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전통과 장인 정신을 품은 현대적인 물건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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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전통과 장인 정신을 품은 현대적인 물건들

많은 것이 사라지고 변하는 세상에서 변치 않는 전통과 지역 장인의 정신을 품은 아주 현대적인 물건.

정소진 BY 정소진 2023.06.04
 
제주의 머들과 허벅
제주 방언 ‘머들’은 ‘돌무더기’를 뜻한다. 제주 지역색의 오브제를 만드는 오두제의 공예가 정지솔은 제주 전역을 다니며 머들을 채집하고, 그 형태를 본뜬 크레용을 만들었다. 제주의 정체성을 보여주고자 시작된 그의 창작은 ‘허벅’으로 이어졌다. 허벅은 제주에서만 나는 화산 회토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돌가마에 구워 만든 옹기다. 정지솔은 이러한 전통 제작 방식을 고수하여 허벅을 새로운 쓰임새를 갖춘 물건으로 재탄생시켰다. 도예가 김경찬과 협업해 만든 고블릿 잔이 그것. 오랫동안 이어진 기술과 토속 재료로 만든 새로운 오브제. 오두제의 공예품들은 옛것과는 쓰임과 형태가 달라도 여전히 옛것처럼 투박하고 아름답다.
검은 허벅, 7만원. 머들 크레용 미니, 1만9천원, 오두제.
 
전주의 부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서기 751년 불국사 중창 때 봉안된 것으로, 한지 형태로 약 1300년을 견뎌냈다. 이렇듯 ‘천년지’라 불리는 전통 한지에 매료된 김현주 작가는 한지 부채를 만들기로 했다. 전주의 한지 장인이 뜬 수제 한지에 부채 장인이 직접 대나무를 키우고 다듬어 탄생시킨 부챗살과 선면을 덧붙여 완성한다. 부채의 경쾌한 색채는 작가가 직접 염색한 것. 국가무형문화재 신현세 한지 장인은 물론 부채 장인 김동식과 협업해 한지 문화로 세대를 융합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숲에서 부는 바람 한지 부채, 4만9천원, 김현주 스튜디오.
 
순창의 소쿠리
대나무는 뿌리와 가지, 잎,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자연 소재지만 쓰임새는 잊히고 있다. 값싼 플라스틱 바구니와 채반이 보급되면서 담양 죽물시장은 사라지고, 지역 죽공예가들도 점점 자취를 감췄다. 죽공예가 최경수 작가는 이런 현실을 담양산 왕죽을 한 올 한 올 엮으며 극복하고 있다. 딱딱한 대나무 가지를 쪼개 뜨개질하듯 격자무늬로 짠다. 오랜 시간 충실히 짜고 엮어 수백 번의 옻칠을 반복하면 어느새 완성된 채반. 작가는 전북 순창에서 매년 연말 대나무 소쿠리를 전시하는 〈소쿠리전〉에 참여하며 대나무의 오리지널리티를 지키고 있다. 삼색 짜임 대나무 접시, 17만2천원, 최경수 by 여산죽공예.
 
안성의 유기
유기는 오직 한국에서만 만들 수 있는 전통 식기다. 천연자원인 구리와 주석을 78:22 비율로 혼합해 녹인 쇳물을 거푸집에 부은 뒤 식혀 만든다. 다시 불에 달구고 찬물에 넣어 담금질해야 비로소 단단해진다. 아우릇의 대표 권효지는 유기에 담긴 성실함과 정성을 지키고자 안성유기 1호 이종오 명장과 손잡았다. 이종오 명장은 50년 넘게 유기를 연마하는 삶을 살았다. 권효지는 그 노고를 기리고자 명장의 기술과 동시대 감각을 혼합해 지금 세대에게 유기를 알리는 중이다. 견고한 유기 머그잔 손잡이에 물고기 꼬리 형태로 위트를 더한 것이 대표적이다. 물고기 머그잔 세트, 16만5천원, 아우릇.  
 
광주의 순은 빗
고경주 명장은 공예의 도시 광주에서 58년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금속을 망치질해 왔다. 소아마비 장애를 딛고 광주광역시 1호 금속공예 명장에 선정됐고,
약 300명의 문하생을 배출했다. 나날이 기술은 발전하고 다양한 신소재가 등장하지만, 고경주 명장은 수천 년이 흘러도 보존되는 것이 귀금속이라 말한다. 은을 녹여 굳히고, 구부려서 줄로 깎거나 망치로 두들기면 유려한 순은 빗이 탄생한다. 그 과정에는 귀금속 재료를 알맞게 혼합하기 위한 복잡한 수식이 필요하다.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 않지만, 고요하고 무겁게 발산하는 울림은 장인 정신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맑은 머리 순은 빗, 15만원, 고경주 by 공예정원.
 
부여의 함
텍스타일 디렉터 임서윤은 충남 부여에서 섬유작가로 활동 중이다. 전통공예를 전공한 그는 한국의 전통공예를 되짚는 길을 걷고 있다. 부여에서 4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온 바느질 장인과 합심해 차 도구함, 버선, 베개, 이불을 만든다. 차 도구함의 매듭에는 해남 대둔사 승려였던 초의 의순이 쓴 시이자, 한국 다도의 역사와 전통을 담은 〈동다송〉의 구절이 정교하게 쓰여 있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임서윤의 철학인 셈. 임서윤은 일평생 공예와 함께해온 장인들의 삶이 지속되도록 전통을 계승하는 중이다. 차 도구함 S, 24만원. 차 도구함 M, 28만2천원, 임서윤 by 핸들위드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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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정소진
    사진 장승원
    어시스턴트 조민교
    아트 디자이너 박서연
    디지털 디자인 장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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