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발칙한 이탈리아 여행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나의 발칙한 이탈리아 여행기

언젠가 이탈리아 사람들의 지독하고도 광적인 제스처에 대해 꽤 난해하면서 열정적으로 기술한 적이 있다.

ELLE BY ELLE 2010.08.16


언젠가 이탈리아 사람들의 지독하고도 광적인 제스처에 대해 꽤 난해하면서 열정적으로 기술한 적이 있다. 이를테면, 운전석에 앉아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하며 동시에 뒷좌석에 앉은 사람에게 ‘두 손’으로 제스처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상황 같은 것이었다. 아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지 말라. 내가 본 것이 유령이 아닌 바에는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자, 그걸 좀 길게 묘사해보자. 우선 왼손으로 핸들을 가끔씩 조정해준다(중앙선을 넘어 미친 듯이 달려오는 트럭이 없다면 그다지 필요한 동작은 아니다)-오른손으로 가끔씩 기어를 변속해준다(이탈리아에 오토매틱이란 없다!)-휴대폰은 손으로 잡기 힘드니 턱으로 괴고 통화한다(이거,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다. 당신도 새벽 7번 국도나 자유로 같은 곳에서 도전해보시라. 기왕이면 DMB도 틀어놓고 말이다)-그리고 뒷자리에 앉은 동행을 가끔씩 돌아보며 핸들과 기어로부터 자유로운 두 손을 맞붙이고 앞뒤로 흔들어준다(‘플리즈’라는 뜻인데 이탈리아인들이 아주 많이 쓰는 제스처다). 피에몬테를 여행하며, 이 동작을 운이 좋다면 찍어올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를 태우고 다닌 마르코 아저씨는 매우 유순해서 난폭 운전이나 두 손 놓고 자전거 타기, 아니 자동차 몰기 같은 곡예는 도전하지 않았다. 그가 피에몬테 주에 소속된 공무원이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고, 원래 성격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난 그처럼 말을 느리게 하는 이탈리아인은 처음 보았다. 그래서 어찌어찌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제스처에 열정적인 이탈리아 아저씨 사진 한 장은 찍어올 수 있었다. 어쨌든 그가 오직 발로만 차를 모는 묘기를 부리는 이탈리아인만의 고유한 사진이 아니어서 심히 유감이긴 하다. 빵이 한국의 요리가 된 게 언제부터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의 어린 시절에도 빵이 있었다고 하니 일제시대부터 빵은 우리 곁에서 음식 노릇을 하고 있었을 거다. 빵이란 낱말이 포르투갈어의 ‘Pao’에서 왔다고 하고, 불어로도 비슷하게 ’Pain(빵)’이며 이탈리아어로도 다르지 않아 ‘빠네(Pane)’인데, 그런 어원을 떠나 이미 우리말이 되어 버렸다-빵이 외래어라는 사실을 모르는 초등학생도 꽤 많으리라. 빵이 밥을 대체하고 있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전히 달콤한 빵이 인기를 끌지만, 유럽식의 거칠고 곡물 느낌을 살리는 무덤덤한 빵도 꽤 널리 퍼지고 있다. 최근 홍대 앞에 갔더니 아예 전통의 유럽 스타일 빵만 파는 전형적인 유럽식 빵집이 성업하고 있었다. 슈크림과 단팥, 소보루가 아닌 빵을 파는 집에 줄을 서다니! 나는 좀 충격을 받았다. 하긴 카르보나라가 먹고 싶어서 새벽에 깨어났다는 여자애들이 있는 판에 그다지 새로운 사건 아닐지도 모른다(나는 라면이나 소주가 먹고 싶어서 그런 적은 있어도
카르보나라라니, 이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걸 만들어 팔고 있는 사람이지만서도). 이탈리아의 빵은 프랑스나 독일보다 좀 덜 발달한 느낌이다. 구색도 적고 맛도 더 투박하다. 그건 아마도 파스타를 먹는 문화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파스타로 곡물을 섭취할 수 있으므로 굳이 빵에 신경을 덜 썼으리라 유추해보는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빵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카푸치노와 크루아상이나 브리오슈를 먹는다. 하루 중에 달콤한 빵을 먹는 유일한 시간이다. 이 시간 말고는 빵에 버터를 바르거나 달콤하게 만든 빵을 먹는 일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간단히 때운 아침이 헛헛하니 11시 정도가 되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파니니를 한 개 먹는다. 그러고는 점심에 파스타, 저녁에 다시 파스타를 먹는 게 그들의 식습관이다. 파스타를 먹을 때는 보통 건조한 맛의 빵을 곁들인다. 파스타의 맛이 중요하기 때문에 빵은 가급적이면 ‘건조하고 무미한’ 맛을 낸다. 심지어 토스카나 같은 데는 소금을 아예 치지 않은 무염 빵을 곁들인다. 그러니까 빵은 주인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소리 없이 주연을 보조하는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튀지 말아야 할 존재가 튀면 ‘판’이 깨진다. 비서는 소리 없이 CEO나 대표를 보좌하는 것이지 그들이 나서는 순간, 조직이 망가진다. 김정우나 이영표가 수비 대신 골을 넣겠다고 센터포워드로 나섰다면 16강은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근데 이게 뭔 소리냐). 여하튼 이탈리아에서 파스타가 맛없다고 셰프를 불러낼 수는 있을지언정, 빵맛을 두고 인상을 쓰지는 말라는 얘기다. 빵뿐만 아니다. 내가 하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이젠 아시는 분들이 꽤 늘었던 저간의 사정이 있었다. 카르보나라에는 크림소스가 없다거나 이탈리아에 피클은 없다는 따위의,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옆구리 논설 말이다.
덧붙이자면, 발사믹 오일 같은 것도 없다.크리스티나를 불러 물어보시라. “네, 마짜요. 이탈리아에는 그런 거, 빵 찍어 먹는 거 없쩌요. 우리 씨어머니가 찐짜로 그걸 쪼아해도 난 씨러요.” 뭐, 이럴 것 같다.발사믹 말고 그냥 올리브오일만 찍어 먹는 경우도 아주 드물다. 아주 좋은 오일이 생겼다거나 몇몇 사람들의 특별한 취미가 아닌 바에는 말이다. 간장에 밥 찍어 먹는 일이 드문 것처럼. 한 가지 더. 발사믹은 주로 이탈리아 북부의 식초다. 파바로티의 고향인 모데나 지역에서 나오는 식초로 그 지역을 포함한 북부 지역에서 주로 즐긴다. 남부에서 발사믹은 아주 별난 식초 대접을 받는다. 지천으로 널린 레몬과 화이트 와인 식초를 많이 쓰지, 그 진득하고 비싼 발사믹을 굳이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 전라남도에서 가자미식해를 즐기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탈리아에서 요리 이름을 읽어서 요리법을 유추해보는 건 참 어렵다. 우선 이탈리아어를 잘 모르니, 읽어도 무슨 뜻인지 짐작이 안 된다. 영어 병기가 된 식당도 있지 않냐고? 단언컨대, 그런 식당이 맛있는 경우는 차라리 동양인 여자를 보고 껄떡거리지 않는 이탈리아 남자를 만나는 확률보다 낮다. 게다가 지역별로 요리가 워낙 다양해서 이탈리아 요리를 좀 한다고 하는 나조차 이탈리아 구석의 식당에 가면
이게 뭔 소리인지 한참 헤맨다. 사투리에 요란한 토속 식재료 이름을 줄줄이 나열하는 메뉴판 때문이다. 사실 서양 요리는 전형적인 요리 외에는 주재료와 보조 재료, 요리법을 모두 요리 이름에 넣는 게 보통이다. 당신이 언젠가 꼭 가보고 포스팅하리라 마음먹고 있는 에드워드 권의 식당의 메뉴 이름을 보실까. ‘팬에 구운 연어와 아이다호 감자, 버터에
익힌 크레이 피시 그리고 바인 토마토 쿨리스…’. 뭔 말인지 아실지 모르겠다. 솔직히 나 역시 연어와 감자, 피시, 토마토 따위의 재료 외에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여기다가 들어가는 올리브유와 소금의 원산지, 허브의 이름을 촘촘히 적어 넣기도 한다. 대체로 비쌀수록, 요리 이름의 길이와 비례한다. 한 끼에 300유로 이상 하는 미슐랭 별 셋짜리 식당의 셰프 테이스팅 메뉴는 보통 20가지 이상의 요리가 나오는데, 이렇게 되면 요리 이름만으로 우리 딸내미 알림장 공책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 같다. 요리 이름이 길고 자세한 게 절대 나쁜 건 아니다. 요리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 게 문제가 될 리 없다. 그렇지만 나도 그렇게 줄줄이 길게 쓰면서도 알고 보면 뭐 별거 아닌 재료와 요리법을 이렇게 나열한다는 게 때로는 맛보다 겉멋이 먼저 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냥 동해 해물탕이라고 하면 될 것을 ‘울릉도 동남쪽…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한 박자 쉬고) 연어알 물새알 해녀 대합실…’이라고 하는 것 같아서 하는 얘기올시다. 셰프가 제주 올레길처럼 길고도 길게 요리 이름을 쓰는 것과는 달리, 전통 요리는 매우 함축적이다. 이건 서양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다. 요리 이름에 역사와 전통이 담기기도 하고, 속간의 소소한 사연이 실리기도 한다. 피에몬테의 들판을 달리다가 안내인이 ‘저기가 바로 마렌고 들판이에요’ 했을 때 나는 감회에 빠졌었다. 마렌고는 그 유명한 나폴레옹의 요리 ‘폴로 알라 마렌고(Pollo Alla Marengo)’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오랜 전투를 치르면서 입맛을 잃었고, 이를 본 시종 요리사가 대충 재료를 그러모아 요리를 해 바쳤다. 닭고기와 새우, 와인 정도가 고작이어서 황제가 먹기에는 그다지 고급한 요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치고 배고팠던 나폴레옹은 그 닭 요리를 맛있게 먹었고, 요리 이름을 물었다. ‘족보’에 없는 요리인지라, 즉석에서 작명이 이루어졌다. 폴로 알라 마렌고. 폴로는 닭고기이고 알라는 요리 이름에 붙이는 관용어구로 ‘~풍의’ 정도로 해석된다. 마렌고는 물론 그 벌판의 지명이었다. 이 요리는 그 후 살아남아 현대에도 계승되고 있다. 피에몬테는 프랑스 접경 지역으로 나폴레옹과 관련된 흔적이 많은 땅이다. 그런데 이 일화는 공민왕인지 선조인지 설도 분분한 도루묵 작명 일화와 닮았다. 유명인이 전쟁터나 피난지에서 수수한 지역 음식을 먹고 요리에 작명을 해준다는 설정이 그렇다. 다른 점은 나폴레옹은 나중에도 이 요리를 좋아했고, 도루묵은 맛이 없어서 ‘도루 물러라’고 했다는 설이다. 그렇다면 공민왕 또는 선조가 훨씬 더 미식가였던 셈인가. 나폴레옹이 그다지 미식가가 아니었다는 기록은 꽤 많다고 하니, 틀린 추론도 아닐 듯싶다. 전통의 이탈리아 요리 가운데 웃기고 재밌는 이름이 꽤 있다. 마치 한국의 헛제사밥이나 설렁탕처럼. 사진에 보이는 여자가 입에 물고(?) 있는 빵이
바로 유명한 ‘시어머니의 혀 (Lingua di Suocera)’라는 걸작이다. 여행 안내인이었던 를라가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었다. 혀 치고는 몹시 크고 과장된 느낌인데, 그것이 이 빵 이름에 담긴 풍자다. 시어머니는 잔소리가 많으니 혀가 크고 과장되게 묘사된 것이다. 서양에선 고부 갈등이 없다고 하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부 간의 사이좋은 맞담배질을 자주 보아서 당연히 ‘사이가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싶었던 나로서는 그네들의 숨은 정서를 그 빵 이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시어머니의 혀, 링구아 디 수오체라 빵은 그다지 별난 맛은 없다. 토마토소스를 얹지 않은 피자에 가까운 맛이다. 바삭하고 덤덤한데, 생각해보면 이 빵을 잘근잘근 바삭바삭 씹으며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에 대한 화를 삭여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다듬이질이나 빨래 방망이질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우리네 옛 며느리들처럼 말이다. 요리 이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탈리아 요리를 잘못 읽으면 아주 우스운 상황이 되기도 한다. 이탈리아 친구와 식당에 갔다. 우리는 ‘알 뽀르노(Al Forno)’라는 요리를 주문했다. 파스타를 뚝배기에 담아 오븐에 쪄내는 요리였는데, ‘뽀’와 ‘포’는 상당히 다른 발음인데도 한국인 특유의 혼동(p와 f, b와 v)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뽀르노는 문자 그대로 어느 스팸 메일의 제목처럼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거 그거 맞고요’이고, 포르노는 오븐이라는
뜻이다. 메뉴에만 잘못 써놓았으면 내 이탈리아 친구가 알 리 없으니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담당 서버가 아주 초를 쳤다. “네 손님! 주문하신 ‘뽀르노’ 나왔습니닷!”(1번 손님은 망사스타킹 변태볶음이 나왔고요, 2번 손님에게는 격정의 펠라티오 튀김과 유혹의 과외선생님 찜이 나왔습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오징어와 낙지, 조개가 모두 벗고 들어앉은 해물탕면이 나왔으니까. 내 친구는 지상에서 가장 야한 음식이라며 다 먹고 나서는 팔뚝을 불끈, 세워보였다. 나는 영어 선생님들이 그토록 강조하셨던 p와 f의 발음 차이에 대해 건성건성 들었던 학생이 나뿐만은 아니구나,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Profile
박찬일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하고 잡지 기자가 되었다. 33세 느닷없는 깨우침(!)은 아니었고 돌연 요리에 흥미를 느껴 3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요리와 와인을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고수 주방장을 만나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뚜또베네’에 이어 ‘트라토리아 논나’를 성공적으로 론칭, 스타 셰프로 이름을 날렸다. 현재 요리와 와인에 대한 쫄깃한 문체의 칼럼으로 전방위 매체의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가 쓴 이탈리아 도시와 지방, 주방과 거리를 누비며 보고 느낀 유쾌 발랄 달콤 살벌 이탈리아 여행기를 만나본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8월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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