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라는 치트키 #프리워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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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라는 치트키 #프리워커

마케터 킴제이는 30개국을 여행하며 3000여 개의 브랜드를 컨설팅했다.

김초혜 BY 김초혜 2023.08.04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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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라는 치트키

 
뉴욕에서 이 글을 쓴다. 10일 전엔 네팔이었고, 히말라야에도 올랐고, 미국 신규 커머스 시장 브랜드와 1차 미팅도 했다. 여행하면서 일하는 노하우에 관한 온라인 강의는 순식간에 50명의 수강생이 모였다. 나의 누적된 경험을 비즈니스로 만들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뉴욕에는 2주 정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왔다. 그 뒤로 한 달 정도 더 지내보려고 알아봤더니 한 달 주거 렌트 비용이 500만 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 했다. ‘Nomad List’ 사이트를 보니 멕시코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꽤 모여 있고 코워킹 플레이스도 많다고 한다. 인터넷 속도도 빠르고, 페이스북 그룹 페이지에 올라온 집 가격을 보니 한 달에 80만 원이면 방 두 개에 수영장이 딸린 집에서 살 수 있다. 30만 원만 있어도 집을 구해서 지낼 수 있다는 유튜브 후기를 보고 나서 곧바로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뉴욕에서 멕시코까지 15만 원. 이건 당장 가라는 메시지야!
 
2년 정도 파트너 제리와 함께 여행하며 일하고 있다. 재작년 6월부터 시작된 여정이다. 처음에는 북미에 10개월 정도 있었고, 발리와 태국도 다녀왔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살자는 마음으로 지구 곳곳에 우리만의 베이스캠프를 만들며 지낸다. 우리가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를 시작했을 때는 대단한 용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제리와 나는 세계를 여행하며 만났고, 우리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오래 했다. 그때의 삶은 여행을 뒤로 미루는 것이 당연했다. 일이 끝나면 밤 9시. 팀원들도 챙겨야 하고, 회사 전략회의도 준비해야 했으니까. 매일 밤 스트레스로 고민을 이어가다가 이마에 힘을 준 채로 잠들었고, 모든 일상의 축이 회사에 맞춰졌다. 출퇴근으로 바쁜 삶이 열심히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지고 제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미국 길거리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는데, 백신도 개발되기 전이라 누군가 그를 한국에 데려올 수도, 미국에 갈 수도 없었다. 제리의 아버지는 두 달이 지나 재가 되어 우리 집 현관에 택배로 도착했다. 상자는 너무 가벼웠다. 한 사람의 무게가, 죽음이, 너무나 가벼워서 무서웠다. 이렇게 살다 죽으면 억울하겠다는 마음이 가슴에 사무쳤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여행하면서 살아보고 싶다는 목표를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딱 1년. 여행하면서 일하고, 안 되면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생각으로 떠났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계획대로 된 일은 별로 없었다. LA에 도착해 줌으로 마케팅 강의를 시작했다. 현지 친구들에게 내 포트폴리오를 돌렸다. “주변에 마케터 찾는 사람 있으면 나 연결해 줘! 일단 20분만 미팅해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하고, 아니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소개해 줄게.” 하루에 다섯 명에게 연락을 돌리는 게 목표였다. 블로그에는 마케팅 강의 콘텐츠와 리뷰를 올렸다. 일이 없으니 불안했다. 괜히 바다 앞에서 엑셀을 켰고, 사막 위에서 PPT를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지인을 통해 한국 상품을 미국에 소개하는 마케터를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풀타임 업무를 제안받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온 지 얼마 안 된 상태였기에 한 곳과 계약을 맺고 정착하는 일이 덜컥 답답하게 느껴졌다. 대표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대표님은 인생에서 기회가 쏟아질 때가 있었나요? 지금 제가 그렇거든요. 많은 기회가 오는데 하나만 선택하라면 전 금세 떠날 것 같아요. 만약 저랑 일하길 원한다면 제가 여행하는 시간과 장소에 맞춰 일하고 싶어요. 업무시간은 따지지 않고 결과물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아니면 제가 딴생각하지 않게 2억 원을 주시면 단순하게 돈만 보고 이것만 해볼게요. 언젠가 제 사업도 해보고 싶거든요.” 척추가 꼿꼿이 서고 손에 땀이 났다. 남의 배에서 노만 젓던 내가 앞을 헤치고 나와 키를 잡아버렸다. 마음이 기우는 대로 힘차게 방향 키를 넘겼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Yes’. 원하는 것을 말했더니 이뤄졌다. ‘뭐지, 이게?’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기회의 바다와 설렘과 두려움을 느꼈다. 온라인으로 일하는 걸 불안하게 생각하는 클라이언트를 위해 3개월 치 예상 작업물을 PPT로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은 줌 미팅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출퇴근하지 않아도 일과 삶을 내 손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특별한 ‘치트 키’를 얻은 느낌이었다.
 
디지털 노마드, 워케이션 시장이 한국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 올랐다. 인터뷰와 토크쇼 요청을 계속 받는 중이다. 마음을 열고 세상 구경해 보자고 나선 발걸음인데, 이 이야기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따금 ‘어떤 사람이 노마드 라이프에 어울리는가’라는 질문을 받지만, 잘 모르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행복한 방향으로 가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엔 3개월 동안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챗GPT로 코드를 받아 일하는 스웨덴의 마크도 있고, 소극적인 성격이라 이메일로 일하자며 회사에 연봉 조율을 역으로 제안한 빅토리아도 있다. 남편의 사촌과 사랑에 빠진 프랑스 친구는 네팔에 가서 요가와 명상 수련을 하더니 그것으로 온라인 사업을 시작했다. 시간과 경험을 아까워하지 않고 진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계산도, 후회도 없다.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부족한 점을 헤아리면서 고개 처박고 살던 나도 이제야 내 품으로 오는 기회들을 안아보고 있다. 세상 곳곳에서 나를 알아가는 것을 직업으로 살아보는 모든 순간이 그저 아름답다.
 
킴제이
노마드 마케터. 30개국을 여행하며 3000여 개의 브랜드를 컨설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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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김초혜
    사진 Unsplash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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