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미국 중서부 평야는 그야말로 옥수수밭이다. 옥수수는 영양분을 크게 필요로 하는 작물이라 어지간한 옥토에서도 대량 재배가 쉽지 않은데, 대한민국 국토보다 넓은 미국 콘 벨트는 2m가 넘는 옥수수로 가득하다. 그래서 미국에는 옥수수를 활용한 음식과 음료가 자연스레 발달했는데, 그중에는 달콤하고 알싸한 향의 버번 위스키도 있었다.
버번 위스키는 옥수수, 호밀, 보리와 같은 곡물을 혼합해 만든다. 그중 옥수수 비율이 51%여야 한다. 숙성 과정에선 구운 아메리칸 오크통으로부터 나오는 달콤한 바닐라나 캐러멜 향을 통해 단맛을 살리는 게 버번 위스키의 핵심이다. 세계의 곡물창고인 미국 콘 벨트는 풍미 좋은 버번 위스키를 만들 재료가 넘쳐났고, 끈끈한 유통망과 생산량을 확보한 유서 깊은 증류소가 많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카베 자마니안은 성공한 심리학자라는 본업을 포기하고 버번 위스키 브랜드를 창업해 진입 장벽이 높은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그는 2012년 버번 위스키 브랜드 래빗홀을 세상에 내놨고, 독특한 맛과 향으로 버번 위스키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다졌다.
강호들이 즐비한 버번 위스키 세계에서 카베 자마니안은 과감한 시도로 차별화를 꾀했다. 여기에는 아내의 든든한 지원도 한몫했다. 자마니안 부부는 기존 버번 위스키 증류소를 인수하는 대신, 그들만의 증류소를 설립하고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는 모험을 택했다. 브랜드의 안정된 성장 대신 창업자의 꿈을 실현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그들은 기존과 다른 고유의 곡물 배합 비율을 개발했고, 전통적인 버번 위스키 제조 방식에 현대적인 요소를 결합했다. 이는 미국 금주법 시대 이전, 자신만의 고유 기술로 증류주를 만들었던 켄터키 루이스빌의 증류 기술자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이었다. 부부는 증류소 설립 이후 독창적인 레시피와 엄격한 품질관리, 혁신적인 증류 과정으로 프리미엄 버번 위스키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래빗홀의 새로운 맛과 향은 버번 위스키 시장에서 유일무이한 제품으로 알려졌으며, 아메리칸 버번 위스키의 새로운 기준을 정립했다는 평가도 잇따랐다.
달콤하고 상큼하다. 은은한 매운맛과 부드러운 질감도 느껴진다. 래빗홀은 복합적인 풍미를 완성하기 위해 특별한 제조 과정을 도입했다. 위스키 원액을 숙성하는 오크 캐스크는 약 20~30분 동안 저온에서 천천히 구운 것을 사용하고, 위스키 원액은 도수를 최대한 낮춰 숙성한다. 이로써 오크 캐스크에서 나타날 수 있는 떫은맛과 씁쓸한 맛을 최소화한다. 기존 버번 위스키 제조에 사용되는 저온 필터링 방식을 사용하지 않아 원액의 풍미와 식감도 살아 있다. 또 기존 버번 위스키들은 일반적으로 1회 생산 시 수백 개의 오크 캐스크 원액을 사용하는데, 래빗홀은 1회 생산 시 사용하는 오크 캐스크를 15개 이하로 제한한다. 한정 생산은 엄격한 품질관리로 이어지고, 높은 희소 가치를 창출한다. 여기까지가 동화 같은 래빗홀의 이야기다.
국내에선 두 종류의 래빗홀 제품을 만날 수 있다. 브랜드 시그너처인 ‘래빗홀 케이브힐(Rabbit Hole Cavehill)’은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래빗홀 제품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버번 위스키 중 유일하게 꿀과 맥아, 보리를 곡물 배합에 사용했다. 입속에선 향신료의 매운맛이 은은하게 퍼지고, 꿀의 달콤함과 신선한 사과 향이 이어진다. 약간의 시트러스 향과 바닐라, 커스터드 크림의 부드러움이 입안 가득 남는다. ‘래빗홀 데어린저(Rabbit Hole Dareringer)’는 자마니안 부부의 도전 정신을 닮았다. 천천히 구워 만든 최상급 아메리칸 오크 캐스크에서 숙성한 원액을 스페인산 페드로 히메네스 셰리 캐스크에서 추가로 숙성한 제품이다. 달콤한 셰리 향과 캐러멜, 체리 향, 건포도와 은은한 향신료, 아몬드와 바닐라의 복합적인 풍미가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