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스피커가 통상 두 개 한 조인 이유는, 사람의 귀가 두 개이기 때문이다. 더 많으면 집중력이 떨어지고(홈시어터 시스템처럼 청취자를 둘러싼 사방에서 소리가 나도록 하면 현장감은 높아지지만 하이파이 오디오의 본래 목적인 ‘음악감상’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더 적으면 몰입도가 떨어진다. 액티브 스피커(앰프가 내장된 스피커)가 수두룩하게 나와 있는데 굳이 앰프를 따로 구비하는 이유는 그 편이 음질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로 구비해야 앰프가 크기, 발열, 구조 같은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소스 기기의 미약한 신호를 크고 아름답게 증폭시키는 과제에만 몰두할 수 있으니까. 물론 앰프, 스피커, 케이블 따위를 수없이 사고팔며 상성을 맞춰 자신만의 조합을 만드는 게 오디오라는 취미의 묘미 중 하나라는 점도 큰 요인일 것이다. 소스 기기가 이들과 따로 구성된 데에도 저마다 이유가 있으나, 일단은 확장성에 좋다. 좋은 스피커와 앰프를 갖췄다면 특정 소스에 발을 묶기보다 다양한 소스 기기와 호환해 쓸 수 있도록 열어두는 편이 나을 테다.
물론 우리는 소스 기기부터 앰프, 스피커까지 모두 한 뭉치에 들어 있는 물건도 여럿 봐왔다. ‘블루투스 스피커’라고 불리던 광범위한 제품군이 여기에 속할 것이고, 좀 더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미니 컴포넌트 같은 기계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전축을 언급할 사람도 있을까? 데이비드 보위의 ‘애완 오디오’로 유명한 라디오포노그라포 RR226을 말할 사람은? 최초의 오디오가 포노그래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올인원 스피커’는 오디오의 역사 내내 존재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하지만 최근 오디오계에선 이와 관련한 특기할 만한 움직임이 있다. 바로 세계적 명성의 하이파이 오디오 브랜드들이 ‘한 뭉치에 든’ 오디오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네임오디오의 뮤조가 선도적이었죠. 패셔너블하고 간편한 디자인에, 성능은 웬만한 어설픈 2채널 스피커보다 나은 제품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예요. 특히 오래도록 앰프와 소스 기기를 만들어온 네임오디오가 스피커 제조사인 포칼과 합병하면서 내놓은 뮤조2가 그랬죠.” 오디오 평론가 이장호의 설명이다. 그가 기억하기로 하이파이 오디오 브랜드들이 이런 종류의 제품을 내놓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그런 걸 만들 줄 몰랐던 게 아니라, 이런 형태의 제품을 이 가격대로 만들면 잘 팔린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수요를, 새로운 시장을 발견한 거죠.”
새로운 시장은 으레 말하듯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함께 만들어졌다. 더 좋은 소리로 음악을 듣고자 하는 욕망은 세대를 떠나 언제나 존재했다. 하지만 콘텐츠가 차고 넘치는 시대에 이르러 집 안에 조성해둔 청음실의 ‘스위트 스폿’에 가만히 앉아 음악을 감상하려는 사람은 현저히 줄었고, 모든 게 간편해진 시대에 소스 기기와 앰프와 스피커의 제원을 읽고 그 상성들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오디오를 사는 사람도 희귀해졌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필요로 하게 된 새로운 성능도 있었다.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TV, 턴테이블 등 다양한 기기의 소리를 손쉽게 개선해주는 기능이 필요했다. 실제로 최근 출시되는 고가의 올인원 스피커들은 대부분 3.5mm AUX, HDMI, 옵티컬 등 다양한 연결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에어플레이, UPnP, DLNA, 룬 레디 등의 네트워크 연결과 온갖 스트리밍 앱을 지원해 다채로운 무선 소스를 직관적으로, 높은 품질로 출력할 수 있도록 한다. 이장호 오디오 평론가의 말처럼 ‘그 많은 기능을 제대로 알고 쓰는 사람은 많지 않고 대부분 그냥 블루투스로 음악을 트는 듯하다’고는 해도, 로이코 정민석 팀장의 설명처럼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요즘은 기술이 정말 좋아졌으니까요. 그냥 블루투스로 휴대폰 스트리밍 음원만 틀어봐도 일반적인 블루투스 스피커와는 다르다는 게 확연히 느껴지거든요.”
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시장을 연 핵심 요인 중 하나다. 유닛을 잘 배치해 하나의 보디로도 풍부한 스테레오 음향을 들려줄 수 있도록 하는 기술부터 (하이파이 오디오 브랜드들에서 내놓는 대부분의 제품은 드라이브 유닛을 쌍으로 배치해 좌우에서 다른 신호를 출력해주는 구조이며, 가로로 길쭉한 형태를 띠는 건 그 때문이다. 어쨌든 아직 사람의 귀는 두 개니까) 공간을 감지하고 그에 맞게 음장을 자동 조정하는 기능까지. “하이파이 오디오 브랜드에서 이제 막 그런 기술을 조금씩 적용하고 있죠. 공간 최적화 기능을 탑재한 스피커는 앞으로 더 많아질 거예요.” 이장호 평론가의 설명이다. 그는 이런 제품들이 분명 종전의 올인원 스피커와는 다른 종류라고 했다. 아무리 가벼운 태도로 만들었다고 해도 하이파이 오디오 브랜드들은 일반 테크 기업들과는 태생, 기본 전제부터가 다르기 마련이며, 동일한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해도 결국 굉장히 다른 타깃 시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반대편에도 선을 그었다. 그렇다고 기성 오디오 애호가들이 이런 제품군을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도 않다는 것. 아직까지는 말이다. 로이코의 정민석 팀장 역시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런 분들은 그냥 거실에서 가볍게 쓰거나 사무실에 하나 갖다 놓는 정도의 용도로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그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적어도 ‘교두보’의 입지는 확실히 점한 듯하다는 부분이었다. 이런 하이파이 올인원 스피커를 들였다가 조금씩 오디오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하나씩 바꿔나가는 사람이 더러 있다는 사실 말이다. “아무튼 그건 기존의 블루투스 스피커는 할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