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식탁 논쟁을 아시나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CULTURE

아일랜드 식탁 논쟁을 아시나요

주방 인테리어에서 가장 의견이 분분한 아일랜드 식탁. 갖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김초혜 BY 김초혜 2023.11.20

AGREE 벽 보고 요리하지 않는 법

요리하는 즐거움에 푹 빠진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나래는 꿈에 그리던 첫 번째 아일랜드 식탁을 갖게 됐다. 
좋아하던 요리조차 가혹한 노동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창문 하나 없이 빽빽하게 타일이 발라진 부엌 때문이었다. 꽉 막힌 벽을 바라보며 설거지하고, 요리하는 시간이 답답했다. 이사 갈 집의 인테리어를 직접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아일랜드 식탁이었다. 직접 수납장 사이즈와 상판 색을 고르고, 시공만 따로 맡겼다. 미국 드라마를 보고 키워왔던 아일랜드 식탁에 대한 로망은 밥솥과 에어프라이기 등을 두루 사용해야 하는 한국 부엌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생긴 에어프라이기에 맞춰 짠 수납장은 분명 인테리어의 품격을 올려줄 테니까. 찌개와 조림, 볶음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한 상을 차려야 할 때면 아일랜드에 올린 쿡탑과 필터형 후드가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복잡한 배관공사 없이도 요리할 수 있는 화력을 하나 더 얻게 된 건 덤이다. 나는 오늘도 널찍한 상판 위에 토마토와 호박, 가지 등 식재료를 늘어놓고, 한 끼를 어떻게 꾸릴지 고민한다. 아일랜드 식탁은 분명 내 밥상을 자유롭게 한다.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느껴졌던 고독한 시간은 함께 요리하고, 함께 먹는 기쁨으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아일랜드 식탁은 더 이상 단순한 가구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시간을 보내며 살고 싶은지에 대한 단호한 결정이다.
 
 

AGREE 아일랜드의 마법을 아시나요?

요리 작가이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대표 스카이 맥알파인에게 아일랜드는 필수품이다. 
아일랜드 식탁은 나처럼 열정적이고 너저분한 요리사가 꿈꿀 수 있는 최고의 버킷리스트다. 자유롭게 요리하고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은 주방에서 할 수 있는 요리의 한계를 깰 수 있도록 도와주니까. 우리 집 아일랜드 수납장에는 없는 게 없다. 냄비와 프라이팬, 믹싱 볼은 물론이고, 도마와 부엌칼을 넣는 서랍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요리할 때는 어떤가? 아일랜드 앞에 서면, 모든 일이 나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스토브 위에는 냄비가 보글보글 끓고, 오븐에서는 케이크가 구워지고…. 부엌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아일랜드 쪽으로 이끌리게 된다. 경계가 사라진 편안한 식사가 단숨에 시작된다. 내가 주최하는 디너 파티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일랜드 위에는 언제나 견과류, 올리브, 감자 칩이 담긴 그릇들, 치즈 한 덩어리와 소스용 꿀이 담긴 작은 접시를 올려놓는다. 다음에 샐러드를 전달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손님들은 각자 음료를 들고 아일랜드 주위로 모여 음식을 조금씩 집어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일랜드의 마법이 시작됐다.
 
 

DISAGREE 아일랜드는 과대평가됐다

인테리어 저널리스트 부솔라 에번스는 주방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아일랜드에 맞서 오랫동안 캠페인을 벌여왔다. 
5년 전 나는 인스타그램에 아일랜드를 ‘집에 내려놓은 영혼 없는 커다란 석판으로 그보다 더한 장애물은 없다’고 묘사했다. 이 글에 달린 수많은 댓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짧은 한 마디였다. ‘당신은 틀렸어요.’ 2023년엔 더 많은 사람들이 아일랜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아일랜드를 칭송하는 사람들이 반복하는 주장 중 하나는 그것이 유쾌한 사교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맞다.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아일랜드에 끌리기도 한다. 솔직히 그 커다란 존재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밴드 그룹처럼 일렬로 앉힌 손님들과 멀찍이 떨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어색한 건 없다. 의자 역시 아슬아슬하다. 불편한 착석감을 자랑하는 높은 스툴에서 발을 덜렁거린 채로 최고의 식사를 맛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손님을 바라보면서 요리하고 싶은 집주인의 욕구에는 나르시시즘의 냄새가 난다. 당신이 제이미 올리버가 아닌 이상 요리할 때 청중이 필요하지 않고, 대화가 끊어지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다. 더 많은 수납공간 역시 제대로 디자인한 주방이면 해결될 문제다. 나는 여태껏 아일랜드 식탁을 가져본 적 없고, 앞으로도  들이지 않을 생각이다. 사교를 위한 장소나 열쇠를 던져둘 자리가 필요하다면 더 저렴하고 좋은 대안이 있다. 식탁 말이다.
 
 

DISAGREE 작은 부엌의 미학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 이진희는 광활한 부엌에서 탈출해 작은 부엌도, 작은 집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아일랜드 식탁이 가져온 비극은 끝났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면서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결정했고, 이전에 살던 집의 반만한 부엌을 갖게 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엔 막막했다. 보험을 들면서 받았던 프라이팬, 박스째 수납장에 박혀 있는 그릇들, 가족 구성원의 수보다 10배는 넘는 컵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거대한 창고가 돼버린 아일랜드 수납장을 꾸역꾸역 비우고 나니 꼭 필요한 물건만 남았다. 부엌 하부장에는 냄비 세 개, 웍 하나, 찜기 하나만 있다. 작은 부엌을 갖게 됐을 뿐인데 커다란 변화가 시작됐다. 냉장고에 음식물 쓰레기로 돌변한 식재료를 쌓아 놓는 일이 현저하게 줄었고, 매일 아침마다 부기 전쟁을 하던 몸과 마음도 편안해졌다. 몸무게도 슬금슬금 줄었다. 넓은 집을, 넓은 주방을 가졌을 때는 퇴근하고 완전히 지친 날에도 아무렇게나 흩뿌려져 있는 물건을 정리하고 청소하느라 바빴다. 누군가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비싼 건 공간’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치우고, 정리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온전한 쉼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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