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와 함께한 시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CULTURE

채소와 함께한 시간

<채소의 계절>을 펼쳤다. 요리사 재인이 채소와 함께 살아낸 열두 달의 기록을.

전혜진 BY 전혜진 2023.03.27

TIME OF VEGE

 
〈채소의 계절〉 작가 재인. @timeofvege

〈채소의 계절〉 작가 재인. @timeofvege

 
지난 3월 텀블벅 펀딩을 통해 출간한 〈채소의 계절〉에는 세발나무 유자 샐러드를 곁들인 방울양배추 페스토 파스타, 달큰한 겨울 무로 만든 무 크림수프 등 24가지 제철 비건 레서피가 소개된다. 레서피 탄생 과정은
그림 그리기처럼 특정 재료를 보면 어떤 재료와 배합해서 어떤 조미료를 넣고, 어떤 그릇에 담아 어떤 맛을 낼지 절로 상상될 때가 있다. 그저 상상한 요리를 실행하면 완성이다. 살다가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그 예측 불가함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요리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맛없게 완성돼도 실패로 보지 않는다.
 
레서피에 에세이도 곁들인다. 특정 채소와 이야기는 어떻게 연결되나
연결 법칙은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감자를 보면 같이 농사 짓던 동생이 생각나고, 당근을 보면 당근주먹밥을 해주던 엄마가 생각난다. 청국장을 보면 “오늘 또 청국장 먹을 거야?”라고 묻던 친구처럼 요리를 함께 나눈 사람과 그 이야기가 절로 뒤따를 수밖에 없다.
 
24가지 채소 레서피가 소개된 책 〈채소의 계절〉.동거인과 함께 먹은 토마토덮밥.김치토마토파스타.
 
제철 채소로 밥상을 차리는 일의 즐거움은
계절에 따라 채소는 각각 생김새와 맛, 향이 달라진다. 보통 사계절로 구분하지만 실은 격주마다 새로운 채소가 나오고 들어가는 셈이다. 지루할 틈이 없다. 계절 채소로 밥상을 차리는 일만으로도 1년이 후딱 지나간다. 채소의 시간에 따라 살다 보면 ‘나’로 사는 일이 자연스러워진다. 한 밭에서 나는 채소도 자세히 보면 같은 얼굴이 하나도 없는데 채소의 ‘다름’을 보며 나와 타인의 다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책의 포장과 유통 과정에서 친환경을 추구했다
재생 용지를 알아보고, 재생 용지 인쇄가 가능한 인쇄소를 알아보고, 콩기름 잉크를 사용했다. 이런 세세한 부분은 모두 출판사 베지쑥쑥 대표이자 편집자가 발 벗고 뛰며, 실행에 옮겼다. 가치를 공유하는 동료를 만나 감사할 따름이다. 
 
‘혹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는 동물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 말고 동물이랑 산댔다. 나는 사랑이 필요할 때, 채소 곁으로 간다’는 소개글이 인상적이다. 이토록 채소를 사랑하는 이유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살다 보면 외로워지게 마련인데 누군가는 반려동물에게 위안을 얻고, 누군가는 산책하고, 누군가는 담배를 피운다. 나는 채소와 시간을 보낸다. 채소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 위로가 된다. 길을 걷다가 무심코 땅을 보면, 어떤 풀이든 하나씩 자라 있지 않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보여도 계절마다 피고 지고, 때로는 밥상에 향취를 불어넣는 채소는 부단히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계절의 흐름을 눈으로 보고, 먹고, 내 몸에도 시간의 흐름을 흘려 넣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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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전혜진
    아트 디자인 김려은
    디자인 장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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