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스위프트는 어떻게 우주 최고의 스타가 되었나?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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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는 어떻게 우주 최고의 스타가 되었나?

지금 미국 대선의 향방까지 바꿀 수 있다는 테일러 스위프트. 그녀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ESQUIRE BY ESQUIRE 2024.03.22
 
 
Taylor Swift - 경제학
 
아주 재밌는 수치가 있다. 인류 역사상 다시 재현될까 싶을 정도의 규모로 거대했던 테일러 스위프트의 ‘The Eras Tour’를 영상으로 담은 〈Taylor Swift : The Eras Tour〉가 지난해 10월 미국을 필두로 한국에서도 11월 3일에 개봉한 바 있다. 샘 렌치가 감독한 이 공연 영화는 전 세계에서 2억6160만 달러(약 3477억원)의 박스오피스 수입을 올리며 2009년 개봉한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이 종전까지 가지고 있던 공연 영화 부문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나는 그 순간이 뭔가 상징적이라고 생각했다. 내 세대는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가 앨범을 발매하던 세대에 팝을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재밌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의 총 관객수가 3만 명이었다는 사실이 가장 흥미롭다. 한국은 테일러 스위프트 불모지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그래서 우리가 이 거대한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세계적 지진의 진동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어쩌면 그건 국내의 뉴스 감수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약 10년 전 나는 미국의 바이럴 매체 허핑턴포스트(현재의 ‘허프포스트’)에서 가십 기사들을 재빨리 게재해 트래픽을 주워 먹고 있었다. 당시 테일러 스위프트는 내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그녀가 존 메이어와 헤어진 얘기, 카니예 웨스트랑 싸운 얘기, 케이티 페리와 싸운 얘기를 쓰면 구글 애널리의 페이지뷰 수치들이 로켓처럼 치솟곤 했다. 내가 열심히 그런 뉴스를 퍼 나르던 시절 허핑턴포스트는 엄청나게 잘나갔다. 많이 나온 날엔 하루 트래픽이 400만 뷰까지 치솟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이유는 독자들이 당시엔 해외 뉴스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5년 뒤 우리의 트래픽은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당시 우리는 트래픽 저하의 이유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진행했는데, 더는 독자들이 해외 뉴스에 관심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고, 국내 뉴스 중심으로 트래픽이 집중되는 경향이 확연히 보였다.
테일러 스위프트 역시 국제 뉴스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는 시점과 함께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그러니 지금 테일러 스위프트가 우주 최고의 스타라는 얘기를 들으면 ‘뭐라고?’라며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당신과 내가 해외 뉴스에 관심이 별로 없던 시절 그녀는 헤어진 남자친구 뒷담화를 가사로 쓰던 소녀에서 성 다양성과 페미니즘 등 모든 인클루시비티(포용성)의 상징이자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10년 전 테일러 스위프트는 조나스 브라더스가 전화로 자기를 찼다며 조롱하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한 마디가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결정할지도 모른다.” 더 가디언의 정치 기자 카터 셔먼이 자신의 기사에 쓴 첫 문장이다. 그렇다. 해외에서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그 테일러가? 우주 슈퍼스타라고?’
돈으로 그녀를 정의하는 일은 식상하다. 그녀는 아직도 진행 중인 자신의 여섯 번째 콘서트 투어 ‘The Eras Tour’로 2023년 1조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당연히 솔로와 그룹을 합한 역대 모든 뮤지션의 콘서트 수입 중 최고다. 그녀는 지역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의 한 스케이트장은 미국 대통령의 날에 ‘스위프티 스케이트’ 행사를 열었다. 별건 아니고 그냥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2시간 30분 동안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틀어주는 거였다. 물론 테일러 스위프트의 심벌을 좀 장식하는 정도의 수고는 들였을 것이다. 그날은 대박이 터졌다. 이 스케이트장에 입장하려는 10~20대 여성들로 교통 정체가 발생했을 정도다. 이번 투어에 일본에는 22만 석이 풀렸다. 스타디움의 운동장 구역이 아닌 아레나 관객석 쪽의 아레나 시트가 3만엔(약 27만원)부터 시작이지만 모두 솔드아웃 됐다. 공연장은 대부분이 도쿄라 일본의 전문가들은 테일러 스위프트를 보기 위해 지방의 관람객들이 여행으로 쓰는 부대비용 등을 합하면 테일러 스위프트의 경제효과가 341억 엔(약 3055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Taylor Swift - 정치학
 
진짜는 정치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미 자신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바 있다. 2018년 테네시주 중간선거 기간에 “나는 여성 정치인들에게 호감을 가져왔지만, 반여성, 반성소수자의 기치를 내건 마샤 블랙번이라는 여성은 옹호할 수 없다. 그녀에게 투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미국에서 아티스트가 정치에 개입하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다. 특히 내슈빌의 컨트리 가수로 커리어를 시작한 테일러 스위프트에겐 득이 될 것이 없어 보였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에도 나오는 ‘딕시 칙스 사건’은 너무도 유명하다. 2003년 당시 미국 컨트리 업계에서 한국의 SES 정도의 인기를 구가하던 딕시 칙스는 한 콘서트에서 조지 W. 부시, 우리가 종종 아빠 조지 부시라고 말하는 대통령의 파병 정책을 비탄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보수 평론가들 사이에서 ‘배은망덕한 잡것들’로 조리돌림 당하며 한동안 자신들의 고향인 딕시랜드(미국 남부지방의 통칭)에서 매장되다시피 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발언 수위는 그보다 세면 셌지 약하지 않았다.  
이미 승기를 잡았던 마샤 블랙번은 연방 상원에 입성했다. 그러나 당시 젊은 여성층의 투표가 유의미하게 증가하며 테일러 스위프트의 지지가 정치에서도 효과가 있음이 입증됐다. 우리는 2018년의 테일러 스위프트와 지금의 테일러 스위프트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2018년의 테일러 스위프트가 초사이언으로 변하기 전 전투력이 1000도 넘지 않던 상태의 손오공이었다면, 지금의 테일러 스위프트는 말 그대로 우주 최강의 슈퍼스타, 초사이어인 상태의 손오공이다.(지면을 빌려 도리야마 아키라의 명복을 빈다.) 그중 조금 충격적일 수 있는 수치가 있다. 2023년 3월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53%가 자신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이라고 답했으며 그중 16%는 ‘열성팬’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녀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 중 55%가 민주당, 23%는 공화당, 22%는 무소속이다. 그녀가 공화당 팬들에게 정치적 영향을 미친다면 이번 대선에서 스윙보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2020년 그녀가 조 바이든을 지지한 것이 바이든의 승리 요인 중 하나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덤인 ‘스위프티스(Swifties)’를 두고 ‘대선을 결정지을 보팅 블록’이라 부르는 이유다. 그녀의 정치적 메시지 중 가장 선명한 것은 여성과 LGBTQ+들을 향한 지지의 메시지다. 그녀는 지난 2013년 ‘디 에라 투어’의 시카고 콘서트에서 자신이 직접 성소수자 지지 메시지를 담았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는 노래 ‘You Need to Come Down’을 부르며 “당신들은 서로를 향한 지지와 격려, 아름다운 수용과 평화와 안전에 대한 염원으로 이 가사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모든 장소가 LGBTQ 커뮤니티의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디 에라스 투어’의 신발은 전부 크리스찬 루부탱에서 제작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디 에라스 투어’의 신발은 전부 크리스찬 루부탱에서 제작했다.

 
Taylor Swift - 심리학
 
밀레니얼과 젠지들에게 테일러 스위프트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람이 다른 누군가의 세상 안에 들어가 완벽하게 싱크로나이즈 된다는 것은 나는 겪어보지 못한 강한 경험일 것이다. 특히 자신이 동화된 세계가 평소 자신이 필요로 하고 갈망하던 가치를 지지하는 세계라면 더욱. 최근 하버드대학교에 ‘테일러 스위프트와 그녀의 세계’라는 영문학과 교양 강의를 개설한 스테파니 버트 교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들으며 흘렸던 눈물’에 대해 말한다. 그녀는 그 노래들이 MTF 트랜스젠더로 살아온 자신에 대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지지로 느껴졌다고 말한다.
또 이런 실제 사건들이 가사 속에 녹아 그녀의 팬들을 울린다. 2013년 6월 2일, 그녀는 자신의 세 번째 투어인 ‘더 레드 투어’의 일환으로 콜로라도 덴버의 펩시 센터에서 열린 프리쇼 ‘미트 앤 그리트(Meet-and-greet)’ 참석했다. 미트 앤 그리트는 보통 아레나급의 콘서트가 열리기 전에 소규모 VIP들만을 대상으로 여는 일종의 팬미팅 형태의 행사를 말한다. 라디오 방송국의 DJ였던 데이비드 뮬러 역시 방송국 직원 자격으로 자신의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둘은 테일러 스위프트를 가운데 두고 포토월에서 사진을 찍었고 뮬러는 자신의 오른손을 테일러의 스커트-당시 그녀는 짧은 검은색 미니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안쪽으로 넣어 엉덩이 부분을 움켜쥐었다. 보안팀이 이 사실을 방송국 측에 알렸고 뮬러는 회사에서 잘렸다.  
2년 뒤인 2015년 뮬러는 테일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방송국의 스폰서 관계자들을 비롯한 VIP들, 포토그래퍼, 높은 수준의 훈련을 받은 보안요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뮬러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게 뮬러 측 변호인의 주장이었다. 테일러가 자신을 무고해 직장도 잃었고, 직업인으로서의 이미지도 실추되었으니 3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것이 소송의 요지였다. 테일러는 그다음 달 불법행위와 성추행으로 뮬러를 맞고소했다. 이 소송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결과가 나왔다. 2017년 8월 콜로라도 지방법원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녀는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성추행을 당한 당시 테일러 스위프트의 나이는 24세였다.  
1년 뒤인 2018년 자신의 다섯 번째 투어인 ‘레퓨테이션 스타디움 투어’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당시의 상황을 얘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1년 전 저는 템파 스타디움에서 노래하고 있지 않았어요. 저는 콜로라도의 법정에 있었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피아노로 코드 반주를 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테일러는 자신의 노래 ‘Clean’을 불렀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내가 물에 잠겼을 때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지. 아침이 되었을 때 너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고, 드디어 나는 깨끗해졌어.’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를 보면 10대로 보이는 여성 관중들은 테일러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앞으로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어둠의 상황이 올 때 테일러 스위프트의 ‘Clean’을 들을 것이다. 그녀의 삶은 팬들에게는 거대한 체험형 영화이고, 그녀의 노래들은 그 모든 장면을 그대로 옮긴 백그라운드 뮤직이다. “밀레니얼들과 젠지들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삶에 싱크로되는 정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해요. 그녀의 팬들은 거의 자신의 삶인 것처럼 여기죠. 왜냐하면 같이 자라왔거든요.” 미국 오리건주에서 거주 중인 〈에스콰이어〉의 필자 손혜영의 말이다. 뮬러의 성추행 사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예시는 ‘Look What You Made Me Do’다. 카니예 웨스트는 2016년 자신의 노래 ‘Famous’에 ‘난 지금도 테일러랑 섹스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왜냐고? 내가 그 비X(bi**h)를 유명하게 만들어줬으니까’라는 가사를 쓴 바 있다. 이 가사가 비난을 받자 카니예는 ‘이미 테일러와 합의된 가사’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테일러는 가사 전체를 합의한 적이 없다며 부정했다. 이후 카니예 웨스트는 이를 뒷받침하는 듯한 녹취록이라며 음성 파일을 언론에 공개하는 등 카다시안과 함께 테일러 스위프트를 ‘뱀’으로 몰아가며 언론 플레이를 벌였다. 결국 2020년 알 수 없는 경로로 공개된 통화 전체를 보면, 카니예 웨스트와 킴 카다시안이 녹취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술하기도 지난한 일련의 사건은 카니예와 킴이 스위프트를 간교한 뱀의 이미지로 프레임화했다고 볼 수 있다. ‘Look What You Made Me Do’는 친했던 케이티 페리와의 분쟁(마지막 페이지 참고)과 카니예와 킴의 ‘스네이크 공방’에 휩쓸려 1년 반 가까이 칩거에 들어갔던 테일러 스위프트가 컴백하며 들고 온 노래다. “난 네 완전범죄가 싫어. 거짓말할 때 네가 웃던 모습이 싫어. 그건 정말 별로야. 난 네가 싫어. 하지만 난 더 영리해지고 더 강해져서 돌아왔지”라고 노래한다. 뻔뻔한 성추행범의 거짓말 때문에 검찰 취조실에서 겁에 떨어야 했던 테일러 스위프트, 카니예 웨스트와 킴 카다시안의 거짓 공방에 몰려 자신이 그동안 쌓았던 ‘평판(Reputation)’을 다 잃어버리고 우울에 잠식당했던 그녀에게 그녀의 팬덤이 감정을 동화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절반 넘게 스위프티로 살아온 김예주(30)씨는 〈에스콰이어〉에 “저희는 테일러 스위트프가 15살 일 때부터 봐오며 자랐어요. 그녀의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가족 같은 유대감이 있었어요. 특히나 스위프트에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는 팬이라서 뿐 아니라 남성 중심의 세계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동질감과 보호해주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들은 우정의 증거로 ‘러브 브레이슬릿’을 서로 교환하곤 한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들은 우정의 증거로 ‘러브 브레이슬릿’을 서로 교환하곤 한다.

 
Taylor Swift - 경영학
 
또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부분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마케팅이다. 테일러의 10번째 정규 앨범 〈Midnights〉는 바이닐로도 발매됐는데, 총 4개의 버전이 있다. 엘피판의 색상이 각각 다른 이 4개의 버전을 모두 모아 뒷면을 붙여보면 커다란 시계 모양이 완성된다. 그러니 테일러 스위프트의 진정한 팬이라면 이 네 장의 엘피를 전부 사지 않을 방법이 없다. “팬들의 충성심이 엄청나게 높은 아티스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고, 이런 방식은 보통 케이팝 팬덤에서 쓰던 것들이죠.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미국의 아티스트에겐 흔한 마케팅 방식은 아녜요.” 음악평론가 김도헌은 말했다. 공학도인 나의 미국인 친구 매트 윌리엄슨(33)은 10년 넘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이다. “그런 식으로 다양한 버전의 같은 앨범을 낸 지는 좀 됐어요. 4월 19일에 발매되는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 앨범의 경우 거의 매주 새로운 ‘버전’이 나왔으니 선주문을 하라는 공지가 올라오고, ‘시간 제한’이 있다고 압박하죠. 뭐가 됐든 테일러의 것이라면 다 갖고 싶은 팬의 입장에선 가끔 좀 심하다고 느껴요. 특히나 한 번에 발매되는 게 아니라 한두 주 차이를 두고 선주문을 받는 시스템이라 4장을 사면 배송비를 네 번이나 부담해야 한다는 점은 좀 호구 잡히는 게 아닌가 싶게 만들죠.” 매트의 말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미국 팝스타의 그것과 다르다.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는 16번까지는 같은 넘버가 들어 있지만, 17번에는 4개의 서로 다른 노래가 들어 있는 4종의 버전이 나온다. “우리도 케이팝 팬들이 하는 스밍을 돌리거든요. 저는 막 엄청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지만, 새로운 앨범이 나오면 계속 스트리밍 되게 놔두는 제 자신을 발견하죠.” 매트의 말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 티켓을 예매할 때 40% 할인을 받을 수 있고, 머천다이즈를 구매할 때 30%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테일러 스위프트 로열티 카드가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 카드를 신청하면 주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리미티드 티셔츠는 진정한 팬의 상징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들이 콘서트에서 서로 팔찌를 교환하는 광경은 축구선수가 티셔츠를 교환하는 것만큼 일상적인 일이다. 이를 ‘러브 브레이슬릿’이라 하는데 공연장에 있는 소녀들 중에는 테일러의 이름이 새겨진 팔찌를 한 스무 개쯤 차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을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아무도 매트에게 4장의 앨범을 사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고 그 누구도 신보 스트리밍을 돌려야 한다고 협박하지 않았다. 케이팝 팬덤에는 소속사 혹은 소속사와 관련사가 관리하는 레벨을 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앨범 8종 패키지나 일정 스트리밍 시간을 사진으로 인증해야 정회원으로 승급시켜주는 식이다. 그래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케이팝식 마케팅을 도입했다’라는 말은 맞고 또 틀리다.
나는 그보다 테일러의 여러 마케팅 중 가장 강력한 건 ‘테일러스 버전’을 다시 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만 15세에 빅머신 레코드와 13년짜리 장기 계약을 맺으며 이 기간 발표된 마스터 권을 회사가 소유하는 데 동의했다. 2018년 계약 만료를 앞두고 스위프트는 마스터권을 되찾으려 했으나, 협상은 결렬됐다. 문제는 빅머신 레코드가 이 마스터권을 스쿠터 브라운에게 팔았다는 것. 스쿠터 브라운은 저스틴 비버를 발굴한 유명 프로듀서이자 한때 카니예 웨스트를 매니징했던 인물로, 카니예 웨스트가 스위프트와 공방을 벌일 때 웨스트의 편에 선 바 있다. 이에 격분한 테일러 스위프트가 내린 결정이 바로 마스터권이 없는 앨범들을 다시 녹음해 ‘테일러스 버전’으로 내는 것이었다. 2021년 4월에 발매한 〈Fearless〉(Taylor’s Version)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4개의 초기 앨범을 재녹음해 냈는데, 이들 앨범의 스트리밍 횟수는 원본 앨범들의 그것을 상회한다. 나는 이 전략이 결과적으로 송라이터가 가장 빛나는 시기에 쓴 노래들이 한 세대를 건너 다른 세대에게 그대로 다시 전파되는 효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즉 테일러는 같은 명곡들을 두 번 발표할 기회를 거머쥔 것이다.
매해 말 그해의 인물을 선정하는 〈타임〉 매거진은 지난해 2023년의 인물로 테일러 스위프트를 선정했다. 1927년부터 시작된 이 연례행사에서 그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사람들은 주로 남자였다. 14명의 미국 대통령, 5명의 소련 혹은 러시아 리더, 3명의 교황이 선정되었는데, 당연히 다 남자였다. 단체 수상(예를 들자면 ‘미국 여성들’)을 제외하고 비정치 분야에서 선정된 두 번째 여성(그레타 툰베리 다음)이며 문화 분야에서 선정된 유일한 여성이다. 그럼에도 그녀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밀레니얼들의 밥 딜런이지만, 40대 남성들은 대체 왜 테일러 스위프트가 이렇게까지 인기인지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손혜영 에디터가 말했다. “한쪽에선 그녀가 백인에 금발이라 이렇게까지 큰 인기를 끄는 거라며 폄하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선 테일러 스위프트가 남자였다면 지금쯤 마이클 잭슨의 위상을 뛰어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정말 모르겠어요. 그 두 해석이 다 맞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녀가 이어 말했다. 한편 평소 가끔 건반으로 팝송의 코드를 따라 쳐보는 나는 어느 날 그녀의 노래 ‘Love Story’, ‘You Belong with Me’부터 ‘Anti-Hero’까지 따라쳐보다, 그 노래들이 거의 모두 기본 코드 4개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기본 코드 4개만으로 그 어마어마한 곡들을 만들어냈다는 건 여러 의미로 더 대단한 일이다.
 
 
[ 8 Crucial songs of Taylor Swift ]  
Commentator. 김도헌(대중음악평론가)
 
Love Story / 컨트리의 전설 ‘팀 맥그로’를 아예 데뷔 앨범 〈Taylor Swift〉 1번 트랙 제목으로 삼았던 컨트리 걸 테일러 스위프트. 그녀는 두 번째 앨범에서 ‘Love Story’라는 출세곡으로 ‘두려움 없는(Fearless)’ 차세대 팝스타의 등장을 전 세계에 알렸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테일러 스위프트는 모두의 우상이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한국 음반사의 홍보 문구가 이랬다. ‘샤방샤방 샬랄라, 컨트리 요정.’All too well / 수억 스위프티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곡. 팝스타 진화를 선언한 〈Red〉 앨범에서 테일러 스위프트 서사의 핵심은 진솔한 이야기와 자전적 메시지라는 점을 알린 개인적인 ‘최애곡’이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사회적인 법. 팬덤 컬처와 슈퍼팬 현상을 예언한 곡이기도 하다. 10분이 넘는 테일러스 버전은 빌보드 핫 100 의 역사상 정상을 차지한 노래 중 가장 길다.Shake It Off / 〈1989〉 앨범이 다이아몬드(1000만 장)를 찍게 한 데 이어 싱글로도 다이아몬드를 인증한 테일러 스위프트 커리어 최대 히트곡. 〈Speak Now〉 앨범의 ‘Mean’에 이어 미디어와 대중의 반응을 저격하는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헤이터들은 계속 나를 싫어하겠지’라는 노랫말은 이제는 관용구가 되었다. 두아 리파의 ‘IDGAF’는 테일러가 없었다면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Blank Space / 테일러 스위프트의 연인은 영원히 음악으로 남는다. 현대 팝 문화는 언제나 가십을 원하고, 테일러는 수많은 명사가 그의 곁에 머무르다 떠나는 순간을 포착해 독특한 감상의 곡을 완성했다. 자신의 연애사를 소설처럼 과장하는 미디어와 자신을 남자 갈아치우기를 즐기는 여자로 취급하는 대중들을 보며 그 모든 과정을 제3자의 입장에서 서술한 일종의 살생부 혹은 선언문이다. Bad Blood / 친한 친구의 배신을 주제로 케이티 페리를 디스한 이 노래에서 켄드릭 라마의 피처링보다 중요한 건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테일러 스쿼드’였다. 셀레나 고메즈, 칼리 클로스, 지지 하디드, 카라 델러빈, 젠데이아, 레나 던햄, 헤일리 스타인필드 등이 출연해 테일러 편임을 인증했다. 테일러는 송라이터들의 워너비로도 유명한데, 젠지 세대의 아이콘인 올리비아 로드리고 역시 그중 하나다.Look What You Made Me Do / 악연은 카니예 웨스트가 2009년 테일러가 수상 중인 한 무대에 난입한 사건부터 시작됐다. 이후 킴 카다시안과 함께 테일러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간 ‘테일러 스네이크’ 사건의 전말을 보면, 두 사람이 그녀에게 행한 악행은 더럽고 끈질기다. 이후 1년이 넘는 공백기를 거쳐 그녀가 들고 온 앨범의 제목은 심지어 〈Reputation(평판)〉, 게다가 논란 그 자체를 아예 ‘너네가 한 짓을 좀 봐’라며 노래로 만들었다. You Need to Calm Down / 테일러 스위프트의 오늘날 위상을 소개하며 사회, 정치적 메시지를 빼놓을 수 없다. ‘Shake It Off’부터 이어온 자기애와 당당한 자아, 차별받는 소수자들의 편에 서는 의제 설정이 오늘날 테일러 스위프트를 페미니즘과 LGBTQ+ 운동 최전선의 리버럴 팝스타로 만들었다. 1절에선 인터넷 트롤들과 캔슬 컬처를 까고, 2절에선 동 성애 혐오자들에게 냉소를 보낸다. Cruel Summer / 스위프티 팬덤의 힘을 보여준 노래다. 2019년에 발표된 앨범 〈Lover〉의 싱글로 싱글컷도 되지 않았고 발매 당시엔 큰 빛을 보지 못했던 넘버. 그러나 역사적인 ‘더 에라스 투어’에서 ‘Cruel Summer’가 오프닝 곡으로 선정됐고, 이에 감격한 팬덤 스위프티스는 엄청난 떼창과 틱톡 쇼츠 바이럴로 화답하며 4년 전 노래를 빌보드 핫 100 차트 정상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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