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민을 위한 힙합은 없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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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민을 위한 힙합은 없다

아껴야 잘산다는 공감은 힙합을 위한 교훈은 아니다.

ESQUIRE BY ESQUIRE 2017.10.22

마크 론슨의 테드 토크(TED Talks)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벌써 3년 전이다. 그런데 <어떻게 샘플링이 음악을 바꾸었을까>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여전히 나에게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가 늘어놓은 이야기 중 굳이 한 구절만 꼽으라면 이것이다. “댐은 이미 무너졌어요. 우리는 샘플링 이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샘플링 기법은 현재 팝 음악 전반에 두루 쓰이고 있다. 그러나 그 시작은 힙합이었다. 마크 론슨이 이 영상에서 예로 든 인물도 1980년대의 힙합 선구자 슬릭 릭이다.

샘플링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위상에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멸시의 대상이었다.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대신 기존의 노래에서 재료를 따오는 샘플링은 제대로 된 음악 창작이 아니라고 인식될뿐더러 일종의 도둑질 취급까지 받았다. 샘플링뿐만이 아니다. 힙합의 거의 모든 요소가 처음에는 이런 식이었다. 멜로디와 화성 없이 리듬으로 발성하는 랩, 다른 어떤 장르에도 없던 믹스 테이프 문화, 그리고 옷 입는 방식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까지, 힙합의 모든 것은 새로운 것인 동시에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힙합의 세계적인 득세를 지켜보는 중이다. 이제는 힙합으로 교육을 하고 힙합으로 심리 치유를 한다. 사회학의 가장 중요한 연구 주제 중 하나 역시 힙합이다. 나는 이 광경을 수십 년 전 힙합이 열어젖힌 새로운 발상과 태도가 마침내 완수되어가는 과정으로 읽는다. 힙합만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힙합은 이제 동시대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인식의 틀이 되었다. 만약 당신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나는 당신과 실없는 농담밖에는 나눌 생각이 없다.

다시 말해 나에게도 힙합은 음악 이상의 무엇이 된 지 오래다. 힙합은 나에게 삶의 방식이자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철학이다. 가끔 턴테이블을 문지르면 힙합의 요정이 나타나 길을 알려주고, 금 목걸이 7개를 모으면 힙합의 신이 등장해 해답을 말해준다. 최근에도 힙합의 요정을 소환할 일이 있었다. 바로 <김생민의 영수증> 신드롬이 일어난 때였다. 이 프로그램은 원래 특정 팟캐스트에 소속된 코너였지만 인기를 얻어 독립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팟캐스트 전체에서 1위를 했고 KBS 방송으로 편성되기까지 했다. 이 기세로 김생민은 <라디오스타>에도 출연했다. 확실히 괄목할 만한 열풍이었다. 그다음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김구라를 향한 비난 쇄도, 김구라 하차 서명운동에 수만 명 참여, 김구라 사과.

언뜻 봐도 힙합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안처럼 보이지만 나에게 이 사건은 힙합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비극처럼 느껴졌다. 만약 한국인의 대다수가 김생민에게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한다고 전제한다면, 힙합은 한국에서 문화나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지 돈을 덜 쓰고 더 쓰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부족한 상상력과 무력함 등에 대한 이야기다. 오해를 없애기 위해 각을 더 좁혀보자. 일단 김생민 개인에게는 불만이 없다. 매사에 과도하게 절약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닮고 싶진 않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가를 이룬 그의 현재는 존중한다. 그러나 김생민에게 자신을 대입해보고 김구라의 발언에 발끈해 그를 퇴출시키기 위해 혈안이 됐던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불만이 있다. 그들의 모습이 힙합에 누명을 씌우고 깎아내리는 이들의 모습과 놀랍도록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아마 전수조사를 해본다면 실제로도 많이 겹칠 것이다).

“짜다고 철든 건 아니다.”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가 했던 말이다. 이 말은 중요하다. 김구라는 김생민을 부정하거나 모욕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기준과 태도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아껴야 잘산다, 무조건 절약해야 한다는 태도를 우리는 그동안 정언명령처럼 따라왔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김구라의 질문은 사실 힙합이 품어온 질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김생민이 은행에서는 꼭 치약을 얻어 와야 하고, 커피를 자기 돈으로 사 마시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말할 때, 내가 더 콰이엇과 나눈 대담에서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 번 거 오늘 다 쓰고 내일 또 벌어’ 같은 가사를 저희가 한창 많이 썼어요. 물론 모두가 현실에서 정말로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건 저희도 알아요. 하지만 저희가 말하고 싶었던 건, 사고 싶은 게 있다면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냥 사는 게 때로는 좋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저희도 남들이 보면 쓸데없다고 느낄 만한 물건에 전 재산을 써본 적이 있는데 그로 인해 행복도 누려봤고 용기도 얻어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도 때로는 나쁘지 않다는 말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아껴야 잘산다’라거나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는다’ 같은 철학을 많이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저희 나름대로의 반항 같은 것이었죠. 사실 세상의 많은 공식이나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것 중에는 틀린 것도 많거든요. 예를 들어 사람들은 보통 지금 돈을 아끼면 20년 뒤엔 부자가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보편적으로 택하는 방법이죠. 일단은 아끼는 것. 그런데 오히려 그 돈을 안 아끼고 그 돈을 써서 나 자신을 기분 좋게 만들고 나를 더 멋져 보이게 만들어서 부자가 될 수도 있거든요.”

‘욜로(YOLO)’로 상징되는 최근의 소비 권장 분위기에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쓸 돈이 많이 없는데 자꾸 돈을 쓰는 게 쿨하다고 하니까 두려웠을 거다. 어떤 기사에서는 이를 ‘피로감’이라고 명명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두려움’이다.

나는 지금 사람들에게 오늘 번 돈을 빨리 다 쓰라고 종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수많은 김생민 속에서 김구라의 의문이나 더 콰이엇의 방식도 존중받고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원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김생민을 자기의 분신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바람은 아마 허락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해가 가는 면도 있다. ‘욜로(YOLO)’로 상징되는 최근의 소비 권장 분위기에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쓸 돈이 많이 없는데 자꾸 돈을 쓰는 게 쿨하다고 하니까 두려웠을 거다. 어떤 기사에서는 이를 ‘피로감’이라고 명명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두려움’이다. 어쩌면 그 사람들이 김생민이라는 깃발 아래 모여 두려움을 떨쳐냈던 건 아닐까. ‘내가 틀린 게 아니야. 김생민을 봐. 연예인인데도 저렇게 악착같이 절약하고 살잖아. 그리고 나처럼 김생민에게 공감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과연 절약하는 삶을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마지못해 절약을 하고, 누구나 절약하는 삶에서 탈출하길 꿈꾼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그들의 연대를 완성하는 건 공감이 아니라 안도다. 나의 부정적인 상황이 남에게도 존재함을 확인함으로써 괜찮아지는 것. ‘쟤도 별수 없네. 다행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사람들이 공감을 방패 삼아 힙합을 공격한다. “뭐? 돈 많이 벌었다고? 누가 그런 거 알고 싶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라고.” 그러나 힙합에서 중요한 건 공감보다 영감이다. 힙합에서 공감을 얻어 가는 건 자유지만 영감을 공감의 관점으로 재단하는 건 오류에 가깝다. 맞다. 힙합은 영감을 나누길 원한다. 힙합이 바라는 건 내가 이뤄낸 것에서 네가 좋은 기운과 에너지를 얻어 가는 것, 내가 나의 조건과 상황 속에서 해낸 것처럼 너도 너의 삶 속에서 의미 있는 것을 해내는 것, 궁극적으로는 내 노래가 네 삶에 영감을 주는 사운드트랙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김생민의 중심에서 힙합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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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민 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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