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낭 부홀렉의 무한세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DECOR

로낭 부홀렉의 무한세계

로낭 부홀렉의 가장 사적인 공간이자 작업실인 아파트에서 그를 만났다.

이경진 BY 이경진 2024.03.20
로낭 부홀렉은 자신의 드로잉 프로세스를 가리켜 “딴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말하곤 한다. 디자이너로 다채로운 활동을 해온 로낭 부홀렉에게 드로잉은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다. 지난해 새롭게 이사한 아파트에 드로잉 룸을 마련한 로낭은 매일 오전 이곳에서 작업하고 있다. “이곳에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사색에 잠겨요.” 파리 남성 패션위크에서 이세이 미야케와 협업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바쁘던 어느 날, 로낭 부홀렉의 가장 사적인 공간이자 작업실인 아파트에서 그를 만났다.
 
 
‘Untitled’(2023), Oil on Paper.‘Untitled’(2023), Oil on Paper.‘Untitled’(2023), Oil on Paper.‘Untitled’(2023), Oil on Paper.‘Untitled’(2023), Oil on Paper.‘Untitled’(2023), Oil on Paper.‘Untitled’(2023), Oil on Paper.
디자이너로 데뷔한 지 25년이 넘었다
에르완(동생)과 듀오로 일해온 커리어가 그쯤 된다. 올해 52세인데, 생애 첫 전시를 18세에 열었으니 개인 커리어는 34년이 된 셈이다. 지난해 말 파리의 디자인 갤러리 크레오(Kreo)에서 열린 전시 〈Ronan Bouroullec〉 오프닝에서 난생처음 연설을 했다.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지, 모든 게 언제 끝날지 생각해 봤다. 20년 넘게 디자인 작업을 해왔는데 여전히 관심을 가져주는 대중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우리 모두 이런 행운이 언젠가 멈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나.
 
 
 자택 거실에서 자신의 드로잉을 확인하고 있는 로낭.

자택 거실에서 자신의 드로잉을 확인하고 있는 로낭.

 많은 이가 당신을 동시대의 유명한 프랑스 디자이너로 꼽고 완벽한 커리어를 칭송한다. 스피치하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나
‘노스탤직’한 스타일이 아니라 어떤 기분이 들기보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됐다. 분야마다 ‘젊은 층’의 지표가 다르다. 디자이너 세계에서 50세는 젊은 축에 든다(웃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든 것을 해냈거나 다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은 디자인 프로세스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나는 완벽하지 않고, 어떤 작업이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 한다며 늘 채찍질하는 편이다. 나는 더 잘해야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모르는 지식 앞에 서는 것도 좋아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만이 나를 완벽에 가깝도록 만들어준다. 과거와 비교해 보면 최근 많은 사람이 내 작업을 칭찬해 준다. 사실 끊임없는 환호를 받고 있는 상황이 굉장히 불편하다(웃음). 어쩌겠는가. 앞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할 수밖에.
 
 
 로낭은 언제, 어디에서든 주어진 종이나 냅킨 등에 그림을 그린다. 냅킨에 그린 드로잉을 주방으로 가는 복도에 붙여놓았다.

로낭은 언제, 어디에서든 주어진 종이나 냅킨 등에 그림을 그린다. 냅킨에 그린 드로잉을 주방으로 가는 복도에 붙여놓았다.

현재의 로낭 부홀렉을 이끈 인상적인 인물이나 경험이 있다면
운 좋게도 항상 적기에 좋은 사람을 만났던 것 같다. 영화계에서 훌륭한 감독을 만나 성공한 배우처럼 말이다. 평범한 배우의 삶에 머물 수도 있었지만, 함께 일하기 적절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을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운이 좋았다. 다양한 기회를 얻으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8세에 첫 전시회를 열며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당시 학생이던 내가 작은 출판사에 작품을 보여주던 과정에서 운 좋게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 기회를 얻었다. 또 우연히 25세에는 박물관에 작품이 전시되는 행운이 따랐다. 그중 굉장히 까다롭고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줄리오 카펠리니(Giulio Cappellini)와 만난 일이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26세밖에 되지 않은 어린 디자이너가 카펠리니 같은 규모 있는 가구 에디션 브랜드와 함께 일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가구 에디션 브랜드가 오늘날과 달리 상당히 중요하던 시절이었다. 축구에 비유하면 레알 마드리드에 입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펠리니 설립자이자 아트 디렉터인 줄리오 카펠리니, 전 비트라 회장인 롤프 펠바움(Rolf Fehlbaum)이 지닌 엄격함과 완벽성을 아주 좋아한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있는 드로잉 룸. 이곳에서 매일 오전은 드로잉을 하며 보낸다. 벽에는 다양한 세라믹 샘플이 진열돼 있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있는 드로잉 룸. 이곳에서 매일 오전은 드로잉을 하며 보낸다. 벽에는 다양한 세라믹 샘플이 진열돼 있다.

 어시스턴트와 함께하는 스튜디오에서 당신이 일하는 방식은
스튜디오 어시스턴트에게 주어진 역할은 내 디자인을 구현하는 작업을 도와주는 데 국한돼 있다. 수많은 브랜드의 론칭 시기를 맞추기 위해 사방에서 우리를 독촉해도, 내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없으면 어시스턴트들도 할 일이 없다. 대부분의 어시스턴트는 그들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역할 때문에 일정 기간 스튜디오에서 경력을 쌓은 후 자신만의 스튜디오를 열기 위해 떠난다. 나를 대신해 드로잉하는 사람을 따로 두는 시스템에는 전혀 관심 없다.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브르타뉴의 성당 프로젝트 내부에 사용된 유리 샘플을 거울처럼 놓았다. 거실에 놓인 로낭의 세라믹 베이스 ‘타지미(Tajimi)’, 갤러리 크레오에서 최근 그의 드로잉과 세라믹 베이스를 함께 전시했다.

브르타뉴의 성당 프로젝트 내부에 사용된 유리 샘플을 거울처럼 놓았다. 거실에 놓인 로낭의 세라믹 베이스 ‘타지미(Tajimi)’, 갤러리 크레오에서 최근 그의 드로잉과 세라믹 베이스를 함께 전시했다.

지금은 어떤가? 아이디어로 가득한 시기인지
문제는 나에게 아이디어가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보다 내 몸이 하나뿐이라는 데 있다. 최근 다양한 프로젝트와 전시가 세계 곳곳에서 이어져 상당히 복잡했다. 도쿄와 파리에서 오픈한 두 개의 전시 준비, 내년에 선보일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팔로업’해야 하고, 무엇보다 지난 1월 파리 남성 컬렉션에서 선보인 이세이 미야케 컬렉션 준비로도 바빴다. 컬렉션 피스에 담을 이미지뿐 아니라 쇼 전체에 깊이 관여했다. 또 퐁피두 센터에서 작은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고, 스위스 로잔에서 열 전시도 준비 중이다. 4월에는 밀란 디자인 위크에 참석해야 한다. 1년이 여러 프로젝트로 꽉 차 있다. 그러니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고 구현해 낼 ‘여유’를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다.
 
 
아파트 작업실 한편, 다양한 컬러의 세라믹 샘플이 놓여 있다.

아파트 작업실 한편, 다양한 컬러의 세라믹 샘플이 놓여 있다.

 지극히 주관적 관점에서 당신의 디자인을 위해 가장 중요하거나 필요한 것은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 엄청난 분량의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중이라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브르타뉴에서 자주 혼자만의 시간을 갖곤 한다. 어찌 보면 이 아파트도 나에게 브르타뉴와 같은 장소로, 많은 영감을 준다. 가끔 창밖에 보이는 지붕 위에 갈매기들이 둥지를 튼 걸 발견할 수 있는데, 마치 브르타뉴에 있는 것처럼 갈매기 우는 소리에 잠을 깰 때가 있다. 재미있는 일이다. 동네 전체는 굉장히 조용하다. 이런 분위기가 나에게 중요하다.
 
 
오전에 드로잉을 마친 뒤 오후에 몰입하는 부분은
오전에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디자인을 구상하고, 오후에는 외부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들과 작업하는 루틴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랫동안 파리 11구에 있었던 부홀렉 형제의 작업실을 정리했다. 에르완은 20구에, 나도 옛 작업실 근처에 개인 스튜디오를 구했다. 에르완과 나는 각자의 작업실에서 일한다. 더 이상 둘이 함께 디자인하지 않는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우리는 오래전부터 각자의 프로젝트를 해왔고 작업하는 방식도 많이 다르기 때문에 ‘헤어짐’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발전에 더 가깝다.
 
 
 디자이너로서 그림을 그려왔고 이를 아카이빙하는 방식도 굉장히 체계적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 참여한 전시와 프로젝트, SNS를 통해 선보이는 드로잉 등의 개인 작업이 유독 부각되는 이유는
나는 뭐든 직접 해왔다. 드로잉, 포토그래피, 오브제 디자인, 손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모든 작업을. 장인 기술과 관련한 것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왔으며, 만든 사람의 취향이나 손길이 고스란히 담겨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걸 좋아한다. 똑같거나 비슷한 것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내고 싶지 않고, 언제나 전과 다른 상황에 직면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우리 일에 대해 어떤 이름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던 것 같고, 오랫동안 내가 하는 무언가를 다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했다. 디자이너인지, 그래픽 디자이너인지, 아니면 아티스트인지 영역을 확실히 정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시선에서 벗어났다. 나 자신이 많은 분야에 관심이 있고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람이란 걸 감추려 하지 않는다. 결국엔 각기 다른 분야의 작업들 사이에 연결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최근 갤러리 크레오에서 연 전시 역시 오브제, 드로잉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지 않은가. 곧 있을 퐁피두 센터의 전시 역시 같은 맥락을 보여줄 예정이다.
 
 
로낭의 주방 한 편.

로낭의 주방 한 편.

근래 당신의 드로잉 역시 처음과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스케일이 커지고 다양한 텍스처가 더해졌는데
그림은 스튜디오에서 그리지 않는다. 집 안의 작업실에서만 그린다. 이전보다 넓은 새집으로 이사 오면서 조금 더 제대로 그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이 집에서는 큰 그림을 그리고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배치해 볼 수도 있어 훨씬 더 흥미롭다.
 
 
‘원더글라스(Wonderglass)’를 위해 디자인한 컬렉션 ‘알코바(Alcova)’.

‘원더글라스(Wonderglass)’를 위해 디자인한 컬렉션 ‘알코바(Alcova)’.

단순해 보이는 드로잉에서 다양한 감정이 느껴진다. 즉흥적으로 작업하는 편인가
내 드로잉은 손을 통해 그려진 선들이 여백을 채워가는 형태로 완성된다. 그리기 전에 미리 생각하기보다 그리는 제스처와 습관에 의해 탄생된 형태다. 드로잉을 할 때는 광택이 있는 종이를 선호한다. 내가 즐겨 사용하는 마커가 이런 종이 위를 스치면 새로운 텍스처를 만들어내는데 그 결과물이 아주 부드럽고 생동감 있다.
 
 
자신의 드로잉을 확인하고 있는 로낭. 먹색 드로잉 작업은 ‘Bas-Reliefs’(2023).

자신의 드로잉을 확인하고 있는 로낭. 먹색 드로잉 작업은 ‘Bas-Reliefs’(2023).

세라믹 작업도 이어오고 있다. 당신의 드로잉과 세라믹 작업은 형태나 시적인 분위기에서 많이 닮아 있다
사실 나는 딴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곤 한다. 마치 다른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다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어떻게 해서 도착했는지, 어디를 거쳤는지는 모른다(웃음). 작은 것들을 모아 또 작은 무언가가 탄생할 뿐.
 
 
 새집에 마련한 넉넉한 면적의 드로잉 룸에서 큰 사이즈의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새집에 마련한 넉넉한 면적의 드로잉 룸에서 큰 사이즈의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주변의 다양한 관계 역시 당신의 디자인에 중요 요소로 작용하나
나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의 전문가’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런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각 프로젝트를 위해 목수 혹은 플라스틱 엔지니어, 청동이나 유리를 다루는 장인 등 아이디어를 실존하는 것으로 만들어낼 여러 전문가들과 협업해야 하니까. 실제로는 어떤 것도 실존하게 만들 수 없는 나 같은 전문가의 생각이 실현될 수 있도록 말이다.
 
 
플로스(Flos)를 위해 디자인한 램프 컬렉션 ‘세라미크(Céramique)’. 로낭 특유의 심플하지만 우아한 형태,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인 세라믹 조명 컬렉션이다.

플로스(Flos)를 위해 디자인한 램프 컬렉션 ‘세라미크(Céramique)’. 로낭 특유의 심플하지만 우아한 형태,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인 세라믹 조명 컬렉션이다.

당신은 무엇에 감동하나
무척 다양한데 아주 작은 생활의 디테일에도 감동받는다. 오래된 빌딩의 계단 핸드레일, 벽에 스카치테이프로 대강 붙여놓은 드로잉, 대가의 마스터피스 페인팅은 구체적인 쓰임이나 가치가 있어서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 시간이나 상황에서 무언가 나에게 전달되었다는 의미다. 그 순간에는 어떤 부드러움이나 자비 또는 맹렬함이 느껴지는데, 내가 삶에서 관심 있어 하는 이런 감정들이 카페의 의자, 페인팅, 드로잉을 통해 표현된다.
 
 
레드 · 그린 · 블루 컬러의 유약에서 오는 컬러의 깊이감 역시 아름답다.

레드 · 그린 · 블루 컬러의 유약에서 오는 컬러의 깊이감 역시 아름답다.

사색에 잠겨 있는 모습을 자주 본 듯하다. 무엇이든 많이 생각하고 결정하는 스타일인가
제대로 봤다(웃음). 자주 딴생각을 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사색에 잠겨 있다가 문득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몇 날 며칠 생각만 할 때도 있다.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결정을 위해 사색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내 머릿속을 꽉 채운 생각들이 나를 굉장히 피곤하게 한다. 내 머릿속은 다양한 생각으로 복잡하다. 사람들은 내 작업이 간단하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겉으로는 쉽게 읽히겠지만 그것을 만들어내기까지 많은 백지를 채워보고 나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탄생하는 결과물이다.
 
 
세브르 공방(Manufacture de Sèvres)에서 제작한 세브르 램프(Lampe Sèvres). 로낭 특유의 부드러운 컬러 배리에이션이 아름답다.

세브르 공방(Manufacture de Sèvres)에서 제작한 세브르 램프(Lampe Sèvres). 로낭 특유의 부드러운 컬러 배리에이션이 아름답다.

브르타뉴에 있는 집에도 자주 가는 것으로 안다. 브르타뉴의 집은 도심생활에 지칠 때 잠시 도피하기 위해 마련한 곳인가
특히 브르타뉴 집에서 유독 생각을 많이 하기에 파리로 돌아오면 오히려 더 피곤해진 나를 발견하곤 한다. 브르타뉴 집에서는 뇌가 끊임없이 작동해 전혀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웃음). 그곳에서 두서없이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종종 아이디어로 태어나기도 한다. 파리 같은 도시에서의 삶은 아름답지만 생각보다 단조롭지 않은가. 계절마다 보이는 풍경도 비슷하고. 브르타뉴는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오고, 또 바람이 불고 갑자기 해가 난다. 한순간도 고요하지 않다. 이토록 다양한 장면과 이미지들이 나를 일깨운다. 브르타뉴의 집은 꽤 아름답다. 내가 좋아하는 오브제로 가득 채워져 있어 사진도 더 많이 찍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파도가 밀려오면 서핑하러 나가기도 하고. 그 집에서의 생각들은 파도처럼 훅 밀려와 무언가로 탄생한다.
 
 
마치 버섯을 연상시키는 램프 셰이드가 세브르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마치 버섯을 연상시키는 램프 셰이드가 세브르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브르타뉴 시골마을에서 지낸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안다
도시만큼 사람이 많지 않은 동네였다. 남동생이 있지만 다섯 살이나 어렸고, 8세 소년에게 3세 아기는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는 아니니까.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여럿이 하는 축구 대신 벽에 공을 차면서 혼자 놀았고, 테니스도 벽에 공을 치며 혼자 즐겼다. 그때 드로잉이야말로 나에게 친구 같은 존재였다. 농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항상 일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고, 어린 시절에는 항상 무언가를 했다. 책을 읽는 것도 생산적인 일이 아니라고 치부돼 낮에는 독서할 수 없었고, 밤에는 잠자리 독서만 가능했다. 그림을 그리면 작업 결과물을 바로 볼 수 있으니, 청소하고 나무를 자르는 일처럼 생산적인 일로 분류돼 계속할 수 있었다(웃음). 그래서 어릴 때부터 항상 그림을 그렸다.
 
 
크바드랏(Kvadrat)을 위해 실을 꼬아서 만든 로프를 이용해 디자인한 러그 컬렉션 ‘코드(Corde)’.

크바드랏(Kvadrat)을 위해 실을 꼬아서 만든 로프를 이용해 디자인한 러그 컬렉션 ‘코드(Corde)’.

데뷔 초와 오늘의 작업방식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크로키를 자주 했다. 이를테면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상상하고 그 상상을 바탕으로 의자를 그리는 것이다. 어떤 오브제를 만들기 위해 해당 오브제를 시각화한 다음 드로잉을 최대한 자세히, 정확하게 어시스턴트에게 설명하는 과정을 거친다. “좋은 프로젝트는 전화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탈리아 격언처럼 30년 넘는 커리어를 거치고 나니 어떤 부분은 설명 없이도 훨씬 간결해져서 좋다. 요즘은 테크닉 측면에서 매번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거나 다양한 협업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조금 쉽게 하는 것, 썩 괜찮은 것을 만드는 게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엄청나게 괜찮은 무언가를 발명해 내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크바드랏(Kvadrat)을 위해 실을 꼬아서 만든 로프를 이용해 디자인한 러그 컬렉션 ‘코드(Corde)’.

크바드랏(Kvadrat)을 위해 실을 꼬아서 만든 로프를 이용해 디자인한 러그 컬렉션 ‘코드(Corde)’.

플라스틱 화분과 비교되는 세라믹 베이스 시리즈는 어떻게 탄생했나
다양한 꽃을 보면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져 화병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에게 좋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 꾸준히 베이스를 디자인한 것이다. 세라믹은 큰 기쁨 중 하나다. 25년 이상 다양한 상황과 산업에서 세라믹을 다뤄왔다. 특히 부르고뉴에 있는 한 도예가와의 작업은 정말 흥미로웠고, 완벽한 관계를 만들어냈다. 어느 날 마티스 가문에서 의미 있는 오브제를 만들고 싶다고 연락해 왔다. 나에게 마티스는 화병이나 꽃을 상징하기 때문에 마티스를 위한 물감의 신선함이 느껴지는 ‘그림 같은’ 화병 시리즈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30여 개의 화병을 비트라와 함께 대중에게 선보였다. 아주 단순하면서 시적인, 간단한 선이나 붓질 같은 것이 오브제로 옮겨졌다는 점만 다른 프로젝트였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엄청난 즐거움 속에서 제작했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두어 가지는 있다’는 걸 깨달았다(웃음).
 
 
리소그래피 아틀리에인 ‘이뎀 파리(Idem Paris)’에서 준비한 로낭의 드로잉 시리즈. 리소그래피 아틀리에 ‘이뎀 파리’에서 드로잉을 하고 있는 로낭.

리소그래피 아틀리에인 ‘이뎀 파리(Idem Paris)’에서 준비한 로낭의 드로잉 시리즈. 리소그래피 아틀리에 ‘이뎀 파리’에서 드로잉을 하고 있는 로낭.

 갤러리 크레오에서 선보인 화병, 드로잉 위에 세라믹 조각을 얹은 프레임 작업 등 세라믹이 혼합된 작업은 당신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나
행복과 관능미를 준다. 4~5년 전부터 2~3개월에 한 번씩 세라믹 아틀리에를 찾는다. 어마어마하게 큰 케이크를 만드는 것처럼 다양한 점토 반죽이 준비된다. 그럼 나는 아무런 생각이나 계획 없이 즉석에서 그림을 그리듯 형태를 자르고 검은색과 청록색, 노란색이 차지할 공간을 결정한다. 나는 즉흥적인 사람이지만, 세라믹 작업은 30여 년의 경험과 자신에게 가졌던 의심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이라는 말이 남용되는 시대다. 이 분야가 더 많은 사람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을 해치는 것 같기도 하다
진짜 문제는 ‘디자인’이 형용사가 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디자인 오브제’라는 용어가 신경을 건드린다. 우리 앞에 있는 플라스틱 화분은 모양이나 사용감, 컬러까지 완벽한 오브제지만 우리는 이 화분을 디자인 오브제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옆에 있는 세라믹 베이스는 화분에 비해 쓸모도 덜한데 ‘디자인 오브제’로 불리니 아이러니하지 않나(웃음). 나에게 ‘디자인 의자’는 최악의 체어, ‘디자인 화병’은 최악의 화병이다. 단지 어떤 타입의 컬러나 형태, 스타일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렇게 칭송하니까. ‘디자인’이라는 말이 많이 저속해졌다. 따라서 디자이너라는 직업 역시 어떤 면에서는 저속한 직업이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어떻게 정의하고 싶은가
나는 디자이너로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들려주는 역할을 기꺼이 자청한다. 삶에 얽힌 다양한 주제와 복잡한 문제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것이 내 직업이다.
 
 
2024년 1월 파리 남성 패션위크 기간에 이세이 미야케 옴므 플리세(Issey Miyake Homme Plissé)와 함께 선보인 협업 컬렉션.

2024년 1월 파리 남성 패션위크 기간에 이세이 미야케 옴므 플리세(Issey Miyake Homme Plissé)와 함께 선보인 협업 컬렉션.

자신을 좋은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나
무언가 만드는 데 특별한 재주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릴 때 아버지는 나를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아이로 취급했다. 그 말을 항상 진실이라 믿었고,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지금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일하고,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아파트 거실에서, 로낭 부홀렉.

그의 아파트 거실에서, 로낭 부홀렉.

 다양한 재료를 자유자재로 혼합한 전시는 당신의 새로운 행보를 보여준다. 이전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모습으로 말이다
이제는 한 장르에서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조금 더 쉽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에도 덜 망설여진다. 최근 페인트 브랜드를 위해 15가지의 새로운 컬러를 디자인하고 있다.
 
당신의 작업에서 컬러가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에 더욱 기대된다
컬러는 나에게 간접적으로도 영향을 준다. 방문한 장소에 대한 기억도 모두 컬러로 남는다. 노란색은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분홍색과 마찬가지로 매우 어려운 색인 동시에 내가 잘 알고 있는 색이기도 하다. 분홍색은 일본산 마커를 이용하면서 배웠는데, 이때 유럽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넓은 범위의 분홍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준비 중인 프로젝트에서 섬세한 그레이 컬러가 함유된 분홍색 등 다채로운 컬러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핀란드 브랜드 바르니(Vaarnii)의 새로운 컬렉션으로 디자인한 ‘마스트로(Maastro)’의 프로토타입.

핀란드 브랜드 바르니(Vaarnii)의 새로운 컬렉션으로 디자인한 ‘마스트로(Maastro)’의 프로토타입.

수많은 프로젝트를 창조하고 선보여 왔다. 여전히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에게는 아직도 모든 게 미스터리하다. 여기서 내가 던져야 할 질문은 그 많은 일을 해낼 시간을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이탈리아에서 전통 기술로 타일을 생산하는 공장을 방문했다. 다음날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조명을 만드는 공장을 찾았다. 내 손이 닿는 영역 역시 널뛰듯 바뀌는 상황이 나에게 에너지를 준다. 비트라의 롤프 펠바움이 언젠가 나에게 “당신은 많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 그건 행운이자 문제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근 〈Day After Day〉를 출간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내 세계를 조금 더 자세하게, 떳떳하게 선보이고, 나에게 의자와 세라믹을 만들거나 그림 그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니 말이다(웃음).
 
 

Keyword

Credit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이지은
    포토그래퍼 MARION BERRIN
    아트디자이너 이유미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