앤 세드릭은 믹스매치 그 자체다.
여러모로 대조되지만, 이 두 매장이 ‘힙당동’의 향후 성장에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외식업체만으로 힙한 분위기가 지속되지는 않는다. “성수동 같은 경우에도 외식업체들에 이어 다양한 편집숍이 생기고, 그다음에 브랜드 팝업 스토어가 들어오면서 지속적으로 젊은 방문객을 끌어들인 거거든요. 신당동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A씨의 말이다.
 
 
이 동네의 재미있는 점은, 기존 유동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어르신들과 힙한 분위기를 원하는 젊은 층, 그리고 저 너머 아파트 단지 거주민들과 충무아트센터에 공연을 보러 온 가족 단위 고객들이 섞여 있다는 거예요.
 
중앙시장만큼은 아니지만, 그 건너편 분위기도 서서히 끓어오르는 중이다. 중앙시장의 부흥이 주신당과 디핀에서 시작되었다면, 건너편 중부소방서 인근의 상권은 2019년 연말에 문을 연 닭구이집 ‘은화계’가 중심이 됐다. “거래가 갑자기 늘거나 상권이 크게 형성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젊은 사장님들 문의가 이전에 비해 늘었죠.” 근처 부동산 공인중개사 B씨의 설명이다. 중앙시장을 찾는 손님이 늘어난 만큼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오래된 건물의 뼈대를 그대로 살린 채 내부만 고쳐 레트로하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 가게가 중앙시장에 늘어나고 있다면, 반대쪽엔 건물을 아예 고쳐 세련된 인테리어에 팬시한 분위기를 살린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내추럴 와인바 ‘네뜨’도 그중 하나다. “건물 앞 마당도 너무 마음에 들었고, 중앙시장 쪽 상권 발전 영향도 받지 않을까 싶어 이곳을 택했죠.” 김성진 대표의 말이다. 중앙시장과 대비되는 분위기가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중앙시장 쪽에는 정말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독특한 가게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꽤 평범해요.” 성신여대와 성북 등에서 운영 중이던 양식당 ‘문화식당’의 분점을 중앙시장 건너편에 낸 태기호 대표의 말이다. “이 동네의 재미있는 점은, 기존 유동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어르신들과 힙한 분위기를 원하는 젊은 층, 그리고 저 너머 아파트 단지 거주민들과 충무아트센터에 공연을 보러 온 가족 단위 고객들이 섞여 있다는 거예요. 힙한 것을 원하는 분들은 중앙시장으로, 평범한 식사를 원하는 분들은 저희 가게로 오시는 거죠.”
B씨는 이런 이유 덕분에 신당역 인근이 성수에 버금가는 지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서울숲에 놀러 온 사람들이 온 김에 성수를 방문하면서 찾는 이들이 늘었거든요. 충무아트센터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는 인구가 유입될 요소는 이뿐만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서울 중심에 있는 데다가 지하철 노선도 두 개나 지나가니까 교통편도 좋잖아요.”
그 역시 을지로가 아닌 성수를 말한 것이 흥미로웠다. 을지로와는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묻자 그는 태 대표가 말한 ‘저 너머 아파트’를 언급했다. “역 주변엔 오피스텔이 많고, 상왕십리 방향으로는 아파트가 많아요. 방문객에게 의지하는 게 아니라, 거주 인구가 많다 보니 주중과 주말 매출이 모두 잘 나오는 복합 상권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러고 보니 세실 앤 세드릭의 정  대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의외로 주 고객은 근처 아파트에 사시는, 연령대 있는 분들이에요.” 힙한 골목을 찾아오는 이들이 타지의 방문객만은 아니기에, 이 흐름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신당동이 뜨기 시작한 건 2020년이지만, 3년 가까이 지나도록 아직 신당동의 인기는 정점을 찍지 않았다. 오히려 싸전거리로 한정돼 있던 상권이 점차 그 기세를 타고 올라 신당역 인근 전반으로 퍼져 나가는 중이다. 레트로 감성의 힙플레이스부터 모던한 분위기의 레스토랑까지 모두 포괄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이미 ‘제2의 성수’나 ‘제2의 을지로’로 신당을 설명해야 하는 시점은 지나가고 있다. 신당동 그 자체가 갖는 고유의 바이브는 태생부터 함께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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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김현유
    PHOTOGRAPHER 조혜진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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