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그리는 여자 || 엘르코리아 (ELLE KOREA)
FASHION

패션을 그리는 여자

일러스트레이터 메간 헤스를 서울에서 만나 꿈을 이루는 법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ELLE BY ELLE 2018.12.08


메간 헤스는 <섹스 앤 더 시티> 책 속의 삽화로 유명해진 일러스트레이터. 샤넬, 디올, 루이 비통, 까르띠에, 펜디, 프라다, 지방시, 티파니 등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패션의 시선으로 바라본 <뉴욕>과 <파리> 트래블 시리즈, 10명의 이탈리아 디자이너를 조명한 <아이코닉> 등의 일러스트레이션 북을 출간하기도 했다. 300여 점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을 모은 전시가 서울에서 열리던 오프닝 날, <엘르> 코리아와 만난 메간 헤스는 패션계의 환상이나 럭셔리함을 언급하지 않았다. 여전히 소녀 시절 그대로의 설레고 떨리는 모습으로, 영원한 영감의 세계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실현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매거진에 실리는 일러스트레이션, 단행본, 브랜드와의 협업 등을 두루 작업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의뢰받을 때마다 매우 광범위하게, 각각 다른 용도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제안받곤 한다. 광고에 사용하거나 브랜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거나, 시즌 컬렉션 무드보드를 만들거나…. 일러스트레이션의 쓰임은 상당히 다양해서 늘 새로운 기분으로 작업할 수 있다.

커리어의 시작을 묻고 싶다. 캔디 부시넬과 어떻게 만나 <섹스 앤 더 시티>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게 됐나 뉴욕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누군가의 추천으로 출판사에서 포트폴리오를 요청해 왔고, 저자인 캔디 부시넬이 내 작업을 보고 책의 표지와 내지, 당시 출판이 계약돼 있던 글로벌 10여 개 나라의 표지 작업 의뢰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처음엔 너무 기쁘기도 했고 좀 얼떨떨하기도 했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수작업으로 그리거나 어떤 프로그램 혹은 툴을 쓰는지도 오, 나는 옛날 사람이다. 일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 프로그램도 사용하지 않고 드로잉 과정은 완전히 손으로 그린다. 오돌토돌한 종이 질감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사각사각 소리를 내어 연필을 움직이는 느낌, 그건 어떤 디바이스도 절대 만들어낼 수 없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오랫동안 생각하고 조사하는 시간을 가진 후 일단 스케치북을 펴면 막상 그리는 것 자체는 빠르게 완성하는 편이다.

당신의 그림과 패션 스타일에서 핑크는 빠질 수 없다. 핑크에는 상당히 많은 오해와 편견이 있다는 거,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알다 마다! 내가 핑크와 상당히 연관성이 깊은 것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약간 오해가 있다(웃음). 나는 특정 컬러가 특정한 캐릭터를 가졌다는 생각을 지우려고 노력한다. 성공한 프로페셔널 우먼이라고 해서 꼭 올 블랙 파워 수트를 입어야 한다는 공식 또한 편견이다. 나는 계약서를 쓰거나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에서 혼자만 드레스를 입고 있고, 나머지 모두 수트 차림의 남자인 경우를 허다하게 겪는다. 그럴 때 나는 의식적으로 핑크 컬러를 피하기보다 오히려 거대하게 부풀린 핑크 컬러 드레스를 당당하게 입는다.

당신이 지은 동화책 <클라리스>의 쿠튀르 드레스를 입은 쥐처럼 말인가 바로 그거다! 파리에 사는 작은 생쥐 클라리스는 항상 엄청나게 부풀린 드레스를 입고 있지만, 언제나 강하고 용감하다! 핑크를 입는 게 멍청하다는 뜻이 아니다. 클라리스의 줄거리 자체가 바로 그런 이야기다. ‘남자다움=강함’이란 공식을 깨부수고, 드레스를 입은 채 터프하게 뛰어다니는 아주 작은 여자아이 쥐의 모험!




메간 헤스 <아이코닉> 전은 12월 30일까지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더 서울 라이티움 1관과 3관에서 열린다.


<클라리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왔나 딸이 태어난 후 동화책을 꼭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이들이 당연하게 하는 생각들이 있는데, 그걸 자연스럽게 풀어주면서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어느 날 파리에 갔을 때 카페에 앉아 있다가 반대편 오래된 건물 꼭대기에서 하얗고 예쁜 작은 쥐가 쏙 튀어나오는 걸 봤고, 그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 많은 일들을 다 핸들링할 수 있나 인간이 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저글링’인 것 같다. 보통 일주일에 평균 15개 정도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돌아간다. 각각 다른 나라와 일해야 하거나 어떤 건 이제 막 시작 단계이고 어떤 건 마무리 단계이기도 하다. 일이 크든 작든 간에 각각 중요한 일이니까 거기에 신경 써야 한다.

워킹 맘인 동시에 그렇게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어떻게 항상 완벽한 스타일링을 하고 있는가 오, 오늘 같은 모습이 매일은 아니다(웃음). 이렇게 멋진 서울에 처음 와서 <엘르>와 만나는 날이니, 단지 TPO를 지킨 것이다. 스튜디오에 있을 땐 이 모습은 상상도 못하고, 이런 힐을 신고는 아무것도 그릴 수 없다.

너무 바쁘고 힘들면 패션부터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나를 포함해서… 여성으로서 멋진 모습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중요한 것 같다. 모든 게 완벽했던 날들은 나 역시 끝났다고 생각한다(웃음). 어느 날 온 가족이 저녁을 캔에 담긴 즉석 음식으로 해결할지라도 배 아픈 사람 없고, 애들은 숙제를 끝냈고, 나는 마감을 잘했다면 충분히 좋은 날이라고 생각한다.
패션의 어떤 점이 당신을 항상 멋진 모습으로 이끌고, 꾸준히 트렌디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나 에디터인 당신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패션계의 ‘관찰자’라서 그렇다. 그것이 내겐 정말 매력적인 포지션이다. 브랜드나 패션 하우스의 비하인드 신에서 어떤 순간을 캡처해 내는 것, 어떤 컬렉션이 완성되도록 하기 위해 의미나 맥락을 고민해서 컨셉트로 가져오는 과정을 통해 패션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점 말이다. 나도 패션위크에 초대받아서 가지만, 누가 날 찍어도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난 패션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패션을 이해하고 느끼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패셔너블한 도시 뉴욕과 파리에 관한 당신의 책엔 우리가 사랑하는 두 도시의 요소가 모두 담겨 있다. 당신에게 뉴욕과 파리는 어떤 곳인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을 함께한 추억과 사연이 가득한 곳이다. 뉴욕과 파리가 가장 먼저 나왔을 뿐, 이어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들에 대한 책 <아이코닉>도 이번에 출간됐는데, 그 외에도 그리고 싶은 멋진 도시들의 리스트는 꽤 많다. 시티 시리즈를 그릴 때도 난 관찰자로서의 내 시선을 정말 즐긴다. 도시든 사람이든 오래 지켜보면 미세하면서도 개성을 완성시키는 놀라운 디테일이 숨어 있다.

예민한 감성을 지닌 것 같은데, 어린 시절엔 어떤 소녀였나 음, 베리 샤이 걸(Very Shy Girl). 내성적인 편이면서 호기심이 많았고, 항상 뭔가를 그리고 있거나 만들고 있었다. 침대 한쪽에 지구본을 갖다놓고 언제나 공상하는 아이였고, 늘 패션을 사랑했다.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아주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내가 패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런던에 여행 갔다가 이런 일들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하면 이 일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 방법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뭔가를 원한다고 모두가 기회를 잡는 건 아니다 맞다. 그러니까 나처럼 작고 평범한 소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예스라고 말하세요’다. 어려울 것 같거나 두려워도 기회를 떠나보내면 안 된다. 예스라고 답한 후엔 100% 열심히, 잘해서 그들에게 결과물을 주고,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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