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살아간다, 송중기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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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살아간다, 송중기

신속하게 돌아가는 채널처럼 어지럽고, 최대로 키운 볼륨처럼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도 송중기는 담담했다. 뜨거운 시선 한복판에 서 있었지만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사랑하고 살아간다. 송중기는. 송중기의 시간은.

ESQUIRE BY ESQUIRE 2018.09.05

스웨터 N°21 by 한스타일.

오는 9월 1일에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팬미팅을 가질 예정이라 들었어요. 10이라는 숫자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하군요.

사실 팬분들이 데뷔 10주년이니 팬미팅을 하자고 먼저 제안해주셔서 알았어요. 올해가 데뷔 10주년이구나. 그래서 지금까지 해온 작품을 찾아보니까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그때 좀 실감이 났죠. 10이라는 숫자가. 그래서 ‘20주년에도 작품 수가 이 정도는 돼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면 20주년에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도 그만큼 늘어날 테니까요. 무엇보다 팬들도 작품으로 만나는 걸 더 원하는 거 같고, 저 역시 공백이 길어지면 나태해지는 거 같아서 싫고. 결국 배우로서 연기하는 게 제일 중요하겠죠.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면 데뷔 10년 동안 출연작이 없는 해는 올해가 처음이더군요.

저도 뒤늦게 알았어요. 군대 시절을 제외하면 올해 처음으로 작품 없이 쉬었다는 걸. 제대하자마자 <태양의 후예>를 촬영했는데 사전 제작 드라마라 작품이 방영될 때에는 <군함도>를 찍고 있었죠. 그리고 <군함도>를 끝내고 나서는 결혼 준비를 하게 됐고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던 시간이었죠. 결혼 외에는 어떤 것도 둘러볼 여유가 없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 시간을 충만하게 보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차기작 선택이 늦어진 이유를 묻고 싶었는데, 이미 답을 하셨네요.

네. 결혼 생활을 하느라.(웃음) 요즘도 아내와 함께 산책하다 마주치는 분들 중에서 축하한다고 해주시는 분이 꽤 있어요. 그때마다 저희가 아직 신혼이라는 게 실감 나고, 이 시간을 우리 둘이 꽉 채우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차기작 선택이 늦어졌어요. 대신 서로 그런 약속을 한 적은 있어요. 공교롭게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작품에 들어가게 됐는데 공백기가 길어진 만큼 더 좋은 작품에서 확실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고. 그게 예의일 거라고. 그만큼 작품에 대한 욕심도 생겼고요.

어쩌면 공백이 길어질수록 작품을 선택하는 게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그럴 때 오히려 더 과감하게 선택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제 성격이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전작을 선택했던 순간을 복기해봐도 항상 그랬던 거 같고요. 조금 난해하다 싶지만 이상하게 당겨서 하게 된 작품들이 있어요. 주위에서는 아니라고 하는데도 제가 꽂혀서 하게 된 경우도 많고요. 단 한 번도 순탄하게 작품을 선택한 적은 없었어요. 결국 끌리는 작품을 선택해서 과정과 결과 모든 면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고,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는 많은 사랑도 받게 됐고요. 그래서 더욱 과감해질 수 있는 거 같아요.

스웨터 N°21 by 한스타일.

<뿌리깊은 나무>의 출연을 결정하기 전에 주변에서 그 나이에 아역을 연기하는 게 말이 되냐면서 말렸다는 일화를 들었어요. 그때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 작품을 하기로 선택한 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정말 다행스럽지 않나요?

사실 그런 상상은 아무리 가지치기를 해도 끝이 없잖아요. 확실한 건 <뿌리깊은 나무> 대본을 보고 그 누구에게도 뺏기기 싫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 당시가 주인공 역할로 제안하는 작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기였어요. 그런데 제 눈에는 그즈음에 제안받은 어떤 주인공보다도 잠깐 나오는 어린 이도가 더 주인공처럼 보이더라고요.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상 욕심을 부렸던 거죠. 스스로도 칭찬하고 싶은 선택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나름 큰 결심을 했던 거였으니까. 지금껏 배우로 활동하면서 제일 잘한 선택이었던 거 같아요.

드디어 차기작이 정해졌어요. 2019년에 방영될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를 선택했습니다. 수많은 제안이 있었을 텐데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감독님과 두 작가님에 대한 믿음이 9할이었던 거 같아요. 김원석 감독님이나 김영현, 박상연 작가님은 모두 함께 작업했던 경험이 있는 분들이기도 했고, 결국 이 세 분에 대한 신뢰감이 가장 큰 이유였죠. 그래서 저를 보자고 했을 때 사실 쾌재를 불렀어요. 물론 너무 엄청난 작품이라 부담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만큼 재미있을 거 같고 기대돼요.

김원석 PD는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서 만났죠.

맞아요. 감독님도 <성균관 스캔들>이 데뷔작이었고요.

김영현, 박상연 작가와는 <뿌리깊은 나무>로 만났고요. <성균관 스캔들>과 <뿌리깊은 나무>에 출연할 당시에는 감독이나 작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입장이었지만 이젠 그들이 먼저 찾는 배우가 된 거 같아요. 어쩌면 이런 순간에 신뢰감을 주는 배우가 됐다는 것을 실감하나요?

아마 <레미제라블> 메이킹 영상이었던 거 같은데, 전 세계적인 배우들이 그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는 장면을 본 적 있어요. 할리우드에서는 쟁쟁한 배우들도 그렇게 오디션을 본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생각하기 나름인 거 같아요. 작가님과 감독님이 제게 고마운 제안을 먼저 주셨지만 그분들이 좋은 작품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제가 먼저 들었다면 오히려 그 전에 제가 매달렸을 거예요. 시켜달라고. 그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같이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인터뷰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런데 두 작가님 대본이 만만한 수준이 아니라 더 부단히 노력해야 할 거예요. 그리고 지금 나이에 어려운 대본에 도전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 고민할 수 있을 때 과감하게 선택해야죠.

대본이 어렵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뿌리깊은 나무>를 선택한 뒤 대본을 보면서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생각하곤 했어요.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밑천이 다 드러나면 어떡하나, 잠도 못 이룰 정도로 걱정하다가 대본을 다시 보면 재미있어서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나고, 그런 과정의 반복이었어요. 너무 사랑해서 집착하게 되고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나는, 배우가 계속 매달리게 만드는 대본이었죠. 그렇게 계속 대본에 매달려 보니 알게 되는 것도 생기더라고요.

결과적으론 그런 부담감을 견딘 끝에 잘 해냈다는 쾌감이 상당했을 거 같은데요.

정말 컸죠. 물론 완벽할 수는 없었겠지만 좋은 반응을 얻으니까 상상 이상으로 큰 쾌감이 느껴졌어요. 사실 <늑대소년>을 할 때에는 대단한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았는데 연기할 때 자괴감 드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동물의 움직임을 모사해야 하는데 마음대로 안 돼서 한 신을 촬영하는 데 스물여덟 번 정도 테이크를 간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 다 쏟아부었다는 느낌으로 연기하고 나면 혹평을 들어도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반대로 호평을 들으면 정말 기분이 좋고요. 대충 했다가 혹평을 들으면 되게 속상하죠

결국 자기 자신이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로 들리는데요. 칭찬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던가요?

모든 직업이 다 그렇겠지만 저희 직업은 더 그런 거 같아요. 기본적으로 대중의 평가에 좌지우지되는 직업이니까요. 다 떠나서 ‘안 좋은 얘기 들어도 상관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지 않을까요? 그러니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그런 마음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겠죠. 타인의 평가에만 몰두하면 결국 제 자신이 사라질 테니까요. 그러니 그 안에서 제가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게 되는 거 같아요. 좋은 평가를 받아도 들뜨지 않으려 노력하고, 좋지 않은 평가를 받으면 너무 우울해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해요. 시청률이 낮거나 관객 수가 적어도 정말 열심히 했다면 덜 속상하다는 걸 아니까 더 애쓰게 되는 거 같고요. 반대로 잘 모르고 한 거 같은데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반응이 오면 허무하기도 해요. 당연히 대중의 평가가 중요하지만 그게 절대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요. 그래서 스스로 여유를 찾을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찾게 되는 거 같고. 선배는 그래서 필요한 거 같아요. 누구보다 그런 노하우를 잘 아니까. 그만큼 좋은 분들 곁에 있길 바라고. 그것 말고 방법이 없는 거 같아요.

세간의 평가를 방향성을 짐작하는 나침반으로 삼을 수 있지만, 감정을 지배하는 온도계로 삼으면 안 된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데뷔 초부터 그런 생각을 하진 못했을 거 같은데요.

사실 지금도 잘 안 돼요.(웃음) 그냥 그러려고 노력하는 거죠. 오래 활동한 선배님들도 이제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하시는데 이제 10년밖에 안 된 제가 할 말은 아닌 거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따라가려고는 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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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늑대소년>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당시에 그 작품을 선택한 게 굉장히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런 얘기가 돌았대요. 중기한테 이 영화 하지 말라고 하면 할 거라고.(웃음) 심지어 친한 친구는 저한테 변태라고도 했어요.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 한다고.

송중기 씨가 한국의 앤디 서키스를 꿈꾸는 것도 아닐 텐데 대사도 없는 늑대소년을 연기한다니 말이죠.(웃음) 게다가 조성희 감독은 인상적인 단편과 장편 영화를 만든 전력이 있지만 상업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 처음이기도 했고요. 그래도 배우 입장에서 어떤 믿음 하나쯤은 쥐고 선택했을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일까 궁금했거든요.

일단 한국의 앤디 서키스라 할 수 있는 이준혁 형님의 도움을 받아서 늑대 움직임을 흉내 내는 훈련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애초에 그건 겉으로 보여지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늑대소년>은 사랑 이야기라고 이해했고, 거기에 공감해서 선택한 거니까요. 겉으로 표현하는 건 습득하기만 하는 되는 거고, 제가 쥐고 들어가야 하는 패는 그 안에 있는 감정이었던 거죠. 박해일 선배님이 출연하신 <짐승의 끝>은 스산하고 극단적인 스릴러였는데 그런 잔인한 감정을 연출한 조성희 감독님이 아름다운 동화 같은 <늑대소년>을 썼다는 게 흥미로웠고, 결국 그 지점에 끌렸죠. 사실 개인적으로 100만 관객만 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7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들어서 놀라웠어요.

<아스달 연대기>를 준비하며 열심히 운동에 매진한다고 들었어요.

아마 한 달 후쯤 촬영에 들어갈 거 같은데 벗고 나오는 신이 많아서요.(웃음) 대본상 캐릭터에게 필요한 요소이기도 해요. 승마 훈련이나 무술 훈련도 하고 있고요.

사극에 출연했던 경력이 <아스달 연대기> 준비에 도움이 될 거 같은데요.

많은 도움이 되죠. 그런데 캐릭터에 어떻게든 다가가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언제나 다시 준비해갈 수밖에 없어요. 몇 달 전에 설경구 형님과 소주 한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써먹을 수 있는 무기가 많이 없어진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얼마 전 <에스콰이어>에서 하신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씀을 하셨길래 기사를 보면서 캡처하기도 했어요. 그런 대단한 선배님도 불안을 안고 계시니 후배인 저는 어떻겠어요. 세 배, 네 배 더 해야죠.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서 승마든, 운동이든, 무술 훈련이든, 다른 무엇이든, 어떤 무기든 갖고 와야 그나마 그 캐릭터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더 집착해서 준비하게 돼요.

그런 불안이 배우로 살아가는 동력이 되기도 할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야죠.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계속 자괴감만 들고, 자신감은 떨어지고, 연기를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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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작품을 해나가면서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낄 때도 있지 않나요? 그런 느낌은 대부분 성장하고 있을 때보다 성장한 뒤에 느껴지는 법이기도 하고요.

확실히 예전보다 시야는 더 넓어진 거 같아요. 몇 배 이상으로 책임감도 커졌고요. 그래서 예전보다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돼요. 지켜야 할 위치가 있고, 해야 할 몫이 있으니까. 주연배우로서 저 하나가 실수하면 작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게 돼요. 게다가 이젠 결혼까지 했으니까 더더욱. 물론 예전부터 조심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살던 대로 살면 될 거 같긴 한데.(웃음)

배우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 됐으니까요.

명확한 사실이죠. 그런데 그건 상업적인 작품에서 주연배우를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어야 할 덕목일지도 몰라요. 1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의 영화에 들어간다는 건 그 자체로 엄청난 일이니 당연히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의적으로든, 법적으로든 다 마찬가지죠. 그래서 그 무게를 견디면서도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는 거고요. 항상 그 무게를 짊어지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냥 살아오던 대로 살면 되겠더라고요.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는 편도 아니라서.

“나이가 들면서 점점 써먹을 수 있는 무기가 없어진다”는 말을 듣고 지금 자신이 써먹을 수 있는 무기란 무엇일지 생각해보진 않았나요?

경구 형님께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신 거 같은데, 젊었을 때에는 작품에 따라 살을 빼고, 찌우기도 하고, 별걸 다 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더 보여줄 게 없을 거 같았다고. 그런데 아니었다고, 더 보여줄 수 있는 게 있었다고. 그 말이 인상 깊더라고요. 결국 제가 지금 가진 무기를 생각하기보단 계속 새롭게 시도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까 말한 것처럼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과감해져야 할 거 같고요. 지금의 제가 신중하게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건방진 일일지도 몰라요. 흥행하든 실패하든 계속 부딪쳐봐야 될 거 같아요. 최대한 많은 작품을 하면서 현장에서 계속 부딪쳐야 하는 거죠. 지금 제 나이와 경력에서는 그게 무기라면 무기일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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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배우 송중기가 가진 무기는 잘생긴 외모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외모를 찬양하려는 게 아니고요.(웃음) 미소년의 얼굴로 호감을 얻을 수 있는 배우가 설득력 있는 연기를 선보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장점이니까요. <늑대소년>이 멜로와 판타지의 양면성을 설득한 것도 송중기라는 배우의 그런 매력과 실력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송중기 씨는 남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외모가 배우로서 좋은 재능일 수 있음을 설득하는 배우인 거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얼굴도 무기가 될 수 있죠. 아무래도 부모님께 고맙게 생각해야 할 일인 거 같지만.(웃음) 어쨌든 그런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건 현명한 일 같아요. 다만 외모라는 재능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고 봐요. 그러니 그런 한계를 인지하고 그 안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돼요. 그런 한계를 들켜서 관객들이 흥미를 잃기 전에 말이죠. 그래서 계속 다른 무기를 찾으려 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외모에 어울리는 적재적소를 잘 구별할 수 있어야만 무기가 돼요. 만약 <늑대소년>의 제 역할을 (이)광수가 했다면 그것보다 푸근했겠죠. 반대로 <라이브>에서 광수가 맡은 역할은 제가 못 했을 거 같아요. 결국 각자 가진 외모와 감성이 다 다르다는 걸 십분 활용해야죠. 그런데 사실 광수 만나면 이런 얘기는 안 해주는데.(웃음)

배우 입장에서는 새로운 기회처럼 여겨지는 역할이 있을 거예요. 그런 면에서 <착한 남자>는 기존에 맡았던 역할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칠고 비정한 느낌을 주는 캐릭터였죠. 밝은 웃음기를 싹 거둬버리게 만드는 역할은 그게 처음이었던 거 같고요.

그때 다른 걸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각본을 쓰신 이경희 작가님이 매니저를 통해 대본을 보냈다고 하셔서 대본도 보지 않고 그냥 한다고 했어요. 작가님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했으니까요.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그런 내용인지도 몰랐어요.(웃음) 사실 방송사 내부에서도 제가 그 역할을 맡는 걸 반대하시는 분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밝은 역할만 하던 애가 이걸 어떻게 하느냐고. 그 얘기를 듣고 속상했죠. 그런데 이경희 작가님이 “네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해주셔서 용기를 얻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결과적으로는 저한테도 이런 모습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작품이 됐죠.

이경희 작가님이 “중기는 대중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정의로운 친구고, 심지도 곧고, 의리도 있고, 정말 남자다. 그런 면을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로 송중기 씨를 그 작품에 캐스팅했다고 말한 적이 있더군요.

반대로 말하면 대중이 저를 정의롭지 않게 봤다는 걸까요?(웃음) 농담이고요. 무슨 의미인지 저는 알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익숙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당연하죠.

결국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배우의 남다른 면모를 작품에 활용하려는 작가와 감독이 있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결국 그런 작가나 감독을 통해 배우 역시 자신의 또 다른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고요.

감독님이나 작가님도 그런 마음으로 배우를 선택할 때가 있는 거 같아요. ‘이 배우가 내가 모르는 걸 채워주겠지’라는 바람으로. 그리고 배우로서 저 역시 제가 의지할 수 있는 감독님이나 작가님을 믿게 되는 거 같고요. 그만큼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가가 제게는 제일 중요하게 느껴지는 기준이에요. 간혹 그런 걸 너무 많이 따지면 촌스럽다고, 그냥 일로 생각하고 작품만 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만 결국 그런 부분을 중시하게 되더라고요.

결국 사람과 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쉽지 않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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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7일에 군 입대를 했습니다. 당시 인지도가 한창 오른 상황이라 주변에서 입대일을 연기할 것을 권유했지만 본인이 고집해서 군대를 갔다고 하던데요.

음, 잘못 알려진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훈훈하게 알려져서 가만 놔둘까 봐요.(웃음) 사실 더 이상 법적으로 연장이 안 돼서 끌려간 거예요. 합법적으로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들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긴 싫었어요. 그냥 가야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한 거죠. 사실 그때 하기로 했던 작품이 있어서 많이 아쉽긴 했어요. 그리고 오히려 그런 아쉬움 때문에 군대에 간다는 충격이 덜했던 거 같고요.(웃음) 어쨌든 그때 안 가도 되는데 지금 가겠습니다, 이렇게 멋있게 간 건 아니에요.(웃음) 그런데 전역하고 나서 너무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됐죠. 이러려고 그때 가야 한다고 느낀 건가 싶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은 시기에 공백기를 갖게 돼서 더 불안했을 거 같아요.

불안했죠. 복무 중에도 불안했고요. 전역하기 전날만 빼고 계속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데 사실 거기서 불안해하면 저만 손해니까 최대한 즐길 거리를 찾아보려 했어요. 그리고 나름 군 생활을 재미있게 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저보다 어린 선임들과도 함께 잘 지냈고요.

22사단에서 근무했다고 들었어요.

고성이라는 곳에 있는데, 민통선 있는 데예요. 사실 그런 지역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최전방을 수색하는 수색대대에 지원했다던데 그것 또한 군 생활을 통해 즐길 거리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요?

22사단 훈련소에 들어갔는데 조교 생활을 권해서 해볼까 싶었어요. 그런데 2년간 조교로 생활하면 제가 아는 군대는 훈련소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그리고 어딜 갈 수 있는지 살펴봤죠. 그러다 수색대대가 비무장지대를 수색하고 정찰한다는 걸 알았어요. 너무 힘들다고 해서 걱정도 됐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비무장지대를 가보겠어’라는 생각에 지원했죠. 어차피 2년을 보내야 하니까 그 안에서 즐기며 배울 수 있는 걸 찾게 된 거죠. 그리고 부대원들과 부대끼는 것보단 잘 지내는 게 낫잖아요. 알고 보면 친구들이나 다름없고. 거기서도 나이 많은 연예인이 오는 게 부담스러웠겠지만 제가 아예 숙이고 들어가니까 잘 봐준 거 같아요. 선임이든 후임이든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도 많고요. 좋은 경험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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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입대 당시의 불안이 무색할 정도로 제대와 동시에 정말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김은숙 작가의 <태양의 후예>는 군 복무 말년쯤에 선택한 작품이라 들었는데 배우로서 복귀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덜하지 않았을까요?

전역을 앞둔 병장들은 후임들 몰래 뒤로 형이라고 하면서 고민을 털어놓더라고요. ‘사회생활은 어때요? 돈 벌면 어때요? 좋은 여자 만날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들. 처음에는 귀엽다고 느꼈는데 듣다 보니 제가 20대 초반에 하던 생각들과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까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야말로 ‘잊혀졌으면 어떡하지? 연기하는 감을 잃었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다행히 군인 역할이라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오랜만에 다시 연기하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됐죠.

어쩌면 하늘이 <태양의 후예>를 주려고 송중기 씨를 군대로 이끈 것 아닐까요?(웃음)

진짜 그렇게 생각해본 적 있어요. 휴가 때 소속사 분들이 한번 보라고 권한 대본이 있었는데 사실 그 당시에 보고 있던 작품이 있어서 처음에는 대본도 안 보고 거절했어요. 그러다 한번 봐달라고 해서 보게 됐는데 그게 <태양의 후예>였어요. 사실 입대할 때부터 촬영 준비 중이던 작품이라 들었는데 2년 가까이 지나도록 배우를 찾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보게 됐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요. 매니저가 “군인 역할이라 좀 그런가?” 하길래 오히려 머리 기를 필요도 없고 그냥 이대로 하면 될 거 같다고 했죠. 뭔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이게 내 옷이구나 싶었어요. 덕분에 자연스럽게 복귀하고, 아내도 만났고, 제겐 여러모로 좋은 작품이었죠.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은 송중기 씨가 처음으로 성인 남성을 연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어쩌면 어른으로서의 사랑을 연기한 것이 처음이라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아무래도 배우는 작품으로 비쳐지고 또 만들어지니까요.

그런데 군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지 않던가요?

전혀. 원래 전역할 때가 다가오면 전역한 뒤에 뭐든 할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잖아요. <태양의 후예> 대본을 보게 된 게 상병 말쯤이었던 거 같은데 그렇게 빨리 읽었던 대본도 없었을 거예요. 다른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하겠다고 했죠.

어쩌면 그래서 더 빨리 제대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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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단한 시청률을 기록했고,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결과를 두고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이게 어떤 상황인지, 좀처럼 실감 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깜짝 놀라긴 했지만 정작 그때에는 크게 와닿지는 않았어요. 제가 좀 무딘 편인지 크게 들뜨지는 않더라고요. 대신 일단 펼쳐진 상황에 맞게 뭔가 더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소름 돋을 때가 있어요. 되레 지금 와서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고.

최초의 사전 제작 드라마였기 때문에 촬영을 다 마치고 나서 작품에 대한 반응을 체감하는 경우도 처음이었을 거고요.

드라마는 보통 촬영과 방영이 거의 같은 시기에 이뤄지니까 시청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그걸 즐기는 측면도 있거든요. 작가든 감독이든 배우든 스태프든 그런 반응이 현장에 상당한 에너지를 주죠. 그런데 <태양의 후예> 때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으니까 조금 답답하기도 했어요. 영화도 그렇게 찍는데 뭐가 다르냐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드라마와 영화는 호흡이 다르잖아요. 영화는 100쪽짜리 한 권이라면 드라마는 16권인 거니까 훨씬 호흡이 길죠. 그리고 그렇게 긴 작품을 촬영하면서 반응을 알 길이 없으니까 좀 답답하더라고요. 촬영을 마치고 3개월 뒤에 방영했으니까. 보통의 경우에는 방영할 때 현장에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집에서 보는 것도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작업하기 힘든 작품이었을 거 같긴 해요.

그 이후로도 사전 제작 드라마가 몇 편 나왔지만 <태양의 후예>만큼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기도 합니다.

그런가요? 공교롭게도 <아스달 연대기>도 사전 제작 드라마인데, 한번 경험해봤으니 예전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태양의 후예>도 CG 처리를 위한 후반 작업이 많았다고 들었지만 <아스달 연대기> 역시 시대극이기도 하고, 판타지 장르의 특성상 후반 작업이 상당히 요구되는 작품처럼 보입니다. 그만큼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신이 많을 거 같은데 실제 풍경을 상상하고 연기해야 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닐 거예요.

그렇죠. <신과 함께>에 출연한 선배님들 말씀을 들어보면 정말 만만치 않은 거 같더라고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몰입해서 연기하는 걸 보면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요. 막연하게 생각하면 별거 아닐 거 같기도 하고, 그냥 하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막상 부딪히면 정말 힘든 작업이래요. 그래서 배우들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해서 같이 술잔 기울이는 날도 꽤 있었다 하고. 아무래도 정통적인 방법이 가장 좋은 거 같아요. 하지만 CG가 꼭 있어야만 하는 작품이니,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

<태양의 후예>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한류 스타의 지위까지 얻었습니다. 어쩌면 범아시아적인 인지도를 얻은 첫 번째 한국 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 같은데요. 차기작으로 선택한 영화 <군함도>는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고,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제대 후에 출연한 <태양의 후예>와 <군함도>의 희비가 굉장히 엇갈리는 느낌이라 단적으로 비교하게 되는 측면도 있는 거 같아요.

사실 저는 <군함도>가 흥행에 부진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6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었으니까요. 600만은 엄청난 숫자잖아요. 다만 엄청난 기대작이었기 때문에 그 숫자를 ‘밖에’라고 표현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제가 보는 시야 안에서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고요. <군함도> 역시 최대한 많은 노력을 쏟아부은 작품이기 때문에 제가 성장했다면 성장했지, 잃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더 좋은 반응을 얻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건 아쉬운 일이겠죠. 하지만 저는 하던 대로 할 생각이에요. 오히려 그런 걸 무서워하면 안 될 거 같아요. 흥행성을 짐작해서 작품을 선택하면 일하는 재미도 없어질 거 같고요. 대기업 재무제표처럼 따지면서 작품을 선택하면 이것도 너무 낭만 없는 직업이 되겠죠.

<군함도>에서 연기한 박무영은 극 중반부 즈음에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인물이에요. 인물의 전사가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에 배우가 스스로 캐릭터의 디테일을 잡고 들어가야 하는 역할이었을 거 같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그 역할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요.

일단 그 캐릭터가 작품에서 기능적인 측면이 다분한 역할이라는 걸 알고 선택했어요. 반대로 말하자면 제가 할 수 있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선택한 셈이고요. 그리고 갑자기 등장하는 인물이니 오히려 영화의 감정선을 해치지 않는 방식을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사실 그 당시에 <태양의 후예>가 그렇게 잘됐는데 왜 이렇게 작은 역할을 맡았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뿌리깊은 나무>도 하지 않았겠죠. 그러니까 앞으로도 그런 선택을 할 거 같아요. 좋은 역할이라면 주인공이 아니어도 돼요. 할리우드만 봐도 신인 배우가 주연을 맡은 작품에서 브래드 피트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배우들이 조연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잖아요. 할리우드가 대단히 냉정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하지만 엄청난 배우들이 작은 규모의 영화에 예산을 맞춰서 출연하는 걸 보면 대단히 유연해 보이기도 해요. 어쩌면 배우로서 정말 현명하고 똑똑한 선택을 할 줄 아는 거죠. 저도 그렇게 유연한 선택을 해보고 싶어요.

배우로서 20주년까지 내다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유연함을 닮고 싶은 것 아닐까요?

스스로가 제일 잘 알잖아요. 10년 뒤에 20주년이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 게으르게 살았다고 느낀다면 후회할 거 같아요. 게다가 결혼도 했으니 더 열심히 살아야죠.(웃음) 계속 작품을 하고, 팬들에게 연기를 보여주고 싶어요. 소처럼 일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래야 후회도 없을 거 같고요.

송혜교 씨와의 결혼이 굉장한 이슈였어요. 두 분 다 워낙 유명한 한류 스타로 꼽히는 만큼 해외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요. 어쩌면 두 사람의 결혼을 두고 세상 사람들이 흥분할 때 정작 가장 담담했던 건 당사자인 두 분이 아니었나 싶어요.

정말 많은 관심을 주셔서 고맙기도 했지만 저희 둘은 그저 고요하고 평안했던 거 같아요. 혜교 씨도 저도 본명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연예인이라는 영역에서 벗어나면 지극히 일반적인 개인에 불과하거든요. 둘 다 그런 삶을 추구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인 거죠. 그래서 저희끼리 있을 때만큼은 개인적인 일상의 소중함을 찾으려 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했으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을 놓치지 않아야 할 거 같고, 서로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밖에서는 거창하게 보시지만 저희끼리는 소소했고요. 비공개로 한 결혼식도 그리 특별할 게 없었어요. 물론 결혼식장 주변에 드론을 띄운 분도 있었다던데, 연예인이니까 그런 건 다 감수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관심받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조만간 둘 다 작품으로 복귀할 예정이라 그 전까진 함께 시간을 채우려고 해요. 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시간이니까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세상의 시선과 무관하게 두 사람이 함께 고요하고 평안해질 수 있다는 걸 느꼈을 때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어울리는 사람임을 확실히 알게 되는 순간 아니었을까요?

동의해요. 확실히 서로 생각하는 게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워낙 많이 알려진 사람들이다 보니까 사소한 행동도 이슈가 되는 편이긴 하지만 그냥 우리 입장에서는 최대한 편안하게 지나온 거 같아요.

결혼을 했으니 연애는 돌아갈 수 없는 단어가 됐습니다. 조금 조심스러운 질문이긴 합니다만, 인생에서 더 이상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생겼다고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진 않나요? 연애를 할 수 없으니 아쉽다는 게 아니라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시절 같은 것이 된 기분이랄까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저는 연애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저는 현실적인 성격이긴 한데 그런 부분에는 나름의 로망이 있었던 거 같아요. 제가 존경하는 형과 술을 마시면서 들었던 말이 있어요.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아내가 생긴다는 건 숙명 같은 거라고. 인상적인 말이라 기억하게 됐는데, 저는 남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자기 여자를 사랑하는 거라 생각해요. 부자가 되고, 명예를 얻는 게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 여자를 끝까지 변함없이 아름답게 사랑하는 게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남자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대부분 자기가 보는 대로 이야기를 하잖아요. 결혼 축하한다고, 너무 잘한 일이라고 하는 분들은 대부분 그렇게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왜 벌써 결혼하냐, 나만 당할 수 없으니 너도 해라, 이렇게 말하는 분들은 실제로 본인이 행복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슬픈 일이죠. 제가 좋아하는 그 형은 나중에 가족이 늘고, 나이가 들어도 무조건 아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주위에 있는 사람이 어떤 말을 해주느냐도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저는 아직 연애 중이라고 생각해요.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솔직히 제 아내 너무 예쁘잖아요.(웃음)

혹시 가족을 이루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목표까지는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좋은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사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아버지거든요. 아버지는 모든 부분에서 가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어요.

티셔츠 비비안 웨스트우드. 바지 에르메네질도 제냐 쿠튀르.

드라마 <트리플>에서 스케이트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는데 유년 시절에 쇼트트랙 선수로 활약했다고 들었어요. 본래 올림픽 출전을 꿈꾸기도 했다는데 중2 때 부상으로 그만뒀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사실 부상이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에요. 그냥 이걸로 먹고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천장이 높아서 거기까지 올라가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실을 직시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적절한 타이밍에 포기하는 법을 알았던 거 같기도 하네요.

어린 나이에 냉철한 선택을 했군요.

사실 그만두고 나서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했던 거 같은데, 결국 독하게 마음먹었죠. 다행히도 부모님께서 운동을 하면서도 또래 친구들이 할 수 있는 건 다 하게 만드셨어요. 절대 학교 수업 빼먹지 못하게 하시고, 운동도 방과 후에 하게 만들고. 어쩌면 그래서 다른 방향을 찾는 게 좀 더 편했던 거 같아요.

혹시 운동선수로 활동했던 경험이 배우로 일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느낄 때가 있을까요?

단체 생활을 할 때 도움이 된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결국 다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해나가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선수 생활을 할 때 목표 설정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았던 거 같아요. 목표라는 것 자체를 인지하는 습관을 그때부터 기를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면에서 도움을 받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고요.

앞서 송중기 씨의 무기가 외모라고 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두 번째 무기는 목소리가 아닐까 싶어요. 소년처럼 앳된 외모를 갖고 있지만 중저음의 목소리가 반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덕분에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주는 거 같기도 하고요.

사실 목소리 좋은 분은 너무 많아서요.(웃음) 그래서 저는 제 목소리가 그렇게까지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다만 생각보다 저음이라 좋게 느끼시는 분들이 있는 거 같아요. 만약 그게 좋은 무기라면 더 개발하고 싶죠. 무기라면 무기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기본적으로 배우라면 발성이 좋아야 한다고도 하니까요.

재킷 캘빈클라인 205W39NYC by 10 꼬르소 꼬모.

워낙 어려 보이는 외모라 나이가 체감되지 않는 느낌이긴 하지만 송중기 씨도 벌써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어요.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변하는 것들이 생길 텐데 이것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있을까요?

얼마 전에 신인 때부터 함께해온 매니저 형한테 듣고 기억난 일이 있는데, 제가 신인 때 그랬대요. 나중에 주인공만 시켜주면 5일 밤을 새워도 불평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주인공이 되니까 3일 밤만 새워도 불평하더라고. 반쯤 농담처럼 한 얘기겠지만 저는 ‘아차!’하는 마음이었죠. 작품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위치가 되니 예전에 했던 다짐을 다 잊은 거예요. 그때는 오디션만 붙어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처럼 설레고 흥분돼서 대본을 보며 몇 신이나 나오나 살펴보고 그랬는데 말이죠. 겸손한 척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그때 느꼈던 그런 절실함을 놓치지 않고 가자는 다짐을 하게 됐어요. 그래야 배우로서 더 좋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고,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요.

초심을 돌아본다는 건 어쩌면 그 시절의 나와 재회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10년 전의 자신을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그냥 고민하지 말고 저지르라고 할 거 같아요.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그러니까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하라고. 물론 그때도 지금처럼 하고 싶은 걸 하는 편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답은 다 정해놓고 괜히 고민만 했던 거 같더라고요.

그러다가 한류 스타 송중기가 사라져버리면 어떡하죠?

그럴 수도 있겠죠. 뭐, 어쩌겠어요.(웃음) /글_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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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민 용준,어시스턴트 에디터| 박유신& 신민지,패션 에디터|고동휘,헤어|이혜영,메이크업|김지현,사진|목정욱,스타일링|강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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