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브릭 디자이너 한지회의 기본

직접 개발하는 원단부터 디자인을 거쳐 마무리되는 완제품까지 '좋은 것'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디자이너 한지회와의 인터뷰.

프로필 by ELLE 2017.06.04

금천구 독산동, 한 창고형 사무실의 문 앞에 ‘일상직물’이라는 한자가 소담하게 적혀 있다. 커다란 문을 열면 펼쳐지는 공간에는 색색깔의 실과 다양한 텍스처의 천이 가득하다. 부자재 수납장마다 붙어 있는 이름표가 정갈하고, 곳곳에 가봉 중이거나 제작이 끝난 샘플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일상직물은 이름처럼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패브릭을 제작한다. 은은한 컬러와 잔잔한 패턴, 심플한 디자인. 모두 튀지 않지만 견고하고, 우아한 매력을 지녔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의류직물학을 전공한 디자이너 한지희는 직장생활을 접고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브랜딩을 준비한 끝에 지난 늦가을, ‘일상직물’을 탄생시켰다. 좋은 천을 만지고 그 위에 앉고 눕는 동안 사람들이 잠시나마 집 밖을 잊고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 일상직물의 꿈이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이 있을까? 그녀를 만나 디자이너로서의 행복과 고단함에 대해 물었다.

직물에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릴 적부터 옷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의류직물학과를 선택했어요. 원래 의상에 관심이 있었는데, 대학원에서 직물에 매료된 거예요. 아직도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어요. 부드러운 물성과 아름다운 색감…. 그 안의 직조된 실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마냥 좋아지거든요.

특별히 홈 패브릭 제품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홈 패브릭은 피부로 직접 접촉하고 가장 자주 만지게 되는, ‘촉감’이라는 패브릭의 본질을 잘 느낄 수 있는 분야예요. 근사한 촉감과 아름다운 색감의 물건을 내가 만들고, 그 물건이 누군가의 내밀한 공간에 놓여 사랑받는 장면을 상상하면 뿌듯해져요.

일상직물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제품뿐 아니라 브랜드 로고와 홈페이지 디자인, 홍보 이미지를 아우르는
‘고전적이고 간결한 분위기, 완벽한 만듦새, 진지함’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요.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유행 타지 않는 것을 추구하거든요.

자신의 취향인가요
전적으로 제게서 나왔죠. 친구가 일상직물을 보더니 “딱 너네”라고 말한 적 있어요. 웃기지만 정확한 평가예요. 드러내는 거 안 좋아하고 진지하면서 재미없는 성격, 자잘하고 클래식한 무늬를 좋아하고 크림색과 녹색에 열광하는 취향 등이 제품을 비롯한 브랜드 곳곳에 반영돼 있거든요.

대중적 기호라든지 트렌드는 전혀 반영하지 않았나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고려해요. 1인 가구가 늘고 있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하지만 디자인적 요소만큼은 철저하게 일상직물만의 아이덴티티에 집중해요. 남과 비슷한, 무난한 것이 장기적으로 가장 위험하거든요.

파는 것 말고 직접 개발한 원단만 사용하고 있어요. 원단 개발부터 전 과정을 다루다 보면 제품 개발 기간도 길어지고,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원단 컬러와 도안은 일상직물의 핵심 가치에요. 패브릭 제품의 부가가치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원단에서 나오죠. 누구나 구할 수 있는 국내의 기성 원단을 봉제 기술과 가격 정책만으로 차별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쉬운 길은 저뿐 아니라 모두에게 쉬울 테니, 금세 한계에 부딪히게 될 거예요.

디자이너로서 정공법을 택한 셈이네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공법이 ‘느리지만, 느리지 않은 길’이에요. 소비자에게 “이 물건으로 어떤 이득을 줄 수 있나?”를 끊임없이 고민해요. 물론 홍보와 마케팅도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하고 싶지만 홍보 담당자가 없기 때문에(웃음). 지금 이 상태에서 두 가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제품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거죠.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도 충분히 잘 정돈돼 있어요. 다만 ‘하나라도 더 팔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느낌이 없다는 거죠
사실 자체 제작 패브릭이라는 점에서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 가격으로 책정돼 있어요. 그렇다 보니 세일이라든지 자극적인 마케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저 조용히, 하지만 꾸준히. 적극적으로 홍보하기에는 제가 쑥스러움을 타는 성격이기도 하고.

작업장이 독산동에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베딩 제품의 부피가 크다 보니 충분하게 넓은 면적이 필요했어요. 경제적인 면에서 서울 중심가보다 외곽 쪽으로 알아봤죠. 그리고 육아 휴직 후 복귀하신 제작 팀장님께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실 수 있도록, 팀장님 집과 회사가 가까워야 했어요. 제게는 너무도 중요한 인력이거든요. 아직까지 육아는 여성 몫으로 전제돼 있잖아요. 그런 문화가 장기적으로 바뀌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현실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었어요. 정작 저희 집은 충무로예요(웃음).

함께 일하는 팀을 소중하게 여기네요
제게 꼭 필요한 분이라 오랜 시간 설득해서 모셔왔어요. 아마 지금 합류하지 않으셨더라도 언젠가 오실 때까지 끈질기게 설득했을 거예요. 일상직물은 제조 브랜드예요. 함께 일하는 분들의 능력과 조언 없이는 제품이 존재할 수 없어요. 직원보다 협업자 개념이죠.

현재 일상직물 제품은 온라인을 통해서 구입할 수 있는 거죠
일부 제품은 리빙 셀렉트 숍 에이치픽스 매장과 온라인 숍에서 판매되고 있어요. 일상직물 홈페이지에서 모든 제품을 구입할 수 있고요.

쇼룸이나 매장 없이 브랜드를 유지할 만큼 충분한 판매수익이 나오는 건가요
전혀요(웃음). 기대도 안 했고요. 5년 안에 어느 정도 유지되는 선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아까 이야기했듯 촉감이 가장 중요한 제품이잖아요. 소비자들이 제품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없다는 건 큰 단점이에요
그래서 저도 빠른 시일 내 쇼룸을 오픈하고 싶어요. 대신 현재로선 온라인에서도 마치 만지고 있는 것처럼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담기도록 최대한 느낌에 가까운 이미지와 정보를 만들고 있어요. 또 현실적인 편의, 예를 들어 온라인 결제 시스템 등을 바꾸고 있죠. 지금까지는 주문서를 받아서 이메일로 연락하는, 요즘 세상에서 멸종된 방법을 썼죠(웃음). 우선 국내 결제를 해결했고, 점차 해외 결제 시스템도 구축하려 해요.

디자인 외에 비즈니스까지 신경 쓰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할 것 같아요
사실 힘들어요. 가장 중요한 작업인 디자인에 100% 매진할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예요. 행정 업무를 처리해야 할 때면 집중력이 흩어져 버리니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적응해 나가는 수밖에요. 디자이너란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하나요 인간 삶의 방식이나 생각을 바꾸는 ‘Thinker’ 그리고 혁신가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대한민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간다는 건? 특히 패브릭 분야에서
해외 제품을 그대로 카피해 만드는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종종 실물 샘플 없이 머릿속 개념만으로 거래처를 설득하기가 어려워요. 패브릭에 관해서라면, 금전적인 리스크가 크다는 점이 매번 모험이에요. 공장에서 패브릭이 나오기까지 최소 석 달이 걸리고 최소 주문 수량이 많은 데다, 한 번 생산된 원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생산하기 어렵거든요.

브랜드의 롤 모델이 있을까요
제조 브랜드로서 일본의 지퍼 브랜드 YKK 그리고 ‘대전’이라는 지역성을 살려 규모를 확장하지 않는 빵집 성심당을 꼽고 싶어요.

혹시 일상직물을 시작하고 나서 후회한 적 있나요
희한한 일이에요. 정말 힘들어 죽겠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Credit

  • photographers 김상곤
  • 장엽 contributing editor 강경민 art designer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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