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결혼식> 보고 때려주고 싶었어요.
무대 인사 때 큰절했어요. 죄송하다고.(웃음)
죄송할 일은 아니죠. 너무 현실적이라서 미웠던 것 같아요.
이석근 감독님이 12년 동안 틈틈이 쓴 시나리오래요. 실제 주변의 여러 연인, 헤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요. 현실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우연에게 공감은 잘됐나요?
사실 이번에 좀 굉장히, 제 맘대로 많이 했거든요.
맘대로 어떻게요?
감독님이 “그냥 네가 우연이었으면 좋겠어”라고 하시는데 그 디렉션이 어렵지 않았어요. 우연이 입장을 해석하고 분석하고 가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제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면 됐으니까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감독님이 많이 열어놓고 받아주셨어요.
연기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고 들리네요.
저를 아는 분들은 자꾸 저와 우연이가 똑같다고, 말하는 것도 똑같대요.
닮았대요?
다들 “그냥 넌데?” 그러더라고요.
스스로 생각해도 그래요?
한 70%?
90%는 아니군요.
그건 어렵죠.(웃음)
작품으로만 김영광을 만나온 사람으로서는 예전 드라마 중 이 캐릭터가 평소의 김영광과 가장 비슷하지 않으려나 생각했어요.
어떤 드라마인지 알 것 같아요.
그래요?
아니야. 틀릴까 봐 말 못 하겠어요. 그냥 말해주세요.
틀리면 어때요.
그럼 두 가지 얘기할게요. 하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또 하나는 <아홉수 소년> 생각했어요.
땡.
뭐야. 그러면 뭐지?(웃음)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맞아 맞아. 그것도 있었구나.
“그것도 있었구나”라고 할 정도로 시간이 지난 드라마이긴 하죠.
거기서 저는 나쁜 남자였죠.(웃음)
나쁘다기보다는 까칠하고, 솔직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남자였죠.
그 작품도 좋아해주신 분들이 많아서네, 괜찮았죠. 재밌었어요. 그때 김윤철 감독님과 처음 작품했는데 김윤철 감독님이 굉장히 명확하고 정확하시거든요. 대사가 막 3장인데 틀리면 안 돼. 계속해 계속.(웃음) 그때 단련이 많이 됐죠. 기회가 되면 감독님과 또 해보고 싶어요. 감독님이 아니라 교수님 느낌이에요. 멋있는 분이에요.
그래서 제 추측은 맞나요?
아이, 그렇지도 않아요.(웃음) 오히려 저는 좀 장난기 많고 수줍음도 좀 많고 그런 편에 가까운 사람이에요. 모델로서 먼저 보여드린 이미지에 차갑고 나쁜 남자일 것 같은 느낌이 있었죠.
웃음이 많은 사람인 건 확실해 보이네요.
(웃음)
말하는 내내 미소 지어서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 있어요.
그래서 악역 제안도 많이 받았어요. 입이 커서 웃어도 ‘씨익’ 웃는 느낌이라고, 우비 쓰고 입만 보이는데 웃으면 진짜 무서울 것 같다고.
진짜 무서울 것 같은데 왜 안 했어요?
그렇죠?(웃음) 아, 시나리오가 들어왔다기보다 그런 악역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말씀들을 해주신 거예요. 제안이 아니라 추천. 악역 좋죠. 해보고 싶어요.
아까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아홉수 소년>을 고른 이유는 뭐예요?
많이 사랑받았다고 느끼는 작품이라서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마니아분이 굉장히 많아요. 7년 전 드라마인데 지금도 대본집 가져와서 사인해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만큼 많이 사랑해주신 작품이라 제일 먼저 생각났어요. <아홉수 소년>도 마찬가지예요.
<아홉수 소년>을 배우 김영광의 성장점으로 보는 리뷰가 많더라고요.
그게, 저도 지나고 나서 보니까 이상하게 사람들이 제가 ‘로코’ 하는 걸 더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단막극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너의 결혼식>도 그렇고 모두 연애하고 꽁냥꽁냥, 알콩달콩 썸 타는 모습이 드러나는 작품들이거든요. 그 안에서의 제 모습을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주시는 것 같더라고요.
영광 씨는 어때요?
저요?
‘주변에서 자연스럽다고 한다’, ‘좋아해준다’, 다른 사람들 의견만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요.
좋죠. 좋아해주시면 저도 좋죠.
마냥 만족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요.
좀, 폭이 넓은 배우가 되고 싶으니까.
안주하는 게 아니라.
당연한 일 아닐까 싶어요. 흥행도 되고 다들 좋아해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그렇다고 마냥 좋아하고만 있으면 성장이 멈추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조금 못 미치더라도 다른 장르물에도 계속 도전하고 있는데, 단박에 잘할 수는 없으니까 자꾸 해봐야죠. 해보고 싶은 건 해야 하니까.
무엇을 해보고 싶어요?
매번 바뀌어요. 굉장히 단순히 그때그때 보는 영화, 좋아하는 배우들 보면서 ‘나도 저거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지금 하나를 꼽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 <너의 결혼식> 이후로 느낀 게 있어요. 아, 이게 내가 조금은 잘할 수 있는 건가?(웃음) 100만, 200만 돌파하다 보니까 이게 내가 조금은 잘할 수 있는 건가 싶더라고요. ‘이런 쪽으로는 자신감이 생기는데?’ 싶기도 하고.
의외예요.
뭐가요?
항상 여유롭고 자신만만해 보이는 지점이 있었거든요.
아니에요.(웃음)
사실 저는 배우 김영광에게 특별한 성장점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연기에 어떠한 성장 포인트가 있는 게 아니라 늘 같은 템포와 호흡으로 크게 힘들이지 않고 쭉 이어져온 것 같거든요.
슬럼프가 와서 한동안 아무것도 못했다든지, 슬럼프를 극복하고 다시 치고 올랐다든지 그런 큰 낙차는 없었죠.
“이게 내가 조금은 잘할 수 있는 건가?”라는 말에서 이전에는 자신감이 없었다는 것 같네요.
불안감이 있었죠.
불안감.
그래서 오히려 쉬지 않고 일한 것도 있어요. 계속 쉼 없이 하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했어요.
사실 필모그래피 보고 좀 놀랐는데, 지난 10년 동안 매해 활동을 했더라고요. 드라마든 예능이든.
쉬면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봐. 한 번 쉴 때 3개월 이상을 쉬지 않았어요.
지치지는 않았어요?
그럼요. 어쨌든 경험을 해야 하잖아요. 경험하지 않으면 실력이라는 게 늘지 않으니까. 무엇이든 경험해봐야 능력치가 올라가지 경험 없이 한 번에 성장하기는 힘들잖아요.
아까 악역도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사실 악역을 안 한 건 아니에요.
<파수꾼>의 장도한이 있었죠.
맞아요. 정확히는 악인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인물이었죠.
제가 그걸 헷갈리게 하려고 얼마나 힘들게 계산을 하면서 했게요.(웃음) 감독님과 이 장면에선 웃을지, 웃지 말지 가지고도 엄청 고민했어요. 나중에 제 정체가 탄로 나고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감 있게 봐주셔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기초 공사를 열심히 했죠.
지금까지 들어보면 배우 김영광은 연기의 폭을 넓히고 싶고, 대중은 김영광의 ‘꽁냥꽁냥 알콩달콩’하는 모습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단 말이죠. 그렇게 공들인 <파수꾼>만 해도
에이, 아니에요. 저희 마지막에 시청률 계속 1등 했어요. 왜 그러세요.(웃음) 그 드라마가 오래, 많이 뜸을 들인 드라마예요. 뜸 들여서 후반부에 촤악 올라갔죠. 그런데 무슨 말씀하시는지는 알 것 같아요.
성장하는 과정이라면 그 간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어요.
결국에는 밸런스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균형. 솔직히 지금 이야기 나누면서 ‘그러고 보니 장르물이 잘 안되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물론 <파수꾼>은 괜찮았지만. 그냥 제 목표는 하나예요. 사람다움을 표현하는 것.
사람다움?
제가 이번에 마동석 선배님과 영화를 찍었거든요.
<원더풀 고스트> 말이죠?
네. 마동석 선배님이 굉장히 쿨하시더라고요. 저는 사람다움이라는 게, 관객들이 ‘이러이러한 상황일 때 나라면 어떻게 반응할까’ 이런 공감과 궁금증을 느끼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연기가 부담스러우면 안 되잖아요. 마동석 선배님은 어렵게 풀어내면 되게 어려울 것 같은 연기인데 엄청 간단하게 풀어내요. 간단하고 명료하죠. 선배님은 그런 방식으로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키는 거고, 저는 아직 부족하죠.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되고 싶으니까.
간단명료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이번에 선배님과 호흡 맞추면서 많이 배웠어요. 예전의 저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게 정리가 되면 참 좋은데, 촬영이 시작되면 내가 정리가 됐든 안 됐든 일단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생각이 많으면 할 수 있는 것도 잘 안 되더라고요. 생각이 많으면 결론을 못 내려요. 잘라야 돼요.
영광 씨가 왜 계속 ‘사람들이 자연스럽다고 해주시더라’고 말한지 알 것 같아요.
제게는 최고의 칭찬이죠.
힘 빼는 게 힘들죠.
맞아요. 저도 아직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번에 <너의 결혼식>으로 ‘좋았다’, ‘그냥 김영광 같았다’, ‘자연스러웠다’는 인사를 너무 많이 들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부끄러워요.
역으로, 그래서 뒤이어 개봉하는 <원더풀 고스트>의 반응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어요.
음
여러 면에서 <너의 결혼식>과 비교될 수도 있지 않나요?
글쎄요. 그냥 제 마음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는 것 외에는제가 영혼으로 나오거든요.
아, ‘사람다움’이 없어도 된다?(웃음)
그게 아니라(웃음) 제가 안 해본 걸 하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영혼 역할은 처음이니까 스스로도 기대와 호기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우연이처럼 <원더풀 고스트>의 태진도 ‘나라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캐릭터거든요. 그래서 우연이 때와 마찬가지로 해석하고 분석하고 가공하는 게 아니라 제가 느끼는 대로 표현할 수 있었어요. 아, 가공은 했다.
무엇을, 어떻게요?
움직일 때 엄청, 진짜 엄청 조심했어요. 영혼이니까 제 몸에 닿은 물건이 움직이면 안 되거든요.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그거 말고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