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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냉장고 이야기

매일매일 꺼내 정리하고, 조각 퍼즐 맞추듯 구석구석 수납해야 하는 작은 냉장고. 나는 왜 이 녀석을 고집하고 있는가.::김자혜, 하동, 지리산, 마당, 시골집, 가드닝, 고양이, 귀촌, 여유, 민박, 힐링, 라이프스타일, 에세이, 한옥, 레노베이션, 건축, 집, 엘르, elle.co.kr::

프로필 by ELLE 2017.01.05




우리의 첫 신혼집은 복층형 원룸 오피스텔이었다. 통장 사정에 맞추어 집을 구한 것이기도 하지만, 혼수와 예물, 예단 등을 모두 생략한 결혼이었기에 신혼 초에 구입해야 하는 살림살이를 최소화해야 했다. 냉장고와 세탁기, 옷장 등이 모두 구비된 풀옵션 오피스텔에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구매한 건 매트리스와 소파, 식탁 정도. 식탁 의자와 텔레비전, 그 외 소형가전들은 주변에 미리 말해 축의금을 대신한 선물로 받았다.

첫 번째 신혼집에서 1년을 살고 작은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면서 세탁기와 냉장고를 사야 했는데, 고민은 거기에서 시작됐다. 문제는 냉장고였다. 주변 사람들(특히 결혼한 언니들)은 무조건 큰 걸 사야한다 주장했다. 그들의 논리는 대략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겠다. 1. 한번 사면 평생 쓰니까(‘10년 이상’을 다소 과장한 것으로 추측됨) 2. 다음번 이사갈 때 더 넓은 집으로 갈 테니까 3. 쓰다보면 분명 공간부족에 시달릴 테니까. 그런데 그 논리를 납득할 수 없는 이유가 내게도 있었다. 1. 손에 무슨 전류라도 흐르는건지 뭐든 잘 고장내서 오래 쓸 자신이 없고 2.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갈 자신은 더더욱 없고 3. 그 큰 냉장고에 뭘 가득 채워 넣을 자신 또한 없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가정집에 있는 냉장고가 지나치게 크다는 걸 예전부터 이상하게 여기던 터였다. 18평 집이나 45평 집에 비슷한 크기의 양문형 냉장고가 있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여섯 식구 사는 집이라면 몰라도 두 식구 사는 집에 양문형 냉장고가 대체 왜 필요하지?

고백하자면 나도 잠시 현혹되었다. “어머 예비 신부이신가봐요, 혼수제품은 이쪽으로 오세요! 기본적으로 이 정도는 다들 해요~” 견물생심. 엄청나게 커다란 냉장고를 보니, 글쎄 그걸 사면 쉐프처럼 요리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지 뭔가. 아아, 이것은 심은하가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던 그 옛날 광고 카피에서 시작된, 일종의 전국민 최면 같은 것인가! 



나의 작은 냉장고와 그릇장, 그리고 선반이 있는 부엌 한 켠.


냉장고 안에 있는 식재료 목록을 적어 둔 메모.


그러나 우리는 작은 냉장고를 선택했다. 대리점 상담 직원은 장정 두어명이 거뜬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양문형 냉장고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려 애썼지만, 매장에 진열도 해두지 않는 346리터짜리, 냉장실 한칸 냉동실 한칸의 냉장고를 주문했다. 그것의 디자인이 가장 심플해 마음에 들었고, 가격미 매우 저렴했으며 24평 아파트에 사는 두 식구 가정에 걸맞는 크기이기도 했다.
그 당시는 요리를 많이 하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냉장고가 작다고 느끼지 못했지만, 시골에 내려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서울살이처럼 외식이 잦지 않을 것이고, 슬리퍼 끌고 슈퍼마켓에 다녀올 수 없는 지역적 특성도 고려해야 했다. 냉장고를 교체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 더 살 것인가! 아니다, 우선 한두 달만 살아보고 결정하자, 하고는 벌써 두 계절이 지났다. 그럭저럭 지낼 만 하다는 것이 결론. 매일 밥을 해먹어보니 한 가정에서 일정 기간 안에 해치울 수 있는 식재료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물론 그보다 더 극히 한정된 건 내가 만들 수 있는 음식의 종류...하하하). 뻔한 재료를 자주 사다가 단순한 음식을 만들어먹고, 남은 재료를 조합해 또 다른 것을 해먹는 방식으로 살아보니, 그럭저럭 지낼 만 하다. 콩나물과 애호박과 두부와 감자의 나날들이 의외로 흥미롭지 뭔가!

<심플하게 산다>로 잘 알려진 도미니크 로로는 그의 책 <심플한 정리법>에서 이렇게 말한다. “주방의 찬장과 냉장고를 정리하는 행위는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고 영양을 섭취하는 방식과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는 방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나도 그것을 경험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가진 공간이 크든 작든 무조건 가득 채우고야 마는 성질을 가진 사람이다. 지금도 여전히 할인하는 냉동만두를 네 봉지쯤 사고 싶고, 홈쇼핑에서 파는 손질고등어를 한박스 주문하고 싶고, 온갖 고기를 부위별로 소분해 냉동해두면 마음이 든든할 것 같지만 나의 작은 냉장고는 그것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작은 냉장고를 사용하는 일은 단순히 요리하는 법을 넘어 어떤 생활방식을 추구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결정하게 해주었다.

집 밖에서 스마트폰으로 냉장고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제품도 나왔다지만, 나는 매우 고전적인 방법으로 냉장고를 관리한다. 냉장실과 냉동실 안에 있는 식재료를 모두 적어 붙여두는 것. 사용할 때마다 남은 재료를 표시하고, 장보러 나갈 때 메모를 가져간다. 이 메모는 식재료를 관리하는 일 뿐 아니라 메뉴를 정할 때에도 매우 유용하다. “음, 애호박과 당근이 있는데 무엇을 만들 수 있나?” 하고 짐짓 주부 흉내를 내며 존경하는 나의 선생님, <새댁을 위한 기초요리> 책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Credit

  • CREDIT WRITER & PHOTOGRAPHER 김자혜
  • EDITOR 김영재
  • ILLUSTRATOR 김참새
  • ART DESIGNER 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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