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식탁을 응시하는 법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나의 식탁을 응시하는 법

채식을 향한 솔직한 욕망부터 지구를 구할 식재료까지. 매일 마주하는 식탁을 또렷이 응시해 온 사람들의 요즘 생각 리포트.

김초혜 BY 김초혜 2023.04.23
 
‘우울할 때는 고기 앞으로 가라’는 말은 언젠가부터 시대에 뒤떨어진 클리셰처럼 들린다. 우리는 언제부터 고기가 영혼을 위로한다고 믿게 됐을까? 비건 파인 다이닝 ‘천년식향’ 오너 셰프이자 책 〈채식하는 이유〉 〈고기가 아니라 생명입니다〉의 공동 저자 안백린은 한국의 채식생활 저변에 뒤엉킨 생각에 물음표를 던진다. “우리는 소금 친 음식이 건강에 나쁜 걸 알지만 짭조름한 양념이 듬뿍 묻은 김치는 건강한 음식이라고 해요. 저염에 대한 숭배와 소금에 대한 혐오가 뒤섞여 있죠. 한편 고기에 대해서는 꽤 느슨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요. 사람들은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육식을 하고 있다고 인지하지 못해요.” 안백린은 육식을 선택하는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육식의 풍미를 좋아하는 건지, 고기를 먹었을 때 대접받는 느낌을 즐기는 건지,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이 좋은 건지 말이다. “저도 고기를 좋아했어요. 제가 채식을 지향하는 이유는 동물권과 환경 문제에 대한 고민 때문인데, 육류의 풍미를 느끼고 싶은 욕망은 억누른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안백린은 채식을 지속하기 위해 자신의 욕망과 직면했고 발효에서 답을 찾았다. 자신의 레스토랑 천년식향을 ‘발효 바’라고 부르며 발효 음식에 집중한 이유는 분명하다. 발효가 채소의 감칠맛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육류를 먹으면서 느꼈던 미각적 만족감은 버섯을 발효했을 때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한우를 먹을 때 느껴지는 감칠맛을 내는 구아닐산이나트륨(GMP)은 버섯을 발효해도 똑같이 발생한다. 만약 채식을 결심한 후 이를 지속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은 적 있다면, 음식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속이 편안해서 채식을 하는지, 동물을 위해서인지, 내가 멋져 보여서 채식을 하는지 가만히 떠올려보자. 어떤 점을 드러내고, 또 감추고 싶은가?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직면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안백린은 나의 한 끼를 선택하는 진짜 이유를 알아야 지속 가능한 밥상을 차릴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매일 하루에 세 번, 지구를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아워플래닛 공동 대표인 김태윤 셰프의 말이다. 아워플래닛은 〈한국인의 밥상〉 취재 작가였던 장민영과 레스토랑 이타카의 셰프였던 김태윤이 각자의 식탁 위에 무엇을 올리면 세상이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변화할지 고민하는 미식연구소다. 이들은 지속 가능한 바다를 위해 어떤 해산물을 먹어야 하는지, 육식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기른 가축을 소비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실천법을 주제로 포럼과 강의, 다이닝을 진행하는 동시에 기업의 지속 가능한 메뉴 컨설팅으로 크고 작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너도나도 친환경을 외치고, ESG 경영이 시대를 아우르는 트렌드로 떠오르지만 비건과 지속 가능성이 여전히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 장민영은 이에 대해 명쾌한 해법을 제시한다. “환경을 위한 가장 손쉬운 실천법이 있어요. 제철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거죠. 지구를 위해 거창한 요리를 해내겠다는 마음보다 계절에 기대 자라나는 푸성귀를 다양하게 즐기면 좋겠어요.” 장민영은 식탁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여전히 모호하고 거창한 단어를 ‘제철 음식’이라는 키워드로 단숨에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수입 식재료를 선택하는 순간 멀고 먼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식재료를 옮기는 과정을 소비하게 되고, 그 자체만으로도 지구는 병든다. 인간이 배출하는 탄소량 중 무려 3분의 1이 음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아워플래닛은 ‘로컬오딧세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의 제철 먹거리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있다. 지리산, 울릉도, 속초, 태안 등 로컬의 다양한 식재료로 요리하고, 식재료가 어디서 자라나 누구의 손을 거쳐 내 식탁 위에 오르는지 일상 먹거리의 배경과 서사에 몰두한다. 이들이 탐구한 식재료의 연결고리는 앞으로 무엇을 생각하며 먹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커다란 힌트가 된다. 생선과 채소의 실물을 평생 마트와 식당에서만 본 어린아이들이 식재료가 마트에서 자란다고 믿는다는 ‘웃픈’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가. 우리가 흔히 먹는 식재료는 자본주의 원칙에 따라 자라난 단일 품종인 경우가 많다. “잘 팔리는 수미감자는 살아남았지만 나머지 감자 품종은 잡초처럼 치부되기도 하죠.” 포근포근한 식감, 매끈한 질감의 감자, 향이 강한 감자 등 다종다양한 식재료의 특성에 따른 여러 조리법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다양한 품종을 길러내던 비옥한 땅은 소모적인 쓰임새로 병들어 가고, 동시에 우리 식탁은 점점 빈곤해진다.
 
내 미식생활과 지구를 구해낼 지속 가능한 식탁의 법칙과 방식을 어떻게 찾으면 좋을까? 안백린은 ‘내가 환경을 위해 이토록 노력하는데’ 하는 마음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환경을 위한 나의 노력이 억울하게 느껴지고, 다른 사람의 무심함을 원망하게 되는 건 자신의 욕망을 억누른다는 신호다. 타인을 향한 비난과 스스로를 향한 억울함은 끝끝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지기 쉽다. ‘세상은 원래 환경 따윈 신경 쓰지 않아’ 하고 하얀 깃발을 드는 순간 환경 파괴적인 삶으로 돌아가게 되는 건 순식간이다. 반면 장민영은 미식을 향한 명료한 호기심이 나만의 속도로 지속 가능성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 제안한다. “요즘 홀아비밤콩이 맛있다는데 어디서 살 수 있지, 어떤 생산자가 길렀지? 밥 지을 때 넣었더니 맛있더라!”처럼 ‘진짜 맛’을 구하려는 음식 탐험가들이 많아질수록 지구는 더욱 건강해질 거다.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아침 · 점심 · 저녁 식탁에 앉는다. 빈 접시에 어떤 요리를 담을지 결정하는 일은 오롯이 자신에게 달렸다. 내 밥상을 노려보고, 마음껏 음미해 보자. 작은 노력으로 이뤄낸 변화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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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김초혜
    일러스트레이터 gus & stella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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