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동물 우화
」발단은 이렇습니다. 샤넬을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지니가 파리 깜봉기 31번지에 위치한 샤넬의 아파트에서 힌트를 얻고, 절친한 아티스트 자비에 베이앙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죠.
동물에 대한 버지니의 영감은 베뉴 뿐 아니라 의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군악대장처럼 톱햇을 쓴 높게 쓴 모델은 사슴의 면면을 이집트 벽화처럼 자수를 놓은 톱을, 또 다른 모델은 웰시코기의 얼굴이 그려진 스커트 셋업 의상을 선보였습니다. 토끼 자수를 세세하게 장식한 블랙 드레스 역시 런웨이에 올랐고요.
버지니 비아르는 컬렉션 의상의 큰 틀은 퍼레이드와 쇼의 유니폼에서 빌리고, 장식과 디테일에 대해서는 “컬렉션에서 등장한 자수는 모두 동물을 표현하고 있어요”라고 명쾌하게 밝혔죠.
샤넬의 꾸뛰르 쇼는 언제나 새하얀 웨딩 가운으로 마무리되는 전통이 있는데요. 올해는 샤넬의 동물 우화라는 테마 아래, 제비 자수가 들어간 미니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자비에 베이앙의 코끼리 조형물에서 우아하게 걸어나와 쇼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논란의 스키아파렐리
」종 때문이기도 하지만 표현 방식 때문이기도 한데요. 샤넬이 섬세하게 자수를 놓아 모티브를 표현한 것과 대조적으로 스키아파렐리는 맹수의 머리를 사실적이면서도 입체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입니다. 스키아파렐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로즈베리는 이를 우아한 의상 위에 떡, 하고 얹어놔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어요.
캐나다 출신의 배우이자 모델 샬롬 할로의 뷔스티에 드레스 위엔 표범 머리가, 나오미 캠벨의 블랙 코트 위엔 늑대 머리가, 이리나 샤크와 카일리 제너가 착용한 관능적인 이브닝 드레스 위엔 사자 머리가 각각 사람 얼굴 보다도 큰 사이즈로 그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맹수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눈속임’이라는 뜻의 트롱푀유, 그리고 리얼리즘 미술 기법에서 기인한 건데요. 이 두 가지는 초현실주의 디자이너였던 엘사 스키아파렐리 스스로도 열렬히 탐구했던 분야고, 1937년 완성된 스키아파렐리의 전설적인 가재 드레스도 그를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입니다. 의도와 무관한 논란으로 속 좀 태웠을 로즈베리가 억울할 만하네요.
제작 과정은 그야말로 한땀 한땀, 오뜨 꾸뛰르 그 자체였답니다. 발포고무와 레진으로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수작업을 통해 모조 털을 하나씩 심듯이 작업했습니다. 그 결과 동물 학대 없이, 금방이라도 으르렁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야수가 컬렉션에 등장할 수 있었던 거죠.
로즈베리는 중세 문학의 모티브에 더해 이 매서운 야수 드레스가 그저 코스튬으로 기능하기보다 여성만이 지닌 파워풀한 에너지를 표현하길 바랐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미움과 오해는 내려놓아도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