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모르는 일본 한식 '일본 사람이 한국 김밥 먹는 날'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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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모르는 일본 한식 '일본 사람이 한국 김밥 먹는 날'

한식의 가능성은 어쩌면 한국 바깥에서 더 적극적으로 확장 중인지도 모른다. 가까운 일본에서 한식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여러 세대를 거치며 실험을 거쳐왔고, 이제 그 한식은 우리가 알던 한식과는 꽤 다른 것이 되었다. 일본 한식 진화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 한식 전문가 핫타 야스시에게 한국인이 모르는 일본의 한식에 대해 물었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4.03.14
 
4th Dish
이제 ‘삼겹살’은 일본어다
 
치즈닭갈비와 함께 일본에서 현대 한식 혹은 뉴커머들을 대표하는 요리가 바로 삼겹살이다. 삼겹살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거의 아무도 모르는 음식이었다. ‘야키니쿠’라고 하면 소고기구이를 말한다. 아마도 돼지고기를 구워서 먹는다고 하면 소고기의 값싼 대용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삼겹살을 구워서 먹으면 맛있다는 소중한 사실을 가르쳐준 사람은 드라마 〈겨울연가〉(2002)로 유명한 배우 배용준 씨였다. 〈겨울연가〉 제6화 회식 장면에서 배용준 씨가 삼겹살을 구워 먹는 장면이 등장해 팬들의 궁금증이 폭발했다. 〈겨울연가〉가 유행한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선 와인삼겹살이 유행하더니 허브삼겹살, 녹차삼겹살 등 다양한 삼겹살이 인기를 끌었다. 그 유행이 배용준을 타고 일본까지 건너와 삼겹살 전문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는데 그 시기가 정확하게 제1차 한류(2003~2006년쯤으로 본다)와 딱 맞아떨어진다. 일본 사람들이 드라마나 인기 배우의 사생활을 통해 야키니쿠가 아닌 삼겹살, 떡볶이, 닭갈비, 순두부찌개 등의 한식에 처음 눈을 뜨게 된 시기다.
대략 4차로 나뉘는 일본에서의 한류는 저마다 특징이 있다. 제1차가 배용준과 삼겹살이었다면, 제2차(2010~2012년쯤)는 K-팝 열풍이었고, 제3차(2016~2018년쯤)인 코스메틱과 패션 열풍이 가장 거셌다. 제4차(2020~2023년쯤)는 아마도 콘텐츠가 아닐까? 코로나19 사태로 한국 여행을 못 가게 되면서 일본에서 즐길 수 있는 한국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다. 이렇듯 한류는 그 역사가 길고 오래되어, ‘삼겹살’은 이제 설명이 필요 없는 한류의 시조새 격인 셈이다. 편의점에 가면 전자레인지로 데워서 먹는 삼겹살을 팔고, 마트에 가면 ‘삼겹살용’ 고기가 진열되어 있다. 닭고기를 삼겹살처럼 구워서 먹는 ‘토리(닭)겹살’, 양고기를 구워 먹는 ‘라무(lamb)겹살’, 샤부샤부를 상추로 싸서 쌈장과 함께 먹는 ‘샤부겹살’을 파는 음식점도 있다. 2020년쯤에는 젊은 층 사이에서 ‘삼겹살을 먹다’라는 뜻의 동사로 ‘교푸루(ギョプる)’라는 신조어가 사용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제 삼겹살(サムギョプサル)은 일본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말이다. 한류 20년의 세월 동안 굳게 자리 잡고 그 많은 유행의 세파를 견뎌내며 일본 속 한식 문화를 이끌어온 ‘삼겹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5th Dish
일본 사람이 한국 김밥을 먹는 날
 
2023년 한국 농수산식품 수출액은 120억2000만 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일본 마트에서도 김치, 라면, 과자, 소스류 등 한식 관련 상품을 많이 판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요가 많아진 냉동식품 코너도 한식이 점령했다. 만두, 양념치킨, 부침개, 핫도그, 호떡 그리고 김밥이 대표적이다. 야채김밥, 불고기김밥, 김치김밥, 치즈김밥, 삼겹살김밥, 양념치킨김밥, 치즈닭갈비김밥 등 다양한 김밥이 냉동실에서 꽁꽁 언 채 손님을 기다린다.
반찬 코너에서 도시락이나 오니기리(주먹밥)와 함께 김밥을 파는 데도 있고, 손질된 속재료와 밥 조미용 소스가 들어 있는 간편한 김밥 조리 세트도 나왔다. 코로나19 시기에는 포장 전문 김밥집이 일본 각지에서 생기기도 했다. 젊은 층이 많은 한식당에서는 김밥, 치킨, 치즈볼, 감자튀김, 소떡소떡 등을 조금씩 담은 ‘한식 먹방 세트’가 인기 메뉴다. 이렇게 김밥이 정착되면서 요즘 좀 신기한 습관이 생겨나고 있다. 일본에서 2월 3일이 김밥 먹는 날이 되었다.
원래 2월 3일은 ‘세쓰분(節分)’이라는 일본 명절이다. 정확히는 입춘 전날이라 2월 2일이나 4일이 될 때도 가끔 있다. 이날에는 집 안팎에 콩을 던지고 귀신을 쫓아내거나 그해의 길한 방향을 보면서 ‘에호마키(?方?き)’라는 일본식 김밥을 먹는다. 에호마키는 생긴 것만 비슷할 뿐 원래는 한국의 김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음식이다. 그런데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에호마키 대신 김밥을 먹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처음에는 한식당에 미리 김밥을 주문해 먹었다. 그러나 요즘은 한식당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편의점이나 마트의 보드판에 ‘에호마키 김밥’이라 선전하며 팔기도 한다. 에호마키는 칠복신(七福神, 7명의 행운의 신)을 표상하는 7가지 속재료를 넣어 말고, 자르지 않고 먹는 것이 원칙이다. 에호마키 김밥도 당연히 그렇게 만들어진다. 자르지 않은 김밥을 그대로 먹는 것은 한국 드라마에서 가끔 보는 장면이기도 하니 그런 기분도 맛볼 수 있어 기쁘다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일본 사람이 한국식 김밥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며, 일부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래도 명절 음식에까지 한식이 들어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닌가. 한국에서라면 복날에 야키토리(닭꼬치, 焼きとり)나 가라아게(닭튀김, から揚げ)를 먹는 느낌일까? 아니면 소풍 갈 때 노리마키(일본식 김밥, 海苔巻き)를 가져가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6th Dish
신오쿠보를 보면 일본 시장이 보인다
 
삼겹살이든 치즈닭갈비든 에호마키 김밥이든 일본에서 가장 새로운 한식 유행이 뭔지 궁금하다면, 도쿄 신오쿠보를 가보는 게 가장 좋다. 신오쿠보에는 한식당을 비롯해 한국식 카페, 슈퍼, 화장품 가게, 옷 가게, 공연장, 셀프 사진관 등 600개 정도의 점포가 중심지에서 500m 권역 내에 모여 있다. 도쿄 주변에 사는 사람이 한국과 관련된 소비 활동을 하고 싶다면 그게 미식이든 미용이든 신오쿠보로 가는 게 가장 확실하고 빠른 셈이다.
예전에 신오쿠보는 조용한 주택가였지만 요즘은 테마파크 같은 관광지와 다를 게 없다. 원래 신오쿠보는 가부키초(歌舞伎町)라는 유흥가와 인접해 있어 그곳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살기 적합한 지역이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재일 동포를 위해 한식을 제공하는 작은 식당이 한두 개 생기면서 코리아타운의 규모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으니 코리아타운의 역사로만 따지면 100년이 넘은 오사카의 쓰루하시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그 역사가 짧다. 특히 뉴커머(newcomer, 1980년대 이후에 일본에 정착한 외국인)를 중심으로 하는 게 특징이다.
신오쿠보가 현재처럼 큰 코리아타운이 된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1990년대 중반에 도매를 겸한 한국 슈퍼가 개업해 식자재를 구하기 쉬워졌다는 점, 1990년대 후반 IMF 사태로 해외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려 한국이 일본 사회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는 점, 2003년부터 시작된 한류 때문에 한국 문화를 체험하려는 일본 관광객이 늘어난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1차 한류 직전인 2000년쯤엔 신오쿠보에 한국 관련 점포가 60곳 정도에 불과했다고 하니, 한류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는 말할 것도 없다.
쓰루하시가 재일 교포들의 생활 터전이자 전통적인 음식 문화를 장사에도 잘 살리는 반면, 신오쿠보는 한국에서 그때그때 유행하는 아이템을 시간차 없이 가져오며 화제를 모으는 경향이 있다. 2024년 2월 현재 신오쿠보에서는 약과나 설기떡 같은 한식 디저트를 내는 카페나 소스에 찍어 먹는 추러스, 고양이 푸딩을 파는 가게가 많아지는 추세다. 한국의 번화가와 매우 비슷한 느낌이지만 또 어딘가 모르게 조금 다르다. 2022년에는 갑자기 주꾸미볶음 열풍이 일었고, 2023년에는 한국식 횟집에서 물회를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주꾸미볶음은 한국에서 진출한 전문점이 히트를 치면서 인기를 얻었고, 물회는 BTS의 진 씨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화제가 된 게 그 시초였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인기인 것들이 일본 사람들 취향에 안 맞는 경우도 꽤 있다. 신오쿠보가 한국 그대로가 아니라,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국을 모은 곳’이라 불리는 이유다. 즉 한식으로 일본 시장을 겨냥할 때 참고로 삼을 만한 지역이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한국에 없는 한식도 한식일까? 애초에 우리는 이런 질문에 답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일본에 한국에 없는 한식이 있어 다행일 뿐이다. 한국에 없는 한식은 재일 교포들이 100년 이상 지켜온 옛 음식 문화이거나 한류와 함께 일본 사람들이 한식을 즐기면서 생긴 새로운 문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보면 좀 낯설고 때로는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한식이 가진 수많은 가능성의 단면이다. 재밌게도 일본 속 한식은 일본에서만 먹을 수 있다. 같은 젓갈이라도, 또 김치라도 한국과는 간이 전혀 다르다. 어떻게 보면 일본 지역의 향토 한식인 셈이다. 일본으로 여행 올 기회가 있다면, 한식을 먹어보기를 권하는 이유다. 
 
 

Who’s the writer?
핫타 야스시(八田 靖史)는 한국에서 유학하던 중 한국 음식의 매력에 빠진 푸드 칼럼니스트다. 일본에 한국 음식을 알리기 위해 2001년부터 잡지, 신문, 웹 등에서 집필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토크쇼와 강연, 기업 어드바이저, 한국 미식 여행 기획자로 일한다. 웹사이트 ‘한식생활(www.kansyoku-life.com)’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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