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두 작가의 그림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닮은 듯 다른 두 작가의 그림

미술가 이수경과 정수정은 예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다. 세대는 다르지만 두 작가의 화폭에 담긴 초현실적 풍경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꽃이 피고, 물이 흘러넘치고, 온갖 에너지가 생동하는 황홀의 파라다이스.

이마루 BY 이마루 2023.06.23
profile 이수경 1963년생. 회화, 오브제, 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시드니 비엔날레 등 다수의 국제 행사에 참여했다. LA 카운티 미술관, 영국박물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관 등 전 세계 주요 기관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profile 이수경 1963년생. 회화, 오브제, 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시드니 비엔날레 등 다수의 국제 행사에 참여했다. LA 카운티 미술관, 영국박물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관 등 전 세계 주요 기관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짤’과 ‘썰’,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회화는 어떤 의미일까? 일민미술관에서는 지금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이하 〈히스테리아〉) 전시가 열리고 있다. 미술사에 기록된 유명 작가를 소개하는 것만큼 동시대에 응답하는 작가를 보여주는 것 또한 미술관의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꽤 긴 시간 동안 단색화 열풍에 가려져 있던 한국 회화의 ‘리얼’한 경향과 작가들의 개별적 표현방식에 주목한 이번 전시는 13인의 한국 회화 작가들을 초대한다. 그 이름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이수경이다. 버려진 도자기 파편을 순금으로 이어 붙인 ‘번역된 도자기(Translated Vase)’ 연작으로 국제적인 미술가 반열에 오른 그가 회화 작품으로 전시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한지에 경면주사를 이용해 그린 ‘불꽃’ 연작을 포함해 2014년 작가 본인의 전생 체험에서 비롯한 몽환적인 장미 그림 ‘오, 장미여!’ 연작을 선보인다. 적갈색을 띠는 경면주사는 불교 탱화나 무속신앙에서 주로 부적을 그리는 데 사용된 천연 광물 안료로, 옛날에는 불로장생 묘약으로 통했다. 작가에게 ‘불꽃’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 속에 피어오르는 비물질적 에너지라면, 최면을 통해 무의식 세계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장미’는 생과 사, 과거와 현재,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피어난 영혼의 꽃이다. 정수정은 어떤가! 서로 세대는 다르지만 두 작가의 화폭에 담긴 초현실적 풍경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온 우주의 기운과 천지만물이 생동하는 황홀한 파라다이스.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예술대학에서 석사를 마친 정수정은 2018년 한국에서 첫 개인전 〈스위트 사이렌 Sweet Siren〉으로 데뷔했다. 이때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에게서 영감받은 ‘보스에게 보내는 답변’을 선보였는데, 약 3m에 달하는 화면에는 신비로운 대자연을 배경으로 벌거벗은 채 뒤얽힌 보랏빛 군상들의 천태만상이 펼쳐졌다. 그리고 지금 일민미술관 로비에는 폭포수가 쏟아지듯 황홀한 대형 걸개 그림 ‘교미’가 걸려 있다. 정수정이 관심을 갖는 건 일상에 존재하나 이성과 상식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정기나 영적 에너지를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운명처럼 서로의 작품에 매혹됐다.
 
profile 정수정 1990년생. 2018년 첫 개인전 〈Sweet Siren〉을 시작으로 OCI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SeMA 창고 등에서 개인전을 펼친 신진 미술인. 탄탄한 드로잉을 토대로 SF 혹은 신화 속 캐릭터에 기반한 회화를 그린다.

profile 정수정 1990년생. 2018년 첫 개인전 〈Sweet Siren〉을 시작으로 OCI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SeMA 창고 등에서 개인전을 펼친 신진 미술인. 탄탄한 드로잉을 토대로 SF 혹은 신화 속 캐릭터에 기반한 회화를 그린다.

두 분이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라고요 
정수정 정말 꿈이 이루어졌네요(웃음)! 대학생 때부터 이수경 작가의 작업을 알고 있었고,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먼 길 이야기〉(2021)도 봤어요. 딸을 위해 직접 지은 동화를 바탕으로 한 전시였는데, 그때 그림이 지닌 힘을 믿게 됐어요. 밀도와 서사가 기반이 된 인물들의 폭발적인 이야기를 보며 그림에 작가의 영혼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을 했죠. 저 역시 인물의 행위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에 관심이 많고요. 
이수경 정수정 작가의 작업을 처음 봤을 때 이쾌대의 작업이 떠올랐어요. 호감이라는 건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와 링크될 때 생기잖아요. 전 그림에서 중요한 게 획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쾌대 작가가 선을 쓰는 걸 보면 칼을 휘두르는 듯해요. 서양화 작가지만 실제로 동양 붓을 많이 썼더군요. 서양화는 큰 면에서 작은 면으로 구축해 올라가는 건데, 선이나 여러 부분에서 정수정 작가의 작업이 참 좋다고 생각했죠. 
 
이쾌대는 한국 근대 리얼리즘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죠. 얘기를 듣고 보니 장대하고 역동적인 군상들과 거침없는 획으로 강렬한 에너지를 표현한다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져요. 
정수정 저도 이상한 붓을 많이 씁니다(웃음). 서양의 고전 회화를 좋아하지만 언젠가는 획으로만 이뤄진 작업도 하고 싶어요. 한 번에 딱 그어진 선. 그렇게 해서 작품이 완성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직 기술이 더 필요합니다. 이수경 작가는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전통춤을 배웠죠. 춤동작에서 획을 긋는 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깨지고 금이 간 도자기를 금으로 이어 붙인 ‘번역된 도자기’와 전생 체험을 통한 ‘전생역행그림’까지, 이런 과정을 통해 얻으려는 건 무엇일까요  
이수경 대부분의 제 작업은 수공적인 것들입니다. 신체 감각과 사용법이 진화할수록 작업의 표현력도 풍부해지거든요. 전통춤의 움직임은 몸의 감각을 끌어올려 나만의 붓질로 표출할 수 있게 도와주죠. ‘번역된 도자기’의 주재료인 ‘금’ 역시 전통춤과 서예를 익히며 유려하고 역동적인 필선처럼 더욱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생 체험은 내적 영역을 탐사하는 방법 중 하나예요.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늘 흥미로워요. 이런 다양한 시도는 결국 신체와 정신의 유기적인 작업방식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죠. 
 
이번 〈히스테리아〉 전시에서 ‘오, 장미여!’ 연작을 선보입니다. 왜 장미인가요 
이수경 장미는 전생으로 가는 여정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꽃이에요. 장미 꽃밭은 일종의 ‘게이트’와 같죠. 현생과 전생,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마주한 장미 꽃송이들은 저를 깊은 내면의 여행으로 이끌어주는 존재예요. 실제로 캔버스에 프레데릭 말 ‘윈 로즈’ 같은 향수를 뿌리기도 하고, 향을 피우거나 향기로 공간을 채운 상태에서 작업하기도 해요.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도 그런가요 
이수경 맞아요. 그 외에도 이니시오의 ‘아토믹 로즈’, 메모 파리스의 ‘로즈 파리스 로즈’, 에르메스의 ‘로즈 이케바나’ 등을 사용했어요.
 
이수경, ‘불꽃 변주 4-1 Flame Variation 4-1(2014)’, Pigment on silk, 195x138cm.

이수경, ‘불꽃 변주 4-1 Flame Variation 4-1(2014)’, Pigment on silk, 195x138cm.

작가의 작업이 내면에서 시작된다면 정수정 작가의 작업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각종 사건사고에서 출발합니다. 최근 관심사는
정수정 영상이나 문자 매체를 통해 소식을 접할 때 제가 항상 적는 문장이 있어요. ‘고래들의 떼죽음’ 또는 ‘빅 풋의 발자국’ 같은 과학적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이슈들이 제 상상과 작업의 동기가 되는 것 같아요. ‘왜 고래들은 떼를 지어 자살할까?’ 이런 생각들이 그림을 그리고 싶게 만들어요. 요즘은 균류와 버섯, 포자들. 버섯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관심이 생겼는데, ‘결국 지구는 그들로 인해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버섯으로부터 출발한 게 아닐까’ 싶어요. 아직 더 알아봐야 해요. 생명력에 대한 생각이 계속 확장되고 있어요. 동적인 것에서 정적이지만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세계를 지휘하는 조용한 힘’ 같은 거요. 
 
전시장 3층에 놓인 작업 레퍼런스 자료엔 버섯 외에도 다양한 이빨 사진이 있더군요. 신작 중에 ‘이빨이 있는 정물화’도 있고요
정수정 하하, 그것도 요즘 관심사입니다. 이가 아파서 치과를 다니다 보니 자꾸 꿈을 꾸는 거예요. 꿈에서 윗니가 빠지면 무슨 일이 생긴다는 등 이와 관련된 미신이 있잖아요. 치과에서 입을 벌리고 있을 때 오는 공포라든가 내가 볼 수 없는 내 몸의 공간이란 생각이 들어 이걸 소재로 삼아 보는 이들이 더 큰 상상을 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이빨이 있는 정물화’는 그중 하나로, 고전 회화의 정물화 형식을 가져와 제 사적인 이야기와 낯선 소재를 접목시켰어요.
 
두 분은 신화적인 소재를 즐겨 사용합니다. 그런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이수경 제 작업은 세상의 숨겨진 의미, 비밀을 찾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허구처럼 느껴지는 신화, 특히 동아시아의 고대라는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꼭 필요한 소재죠.
정수정 전 요정이나 님프처럼 주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가져와요. 스코틀랜드 유학 시절, 건조하고 황량한 자연을 보면 그 안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어요. 신화는 인간이 볼 수 없는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이야기하죠. 개미의 관점이라든가 벌의 관점이라든가 하늘의 관점. 인간과 자연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요. 그림을 통해 그런 존재들을 노출시킬 수 있다는 게 흥미로운 지점이고, 거기에 쾌감이 있어요.
 
이수경, ‘오, 장미여! 그러고는 달을 향해 힘차게 뛰어올랐어요 Oh Rose! and is Leaping High to Reach the Moon(2022)’ Acrylic on canvas, 162x130cm.

이수경, ‘오, 장미여! 그러고는 달을 향해 힘차게 뛰어올랐어요 Oh Rose! and is Leaping High to Reach the Moon(2022)’ Acrylic on canvas, 162x130cm.

이수경 작가는 전생 체험을 통해 흑인 전사, 곰, 사슴은 물론 해일을 일으키는 바다 에너지가 된 자신을 경험한 적도 있죠
이수경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잖아요. 제가 전생을 믿지 않으면서도 전생 역행 체험을 했던 건 뭘 그릴지 모르는 상태에서 나만의 소재를 찾기 위해서였어요. 그래서 그 여행의 내러티브를 기록하고 거기서 만난 존재들을 표현했는데, 처음엔 내가 어마어마한 스토리텔러인 줄 알았죠. 어쩌면 상상력이 이토록 풍부한지 천재인 것 같다고(웃음). 그런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더군요. 1년에 열두 번, 한 번에 7~8시간씩 체험하면서 깨달은 건 결국 의식이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무의식은 자유로운 상상력의 보고가 아니라 억압의 장소였던 거죠. 내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여성으로 또 작가로 살아가면서 겪었던 고난과 역경이 희생과 복수로 계속 나타나니까. 그렇게 의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인문학 공부를 했어요.
정수정 작가는 실존하지 않은 이들의 초상화를 그리죠
정수정 근대회화는 권력 있는 자의 초상을 남기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했잖아요. 작가들은 그렇게 경제활동을 했고. 그렇다면 현대회화, 현대의 초상화는 어떤 역할로 다가올 수 있을까? 가상의 인플루언서, AI가 만든 얼굴처럼 실존하지 않는 누군가의 얼굴과 이름을 가져와보고 싶었어요. 오늘날 그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래서 초상화의 형식인 한 명씩 빳빳하게 서 있는 이미지를 가져와 나름대로 표현한 거죠. 이 인물들은 저의 일부일 수도 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여성의 얼굴일 수도 있어요.  
 정수정, ‘이빨이 있는 정물화 Still Life with Teeth (2023)’, Oil on canvas, 27.5cmx35cm.

정수정, ‘이빨이 있는 정물화 Still Life with Teeth (2023)’, Oil on canvas, 27.5cmx35cm.

두 분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이수경 2005년, ‘불꽃’과 ‘매일 드로잉’ 시리즈에 집중하면서 스스로의 유약함을 드러내는 두려움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됐어요. 온 심경을 손끝에 집중해 작업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일체감을 이루고 희열과 환희에 휩싸이는 순간이 와요. 이런 경험은 내 유약함을 온전히 드러내고 부서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를 갖게 합니다. 
정수정 거의 중독 같아요. 왜냐하면 저에게 현실은 건조하거든요. 그림 안의 진행 방식은 느리고, 어떤 면에선 수행 과정과 같아요. 무엇을 그려야 할지, 어떻게 완결될지 모르는 백지 상태에서 새하얀 화면 속에 내 세상을 채운다는 게 큰 의미가 있어요.
 
이번 전시의 제목 〈히스테리아〉처럼 말이죠
이수경 전 이번 전시가 한 개인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에 대한 이야기라 좋았어요. 우리나라의 페인팅이 단색화 아니면 민중미술로 대표되는데 집단이 아닌, 흩어져 있는 외로운 존재들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많은 가능성과 질문을 던지게 해요.
 
작업실 풍경이 궁금합니다
정수정 신용산에 자리한 작은 오피스텔 같은 작업실과 그보다 층고가 높은 한예종 미술원 창작 스튜디오를 오가며 작업해요. 환경에서 오는 물리적 제약만 없다면 큰 사이즈의 작업을 계속 하고 싶어요. 상상이 확장되는 느낌이거든요.
이수경 저는 아예 작업실에서 살아요. 부암동의 2층 주택인데, 원래는 1층에서 도자기 작업을 하고 2층은 생활공간으로 썼다가 2층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기어들어가 잘 수 있는 공간이 한 평쯤 돼요. 거의 공장생활을 하고 있죠(웃음). ‘이사 가야지’ 하면서 10년째 이러고 있네요.
 
정수정, ‘뿔 Horn(2023)’ Oil on canvas, 50x45cm.

정수정, ‘뿔 Horn(2023)’ Oil on canvas, 50x45cm.

바닥에 종이를 펼쳐놓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그림을 그린다고 들었어요. 서예를 하는 것처럼
이수경 맞아요.
정수정 너무 재미있네요. 자세가 주는 집중력이 있나 봐요. 저는 서서 움직이면서 그려요. 가만히 앉아서 그리는 걸 잘 못해요. 하나만 그리는 건 지겨워서 여러 점의 그림을 깔아놓고 왔다갔다하죠. 
이수경 저는 좀 지겨워지면 뒤도 안 돌아보고 붓을 놔요. 다른 가지가 많으니까. 요즘은 장미를 그리는 데 거의 미쳐 있는 것 같아요. 안 그리면 불안할 만큼 활활 불타지만 언제까지 계속할지는 모르겠어요.
 
한국의 여성 작가로서 후배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수경 전혀 없습니다. 예술이라는 건 시간을 초월해 영속적 가치를 탐구하는 영역인데, 여기에서 몇 살의 나이 차는 의미가 없죠. 다 현역으로 작업하는 거니까. 그리고 전 한 번도 나이 들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 문제 많은 사람이에요(웃음).
 
정수정 작가는 1990년생입니다. 당시 이수경 작가님은 무엇을 하셨나요
이수경 이불, 최정화 같은 홍대 작가 친구들과 열심히 놀러 다녔죠. 제가 다니던 학교(서울대 미대)에선 가르쳐주지 않았던 개인적 정체성의 표현이라든지 내면세계의 탐구 같은 걸 저는 이들에게 배웠습니다. 해외의 최신 예술 서적과 잡지를 비롯해 컬트 무비를 잔뜩 보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게 됐죠. 알에서 깨어났달까,  중요한 시기였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만난 두 사람. 세대를 초월해 만난 정수정과 이수경을 포함해 13인이 참여한 전시는 6월 25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만난 두 사람. 세대를 초월해 만난 정수정과 이수경을 포함해 13인이 참여한 전시는 6월 25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서울과 도쿄에서 연 첫 개인전 〈나와의 결혼〉(1992)에서 이수경 작가가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얘기했다면, 정수정 작가는 데뷔작으로 15세기 네덜란드 화가에게 편지를 썼어요
정수정 2016년 한국에 돌아왔는데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생각이 너무 많아서 일부러 밀도 높은 작업을 하기 시작했죠.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미스터리한 인물이에요. 정보도 거의 없고. 그래서 혼자 상상하며 나름대로 응답한 거예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같은 양가적 이론이 무너진 세상을 가정하고 인간사를 넣었죠. ‘보스에게 보내는 답변’은 제겐 중요한 작업이고, 그 이후로 단단해진 것 같아요.
이수경 요즘 작가들은 열심히 작업하는 것 같아요. 그 나이 때 전 뭘 했을까요? 아, 출산하고 아이를 키웠네요. 물론 끊임없이 뭔가를 하긴 했죠. 내 옷을 뜯어서 아이 옷을 만들고 장난감을 만들어주고. 제 딸도 미술을 해요. 페인팅을 하는데 베를린에 있죠. 우린 서로 미술 얘기는 안 합니다.
 
다음 전시 계획이 궁금합니다
정수정 〈히스테리아〉 전시에 참여한 이재석 작가와 6월 말에 갤러리밈에서 2인전을 해요. 그리고 에이라운지 갤러리와 함께 프리즈에서도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수경 10월에는 파리의 아시아시립박물관에서 개인전이 계획돼 있어요. 같은 시기에 파리 마시모드 카를로에서 개인전이 열리고요. 내년 초에는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이 개최될 예정이라 전시 준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오늘 이렇게 서로를 만난 소감은
정수정 너무 큰 힘을 받았어요. 저도 이렇게 나이 들고 싶어요. 할머니가 될 때까지 그림을 계속 하는 게 제 꿈이거든요. 쉽지 않겠지만 꿈꿀 수는 있잖아요? 이렇게 실재하니까, 용기가 생겨요.
이수경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고 꼭 써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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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미혜
    에디터 이마루
    사진 이우정
    디자인 정혜림
    디지털 디자인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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