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중독자인 우리가 '가속노화' 중인 이유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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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중독자인 우리가 '가속노화' 중인 이유

김현유 BY 김현유 2024.02.09
 
엊저녁의 일이다. 한 방송사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 사회의 사람들이 왜 느리게 나이 드는 생활 습관을 유지하기가 어려운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애초에 방송국이 나를 초대한 이유는 조금 달랐다. 2023년 밈(meme)처럼 사람들이 이용하기도 했던 단어, ‘가속노화’에 대해 얘기하며 어떻게 먹고 운동해서 노화 속도를 느리게 할 수 있을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프로그램이 계획한 주제였다. 솔직히 말해, 느리게 나이 드는 방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이를 실천하는 데까지 수많은 장벽이 존재할 따름이다. 나는 조금 더 근본적인 이슈들을 다루고 싶었다. 라디오라서 가능했다. 편집을 거치는 영상 매체에서는 이 근본적인 고민들이 대개 잘려나간다. 전후 사정을 거두절미하면서 나는 그저 ‘렌틸콩과 베리류를 먹어라’ ‘계단을 올라라’ 같은 단편적인 말을 내뱉는 건강 전도사가 되어버리고 만다.
느리게 나이 드는 방법은 안다고 실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의지가 없어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내가 곧바로 향한 곳은 건물 2층의 일식당이었다. 음료로 맥주 한 잔과 하이볼 두 잔을 마셨다. 진심으로 하이볼은 한 잔만 마실 생각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원 플러스 원이었다. 후토마키 1인분과 함께 이것들을 배 속에 털어 넣는 데에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명백한 고위험 음주다. 한동안 절주를 성공적으로 실천하던 나로서는 실패한 저녁이었다.
왜 그랬을까. 새벽 6시에 일어나 이른 아침에는 급한 병동 업무와 여러 가지 연구, 행정 업무를 처리했다. 곧바로 오전, 오후에 걸쳐 외래 진료가 있었고, 점심은 샐러드로 해결했다. 진료를 마치고 급한 이메일과 전화를 처리한 뒤 달리듯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방송국에서 짧게 대본을 파악하자마자 곧바로 온-에어가 시작되었다. 목이 마르고, 체력이 소진되고, 인지 자원도 바닥을 치는 저녁 7시. 지칠수록 곱게 집에 가서 간단한 운동을 마치고 잡곡밥을 먹은 뒤 책을 읽다 잠에 드는 것이 몸과 마음에 좋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래야 스트레스 호르몬을 가라앉히고, 수면의 질을 높이고, 애써 운동해 만들어놓은 근육도 지킬 수 있다.
반대로 고위험 음주는 스트레스 호르몬 수준을 높이고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 알코올의 열량은 뱃살에 차곡차곡 쌓인다. 알코올과 스트레스 호르몬은 모두 근육을 녹인다. 수면의 질이 낮아 제대로 된 회복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다음 날 스트레스 호르몬 수준은 더 높아진다. 술 마시고 자면 사람의 회복 탄력성이 전체적으로 떨어지는 셈이다. 게다가 회복 수면을 누리지 못한 사람의 뇌는 다음 날 열량이 더욱 높은 음식을 찾는다. 억울하게도 이렇게 먹은 음식은 더 심한 혈당 변동성을 만들고, 건강하지 못한 지방 축적을 초래한다. 이 모든 악순환의 연결 고리들이 정교하게 설계된 과학적 연구 결과로 명백하게 밝혀져 있다. 관련 논문들의 주요 데이터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에서 재생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내가 고위험 음주를 저질렀다.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란 그렇게 취약하다.
우리는 왜 가속노화를 경험하는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몸속 세포에서는 노화 시계가 흐르고 있다. 노화 시계의 템포는 내가 무엇을 먹고, 어떤 운동을 하고, 어떻게 스트레스를 받느냐에 따라 실시간으로 바뀐다. 달력이 1년치 지나갔을 때 노화 시계도 1년 흘렀다면 정속 노화다. 가속노화는 1배속보다 빠르게 노화 시계가 흘러가는 것을 의미한다. 크게 보았을 때, 건강하지 않은 가공식품 위주, 단순당, 정제 곡물이 점철된 식사, 몸을 움직이지 않는 생활 습관, 술, 담배, 정신적 스트레스, 수면 부족 등이 노화 속도를 빠르게 한다.
통상적으로 노화에는 유전자가 30, 생활 습관이 70 정도를 차지한다고 본다. 이런 상태를 지속하면 나중에는 생물학적 나이가 숫자 나이보다 많아지게 된다. 생물학적 나이는 중·노년기의 만성 질환 정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화 시계라는 통장에 가속노화를 꾸준히 쌓으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심뇌혈관 질환, 암, 치매를 좀 더 일찍 만나게 된다. 몸의 고장이 빨리 쌓이는 셈이다. 이 고장이 어느 선을 넘으면, 일상생활이 어렵게 된다. 간병인과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아 아픈 장수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의지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럴까? 나는 ‘가처분 시간’이 그 이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여유로운 삶을 위해 가처분 소득이 필요하듯, 가처분 시간의 부족은 세 가지 면에서 우리의 의지력에 영향을 준다. 우선 우리에겐 절대적인 가처분 시간이 부족하다. 야근을 포함해 직장에서 하루에 12시간씩 근무를 한다고 가정할 때, 점심시간을 포함하면 직장 체류 시간은 13시간 또는 그 이상이 된다. 여기에 편도 1시간의 출퇴근 시간을 더하면 15시간을 삶에서 제해야 한다. 가처분 시간은 9시간이다. 장시간 노동과 장거리 출퇴근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는 절대적 가처분 시간이 일단 귀하다. OECD 통계에서, 한국인의 노동 시간과 출퇴근 시간은 모두 최장 수준이다. 슬프게도, 자가 유무, 소득 수준, 교육 수준 같은 사회·경제적인 변수들도 사람의 노화 속도나 수명과 상관관계를 보인다. N잡으로 아슬아슬한 삶을 이어가야 한다면, 건강한 식사는 사치가 될 것이다.
둘째로 상대적인 가처분 시간도 모자라다. 굳이 찾아서 일을 늘리고, 그렇게 늘린 일이 가처분 시간을 줄이는 형국을 떠올리면 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상황일 것이다. 잠을 줄이고 개인적으로 일하는 시간을 늘려서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가 실질적으로는 스트레스 수준을 높이고 가속노화의 악순환을 만들어 건강도 잃고 성공에서도 멀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절대적, 상대적인 가처분 시간의 결핍에서 살아남아 시간을 쪼개어 잠, 운동, 식사, 마음챙김에 써야 한다. 그러나 자극이 넘쳐나는 지금의 사회에서는 세 번째 문제, 가처분 시간 활용의 왜곡이 동반된다.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는 스트레스를 쉽게 푸는 방법에 손이 간다. 어제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술, 담배, 마약, SNS와 숏폼 비디오, 명품 구입, 상품화된 여행… 도파민을 빠르게 분비시켜주는 모든 것이 우리의 아쉬운 가처분 시간과 가처분 소득을 가져간다.
다른 나라보다 빠른 성장을 채근당하며 선진국으로 성장한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가속사회’다. 그 와중에, 우리 삶 속의 모든 것은 더 자극적으로 진화했다. 지난 60년 동안 한국인 1인당 당류 소비는 수십 배 증가했다. 젊은 당뇨 환자와 암 환자가 빠르게 는다. TV 드라마가 책을 이겼고, 드라마보다 짧은 유튜브 동영상이 대세가 되더니 이제는 숏폼의 시대라고 한다. 즐거움은 늘었으나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 이후 전 세계 젊은이들은 더 우울하고 불안해졌다. 그럴수록 건강관리가 또 한 가지 측면의 자기계발로 치부되어서는 곤란하다.
30대와 40대의 걱정스러운 건강 상태가 통계 지표에서 관찰된다고 해서, 가속노화가 특정 세대만의 문제인 것도 아니다. 어려서부터 스마트폰과 태블릿, 가공식품을 붙들고 자란 현재의 10대부터 20대들이 경제의 주축이 됐을 때 어떤 건강 문제를 일으킬지 더욱 걱정된다. 결국 가속노화는 개인의 문제도, 세대의 문제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이 가속사회의 문제일 것이다.
 
정희원은 우리 사회가 아프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노년내과 의사다. 〈지속가능한 나이듦〉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느리게 나이드는 습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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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김현유
    WRITER 정희원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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