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마린 세르의 패션과 환경 그리고 마스크 || 엘르코리아 (ELLE KOREA)
FASHION

디자이너 마린 세르의 패션과 환경 그리고 마스크

반달 패턴의 보디수트로 전 세계 패션계를 사로잡은 그녀가 자신의 확고한 친환경 철학을 이야기한다.

ELLE BY ELLE 2020.08.24
 
 2018 F/W 첫 무대를 선보인 후 약 2년이 지났다 2018년과 오늘을 비교했을 때 많이 변했다. 마린 세르 팀은 3명에서 시작해 지금은 60명의 팀원이 함께한다. 이 숫자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컬렉션에 마스크가 자주 등장한다 벌써 세 시즌 전이라니! 마스크는 전 세계가 심각한 환경 문제에 직면한 것에 착안했다. 운전을 못해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공기 질이 민감하게 느껴졌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과 고객들이 자전거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안 좋은 공기로부터 보호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마스크가 필요한 시대, 아니 의무가 돼버렸지만. 
2020 F/W 쇼에는 이전보다 다양한 남성복이 등장했다. 놀라운 건 남성복뿐 아니라 아동복까지 확장돼 패밀리 룩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이번 쇼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감동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우리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낼 때(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각한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번 컬렉션을 만들었다. 우리 팀의 새로운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에너지와 행동, 신념 등 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지금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 앞에서 걱정만 하기보다 창의적인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 긍정의 목소리를 내려 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 친구, 다양성, 포용 그리고 사랑을 말하고 있다. 격변하는 세상에서 모두 똑같이 바닥에 앉아 쇼를 보는 걸 시작으로 같은 감정을 나누고 싶었다. 
이전에는 백을 들지 않는 여성상을 논했다. 이번 시즌에는 작고 귀여운 나노 포켓 백이 대거 등장했다. 아이코닉한 볼백도 여전하고 지난 2020 S/S 컬렉션부터 멀티 포켓 백을 만들었다. 이전에는 가방 없이 멀티 포켓 재킷으로 대신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하하. 내 생각과 달리 멀티 포켓 재킷이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많았다. ‘마린 세르의 백은 어떤 게 돼야 할까?’ 고민한 이유다. 아직도 나는 ‘멋’으로 만드는 가방은 반대한다. 그래서 스포츠 백이나 러닝 백의 실용적인 면과 팔다리, 신발에 감아 사용할 수 있는 스트랩이 포함된 기능적인 백을 디자인했다. 또 다양한 포켓을 만들어 슈퍼마켓에 갈 때 비닐백이나 종이백을 사용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일상에서는 스마트폰이나 전자 기기, 중요한 소지품을 수납할 수 있도록 각 백은 나름대로의 기능과 목적을 가지고 있다. 특히 미니 포켓 백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팔에 감거나 몸에 둘러 사용할 수 있고, 벨트에 부착해 양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까. 다양한 상황에 맞춰 다양하고 기능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췄다. 
아이코닉한 재활용 실크 드레스에서 이번 시즌 재활용 카펫을 이용한 아이템을 많이 선보였다. 왜 카펫이었나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매 시즌 컬렉션을 준비할 때 대형 창고에서 수명이 다하거나 철 지난 옷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가방을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때 찾은 60년대 벨기에산 빈티지 카펫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리고 이 카펫은 신기하게도 이번 컬렉션에 쓰인 옐로 컬러와 절묘하게 어울렸다. 
초창기부터 지속 가능한 패션에 앞장섰다. 실크와 데님, 카펫 같은 재활용 소재로. 거의 환경운동가 수준이다 수명이 다한 제품이나 소재를 이용해 옷을 만드는 것이 마린 세르의 가장 핵심적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컬렉션을 시작할 때부터 업사이클링을 통해 기존보다 더 가치 높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 그 아이템들은 ‘재생됐다’는 뜻의 ‘리제너레이티드(Regenerated)’라는 레이블을 붙인다. 2020 S/S와 F/W, 지난 두 시즌에는 리제너레이티드 레이블을 50% 비중으로 늘렸다. 이런 리제너레이티드 제품을 꾸준히 만드는 과정은 패션 산업 공정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익숙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도 도전이다. 수명이 다한 소재를 준비하고 워싱하는 과정, 게다가 이런 일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공장과 함께 제대로 된 옷이 나오기까지의 프로세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은 전혀 다른 프로세스이기 때문에 더 생각해야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며, 많은 인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브랜드와 지구)의 미래를 생각한다. 앞으로 컬렉션 전체를 재활용 실이나 자연 분해 섬유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기존의 ‘스포티즘+퓨처리즘+페미니즘’에 다문화를 마구 뒤섞어 전혀 새로운 아웃핏을 완성했다. 요즘처럼 재미없는(?) 컬렉션으로 가득한 런웨이에 신선하고 도전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재미없는’이란 표현은 부정할 순 없겠다. 나 역시 2014년 패션계에 대해 많은 고민과 회의감을 가졌다. 디자이너로서 자유로운 생각을 펼치는 가장 파워플한 방법은 옷을 ‘잘’ 만드는 것이다. 2016년 첫 컬렉션 ‘Racical Call for Love’를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이 마린 세르에 열광했고, 모든 패션 어워드에 후보로 올랐다. 이후 스스로에게 ‘이 험난한 패션계에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브랜드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믿고 따라와”라고 하려면 나만의 확실한 철학을 가진 브랜드여야 했다. 고민 끝에 브랜드의 핵심을 에코퓨처리스트(Ecofuturist)로 정의했고, 재활용 소재를 이용해 디자인하고 재생된 옷으로 첫 파리 쇼를 선보였다. 우리는 독립적인 브랜드로 더 나은 미래와 페미니즘, 몸에 대한 바른 인식, 다양성 등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린 세르다. 
코비드19 기간 동안 어떻게 지냈나 우리 팀은 디지털 툴을 이용해 평소처럼 일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코비드19로 인해 전통적인 패션 위크가 흔들리고 있다. 마린 세르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빅 브랜드는 인스토어 시기나 시즌이 변경될 때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춘’ 쇼를 시작한다. 이런 변화는 긍정적이라 생각하고 지지한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패션쇼에서 본 옷을 매장에 입고 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마린 세르는 이런 빅 브랜드와 같은 대규모 마케팅 팀이나 버짓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존 리테일러의 의존도가 높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합의점을 찾았다. 리테일러의 바잉 기간과 전혀 다른 타이밍에 쇼를 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장에 컬렉션이 입고되는 시기와 최대한 가까운 시기에 쇼를 하기로 결정했다. 데뷔 초기부터 1년에 두 번 컬렉션을 선보여오던 걸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다. 제작 시간 때문에 컬렉션 발매 시기는 여러 번으로 나뉘지만 다른 브랜드처럼 프리 컬렉션을 포함한 부담스러운 패션 캘린더는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마찬가지! 코비드19 위기는 에코퓨처리즘의 방향성이 그르지 않았고 더 신념 있게 지켜나가야 하는 브랜드의 뿌리라는 확신과 용기를 얻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음 쇼는 어떤 스타일로 놀라움을 선사할 예정인가 현재는 언제나 우리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코비드19 사태와 우리가 겪고 있는 지금의 힘든 이슈들이 다음 쇼에 큰 영감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다음 쇼를 위해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특별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물론 아직 이야기할 수 없지만. 조금만 기다려달라. 
요즘 특별히 관심 갖는 게 있다면 야마모토 쓰네토모의 책 〈하가쿠레-어느 사무라이가 들려주는 인간경영의 촌철살인〉,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영화 〈스토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유튜브 토크 〈Love As A Political 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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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방호광
    디자인 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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