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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9. FRI

Big Pleasure 1 넷플릭스 미국 오피스에 가다!

‘미드 폐인’들을 흥분시킨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에 앞서, 지난 12월 <엘르> 코리아가 은밀하게 넷플릭스 미국 오피스에 다녀왔다.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긴장시키는 넷플릭스의 치명적 유혹을 탐구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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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카토스의 한 호텔. 체크인한 지 얼마 안 돼서 룸으로 쇼핑백 하나가 배달됐다. 넷플릭스 앱이 깔린 아이패드와 무료 계정을 선물로 드리니 넷플릭스의 세계를 경험해 보시라는 친절한 메시지와 함께. 스크린에 깔려 있는 빨간색 로고를 터치하는 순간, 오늘 이 호텔 방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밀려왔다. 1997년 우편 DVD 대여 사업으로 시작한 넷플릭스(Netflix)는 일찌감치 콘텐츠 시장이 스트리밍 방식으로 전환될 것을 예측해 2007년 스트리밍 서비스를 론칭하고 이에 집중하면서, 인터넷 기반 TV 서비스 기업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다(미국 최대 비디오 대여점 체인이었던 ‘블록버스터’의 몰락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넷플릭스가 더욱 유명해진 건 자체 제작한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가 커다란 성공을 이루면서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만들고 케빈 스페이시가 출연한 이 냉혹한 정치 스릴러는 대중과 비평가를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TV 프라임 시간대에 방송된 적 없는, 오직 자체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공개된 작품이 HBO 같은 쟁쟁한 방송사들의 후보작을 제치고 에미상 트로피를 가져간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넷플릭스가 업계의 기존 방식을 깬 또 다른 점은 1시즌 전 에피소드를 한날 한시에 모두 풀었다는 점이다. 2013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하는 ‘올해의 단어’ 자리를 두고 ‘셀피’와 경합을 벌였던 ‘빈지 워칭(Binge-Watching)’, 우리말로는 ‘몰아보기’ 쯤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 단어가 확산되는 데는 넷플릭스가 기여한 바가 크다(한국의 미드 폐인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익숙한 행동양식이다). 현대인들은 더 이상 리모컨을 들고 마냥 볼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기기에서 다채로운 콘텐츠를 구미에 맞게 골라 보고, 몰아볼 수 있는 넷플릭스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특히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고 세계 최고의 초고속 인터넷 망을 자랑하는 한국은 넷플릭스가 서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 2016년 서비스 진출을 앞둔 여러 국가 중에서 특별히 한국의 프레스를 본사로 초대한 이유일 것이다. 




    이튿날, 우려했던 대로 전날 밤늦도록 ‘빈지 워칭’을 즐기느라 퀭해진 눈으로 넷플릭스의 본거지인 로스카토스 사무실에 도착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 중 하나로 꼽힌다는 넷플릭스는 실리콘 밸리의 여느 유명 기업들처럼 높은 임금과 다양한 복지, 자율적인 근무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탄력적인 출퇴근 시간은 기본이고, 자녀나 애완견을 데리고 출근할 수 있으며, 카페테리아에는 온갖 먹거리가 늘 풍요롭게 구비돼 있다. 책상 높이를 조절해 선 채로 일하거나, 안락한 소파에 몸을 기대고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방인의 눈에는 ‘놀이터’ 같은 풍경이지만, 자유가 주어지는 만큼 스스로 일하고 책임을 지는 기업 문화가 강조된다. 




    사무실 투어를 마치고 대형 스마트 TV가 설치된 미팅 룸에서 넷플릭스 제품 혁신 담당 부사장인 토드 S. 옐린(Todd Yellin)의 제품 시연이 있었다. “모든 사람은 지문처럼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운을 뗀 그가 집중해서 설명한 것은 바로 넷플릭스의 ‘맞춤형 서비스’. 넷플릭스에 접속한 가입자는 저마다 다른 콘텐츠가 다른 항목, 다른 순서대로 나열된 홈페이지를 마주하게 된다.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가입자의 시청 형태와 성향을 분석해서 그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선별해 추천하는 것이다. 가입자가 어떤 제목의 콘텐츠에 끌리는지, 어떤 장면에서 재생을 멈추는지, 그리고 이렇게 쌓인 데이터 중에서 어떤 것이 더욱 의미 있고 무의미한지 등을 알아내기 위해 넷플릭스는 전 세계 알고리즘 전문가, 데이터 과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했으며 지금도 수많은 테스트를 하고 있다. 과연 알고니즘이란 것이 인간의 복잡한 내면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넷플릭스를 많이 이용할수록 넷플릭스가 내 마음을 알아맞출 확률은 커진다. 고객이 원하는 콘텐츠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기술이 넷플릭스의 큰 무기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양한 취향을 저격할 풍부한 ‘콘텐츠’를 확보하는 일이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넷플릭스의 콘텐츠 수급과 제작에 관련된 팀들이 모여 있는 LA 베벌리힐스의 또 다른 오피스를 방문했다. 앞서 말했듯 자체 제작한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성공을 계기로 넷플릭스는 콘텐츠 유통 매체에서 할리우드를 긴장시키는 콘텐츠 제작사로 성큼 도약했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마르코 폴로> 등 영화 못지 않은 스케일과 재미를 갖춘 오리지널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데, TV 방송사와 달리 광고나 심의, 방영 시간에 대한 제약이 없다는 것이 콘텐츠 제작의 이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블 코믹스 원작인 <데어 데블>과 <제시카 존스>의 경우에도, 원작의 어두운 느낌을 살린 성인 취향의 콘텐츠를 기대했던 마블이 먼저 넷플릭스에 시리즈 제작을 제안했다고 한다(앞으로 데어 데블, 제시카 존스와 함께 TV판 어벤져스를 이룰 3명의 히어로에 대한 시리즈가 더 만들어질 예정이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굵직한 이력을 지닌 넷플릭스 최고 콘텐츠 책임자 테드 사란도스(Ted Sarandos)가 콘텐츠 제작 원칙으로 꼽은 것 또한 다름 아닌 ‘창작의 자유’였다. “창작자들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해 줍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술가를 잘 선정하고, 그들이 자신의 일을 잘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전통적인 방송사들은 콘텐츠 제작에 개입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빌 머레이, 조지 클루니가 출연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베리 머리 크리스마스>도 사실 어떤 제작사들도 탐낼 만한 프로젝트지만, 넷플릭스가 선택된 데는 이유가 있는 거죠.” 세계 8개 도시에서 촬영을 진행한 <센스8>이나 남미에서 현지 스태프들에 의해 스페인어로 제작되는 <나르코스>처럼 글로벌한 가입자를 만족시킬 야심 찬 프로젝트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에서 만들어지거나 한국의 창작자가 만든 콘텐츠가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에 전파되길 기대해 볼 수도 있다. 이미 ‘K 드라마’란 항목으로 우리나라 TV 드라마들이 유통되고 있고,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에 대한 넷플릭스의 ‘통 큰’ 투자 지원 소식도 전해진 바 있다. 테드 사란도스는 <옥자>에 대해서 아직 초기 단계라며 말을 아꼈지만 “봉준호는 훌륭한 아티스트다. 캔버스가 커지면 더 경이로운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3일간 넷플릭스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그들이 자신의 일을 ‘최고의 직업’이라 여긴다는 점이었다. 남과 다른 것을 상상하고 남들이 가지 않은 일을 걸으며, 자신들이 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반복적으로 들었던 또 다른 말은 “우리는 오직 고객만을 위한다”는 이야기였다. “넷플릭스에는 광고가 없어요. 때문에 광고주를 섬길 필요가 없어요. 고객만이 우리가 무릎 꿇을 유일한 왕이죠.” 오직 고객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만 관심 있다는 넷플릭스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에필로그. 지난 1월 6일 넷플릭스가 한국을 포함해 무려 130여 개의 새로운 국가에서 동시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곧’이라는 건 예감했지만, 이렇게 기습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세계 진출을 감행할 줄이야. 한국에서 접속해 본 넷플릭스는 미국 서비스에 비해 아직 콘텐츠가 제한적이긴 했으나, 간단한 가입 절차와 저렴한 요금제(월 7.99달러부터)는 확실히 강점으로 보였다. LA 공항에서 보다가 멈췄던 <제시카 존스> 마지막 에피소드를 이어서 감상하고, <제인 더 버진> 몇 회를 몰아보다 보니 금세 자정이 넘어갔다. 침대에 눕고서야 그날 종일 거실에 있는 TV를 한 번도 켜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넷플릭스 서비스는 스마트 TV, 애플·안드로이드 태블릿 및 스마트폰, PC, 홈시어터 시스템, 게임 콘솔, 구글 크롬캐스트 등 인터넷 연결을 지원하는 다양한 기기에서 이용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