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꼽은 이 달의 책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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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꼽은 이 달의 책

중쇄를 거듭해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골랐다.

박호준 BY 박호준 2022.09.09
 

어제의 영화. 오늘의 감독. 내일의 대화.

민용준 / 진풍경
생전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가치관과 작품 세계, 영감을 주는 은밀한 기억까지 술술 풀어내도록 유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무비스트〉와 〈엘르〉 그리고 〈에스콰이어〉를 거쳐 영화 저널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저자 민용준은 그 어려운 일에 탁월하다. 탁월함의 원천은 ‘~라고 들었는데요’라는 말 뒤에 숨은 무수한 자료조사에 있을 게 분명하다. 인터뷰이의 작품과 이전 인터뷰를 전부 확인하는 것은 물론, 엔딩 크레디트에 적힌 상호명 하나까지 전부 체크해 질문을 만들기 때문이다. 종종 ‘도대체 이런 것까지 어떻게 알고 있나’ 싶을 정도인데, 예를 들면 〈벌새〉의 김보라 감독에게 “작품 속 은희가 침샘에 난 혹 제거 수술을 해요. 감독님도 학창 시절 비슷한 수술을 했다고 들었어요”라며 작품에 투영된 감독의 삶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가는 식이다. 그는 13명의 감독과 총 34시간 4분 50초 동안 나눈 대화를 677쪽에 담아놓았다. 어찌나 꾹꾹 눌러 담았는지 질문 하나, 문장 한 개 허투루 넘길 게 없다. 인터뷰에 나서는 이가 배워야 할 자세가 책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박호준
 

가족이라는 착각

이호선 / 유노라이프
친구들과 깊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주제는 대개 가족으로 향한다. 화목한 줄 알았던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아픔 하나씩은 있다는 걸 발견할 때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다. SNS는 더하다. 부모가 학업이나 연애에 과도하게 집착해 고통을 겪는 자녀의 사연이나 지저분한 생활 습관으로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의 사연 같은 것들 말이다. 책의 저자이자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이호선은 이러한 가족 문제의 원인 대부분은 거리두기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물리적인 거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피를 나눈 가족일지라도 내 소유가 아님을 인식하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려 노력하는 ‘인지적 거리두기’를 가리킨다. 책은 폭력이나 외도 같은 심각한 문제만 다루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평범한 사례까지 담고 있다. 그의 처방은 단순 명쾌하다. 가족이니까 괜찮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사연을 담담하게 풀어내 독자로 하여금 오히려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맞아, 우리 부모님도 그랬지’라며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송채연
 

오래된 기억들의 방

베로니카 오킨 / 알에이치코리아
이 책은 이디스라는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산후 정신병에 걸린 그녀는 갓 태어난 아기가 가짜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가족들은 진짜 아기를 죽인 후 동네 묘지에 매장했고, 품 안의 가짜 아기는 늘 썩은 내를 풍겼다. 다행히 그녀는 빠르게 완치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묻혔다고 믿었던 묘지를 본 순간, 그녀는 순식간에 다시 병증의 한복판에 돌아가 있기도 했다. 그녀는 “그 기억들이란 환상이 아닌 진짜”였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그녀의 담당 의사였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겸 신경학자 베로니카 오킨은 자문하기 시작한다. 기억이란 무엇인가? 기억이란 어떻게 형성되고, 그 기억들은 어떻게 우리를 형성하는가? 그녀는 정신의학, 신경학, 뇌과학의 상식뿐 아니라 철학적·문학적 견지까지 두루 탐구해 감각이 기억이 되고 기억이 내면을 움직이는 방식을 파헤친다. “비정상 연구는 정상을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이기에 이후로도 틈틈이 지난 환자들의 사례를 꺼내놓는데, 읽다 보면 우리가 어찌나 위태롭고 불완전한 인식에 의지해 사는지, 아찔하다 못해 황홀할 지경이다.  오성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 비채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좋은 건축 이야기’가 있다며 이 책을 내게 권했다. 애써 읽지 않았던 이유는 아파트 공화국에 사는 한국인의 인생에서는 건축이 학문이나 철학으로써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섣부르게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별생각 없이 서재에 꽂혀 있는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더 황당했다. 책등에 쓰인 ‘여름’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오래전 수많은 사람이 권해줬던 그 건축 소설이라는 것도 모르고. 막상 읽어보니, 소설의 중심은 건축에 있지 않았다. 책 속의 사건들은 건축사무소 직원들이 한 건축가의 여름 별장에 머물며 벌어지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은 건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파무크의 〈내 이름은 빨강〉의 중심부에 오스만 제국의 세밀화가 있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소설을 다 읽었을 때 이런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는 소설은 흔치 않다. 참고로 소설 속 ‘선생님’ 무라이 슌스케의 실제 모델을 두고는 일본에서도 여러 추측이 오갔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요시무라 준조가 그 모델의 몸통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박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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