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의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선물의 의미

선물은 깊이 생각할수록 어렵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건 그것이 나를 위한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ELLE BY ELLE 2016.12.17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로부터 선물을 받길 내심 기대하는 나이였다. 당시 미취학 아동 사이에 유행했던 장난감 로봇이 있었다. ‘코볼 로봇’이라는 이름의 당대 남자애들 사이에선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라도 갖고 싶은 장난감이었다. 소위 말하는 깡통 로봇처럼 생겼지만 리모컨으로 조종하면 투명한 플라스틱 내부의 머리 부분에서 불이 번쩍거리고, 평평한 바닥에선 조립된 바퀴로 전진과 후진도 가능했다. 소리도 났던 것 같은데, 그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훗날 나이를 먹고 나서야 그것이 <스타워즈>에 나오는 R2D2를 베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 시절에는 코볼 로봇이 너무 갖고 싶어 나도 모르게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어딘가로 전해진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머리맡에서 우주의 기운이 느껴졌다. 알록달록한 포장지에 싸인, 그럴싸한 크기의 네모난 선물 상자가 있었다. 그렇다. 코볼 로봇이었다. 아마도 그날 이후로 엄마 아빠 못 알아보고 한동안 코볼 로봇만 보고 살았던 것 같다. 그외의 선물 중에서 기억나는 건 중학교 시절에 받았던 농구공이었다. 당시 나는 농구에 한창 빠져 있었고, 선물을 주신 어머니께서 후회할 정도로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농구만 했다. 아마 부모님이 사준 선물이 이것만은 아니었을 테지만 그 외의 선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 건 내게 대단히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포장을 뜯는 당시에는 기분이 좋았겠지만 그것이 추억으로 세월을 관통해 살아남지 못한 덴 그만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간절히 바라지 않았거나 부모님께서 우주의 기운을 외면하셨거나. 그러니까 결국 누군가에게 마음에 드는 선물을 준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에 드는 선물을 줄 수 있는 확률이란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얼마나 잘 아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확률과 유사하다. 물론 그 누구라도 좋아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귀한 물건을 선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역시도 그의 형편이나 일상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런 선물 역시 그에겐 계륵일 따름. 이를테면 면허도 없는 이에게 고가의 드라이빙 슈즈를 선물한다면, 놀리는 거냐는 질타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선물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인의 취향을 배려하는 동시에 가끔 자신의 취향도 충족시켜야 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싶은 동시에 스스로 만족할 만큼 좋은 것을 사고 싶은 마음 말이다. 게다가 우린 스스로의 취향을 아는 데도 인색하다. 내 취향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타인의 취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건 정말 고역이다. 그러니 선물을 한다는 건 항상 누군가에게 의견을 구하고 기대야 하는 일이 된다. 포털 사이트에 ‘선물’이란 단어로 검색해 봐도 선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과 선물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알려주는 팁들이 넘쳐난다.


개인적으로 태어나서 가장 많은 선물을 받았던 건 아마 결혼할 무렵이지 싶다. 가까운 지인들은 축의금 대신 선물을 주겠다고 했는데 마음에도 들지 않고 필요도 없는 물건을 받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리스트를 작성했다. 리스트에 있었던 건 대략 두 가지 부류였다. 꼭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 혹은 갖고 싶지만 직접 사기는 망설여지는 것. 받은 모든 선물들이 하나같이 쓸모 있게 활용되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내가 고른 것을 받았기 때문에 최소한 지금 그때 받았던 선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물론 선물을 할 때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물어보기 힘든 경우도 많다. 심지어 잘 모르는 상대에게 선물해야 하는 경우에는 원하는 선물을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겸연쩍다. 예를 들어 출장이나 여행으로 해외를 나갈 일이 생기면 직장 동료들에게 무언가를 사다 줘야 할 것 같다는 압박을 느끼게 된다. 마음을 비우면 간단히 해결할 수도 있다. 종류별로 열쇠고리를 왕창 사서 공평하게 나눠주거나, 공항면세점에서 대용량 초콜릿을 사서 회의실에 놔둬도 좋겠다. 하지만 조금 더 그럴싸한 것을 사다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대단히 보편적이고 공평하지만 성의 없어 보이는 것을 선물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사로잡히면 어느 순간 이러려고 선물을 하기로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고 괴로울 수 있다. 어쭙잖게 기념품 같은 것을 사서 돌리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그럴싸한 것을 찾지도 못했다. 차라리 포기하면 마음은 편하다. 그런데 한편으론 아쉬움이 남는다. 받지 못한 이들의 아쉬움보다 주지 못한 이의 아쉬움이다.


탁월한 무언가를 찾아나설 때도 있지만 어디서 문득 무언가를 봤을 때 그것에 어울리는 누군가가 생각나 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니까 선물이란 너와 나의 연결 고리를 우주의 기운으로 느낄 필요 없이 물리적으로 전달하고 체감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했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꼭 마음에 든다는 반응을 얻게 되는 건 그래서 기쁜 일이다. 당신을 생각하는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됐다는 뿌듯함. 이는 받는 이도 마찬가지다. 정말 마음에 드는 선물을 받게 된다면 상대가 평소에 자신을 얼마나 관심 있게 지켜보고 고민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벌써 한 해가 간다. 올해에는 어느 해보다 심신을 고단하게 만드는 사건이 많았고, 여전히 많은 고단함이 남겨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마다 묵묵하고 성실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한 해를 잘 지나고 버텨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올 한 해의 끝에 다다르면 지금껏 함께 잘 버텨온 이들과 함께 수고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서로의 마음을 더욱 돈독하게 다지며 세상을 견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나를 위한 진정한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 전하고 싶은 온기를 마음에 품었을 때 이미 스스로의 마음부터 따뜻해지는 법일 테이니. 선물하고  싶은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올겨울이 따뜻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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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writer 민용준
    digital designer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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