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래방에서 록의 신수를 선보이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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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래방에서 록의 신수를 선보이다

김현유 BY 김현유 2022.11.01
이제는 시효가 지난 것 같아 쓰는 이야기다. 10년 전 여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인생 처음으로 ‘북한’에 ‘개인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 국적을 가진 사람이 북한에 간다고 법에 걸리지는 않지만, 가기 전에 여러 가지 거짓말이 필요하긴 했다. 우선 여행사에 제출해야 하는 ‘여행 신청서’. 직업란에 ‘무직’이라고 썼다. 언론사에 재직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북한 당국으로부터 여행을 거절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직장 상사에게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말릴 게 분명했으니까. 대충 회사에는 ‘중국에 다녀온다’고만 말했다. 사실 중국을 거쳐야 북한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비행기는 중국 선양에 내렸다. 그곳에서 나는 버스를 타고 압록강변의 국경도시 단둥으로 향했다. 단둥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다음 날 아침 평양행 국제 열차에 탑승했다. 열차는 압록강을 건너고, 신의주를 거쳐, 7시간 후 종점인 평양역에 닿았다.
평양역 홈에는 두 명의 남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4박 5일간 나의 여정을 함께해줄 안내원이었다. 분명 ‘개인 여행’이라고 했지만, 북한에서는 ‘개인’ 여행이 불가능하다. 여행 단위가 개인일 뿐, 안내원 2명과 운전 기사 1명이 모든 일정에 동행한다. 관광 코스는 완벽하게 정해져 있어 ‘개인’ 행동은 불가능하다. 매일 아침 호텔 조식장에서부터 밤늦게 호텔 방에 들어갈 때까지 안내원들은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 그들은 나를 감시하는 역할도 맡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여행 비용에는 그들의 인건비도 포함되기 때문에 대략 20만 엔이나 들었다.
나와 4박 5일을 함께한 여행 메이트(이자 감시원)들은 평양외국어대학 일본어과를 졸업했다고 했다. 그들은 일본에 와본 적도 없었지만 아주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했다. 나는 그들에게 ‘영업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여행을 왔다’고 소개를 했고, 그들은 북핵 문제나 조-일 수교 그리고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얼마나 위대한 지도자였는지에 대한 ‘공식 입장’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결국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게 사람이다. 30대 초반이던 여성 안내원은 결혼을 앞뒀다며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했고, 베테랑 남성 안내원은 자신이 일본 관광객을 수백 명 안내하며 조-일 민간 교류에 큰 역할을 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들 역시 전체주의 국가의 프로파간다 로봇이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 그들도 사람이다. 여행이 후반으로 치닫을수록 그들의 언행은 ‘사회주의 모범생’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여행 3일 차에 다녀간 동쪽의 항구도시 원산의 호텔에서 남은 술이 한 병도 없다는 사실에 실망해서 “그러니까 사회주의는 안 되지!”라고 내뱉는가 하면, 마지막 날 김일성 주석의 생가 만경대에서는 현지 전담 안내원의 기나긴 ‘수령님 만세’ 설명을 들으면서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주장만 마구 지껄여대는 사람은 피곤하다”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주체사상탑, 개선문, 만경대 등 평양의 개인 숭배 기념물을 연달아 돌아다니는 관광은 관광객 입장에서도 지겨움을 넘어 말 그대로 기가 막힐 지경이었지만, 안내하는 입장도 보통 힘든 게 아닌 것이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죽은 생선 같던 그들의 눈이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선생님, 식사 끝나면 노래방 갑시다.” 여성 안내원이 제안했다. 북한에서 노래방이라니! 호기심에 이끌려 평양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창광’이라는 노래방에 갔다. 입장료는 2만 엔이었다. 내가 제안한 것도 아닌데 내가 내야 한다는 사실이 납득이 안 가긴 했지만 외화 전용 시설이라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안내원들은 북한에서 특권 계층에 속함에도 자주 올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요즘 일본 관광객들이 별로 오지 않아 너무 오랜만에 왔다”며 굉장히 기뻐했다.
안에는 유니폼을 맞춰 입은 도우미 여성이 2명 앉아 있었다. 5명이서 쓰기엔 좀 넓은 방에서 노래 곡목집을 살펴보니 일본의 최신곡은 없었지만, 수년 전 곡은 거의 다 있었다. 흥미로운 건 동방신기나 비 등 한국 가수들의 일본어 노래는 많이 수록돼 있었으면서도 그들의 한국어 노래는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도우미들은 내가 노래를 부르자 무표정하게 탬버린을 쳤고, 이후 영어와 일본어 노래를 한 곡씩 부른 후에 사라졌다.
그 후부터는 안내원들의 시간이었다. 그들은 ‘김일성 장군의 노래’ 같은 곡을 살짝 무시했다. 아무리 충성심이 높더라도 모처럼 노래방에 왔으니 사회주의 음악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그런 노래를 합창해봤자 하나도 신나지 않을 터였다. 그들이 춤을 추며 부른 노래는 전부 BPM 120을 넘기는 것들이었다. 무슨 곡을 부를지 고민하던 나에게 남성 안내원이 말했다. “선생님, 록 좀 불러주십시오. 록의 신수를 느끼고 싶습니다.” 록? 록이라면 그들의 원수, 미제의 노래 아닌가. 게다가 저항의 노래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어서 부르십시오.” 게다가 록의 ‘신수’가 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진수’를 말하는 것일까? 결국 곡목집을 보다 미국 문화권에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 같은 본 조비의 ‘Livin` on a Prayer’를 선택했다.
숨이 막힐 듯한 감시 하의 여행도 이제 끝이라는 해방감을 담아 나는 영어로 열창했다. “오~ 이제 반 정도 왔지, 아~하~ 기도하면서 살아가요.” 안내원들은 일본어는 완벽해도 영어는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가사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을 것 같지만, 어쨌든 그들은 매우 만족스러워 보였다. “감사합니다. 이것이 본고장의 록이군요.” 가보지도 못한 머나먼 나라의, 평소에는 듣지도 못하는 저항의 노래를 그는 동경 어린 심정으로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반세기 전 팝송을 처음 접한 한국인이나 일본인처럼.
마지막 노래로는 일본의 레전드 발라드 가수 가와시마 에고의 ‘시대에 뒤처진(時代おくれ)’을 선택했다. “눈에 띄지 않게, 남들이 떠들어대지 않게, 어울리지 않는 일은 무리해서 하지 말고,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는 시대에 뒤진 남자가 되고 싶다”는 가사에 남성 안내원은 무척 감동했다. “선생님, 이 노래는 누가 부릅니까?” 나는 수첩에 가사를 적어 그에게 주었고 그는 소중하게 지갑에 넣었다. 들키면 큰일 날 것이다. 그나저나 체제도 다르고, 외교 관계도 없는 나라에서 부른 ‘꼼꼼하게 성실히 살아가겠다’는 교훈적인 노래에 공감해주다니. 무서워 보이는 독재국가에서도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열심히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밤이었다.
다음 날 나는 무사히 자유세계로 돌아왔다. 그들과는 2년 후 다시 만났다. 취재 기자단의 일원으로 찾아간 평양의 호텔 로비에서 그들은 2년 전 그때처럼 담당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뜻밖의 재회에 우리는 서로 놀라고 반가워했다. 나는 언론사에 일자리를 구했다는 거짓말을 거듭해야 했고, 여성 안내원은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고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평양에서 록을 열창한 밤으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나는 판문점을 찾았다. 군사경계선 너머로 바라본 북쪽 공동경비구역은 잡초가 무성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군인들 사이 관광객과 안내원들이 돌아다녔다고 했다. 이제는 코로나19도 풀리면서 관광객들이 세계를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북한은 아직 문을 꽉 잠근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때 만난 안내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사회주의 국가에서 실직할 리는 없겠지만, 그들의 보람과 자부심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날이 언젠가 돌아올까? 진심으로 그러길 바랄 뿐이다.
 
요시노 다이치로는 기자 겸 편집자다. 〈아사히 신문〉 기자, 〈허프포스트 재팬〉 뉴스 에디터 등을 거쳐 지난 2월부터 9월 말까지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펠로로 서울에서 주로 북한 문제를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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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김현유
    WRITER 요시노 다이치로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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