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된 램프부터, 전열 테이프로 칭칭 감은 카메라까지. 엘르편집부의 오래된 취향 || 엘르코리아 (ELLE KOREA)
FASHION

30년 된 램프부터, 전열 테이프로 칭칭 감은 카메라까지. 엘르편집부의 오래된 취향

모든 물건과 취향이 빠르게 쏟아지고 빠르게 사라지는 시대, 오래도록 사랑받은 물건에서 찾은 <엘르> 팀의 파편.

이마루 BY 이마루 2024.02.14

FINALLY, CARINE 

2015년 가을, 유니클로 압구정 매장에서 산 턱시도 스타일의 블랙 롱 코트. 내게 패션 에디터라는 꿈을 심어준 카린 로이펠드의 첫 협업 컬렉션이다. 중학생 때부터 고향에서 가장 큰 서점을 들락거리며 패션지를 사 모으던 나는 카린 로이펠드에 관한 글을 읽으며 그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했다. 신입 에디터가 되자마자 구입해 지금까지 잘 입고 있는 이 코트에는 내 꿈과 동경, 환상이 녹아 있는 셈. ‘덕질’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카린이 입었던 아이코닉한 패션 아이템을 보면 구매 욕구가 솟아나니까! 비밀이지만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팜므 파탈’ 같은 여성성에 대한 동경이 자리한다. 이 코트는 피부를 단 한 뼘도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은근한 관능을 드러낸다. 여전히 겨울이 찾아오면 단숨에 옷장에서 꺼내 드는 이 코트는 그러니 내 취향의 근원. ‘돌고 돌아 제자리’라는 말이 있듯 어른이 돼 주변 환경이 바뀌고, 다양한 세계와 마주하며 진정한 취향을 찾아봐도 결국 처음 나를 설레게 했던 ‘블랙’으로 돌아가게 된다. 마치 이 코트처럼.  
by 손다예(패션 에디터)






LIKE FATHER, LIKE DAUGHTER

지금은 내게 ‘소울’이 된 록 음악에 언제 눈떴는지 분명히 안다. 음악과 무대에 취한 아버지와 친구분들 틈에 끼여 앉아 과자 부스러기를 먹으며 ‘The Wall’ 콘서트 실황을 봤던 그날. 핑크 플로이드를 좋아하던 아버지가 동네 음악애호가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모았던 그 저녁. 그때 레이저 디스크로 본 공연 실황은 중학생이었던 나를 완전히 압도했다. 1990년 7월 21일, 붕괴된 베를린 장벽을 기념하는 무대 위에서 벽돌 모형으로 쌓아 올린 장벽을 마주하며 노래하던 뮤지션들의 떨리던 목소리와 호흡, 그들의 뒤통수를 비추던 앵글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음악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웅장함과 충격, 카타르시스를 난생처음 느꼈던 경험이다. 낙원상가를 들락거리며 조각조각 음향 기기를 모아 홈 오디오 세트를 커스텀하던 아버지가 열정적으로 취미에 몰두했던 시기, 덕분에 매일 집 안에 음악이 넘쳐흐르던 시절의 물건이자 아버지와 나를 느슨한 취향 공동체로 묶어준 첫 사건이다. 아버지와 나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어쩌면 음악이 내 삶에 특별해진 것도, 록 음악을 ‘덕질’하던 학창시절도 모두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물건이다. 애칭을 붙인다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by 이경진(〈엘르 데코〉 디렉터)






CAPTURE YOUR LIFE

2014년 수능이 끝나자마자 손에 쥐었던 인생 첫 카메라. ‘올림푸스 뮤2’를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헬무트 뉴튼이 썼던 카메라니까. 한 시대를 풍미한 패션 사진작가와 같은 카메라를 쓴다니! 1997년에 생산됐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는 나와 연식이 비슷하다는 점에도 정이 갔다. 지금은 에릭 로메르의 〈해변의 폴린느〉 스티커가 붙어 있지만, 이전에는 잡지 〈LIFE〉 로고 스티커가 카메라 커버를 가로질러 붙어 있었다. 커버를 여닫을 때마다 찢어졌다 합쳐지는 ‘LIFE’ 글자는, 마치 삶이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듯한 묘한 기분을 선사했다. 여기에 경통 빛샘 현상 때문에 필름을 갈아 끼울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붕대처럼 칭칭 감은 절연 테이프까지. 세운스퀘어를 들락거릴 때나 필름 스캔을 하러 갈 때마다 사장님께서 탄식 비슷한 감탄을 내뱉을 정도로 낡은 이 카메라가 나에 대해 드러내는 사실이 있다면 순간을 귀히 여긴다는 것. 몇 년째 양자역학과 시뮬레이션 우주론 같은 것에 빠져 있는 내게 순간을 mm 단위로 첨예하고 세밀하게 포착하는 카메라는 소중함을 개인적인 방식으로 담아내는 최고의 도구다. 특히 중지로 커버를 밀어 열고 검지로 셔터를 누르면 그만인 ‘뮤2’는 스냅사진에서 최우선인 ‘기민함’까지 충족시킨다. 어쩌면 느리고 불명확하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옷과 영화, 공간, 음식, 사람…. 필름카메라와 성질이 비슷한 모든 것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by 박지우(디지털 에디터)






FRIENDS WITH NO HAIR

라이터와 병따개, 조개껍데기. 도통 사소한 아이템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내가 지금까지 모은 것 중에서 제일 애착이 가는 건 동물 모티프의 아이템들. 섬을 자유롭게 누비던 고양이들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서 산 고양이 오브제는 그리스 이드라 섬에서, 강아지 오브제는 뉴욕 빈티지 숍 ‘마더 오브 정크’에서 만났다. 때 빼고 광낸 기념품도, 잘 관리된 비싼 유물도 아니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 중에서도 ‘나를 데려가’ 하고 쳐다보는 것들이 눈에 밟혔다. 생각해 보면 나는 형태가 불완전하거나 모퉁이가 자연스럽게 마모된 형상에 이끌리는 것 같다.  성글고 꼬질꼬질하게 생긴, 그래서 아름다운 이 오브제들처럼 말이다. 네 발 달린 이들은 시선이 자주 닿는 곳에 놓아두는 편인데,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이리저리 옮기기도 한다. 고양이 오브제를 빛이 잘 드는 창가에 앉혀두고, 강아지 오브제를 산책하는 기분 내라며 작은 화분 사이에 세워놓기도 하는 식. 대중적인 기준과는 조금 다르지만 나만 아는 귀여움을 가졌다는 점에서  이 친구들은 ‘삵’처럼 사납게 생겼지만 내 눈에는 귀엽기만 한 우리 고양이 살구와도 접점이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애칭을 붙인다면 담백하게 ‘털 없는 친구들!’이라 부르고 싶다. 
by 김지회(패션 에디터)






MY COMPANION LAMP

다섯 살 때 찍은 사진에서도 존재감을 뽐내는 빈티지 램프. 이사를 거듭하던 유년시절부터 본가를 떠나 독립한 지금까지 따라왔으니 거의 30년을 함께 산 셈이다. ‘취향’이라는 단어조차 알기 전부터 함께했기에 첫인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없으면 우리 집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당연한 존재가 되어 전등갓 이음매가 망가져 끈과 접착 고무줄을 이용해 칭칭 동여매야 하는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했다. 지난해 좋은 곳에 보내주기로 마음먹고 귀여운 디자인의 디밍 램프를 새로 장만했건만, 결국 두 램프는 나란히 서랍장 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기껏 산 램프는 보조 조명으로 전락하고, 옛 램프는 스마트 전구로 교체해 매일 사용하고 있을 정도. 시야에서 벗어난 적 없는 이 램프는 내 취향의 기준점이다. 뭔가 새로 살 때도 늘 이 램프와 잘 어울리는지 고민하는 덕분에 지금 내 방은 서로 닮은 얼굴들로 가득하다. 애칭은 ‘반려등’으로 하겠다. 30년간 한결같이 내 머리맡을 밝혀주었으니. 
by 송예인(디지털 에디터)




UNCHANGING VALUES

이 티셔츠와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8년 전. 잡지에서만 봐 왔던 티셔츠를 스물한 살에 드디어 처음으로 손에 넣었다. ‘Protect the skin you’re in’이라는 타이포그래피에서 알 수 있듯 피부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마크 제이콥스가 제작한 이 캠페인 티셔츠를 위해 하이디 클룸, 빅토리아 베컴, 나오미 캠벨 등 당대 슈퍼모델과 톱 셀러브리티들이 유르겐 텔러의 카메라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섰다. 그야말로 ‘쿨’의 끝판왕이랄까. 나라는 사람은 그다지 유행을 타지 않는 편이라 내 패션 세계도, 성격도 잘 변하지 않는다. 쉽게 흔들리거나 편승하는 타입도 아니다. 가장 편하면서도 오래 입을 수 있고, 늘 기본이 되는 아이템. 새 제품은 그것대로, 헌 것은 허름한 대로 맛이 있는 티셔츠는 그 자체로 내 취향에 부합한다. 어쩌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된 것도 그가 자신의 티셔츠 컬렉션에 관해 쓴 수필집을 본 이후 그로부터 내 모습을 발견해서일지도. 어느새 수백 장의 티셔츠 컬렉션을 보유한 나지만, 여전히 이 티셔츠들을 잘 입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물세탁을 했다면 지금은 드라이클리닝을 맡긴다는 것 정도. 
by 이재희(디지털 에디터)






MAY THE FORCE BE WITH YOU

20세기, 남고생들의 로망은 나이키 에어맥스였다. 그 시절 ‘등골 브레이커’쯤 되려나. 꽤 고가였던 에어맥스 대신 나는 상대적으로 얌전한 에어포스1을 택했다. 새하얗고 멀멀한, 어쩌면 조금 투박해 보이는 에어포스1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발에는 에어포스1이 신겨져 있다. 불혹이 넘은 지금도 정갈한 블랙 레이스업 구두 대신 여전히 투박한 에어포스1을 신으며 ‘스트리트’ 취향을 고수하는 나를 온전히 드러내주는 ‘흰둥이’. 신발장 한쪽에는 조금씩 변형을 거듭한 에어포스1 시리즈로 가득하다. 어딘가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을 또 다른 취향이자 20대를 함께한 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 청바지와 함께 흰둥이도 언제까지나 내 곁을 지킬 것이다.  
by방호광(부편집장)





LIGHT OF MY LIFE

절판돼 구할 수 없는 책은 출판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창고 속 재고를 받아볼 정도로 동화책에 진심이었던 20대, 하야시 아키코의 〈달님 안녕〉은 아마도 내가 처음 구입한 동화책이다. 좋아하는 작화가인 이와사키 치히로가 작업한 동화책도 눈에 띄는 족족 구했음은 물론이다.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 동화책은 단순한 그림과 문장으로 진리를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철학서 같기도, 여러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다는 점에서 시집 같기도 하다. 같은 내용과 그림이 지금의 내게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생각하며 현재 내 상태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내 마음이 가는 동화책은 어쩐지 수상쩍은 구석이 있다. 밝은색을 썼지만 마냥 쾌활하지만은 않고, 문장은 짧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다. 이렇게 상충하는 지점은 평범한 일상을 관찰하고 생각하길 좋아하는 내가 발견한 사람들의 면면과 닮았다. 상냥하지만 심지가 굳거나 곧잘 웃지만 어쩐지 슬픈 얼굴들. 결국 따뜻한 이야기라는 점도 어디서든 온기와 다정함을 찾으려는 내가, 동화책을 좋아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by 강민지(디지털 에디터)




THE MAC MINERALIZE 

한창 메이크업에 푹 빠져 있던 대학시절, 맥 미네랄라이즈의 존재를 알게 됐다. ‘하이라이터’라는 제품군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 마치 빔을 쏜 듯 반짝이는 피부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건 획기적인 트렌드였다. 특히 ‘맥 오로라’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라이츠카페이드(Lightscapade)’ 컬러는 이 트렌드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아이템이었다. 태생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위한 브랜드인 M·A·C에서 유일무이한 기술로 만든 ‘베이크드 블러셔’라는 점도 끌렸다. 전 세계 품절 사태를 빚은 이 한정 제품을 갖기 위해 두세 개씩 사재기를 하거나, 다른 컬러 출시 소식이 들리면 매장에 대기를 걸어놓고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직접 경험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흔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애정, 한번 좋아하면 끝까지 좋아하는 애착심 그리고 수집벽. 이런 성향을 맥 미네랄라이즈에 가감 없이 풀었고, 지금도 여전히 브랜드의 의도와 아카이브가 가진 진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진 속 제품은 대부분 구매한 지 15년쯤 지난 것들이다. 사용할 수 없지만 내 젊은 날의 에너지가 담긴 소중한 물건이라 버리지 못하고 먼지가 뽀얗게 쌓여도 수납장 한 켠에 고이 모시고 있다. 오랜만에 열어보니 대학시절의 활기와 귀한 물건을 얻었다는 만족감이 반짝반짝 차오른다. 이제는 희미해진, 새로운 뷰티 아이템에 대한 흥미와 순수한 애정도 함께. 
by 정윤지(뷰티 디렉터)




COUPLE OF THE CENTURY

디즈니랜드에 가본 사람은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스토어에 들어서는 순간 무엇부터 살지 고르느라 눈알 굴리기 바쁘다는 걸. 매주 일요일 아침에 방영했던 〈디즈니 만화동산〉부터 도라에몽과 피카츄, 지브리 스튜디오의 각종 캐릭터와 짱구까지.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김새, 달콤한 로맨스와 인류애적 연민, 동료애를 가진 캐릭터를 좋아하는 마음은 지금까지 여전하다. 그런 만큼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캐릭터의 정석, 미키와 미니마우스 아이템은 꼭 커플로 갖고 싶었다. 홀수보다 짝을 이루는 게 좋으니까! 그리하여 성인이 됐을 때 엄마 손을 잡고 간 롯데월드가 아니라 ‘내돈내산’ LA 디즈니랜드에서 이 커플을 모셔왔다.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귀여운 생명체를 보며 마음을 달래고, 종종 가방에 캐릭터 인형을 달고 다니거나, 쇼핑할 때 ‘얼마나 귀여운가?’를 소비 기준으로 내세우는 나. 심지어 패션 컬렉션을 볼 때도 꽉 막힌 스타일보다 어느 하나 숨 쉴 틈이 있어 보이거나 귀여운 포인트가 있는 구석을 찾는다. ‘세기의 커플’이라 부르고 싶은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피규어는 우리 집 ‘캐릭터 존’에 우두커니 서 있다. 나는 믿는다. 귀여운 게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by 이하얀(패션 디렉터)




THE WORLD WE LIVE IN 

 고등학교 2학년. 드라마 PD를 꿈꾸던 나는 놀랍게도 막연히 상상했던 내 미래를 그대로 구현한 세계관과 마주했다. 뭘 먹으면 저렇게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지 늘 궁금했던 내 취향의 여자, 노희경 극본의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과몰입은 심각했다. 드라마를 닳도록 본 걸로 모자라 각본집의 대사마다 형광펜으로 줄 치며 인물들에 ‘자아 의탁’했으니까. 촉망받는 여성 PD로 당차게 현장을 누비는 주준영, 능력 있고 따뜻한(그리고 잘생긴) 정지오 선배, 까칠하지만 정 넘치는 국장님, 서툴지만 열심인 막내, 불이 꺼지지 않는 여의도, 퇴근 후 마시는 소주 한잔과 뜨끈한 국밥, 그리고 일이 ‘일’ 이상의 ‘무엇’이라고 믿는 사람들까지. 지금도 종종 꺼내 읽는다. 그간 나름 세상에 마모됐을 줄 알았는데 내 취향은 그대로였나 보다. 이제 ‘그들이 사는 세상’과 다른 현실 속에 사는 줄 알았던 내 주변 사람들, 가족과 친구들, 회사 식구들은 내가 사랑한 주준영과 정지오, 국장님과 막내, 일이 ‘일’ 이상의 ‘무엇’이라고 믿는 인물들을 그대로 닮아 있었으니까. 
by 전혜진(피처 에디터)




THINGS MAKE US SMILE

손정민 작가의 그림을 처음 만난 건 〈엘르〉 에디터였던 2012년의 일이다. 투명하고 컬러플한 수채화 톤에 이국적인 인물 표현 그리고 그 인물들의 패션 감각까지. 그 센스에 매료돼 당시 뉴욕에 머물던 그의 얼굴도 모른 채 〈엘르〉를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이 오고 갔다. 한발 더 나아가 그녀의 작품을 집에 두고 싶다고 생각한 건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의 영역을 넘어 작가로서 자신의 그림과 재료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을 때였다. 꽃과 사람, 동물, 세라믹 오브제로 태어난 위트 있는 캐릭터, 전설적인 여성 아이콘 등. 판화 연작인 이 그림들을 만난 건 2019년에 열린 작가의 개인전 〈Things Make Us Smile〉에서다. 〈엘르〉 편집장으로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결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로 시작하는 커리어에 대한 다짐 혹은 활력을 불어넣을 뭔가가 있었으면 했던 나는 삶의 키워드를 찾은 기분이었다. 그림 속 멧돼지 모녀의 걸음걸이는 당당했고, 토끼를 태우고 물을 건너는 오리는 다정했으므로. 지금도 소파 뒤편에 나란히 놓인 두 점의 그림을 볼 때마다 자주 당당하고 종종 다정하고 싶다는, 그때의 마음을 떠올린다. 지난해 또 한 번의 개인전을 가진 작가는 전시가 마무리될 즈음 자신의 소셜 계정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을 향한 아름다운 독려처럼 느낀 그 순간들을, 다른 누군가에게도 나의 그림으로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종종 생각합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나는 그의 그림을 통해 아름다운 독려를 느낀다.  
by 채은미(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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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마루 / 전혜진 / 정소진
    사진가 김형상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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