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도비의 세상이 계속될 것을 확신하는 이유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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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도비의 세상이 계속될 것을 확신하는 이유

김현유 BY 김현유 2023.09.27
 
얼마 전, 존 워녹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 잠시지만 그의 회사에서 일하며 그와 만났던 입장에선 세상의 모든 사람과 밀접한 기술을 전파했으나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이 혁신가의 죽음이 무척 안타깝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워녹이 누구인지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일러스트레이터’가 무슨 프로그램인지는 알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포토샵’은 어떤가? 혹시 벡터 이미지를 제작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나 동영상 편집 기능의 ‘프리미어 프로’ ‘애프터 이펙트’를 안다면 어쩌면 당신은 전문가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편집하는 편집자는 아마도 ‘인디자인’을 사용하는 디자이너에게 지면의 레이아웃 디자인을 맡길 것이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단 하나의 회사에서 만든 것이다. 바로 ‘어도비(Adobe)’. 그리고 존 워녹은 어도비를 창립한 인물이다. 비주얼 편집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느라 어도비를 써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그렇다면 PDF는 어떤가? 그는 오늘날 전 세계 문서 보관 형식의 표준이 된 ‘PDF’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어도비를 써본 적 없다는 이들도, PDF 파일을 읽기 위해 ‘애크로뱃 리더’를 이용해본 경험은 분명 있을 것이다. ‘애크로뱃 리더’와 PDF 파일을 만들 수 있는 ‘애크로뱃’ 역시 어도비의 소프트웨어다.
어도비는 어째서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프로그램을 갖추게 된 걸까? 디지털 파일을 제작할 수 있는 애크로뱃과 오프라인 출간물을 만드는 데 쓰이는 인디자인은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도비가 추구한 목표는 하나다. 디지털 파일을 그 어떤 기기에서도 같은 형태로 볼 수 있게 하고, 변형 없이 출판물에 인쇄하는 것. 워녹은 그래픽 시스템과 프린팅이 앞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관리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내다봤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어떤 기기에서도 형태가 그대로이며 프린팅을 해도 깨지지 않는 ‘표준화된 포맷’이 필요했다. 그 초석이 된 ‘포스트스크립트’는 어도비가 창립한 1982년 공개됐다.
포스트스크립트 공개 이후, 전 세계 프린터 제조업 시장은 큰 변화를 겪었다. 이전까지의 인쇄 장치는 전용 프로그램으로 작성한 문서만 출력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서식이 호환되지 않아 파일이 ‘깨졌’다. 한글 파일에서 작성한 문서를 MS 워드로 억지로 열려고 하면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이 나열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포스트스크립트는 애크로뱃과 같이 이를 읽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만 있으면 문서나 그래픽 손상 없이 출력이 가능했다. 전문 인쇄소가 아닌 사무실 책상에서 문서를 출력할 수 있게 된 것도 포스트스크립트 덕분이었다. 이는 오늘날 PDF로 발전했고, 지난 2008년에는 국제표준화기구(ISO)로부터 국제 표준으로 인정받아 전 세계 파일 포맷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디지털 파일의 손상 없이 어떤 기기에서도 공유하고 프린팅하는 것만이 목표였다면 PDF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도비는 멈추지 않았다. 1988년, 아직 미시간대학교의 학생에 불과했던 토머스 놀이 이미지 편집을 위해 개발한 소프트웨어 ‘이미지 프로’를 사들였다. 이 프로그램은 이후 어도비의 자체 기술을 더해 1990년 ‘포토샵’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됐다. 이미지 편집의 역사가 바뀐 순간이었다.
이전까지 그림이나 사진 등의 이미지를 편집하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편집 기술이 존재하긴 했으나, 사용법을 익히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러나 포토샵은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쉬웠다. 이전 기술과 포토샵 사이 가장 큰 차이점은 ‘직관성’이었다.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었다. 덕분에 완벽한 사진을 찍거나 완벽한 그림을 그리지 못했더라도 여러 가지 이미지를 자르고 변형하고 붙여서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고, 상상 속 아이디어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구현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이후 어도비는 인쇄용 이미지 편집을 넘어, 비디오와 웹 그리고 출판 등 다른 콘텐츠 편집으로 그 영역을 넓혔다. 특히 출판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였던 ‘앨더스’를 인수한 뒤 개발한 ‘인디자인’은 기존의 강자였던 쿼크익스프레스를 몰아내고 거의 전 세계 출판 시장에서 쓰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분명 〈에스콰이어〉에서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래픽이나 디자인 관련된 업무를 하기 위해 어도비를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에 독과점이라는 비판도 있긴 하나, 이는 어도비 소프트웨어가 여타 프로그램에 비해 사용자 친화적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직관성은 어도비의 가장 큰 장점이다. 포토샵뿐만 아니라 프리미어나 인디자인 등 다른 어도비의 소프트웨어 역시 마찬가지다. 정확히 사용할 줄 모르더라도 클릭 한 번으로 효과를 낼 수 있다. 내가 처음으로 포토샵을 사용한 것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당시 유행하던 개인 홈페이지를 꾸미기 위해 이미지를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아무리 어린이라도, 조금만 배우면 충분히 이미지를 편집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얼핏 보면 그저 엄청나게 많은 기능을 ‘때려 넣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어도비는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발견할 수 있는 경로를 상당히 정교하게 마련해두었다. 이는 내가 어도비에서 수석 UX(User eXperiences) 디자이너로 일하며 직접 경험한 것들이기도 하다.
UX 디자이너,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의미 그대로, 사용자가 목표 달성을 위해 제품 내에서 거쳐 가는 여정을 설계하는 작업을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제품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찾기 위한 사용자와의 인터뷰 및 아이디어 검증을 위한 실험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프로덕트 매니저, 리서처, 엔지니어 등과 협업해야 했다.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만 바라보면 볼 수 없는 문제점과 찾을 수 없는 해결 방안을 다각도에서 바라보고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어도비는 조직원 각각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협업을 통한 시너지가 즉각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조직 분위기를 장려했다. 포토샵 디자인팀을 일례로 들면 10여 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각 디자이너마다 전문 분야가 다르다. 어떤 사람이 브러시 전문이라면 어떤 사람은 폰트 관리 전문인 식이다.
한편 PDF의 개발 사례와 같이 혁신도 멈추지 않았다. 지난 몇 년 사이, 딥러닝의 본격적인 보급으로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이룬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 편집 기술이 그 예다. 이전의 이미지 편집 툴에서 쓸 만한 품질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고가 필요했다. 어도비에서 일하는 동안, 우리 팀은 이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기능을 디자인했다.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힘을 합쳐 AI에 이미지 편집 방식을 학습시켜 AI가 좀 더 빠른 방식의 편집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누끼’라 불리는, 사물의 가장자리를 정확하게 선택해 배경을 없애는 작업이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누끼는 직접 품을 들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마우스나 태블릿 펜으로 일일이 사물의 가장자리를 그려내야만 고품질의 누끼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제품의 배경 제거 작업이 필요한 쇼핑몰 업체 등에서는 누끼만 전문으로 하는 인력을 고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포토샵에서 ‘배경 제거’ 버튼만 누르면 누끼 작업이 끝난다. 가끔 AI가 놓치는 부분만 살짝 손봐주면 완벽한 누끼 따기가 가능해졌다.
어도비 소프트웨어가 구현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다른 프로그램은 생각 외로 많다. 그럼에도 어도비 소프트웨어가 여전히 그래픽과 디자인 작업에서 기본 툴로 쓰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체적으로 끊임없이 변화에 적응하고, 전문 분야끼리의 협업을 장려해 여태껏 없던 시선으로 사용자 친화적인 발전을 도모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가능하다면 포토샵을 만들기 위해 ‘이미지 프로’를 사들이고, ‘엘더스’를 인수해 ‘인디자인’으로 출판계를 장악한 사례처럼 외부 기술의 영입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전을 꾀한 덕분일 것이다.
워녹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래픽 분야에 몸담은 전 세계인의 이미지 인식과 생성에 영향을 미친 어도비의 혁신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근 어도비는 인공지능 이미지 편집 기능에 이어,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인 ‘파이어플라이’를 공개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애널리스트 브래스 실스 등 경제 전문가들은 어도비가 AI 분야에서 최고의 소프트웨어 플레이어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어도비의 주가는 올해 들어 52% 급등했다. 한때 컴퓨터에 나오는 화면을 그대로 종이에 인쇄할 수 없는 시대가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어도비의 새로운 소프트웨어는 또 어떤 직관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변화를 불러올지 기대되는 바다.
 
변형환은 디자이너다. 어도비 본사의 포토샵 팀에서 수석 UX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현재는 스타트업 AppZen에서 UX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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