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Space'의 시대가 열렸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Made in Space'의 시대가 열렸다

지난 40년 사이 우주로 나가는 데 드는 비용은 대폭 감소했다. 지구 밖 궤도를 타고 우주 경제가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사이, 발 빠른 투자자들은 지구 밖 공장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made in space’ 제품의 등장은, 그리 머지않은 미래의 일일지도 모른다.

김현유 BY 김현유 2023.10.08
 
지구인은 우주에 나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건 달이나 화성 관광 정도일 것이다. 씨티그룹은 지난해 공개한 보고서를 통해 우주 경제의 규모가 머지않아 1조 달러(한화 약 1300조원)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광만으로 그 정도 규모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산업이 우주 경제를 이끌 것인가?
우리는 그 어떤 때보다 쉽고 저렴하게 우주에 도달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통적인 우주 강국인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후발 주자인 중국과 인도가 발사체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우주까지 닿는 인프라는 빠르게 발전했다. 비용도 낮아졌다. 씨티그룹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주에 발사체를 보내는 비용은 1980년대와 비교해 30배 이상 줄어들었다. 바야흐로 우주를 탐험하는 과정에서 창출된 가치와 혜택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시대, 우주에서의 경제활동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산업이 우주 경제를 지탱할 수 있을까? 미국의 우주 스타트업 바르다 스페이스 인더스트리(Varda Space Industries)의 행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바르다는 지난 6월, 일론 머스크의 탐사 기업 스페이스X의 로켓에 항바이러스제 리토나비르(Ritonavir)로 의약품 제조 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90kg짜리 캡슐을 실어 보냈다. 지구와 다른 중력 조건에서 고품질 단백질 결정 구조를 얻을 수 있는지 실험하기 위해서다. 발 빠른 투자자들이 ‘우주 제조업’의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 밖에서 만든 약
우주의 공장은 어떤 식으로 운영될까? 바르다가 진행 중인 우주 제조업 프로젝트를 뜯어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바르다가 쏘아 올린 위성 ‘더블유-시리즈 원(W-Series 1)’은 무게가 300kg에 달한다. 여기에는 미국 우주발사체 기업 로켓랩이 바르다와 협업해 만든 위성 버스(bus)인 포톤(Photon)과, 위에서 언급한 실험실 역할을 하는 리토나비르 캡슐 그리고 지구 궤도에 재진입하기 위한 용도의 캡슐이 담겼다.
스페이스X의 로켓에 수십 개의 다른 위성과 함께 실려 떠난 더블유-시리즈 원은 궤도에 진입한 후 리토나비르 캡슐과 분리된다. 이후부터는 우주를 돌아다닐 수 있는 동력과 추진력은 포톤이 제공하며, 지상과의 통신도 포톤을 통해 이뤄진다. 지상 엔지니어의 지시에 따라 몇 개월간 실험을 진행하며, 엔지니어가 캡슐을 회수해도 괜찮겠다고 판단하면 포톤은 캡슐을 지구로 떨어뜨린다. 대기권으로 급강하한 캡슐을 무사히 회수하는 것까지가 우주의 공장이 돌아가는 전 과정이다.
바르다가 실어 보낸 항바이러스제 리토나비르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치료제로 처음 개발돼 코로나19 치료에도 쓰인 의약품 ‘팍스로비드(Paxlovid)’의 주성분이다. 이미 제약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약품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굳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우주에서 제조할 이유가 있을까? 이는 우주 공간의 특수성 때문이다. 우주 공간은 완전히 무중력은 아니나, 중력의 영향이 지구에 비해 지극히 약한 미세 중력 환경이다. 중력을 벗어난 환경에서 성장한 단백질 결정은 지구에서 만든 것보다 더 완벽한 구조를 갖게 된다. 밀도 차이로 인한 대류나 침강 현상이 생기지 않아 더욱 균질한 구조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바르다뿐만 아니라 여러 글로벌 제약회사는 우주에서 약을 제조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자궁경부암 백신 ‘가다실’과 3세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로 유명한 미국 다국적 제약사 머크(Merck, 한국 법인명 MSD KOREA)와 B형 간염 치료제 ‘바라크루드’, 면역항암제 ‘옵디보’를 개발한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 등은 바르다보다 앞서 여러 국가의 우주개발 기구가 연합한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연구소와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실제 성과도 있었다. 2017년 머크는 우주정거장에서 면역관문억제제인 펨브롤리주맙(제품명 키트루다)을 제조하는 실험을 했고, 2019년 고순도 결과물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개선된 결정은 기존 방식보다 더 쉽게 투약이 가능한 약물을 만드는 데 쓰인다.
신생 기업들도 우주를 무대로 적극적인 실험을 진행 중이다. 미국 생명공학 기업 마이크로퀸은 2018년부터 ISS에서 난소암과 유방암 치료를 위한 물질을 연구해 왔다. 스위스의 우주 스타트업 스페이스파마는 우주여행이 피부 세포와 조직 배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자 올해 4월 같은 곳으로 ‘우주 실험실’을 띄웠다. 우주의 작은 생산 공장은 넓은 부지와 항만을 갖춘 지구의 번듯한 공장과 다른 방식으로 영향력을 키워가는 중이다. 우주의 신비를 파헤치는 것을 넘어, 쓸 만한 진실을 먼저 발견하고 활용하는 식으로 말이다.
 
왜 우주로 나가는가
바르다의 실험으로 돌아와 보자. 우주에서의 원격 실험만큼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한 지상 테스트다. 더블유-시리즈 원은 우주에 가기 전 진동 테스트, 열 테스트, 충격 테스트, 진공 테스트 등을 거쳤다. 발사체가 발사 시 충격으로 망가지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결과물을 무사히 지상으로 회수하기 위해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발생하는 열도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 대기권으로 돌아오는 캡슐은 총알보다 7배나 빠른 초속 8000m 속도에서 발생하는 열을 맞게 된다. 존 바르 바르다 최고운영책임자는 반년 이상 회사가 진행한 작업의 대부분이 발사체가 우주로 향하는 모든 단계에서 버틸 수 있도록 물리적 요소를 재설계하는 일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윌 브루이 바르다 대표는 이 지난한 실험의 전망을 묻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성공 확률은 90% 미만”이라고 답했다. 100% 확신은 어려우나 해볼 만하다는 태도다.
2020년 설립된 바르다는 지난 3년간 1억 달러(약 13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고 직원 수가 100명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발사 비용이 30년 전과 비교해 낮아졌다고는 하나 300kg짜리 위성을 스페이스X의 로켓에 쏘아 올리는 비용은 200만 달러(약 27억원)에 육박한다. 근본적이 의문이 들 수 있다. 지구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약을 고도화하기 위해 이 정도의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 우주라는 낯선 환경에 도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첫 번째 질문은 다른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신약 개발에는 상상 이상의 돈이 든다. 미국 의회예산국의 데이터에 따르면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투입하는 연구개발비는 평균 10억~20억 달러(약 1조3000억~2조6000억원) 수준이다. 그리고 신약 개발의 핵심은 단백질 결정을 얼마나 쓰임새에 맞게 고도화할 수 있느냐이다. 고성능 신약은 희귀병을 앓는 절박한 소비자에게 고가에 판매될 수도 있고, 반대로 흔한 질병을 치료해 전 세계의 소비자를 상대로 널리 팔릴 수도 있다. 단백질 결정의 한 끗 차이에 이미 천문학적인 연구비가 쓰이는 이 시장에서 고순도 결정이 만들어진 장소가 지구인지 우주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바르다는 공장 설립을 넘어 우주 환경의 가능성을 더욱 크게 보고 있다. 윌 브루이 대표는 스페이스X의 화물 우주선 엔지니어 출신으로 우주 기술의 세부 내용을 알고 있는 한편, 공동 설립자인 딜리엔 아스파로호프는 벤처캐피털 기업 파운더스펀드 출신의 ‘투자자’다. 아스파로호프는 미세 중력 환경에서의 제조라는 아이템을 구현할 방법을 오랜 기간 찾아왔다. 두 사람이 합작해 세운 바르다는 일종의 ‘우주 생산 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CNN〉은 바르다와의 인터뷰 끝에 이렇게 전한다. “바르다는 우주 기업이 아니다. 연간 1000억 달러(약 130억원)가 넘는 제약 산업에 속한 또 다른 플랫폼 또는 도구일 뿐이다.” 만약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바르다는 다른 제약회사를 대신해 그들의 작은 공장을 우주로 보낼 예정이다.
만약 이들의 목표대로 중력 캡슐이 무사히 지구를 오갈 수만 있다면 우주에서 만들어볼 물질은 무궁무진하다. 연구비 쓸 곳을 찾아 헤매는 제약사를 충분히 만족시키고 나면, 백신에 사용되는 나노 입자나 광섬유, 반도체 제조 공장도 우주로 띄워볼 수 있을 것이다.
 
우주 개척 시대
미국의 비영리단체 우주재단(Space Foundation)의 2022년 2분기 보고서는 2021년 전 세계 우주 경제를 약 4960억 달러(약 500조원) 규모로 평가한다. 씨티그룹의 예측을 구체화하듯, 우주재단은 불과 3년 뒤인 2026년에 우주 경제가 6340억 달러(약 840조원) 수준까지 성장할 것이라 내다봤다.
바르다가 그리는 미래처럼, 우주 공장의 생산품은 약제의 원료에 그치지 않는다. 반도체 같은 고부가 소재는 물론 미용, 대체 식품 개발에 쓰일 모든 물질이 미세 중력 환경의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영국의 우주 스타트업 스페이스 포지는 실리콘이 아닌 물질을 활용한 우주 공장에서 지구의 반도체보다 10~100배 성능이 좋은 반도체를 생산할 준비를 하고 있고, 이스라엘 스타트업 일레프 팜스는 ISS에서 소의 세포를 이용해 3D 프린터로 만든 배양육을 우주 식량으로 내놓았다. 우주 공장과 관련된 연구와 투자도 적지 않다. 독일 스타트업 아트모스 스페이스 카고는 우주에서 만든 약이나 연구 결과물을 더욱 안전하게 지구로 옮기는 캡슐을 개발 중이다. 한국에서는 보령제약이 우주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관리하는 헬스 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우주 경제가 성장하는 배경에 고객 중심의 ‘수직계열화’된 비즈니스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수직계열화란 한 회사가 공급망은 물론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로켓과 우주정거장 개발로 공급망을 구축한 데 더해 통신위성 서비스 사업에까지 나선,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이러한 우주 사업체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 스페이스X는 NASA, 미 공군 등 정부 기관과 오랜 기간 협력하며 우주 자원 채굴, 상업용 통신 서비스 등 현재 우주 경제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분야의 핵심 사업자로 자리 잡았다.  
정부와 민간기업의 협력으로 이뤄낸 현재의 우주 탐사 환경은 바르다 등 신생기업의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그러나 한편, 한국과 같이 차곡차곡 탐사 기술을 쌓아가는 후발 국가는 이러한 열풍에 조급함을 느낄 수도 있다. 유통망과 서비스를 장악한 소수의 플랫폼 기업이 독점 논란을 겪게 되듯, 일부 국가와 특정 민간기업의 주도로 팽창하는 우주 경제 역시 비슷한 위험을 안고 있다. 민간기업의 참여가 많다는 미국에서도 스페이스X가 검증된 기술과 저렴한 비용으로 시장을 장악하면서 우주발사체 시장이 사실상 독점 상태에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월스트리트 저널〉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22년 미국의 우주 발사장에서 쏘아 올린 고객의 의뢰 발사체 중 66%가 스페이스X의 로켓을 이용했다고 한다. 국제사회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로켓 사용을 제재하면서 불균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바르다 등 우주 제조업에 나선 기업들 역시 스페이스X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16세기 유럽인들은 저마다의 함선에 하늘을 읽는 법과 물길 헤치는 기술을 싣고 미지의 대륙을 찾아 나섰다. 21세기의 인류는 각자의 우주선에 다양한 목표를 담아 지구 밖으로 쏘아 올리고 있다. 지구를 둘러싼 채 우주를 유영 중인 수백 개의 위성이 실시간으로 촬영한 지구는 서로 다른 밀도로 불을 밝히며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지상에서 개척한 우주의 길과 그 길을 오르내릴 공장들은 어떤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앞으로 펼쳐질 우주 개척이 그려낼 지도의 윤곽은 아직 어느 지구인도 알지 못한다.
 
Who’s the writer
맹미선은 민음사 편집자이자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의 기획 이사다. 과학기술과 사회에 관한 글을 읽고 쓰고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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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김현유
    WRITER 맹미선
    PHOTO 게티이미지스코리아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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