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서파는 어떻게 만났나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어떻게 만나게 됐더라?’를 생각하게 되는 모임이 있다. ‘범서대문파’(초기에 서대문에서 만났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붙였지만 그대로 이름이 돼버렸다)를 줄인 말인 ‘범서파’라는 이름을 가진 이 모임은 연령대가 서로 다른 여성 여섯 명의 사적인 모임이다. 2017년 9월에 만나 맛있는 중국 음식을 먹고, 편의점 벤치에 앉아 과자를 나눠 먹은 것이 첫 만남이라는 것 말고 왜 모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 모임은 신기하게도 5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한두 달에 한 번,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보는 것 말고는 주로 단톡방에서 대화를 나눈다. 어제 본 드라마 얘기부터 일하는 고민까지 주고받는 이야기들의 스펙트럼도 꽤 다양하다. 특히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은 일하다 경험한 신묘한 이야기들이다. 분명 2022년에 살고 있는데, 우리가 일하면서 경험하는 일들은 왜 이전 세기에 머물러 있는지. 투자, HR, 미디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는 친구들과의 대화는 분명 분노했던 ‘그’ 일을 그저 일하며 경험한 신기하고 묘한 일로 바꾼다.
내 경험에 포개지는 친구들의 경험은 내가 일하는 자리에서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게 만든다. 나 말고도 이 어려움이나 막막함을 돌파하며 자기 몫을 해내는 여성 동료들이 곁에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일하면서 여성들이 용기를 내고, 또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경우는 꽤 많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여성 창업가들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17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연구자 데이나 칸즈는 남성 창업자와 여성 창업자가 투자자에게 다른 유형의 질문을 받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남성 창업자는 대체로 ‘장려형’의 질문을 받는 반면, 여성 창업자는 ‘방어형’의 질문을 받는다는 것이다. 남성 창업자에게는 “고객을 어떻게 확보할 예정인가요?”라고 물으면서, 같은 주제여도 여성에게는 “현재까지 고객을 몇 명이나 확보했나요?”라고 묻는 식이다. 남성들은 “수익은 어떻게 낼 계획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 한편, 여성들은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미묘한 차이처럼 느껴지지만,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하는 것과 방어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은 대화의 내용과 방향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 사업이 가지는 더 멋진 비전과 가능성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인 질문을 받았을 때 좀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업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투자 심사 자리에서부터 다른 조건을 헤쳐나가야 한다.
우리는 이런 조건을 어떻게 헤쳐나가면서 일할 수 있을까? 그 방법 중 하나는 “언제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다양한 영역의 여성들과 이너 서클을 만드는 것”이다. 연구자 양양은 2019년 발표한 한 연구를 통해 느슨하게 연결된 이너 서클을 가진 여성들이 커리어 개발 면에서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더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책은 알려주지 않는 정제되지 않은 현장의 목소리, 직접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관계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만 하기도 바쁜 세상에서 정보를 주고받고, 든든함을 얻을 수 있는 이너 서클이나 커뮤니티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까르띠에가 창업 교육기관인 언더독스와 함께 여성 창업가 모임 ‘언더우먼 임팩트 커뮤니티’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웠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까르띠에가 2009년부터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를 통해 비즈니스로 세상에 변화를 만드는 각국의 여성 창업가들을 오랫동안 지원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매년 발표되는 후보자들과 최종 선발된 여성 창업가들의 면면을 보면서 자극을 받기도, 사업에 아이디어를 얻기도, 든든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15년간 글로벌 여성 창업가 커뮤니티를 오랫동안 만들어온 까르띠에가 한국 여성 창업가들의 글로벌 진출과 임파워링을 위한 커뮤니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것도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을 만들어가는 데 모든 시간을 쏟고 있는 여성 창업가들이 ‘이너 서클’이 돼줄 동료들을 만나게 해주는 커뮤니티라니.
이 커뮤니티는 단순히 여성 창업가들을 연결하는 것뿐 아니라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이 가진 비전과 미션이 더 의미 있게 지속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여성 창업가가 서로 연결돼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사업의 순간들을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순간으로 바꿔내면 좋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지금도 “브랜딩 잘하는 스튜디오 아는 사람?”이라는 ‘톡’이 왔다. 지난번에 같이 일했던 스튜디오가 괜찮았는데 그곳을 추천해 볼까 싶다. 범서파든, 언더우먼 임팩트 커뮤니티든, 이름 없는 단톡방이든, 서로를 힘 나게 하는 크고 작은 연결이 여성들에게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런 기회들이 만들어지는 2022년 여름을 기대해 본다.
홍진아 카카오 임팩트 매니저이자 프로N잡러. 책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합니다〉를 펴냈고, 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 ‘빌라선샤인’을 운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