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모르는 일본 한식 '옥돔전의 사연과 쓰레받기 전골'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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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모르는 일본 한식 '옥돔전의 사연과 쓰레받기 전골'

한식의 가능성은 어쩌면 한국 바깥에서 더 적극적으로 확장 중인지도 모른다. 가까운 일본에서 한식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여러 세대를 거치며 실험을 거쳐왔고, 이제 그 한식은 우리가 알던 한식과는 꽤 다른 것이 되었다. 일본 한식 진화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 한식 전문가 핫타 야스시에게 한국인이 모르는 일본의 한식에 대해 물었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4.03.14
 
1st Dish
서울보다 가까운 제주도 음식 
 
일본에는 있지만 한국에는 없는 한식을 과연 한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음식 민족주의적인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한국에는 없지만 일본에는 있는 한식을 살펴보자. 정말로 그런 음식이 있는지, 있다면 언제 어떤 연유로 만들어졌는지 생각해보자. 음식을 맛보고 살펴보다 보면 의외로 많은 것이 보이고, 많은 감정이 읽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에 일본만의 특징을 가진 한식 문화가 있는 이유는 종종 감정을 흔들기도 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제주도 음식’이다. 서울에서는 찾기 힘든 제주도 음식이 왜 일본에서는 흔하게 보이는 걸까?
일본을 대표하는 코리안 타운이라고 하면 관동(간토, 關東)으로 도쿄의 신오쿠보(新大久保), 관서(간사이, 關西)로는 오사카 쓰루하시(鶴橋)가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관서 지역 대표인 쓰루하시에 가면 수많은 한식당의 메뉴에 제주도 음식들이 당연하다는 듯 정착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쓰루하시는 오사카에서는 ‘내리고 싶어지는 역’으로 유명하다. 일본 대도시의 일본 철도(JR) 라인은 보통 고가 위를 달려서 역 주변의 고가 아래에 상점들이 즐비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쓰루하시는 역 아래는 물론 그 주변 지역까지 거의 한 블록에 한국식 야키니쿠(고기구이) 집이 가득 차 있어, 전철에 타고 있어도 문이 열리는 순간 들이닥치는 고기 굽는 냄새를 막을 수가 없다. 그 냄새를 맡으면 내리고 싶은 마음을 참기 힘든 건 인지상정. 게다가 쓰루하시역 인근엔 야키니쿠 집 외에도 한국 슈퍼나 식당, 술집, 한식 반찬 가게들이 잔뜩 모여 있다. 그중에서도 가게 앞에 큰 철판을 설치해두고 지짐이(부침개)를 부치는 가게들, 형형색색의 파전, 김치전, 부추전, 호박전을 탐스럽게 쌓아둔 전 가게들이 손님을 유혹한다. 이는 한국의 여느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어느 가게에나 빠짐없이 ‘옥돔전’이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 특산물인 옥돔으로 부친 옥돔전이 제주 출신의 재일 교포들 사이에선 제사상에 반드시 올라가야 하는 음식이기에 벌어진 일이다. 귀한 음식이지만 제사상에 오르는 만큼 익숙해 캔맥주와 함께 포장마차에서 즐기는 인기 메뉴가 되었다. ‘홋페 지짐이(ほっぺチヂミ)’도 같이 시켜 먹기 좋다. 일본어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홋페’가 볼때기를 뜻하는 말이니 소나 돼지의 볼때기살로 부친 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홋페 지짐이는 소 허파전이다. ‘허파’의 발음이 ‘홋페’로 변한 것이다. 홋페전 말고도 전복죽, 갈치조림, 옥돔구이, 몸국, 자리물회 등 제주도 향토 음식이 쓰루하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어떤 가게에서는 시그너처 메뉴로 제주도의 제사 음식인 ‘적갈’(제주도식 산적)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 이유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2년 제주도와 오사카를 오가는 연락선 ‘기미가요마루(君が代丸)’가 취항했고 이걸 타고 많은 사람이 오사카에 건너가서 생활의 터전을 일궜다. 일본 법무성의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재일 교포의 본적지는 경상도(51.9%)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제주도(15.8%)다. 다만 이를 오사카로 한정 지으면 제주도의 비율은 38.7%로 치솟는다. 현재 한국에서 제주도 인구가 전체의 1.3% 정도인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비율이다. 참고로 도쿄에서는 아라카와구(荒川区) 미카와시마(三河島)에 제주도 출신과 그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다. 쓰루하시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곳의 한식당에 가면 제주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도쿄에서든 오사카에서든 서울보다 가깝게 작은 제주도 마을을 찾아 제주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2nd Dish
쓰레받기 전골을 아시나요?
 
재일 교포 사회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식을 지켜오기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일 교포의 한식은 새로운 국면을 맞으며 변모했고, 종종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모리오카 냉면일 듯싶다. 모리오카 냉면은 그 연원과 출처가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한 개발 한식이다. 함경남도 함흥시 출신인 양영철(일본명 아오키 테루토) 씨가 1954년에 이와태현(岩手県) 모리오카시(盛岡市)에서 한식당 ‘식도원(食道園)’을 개업하면서 처음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먹던 함흥냉면 맛을 떠올리며 만들었지만, 좀 더 유명한 ‘평양냉면’이라는 메뉴명을 간판에 내걸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평양냉면도 함흥냉면도 아니었다. 면발에는 하얀 게 맛깔스럽다고 메밀가루 대신 밀가루를 써서 부산의 밀면과 유사했고, 달달한 육수는 함흥냉면이나 평양냉면과 비슷했으며, 그 위에 깍두기나 양배추김치 등을 올렸다.
오사카에서 태어난 한식으로는 ‘치리토리나베(ちりとり鍋)’가 있다. 직역을 하면 ‘쓰레받기 전골’이 된다. 그냥 듣기에는 입맛을 떨어뜨리는 이름이지만, 실제로 보면 육수를 조금 부운 곱창볶음과 곱창전골 중간 정도의 요리로 꽤나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만자이바시(万才橋)’라는 음식점에서 개발한 음식인데 원래 철공소를 운영하던 주인이 곱창집을 열며 철판을 접어서 불판으로 만든 것이 시초였다. 그 불판에 올린 곱창 요리가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손님들이 정사각형 불판을 보고 마치 쓰레받기 같다며 붙인 이름이 치리토리나베가 되었다. 치리토리나베는 이제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関西) 지방에서는 흔한 메뉴다. 소고기나 돼지고기, 해산물, 채소 등을 산더미처럼 쌓는 호화로운 치리토리나베도 있다. 전문점도 많이 있지만 도쿄 등의 간토 지방에서는 비교적 드무니, 역시 본고장인 오사카에서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일본에서 태어난 김치도 있다. 고마쓰나(소송채) 김치가 그렇다. 고마쓰나는 청경채와 비슷한 형태지만 짧은 청경채와는 달리 이파리가 길쭉하며 식감이 아삭하고 좀 더 부드럽다. 에도시대인 18세기에 도쿄 에도가와구 고마쓰가와 지구에서 품종 개량한 잎채소로 한국인의 시금치와 쓰임이 비슷하다. 나물을 하는 데 주로 사용했던 이 채소를 김치로 담가 먹기 시작한 것이다. 고마쓰나뿐 아니라 지역에 따라 향토 채소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신토불이인 셈이다.
 
 
3rd Dish

사라진 한식을 일본에서 만나다
 
일본 야키니쿠(고기구이) 집 메뉴판에선 종종 낯선 요리 이름을 찾을 수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예전의 사투리를 그대로 쓰기 때문이다. 전술한 바대로 재일 교포 중엔 경상도 출신이 많다. 재일 교포 1세대들이 썼던 경상도 사투리가 세대를 거치며 구전되어 메뉴판에 적혔으니, 재밌는 표현이 많다. 부침개를 ‘지지미’, 깍두기를 ‘가쿠테키(カクテキ)’, 상추겉절이를 ‘초레기 사라다(チョレギサラダ)’라고 부르는 것은 경상도 사투리인 ‘지짐’ ‘깍데기’, ‘재래기’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투리가 어원은 아니지만 창난젓을 ‘창자(チャンジャ)’라고 부르기도 한다. 명태 창자로 담근 젓갈이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국어 학습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선 통하지 않으니 조심해야 하는 단어’로 유명하다.
반대로 한국 사람이 조심해야 하는 말이 ‘대구탕’이다. 이걸 주문하면 맑은 국물의 시원한 대구탕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름이 떠 있는 빨간 국물 요리가 나온다. 아무리 찾아도 대구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소고기가 들어 있다. 일본 야키니쿠 집에 주로 있는 대구탕은 생선 ‘대구(大口)’를 넣은 탕 요리가 아니라 ‘대구(大邱)식 탕 요리’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 음식을 지금 한국에서는 ‘대구식 육개장’이라 부르지만 옛날에는 ‘대구탕(大邱湯)’ 혹은 ‘대구탕반(大邱湯飯)’이라 불렀다. 1920~1930년대 한국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대구탕’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재일 교포 1세대가 이 시대에 도일했으니 그 언어가 그대로 전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엔 서울에도 대구탕 전문점이 많이 생기며 유행했을 정도로 인기인 음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대구식 탕을 ‘대구탕’이라는 이름으로 파는 집은 서울에선 을지로3가에 있는 ‘조선옥’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사례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2014년쯤 한국에서 치즈닭갈비가 유행하더니 한동안 치즈닭발, 치즈족발, 치즈주꾸미 등등 ‘치즈 열풍’이 일어난 적이 있다. 그 유행이 일본으로 건너가 치즈닭갈비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게 2017년이다. 그 이후 한국에선 치즈 열풍이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치즈닭갈비가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한식당의 대표 메뉴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 요리를 떠올릴 때 ‘치즈’ 이미지가 강한 이유이기도 하다. 2014년의 치즈 열풍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타임머신까진 필요 없이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표만 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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