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관광객이 모이는 네 가지 요인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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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관광객이 모이는 네 가지 요인

제주도가 특별해진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ESQUIRE BY ESQUIRE 2017.01.12

제주도는 아주 유명한 여행지가 되었다. 제주도에 익숙해진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 언젠가는 질린다. 언젠가 제주도라는 여행지에 질린 사람들이 다음 제주가 될 만한 곳을 찾지 않을까? 제주도 다음의 유명 여행지는 어디가 될까?

‘포스트 제주’ 를 예측하려면 먼저 ‘제주가 왜, 어떻게 지금의 제주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이쯤에서 독자 여러분께서는 궁금해지실 수도 있다. ‘제주도에 얼마나 많이 가는데?’

진짜 많이 간다.

호남지방통계청이 올해 3월 발표한 ‘관광 1번지 제주도를 읽다-통계로 본 제주의 변화상’은 숫자를 통해 제주 여행의 발전상을 표현한다.

1983년에 제주도의 연간 여행객 수는 100만 명 수준이었다. 1983년에서 22년이 지난 2005년에 500만 명을 돌파했다. 500만에서 1000만이 되는 데는 8년밖에 안 걸렸다. 제주도의 연간 여행객 수는 2013년에 대망의 1000만을 돌파했다.

증가세는 더욱 가팔라진다.

2015년 제주도의 연간 방문객 수는 1366만여 명을 기록했다. 이쯤 되면 이유를 알아볼 만하지 않나. 어떻게 약 10년 만에 한 여행지를 찾는 사람의 수가 3배 가까이 증가할 수 있을까. 그동안 여행업계와 한국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나는 네 가지 가설을 떠올리고 각각 이름을 붙였다. 바다, 제주항공, 제주올레, 스마트폰.

1. 바다

제주는 섬이므로 사방이 바다다. 바다가 뜻하는 건 ‘도시인의 여행 판타지’다. 적어도 아직까지 한국에서의 여행은 도시인의 도회적인 취미이며, 바다는 사람들이 떠나고 싶다고 생각할 때 내륙의 도시인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여행지다. 특히 제주의 바다는 서울보다 위도가 낮은 곳에 위치해 ‘육지 사람들’에게 남다른 느낌을 준다.

들국화가 부르고 몇 번씩이나 리메이크된 ‘제주도의 푸른 밤’ 가사는 도시 사람들이 제주도에 갖고 있는 판타지를 보여준다.

“아파트 담벼락보다는/바달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도시의 침묵보다는/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여기서의 바다는 아파트 담벼락이나 침묵의 도시와 반대되는 뭔가 긍정적인 것이다. 제주 사람이 보는 바다와는 조금 다르다. 현기영이 작사하고 양방언이 곡을 붙인 ‘해녀의 노래’에서의 바다는 비장한 생활의 터전이다.

“바당밧듸 농사짓젠 열길 물속을 드나들엄쪄(바다 밭에 농사지으려 열길 물속을 드나든다네).”

바다가 땅보다 나은 곳이라 여겼다면 굳이 바다를 밭이라 부르고 어로를 농사라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현지인에게 바다는 때때로 거칠고 무서우며 대체로 불편한 생활의 터전이다. 이와 아무 상관없는 여행자에게 상상 속의 바다는 여행을 이끄는 아주 큰 판타지가 된다.

하지만 제주도는 늘 바다 위의 섬이었다. 제주도의 지리적 조건은 제주 여행의 잠재적 토양일 뿐이다. 잠재적인 판타지의 땅에 실질적으로 닿으려면 더 넓은 길이 놓여야 한다. 공무원들이 쓸법한 말을 빌리면 인력 수송 능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 딱 10년 전의 제주도는 운명적인 변화를 맞는다.

제주항공의 등장이다.

2. 제주항공

제주항공이 제주의 운명을 바꾸었다. 한국 최초의 저가 항공인 제주항공이 등장한 이후로 제주는 실질적·심리적으로 더 가까운 곳이 되었다.

기존의 김포-제주 국내선 노선은 한국의 양대 FCA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독점하고 있었다. FCA는 풀 차지 에어라인의 준말인 항공 산업 용어다. 탑승권 요금 안에 기내식과 엔터테인먼트와 각종 취소 수수료 등의 서비스가 모두 포함된 고전적인 항공사를 뜻한다.

제주항공은 한국 최초의 LCC다. LCC는 로 코스트 캐리어, 즉 저가 항공사다. 노선이 늘어난 것에 더해 가격 장벽이 낮아졌다. 가격 장벽이 낮아지자 제주도는 한층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통계가 이 추이를 증명한다.

김포-제주 간 여객 수송은 항공사가 늘어날 때마다 대폭 증가했다. 2006년 처음 취항한 제주항공과 한성항공(현재 티웨이항공)의 당해 인력 수송은 합쳐서 21만 명 정도였다. 2005년 대비 2006년 김포-제주 간 여객 수송은 약 27만 명 늘었다. 신규 인력 수송을 신규 저가 항공사가 수행했다는 이야기다.

김포-제주 여객 수송은 2008년 700만 명을 돌파하고 2년 후인 2010년에는 900만 명을 넘는 수치를 보인다. 진에어의 김포-제주 취항이 2008년, 이스타항공 취항이 2009년, 티웨이항공 취항이 2010년이다.

항공 통계상 2011년은 기념비적인 해다. 가장 먼저 취항한 대한항공부터 가장 나중에 자리 잡은 에어부산까지 국내 노선에 총 7개의 항공사가 격돌한 것이다.

에어부산 취항 원년인 2011년 김포-제주 인력 수송은 연간 1000만 명을 돌파한다. 7개 항공사 동시 투입 체제 5년 차인 2015년 김포-제주 인력 수송은 1500만 명을 넘어선다.

지금 김포-제주 노선은 전 세계에서 하루에 가장 많은 항공편이 오가는 항로다. 이 압도적인 공급량 증가는 항공권 가격 하락을 불러온다. FCA인 대한항공마저 평일의 한가한 시간에 출발하면 편도 3만원대에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흔히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고 생각하지만 여행업계에서는 반대의 일이 생길 때도 있다. 과다 공급이 가격 하락을 불러왔을 때 풍부한 물량과 낮은 이용료가 수요를 불러일으킨다.

제주도 여행 붐을 일으킨 요인은 항공수송의 과다 공급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시중에 수십 권씩 나와 있는 제주도 여행 서적에서도 한결같이 ‘제주도는 표를 잘 끊으면 몇만 원에도 다녀올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제주도까지 가는 비용이 저렴해진다면 제주도 여행이 각광받는 것도 합리적인 인과라고 볼 수 있다.

3. 제주올레

가서 뭘 하고 노는지도 중요하다. 자신의 취향을 가진 특정 여행자(A)가 어떤 콘텐츠(B)를 즐기는지, 그리고 해당 콘텐츠의 비용(C)은 얼마인지를 곱한 후 현지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간(D)을 나누면 대충 여행의 만족도를 계산할 수도 있다.

A는 매번 다른 변수이고 B는 종류가 많을수록 좋으며 C는 가능한 한 저렴할수록 좋다. 제주항공을 시작 삼는 항공 교통망이 확충되면서 C 항목에 들어갈 여행 콘텐츠의 비용이 줄어들었다. 만족도가 더 높아지려면 B가 양적·질적으로 다양해지고 C가 더욱 저렴해져야 한다.

마침 제주도에는 2007년부터 한국인이 즐긴 적 없었던 콘텐츠가 생긴다. 한국의 여행 상품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한국의 거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일제히 따라 할 정도로 유행한 제주올레다.

제주올레는 제주도의 여행 판도에 두 가지 새로운 키워드를 추가시켰다.

하나는 힐링이다. 지금은 거의 일상적으로 쓸 정도로 익숙해진 이 말이 오르내린 시점은 제주올레가 각광받은 시점과 유의미하게 일치한다. ‘관광 1번지 제주도를 읽다’라는 보고서에도 “체험과 힐링을 목적으로 하는 관광 패턴 변화”라는 말이 나온다. 게임 용어였던 ‘힐링’이 공무원들이 만들어 배포하는 보고서에도 등장하는 말이 되었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제주올레로 인해 한국에 자유 여행이라는 여행 장르가 빠르게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여행업계에서는 FIT(Foreign Independent Tours)라는 약자로도 쓰는 자유 여행은 패키지여행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자유 여행과 패키지여행은 각각의 장단점이 명확하다.

자유 여행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고 내 취향에 맞는 코스를 내가 짤 수 있는 대신 미리 알아봐야 하고 근본적으로 내게 뭔가 취향이 있어야 한다는 장벽이 있다.

패키지여행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비용이 들고 남이 짜준 코스를 도는 대신 내 준비나 취향이 없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의 제주도 여행은 대형 여행지와 단체 관광객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패키지여행의 목적지였다. 제주올레는 그 판도를 크게 틀었다.

통계에도 드러난다. ‘관광 1번지 제주도를 읽다’에는 2005년 대비 2015년 관광지별 이용자 증감 현황이 나온다.

통계상 1위는 방문객이 5배 가까이 증가한 비자림이다. 증감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곳, 즉 10년 전에 비해 방문객이 줄어든 곳도 있다. 제주 추사관, 일출랜드, 산방산, 항몽유적지, 테디베어 뮤지엄, 제주조각공원이다. 수학여행과 단체 여행의 목적지로 향하는 발길이 줄고 자유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자가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제주올레는 제주도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향인 힐링과 자유 여행을 가져왔다.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공짜다.

서명숙 이사장을 비롯한 제주올레의 확실한 철학 때문에 제주올레엔 입장료가 없다. 이 요소를 통해 ‘저가 항공과 제주올레가 실속 자유 여행이라는 새로운 여행 경향을 불러왔다’는 가설을 내놓을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왕복 10만원 이하 비행기 표를 끊고 하루 투숙료가 2만~3만원 정도인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며 저렴한 식사로 요기를 해결한다면 20만~30만원 정도로도 제주도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이렇게 제주도를 즐기는 방법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에 더해 기술적인 변화까지 제주도에 찾아온다.

4. 스마트폰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재즈의 역사를 다룬 책에서 “역사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기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며 기타가 전기를 받아들임으로써 전에 낼 수 없던 새로운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는 사례를 덧붙였다.

기술적 변화가 촉발시킨 역사적 변화는 제주도 여행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무선 인터넷 기술과 함께 발달한 스마트폰은 제주 여행의 정보와 환상을 동시에 증폭하고 확산시켰다.

“우리끼리는 제주도를 ‘인스타형 자연경관’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박미영 제주올레 홍보팀장의 말이다.

“보통 바닷가는 얼마 동안 머물러서 뭘 찍어도 어차피 그 풍경이 그 풍경이에요. 제주도는 차로 20분만 가도 경관이 달라져요. 계절에 따라서도, 같은 계절이라도 눈 올 때, 비 올 때, 맑을 때의 느낌이 다 다르니까요.”

박미영 팀장의 말은 아주 중요한 지점을 시사한다. 한국형 여가 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인증’에 제주도는 놀라울 정도로 특화된 곳이다. 스마트폰은 그 인증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함께하는 디바이스다.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제주 여행은 사이버 오리엔티어링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유사성이 있다.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하여 미지의 지형에 있는 목표물을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동안 찾아서 돌아오는 경기.’

대한오리엔티어링연맹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오리엔티어링의 정의다.

미지의 지형에 있는 목표물을 찾아서 돌아온다는 점에서 오리엔티어링과 여행은 결정적인 공통점을 보인다.

오리엔티어링에서 목표물을 찾아냈다는 표식은 패스포트에 도장을 찍어 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이버 오리엔티어링에서의 목표물은 이번에 가기로 마음먹은 여행 목적지다. 스탬프는 내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 패스포트는 내 인스타그램 계정이다. 지도와 나침반은 자신의 스마트폰 혹은 렌터카 안의 내비게이션이다.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 내가 찍은 사진을 올리면 하나의 목적지를 클리어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젊은 세대에게 여행은 ‘내가 여기에 다녀왔다’는 인증이 되어가고 있다.

“핫한 데 다섯 군데만 찍으면 이틀을 가요.”

<제주도 절대가이드>의 저자 김정철은 단언했다.

“이게 요즘 아이들이 제주도를 즐기는 방식이에요.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고 소셜 미디어로 ‘내가 여기에 갔다’는 인증을 올려요.”

이 오리엔티어링이 융성하려면 ‘핫한 곳'이 많을수록 좋다. 통계에서 봤다시피 제주도를 향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이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다양한 ‘핫한 곳’이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항공 공급은 제주로 들어오는 사람을 끌어모았다. 제주올레는 제주도 여행자와 도내 사업자에게 자유 여행이라는 여행 방식이 있음을 알렸다. 제주도로 향하는 파이프라인과 콘텐츠가 생겼다면 이제 다녀와서 알리면 된다.

스마트폰은 기동성이 좋으면서 검색이 가능하고, 사진 및 동영상 콘텐츠를 생산하는 동시에 인터넷에 업로드할 수도 있다. 사이버 오리엔티어링이 하나의 디바이스로 구현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가 전에 여행을 어떻게 기록하고 남들과 어떻게 나누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는 분명 기술적인 혁명이다. 이 기술 혁명이 ‘인스타형 자연경관’과 만나 새로운 선순환을 만든다.

“2009년엔 제주도 전체에 갈 만한 카페가 10군데도 안 됐어요.”

김정철의 말이다.

“도시 사람들은 분위기 좋은 카페를 좋아하니까 <제주도 절대가이드>에 실으려고 제주도 전체를 돌았는데 그때 실을 카페가 10곳이 채 안 되더라고요. 지금 유명한 어느 카페 있잖아요? 그때는 거기가 매물로 나왔어요. 한 3억원 했나. 지금은 딱 10배 올랐어요. 아마 30억원 주고도 못 살 거예요.”

박미영 팀장도 묘하게 비슷한 이야기를 건넸다.

“올레 노믹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올레길을 따라서 서울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큼 감각적인 가게가 생기기도 해요. 제주도로 오는 이주자들이 가게를 낼 때 올레길 주변을 염두에 두는 거예요. 올레길 주변의 부동산 시세 자체가 오른 경우도 많아요. 지금 제주도는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가게를 내러) 와요. 선수들이 내려와요.”

“지금 제주도는 바다가 보이는 홍대예요.”

김정철의 말은 조금 더 노골적이다.

“협재나 애월 바닷가에 가보면 여기가 홍대인지 제주도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예요.”

제주도가 사이버 오리엔티어링의 목적지가 된 만큼 도시인 취향의 멋진 가게를 차려도 상관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제주도 현장 취재를 다닐 때도 ‘바다가 보이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외진 곳에 왜 도회적인 가게가 있지?’ 싶은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런 곳을 취재했을 때 입지 선정 이유는 비슷했다.

“여기가 제주올레 몇 코스 근처예요.”

인스타그램의 제주도 해시태그 목록을 보면 제주를 주제 삼는 사이버 오리엔티어링의 현황을 짐작할 수 있다.

2016년 11월 16일 현재 #제주도는 403만3060개, #제주도여행은 56만5144개, #제주는 281만6436개이다. #제주도맛집 역시 11만6418개나 된다. 영어 #jeju도 200만 개가 넘어간다.

나의 인증과 남의 여행 정보가 스마트폰 안에서 계속 반복 확대 재생산된다. 남이 인증한 것을 내가 검색해서 찾아가고 거기서 사진을 찍어 나의 SNS에 올려서 또다시 인증한다.

결과적으로 제주도에 대한 유저 크리에이티드 콘텐츠 생산이 점차 활발해진다. 별다른 치명적인 부정적 변수가 없는 한 제주도 여행 콘텐츠는 앞으로도 양적·질적으로 풍성해질 가능성이 무척 높다.

5. 발리는 제주도의 롤모델이 될 수 있을까?

제주도의 여행 콘텐츠는 한국의 다른 지역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풍성해졌다. 제주도는 아주 큰 섬이라서 각 유형의 여행자는 붐비거나 섞이는 일 없이 자신만의 제주도를 즐길 수 있다.

제주도가 명실상부한 관광 1번지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주도 여행의 각 유형은 우버처럼 서로의 영역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에어비앤비처럼 산업의 파이 자체를 키운다.

사람에 따라서 하루는 레포츠형으로, 하루는 힙형으로, 하루는 맛집형으로 즐길 수 있다. 연인과 제주도에 갔을 때는 감성형으로 즐겼다가 부모님과는 전통 고급형으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단순한 정책적 지원이나 대형 예산 등 관공서 사고방식으로는 이렇게 풍성한 생태계를 만들지 못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뭔가 재미있고 멋있는 걸 만들어내는 개인 사업자가 많아야, 즉 뛰어난 선수들이 계속 내려와서 자리를 잡아줘야 매력적인 여행지가 완성된다.

제주도에는 매력적인 여행지라는 덩어리를 이루는 멋진 공간과 가게가 짧게는 근 10여 년 동안,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쌓여왔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취향과 성향과 예산을 가진 여행자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은 한국에서는 제주밖에 없다.

이미 많은 사람이 예전과는 다른 자신만의 방법으로 제주도를 즐기고 있다. 제주도 내 렌터카 관련 통계가 실마리다.

제주도 내 렌터카 등록 대수는 2005년 9만 대에서 2015년 29만 대로 늘어났다. 반면 1대당 평균 부상자 수는 2005년 2.13명이었던 것이 2015년에는 1.79명으로 줄어들었다.

렌터카 수는 늘어났는데 대당 평균 부상자 수가 적어졌다는 건 렌터카 수요는 늘었지만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거기 더해 제주도는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수입차 렌터카를 빌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취향에 맞는 차를 빌려 타면서 나만의 제주를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제주도처럼 한 지역 안에 다양한 여행의 유형이나 코스가 중첩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저렴한 여행과 값비싼 여행이 함께 있는 곳이라면 도쿄나 뉴욕, 홍콩 등의 국제적 메갈로폴리스급 대도시를 떠올릴 수도 있으나 그런 도시는 정치, 경제, 금융, 상업 등 도시가 굴러가는 확고한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제주와 차이가 있다.

휴양에 특화된 도시 중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여행 코스가 혼재하는 곳은 많지 않다. 실질적·행정적 기능이 별로 강하지 않은 대신 다양한 여행 모델이 공존하는 곳이라면 발리가 떠오른다.

두 도시는 실제로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큰 섬이라는 점, 여행이라는 특수 목적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 본토의 수도와는 거리상은 물론 심리적으로도 꽤 떨어져 있다는 점, 자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역시 많이 온다는 점, 다양한 여행 시설이 마련되어 취향과 예산에 따라 폭넓게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점.

제주도가 앞으로 한국의 발리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제주 여행의 재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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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박 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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