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러 이홍안의 자기만의 방 || 엘르코리아 (ELLE KOREA)
DECOR

N잡러 이홍안의 자기만의 방

육아와 함께 시작된 나만의 공간에 대한 염원

ELLE BY ELLE 2022.11.30
이홍안, 마케팅 컴퍼니 대표 1인 마케팅 컴퍼니 ‘감놔라배놔라’를 운영하며 바느질하기, 돗자리 만들기, 강릉의 바닷가를 좋아한다.
 
나만의 공간에서 비로소 알게 된 내 마음
숨을 참아봐야 공기가 소중한 줄 아는 것처럼 나만의 공간 역시 그렇다. 결혼하기 전에는 내가 거주하는 모든 공간이 내 공간이었기 때문에 자기만의 공간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혼 이후, 정확히 아이를 낳은 후부터 나만의 공간이 간절해졌다. 가사 활동 중 쉴 수 있는 휴게실일 수도, 남은 업무를 처리하는 백업 오피스 같은 용도일 수도 있겠다. 가정생활은 일종의 단체 생활이어서 일정을 잘 소화하려면 개인의 시간도 중요하다. 가림막을 두거나 책장으로 임시 공간을 만들거나 하는 시기를 지나 현재는 집에 나만의 오피스 겸 외부 작업실을 하나 갖고 있다. 2년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을 때 가장 먼저 만들고 싶었던 것이 나만의 공간이었다. 3개의 방 중 1개는 침실, 1개는 아이 방, 나머지 1개는 나만큼이나 자신의 공간이 소중한 남편의 몫이 됐다. 나는 길쭉한 베란다를 잘라 나만의 공간을 두 군데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거실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을 상당히 가리게 됐지만 몹시 만족스럽다. 크기는 1평 정도로 작지만 책장과 책상을 짜 넣으니 앉아서 할 수 있는 건 뭐든 할 수 있게 됐다. 침실에 딸린 베란다도 벽으로 막은 뒤 나만의 전용 공간으로 만들었다. 일종의 ‘취미 방’이랄까. 구석에 캠핑 장비를 수납한 후 해가 가장 잘 들어오는 자리에 야전 침대와 캠핑 의자를 두었다. 항상 누워 있는 내 전용 자리다. 작더라도 나만의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 구상하는 건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프랑수아 오종의 〈스위밍 풀〉 속 작가의 공간, 〈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에 등장하는 가구 배치들, 미아-한센 러브의 〈다가오는 것들〉 속 세트장 분위기를 좋아해서 1평짜리 공간을 꾸미기 전에 몇 번이고 돌려 봤다. 요즘 적어도 하루에 세 시간 이상은 나만의 공간에서 보내고 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오전에 한두 시간, 아이를 재우고 난 뒤 심야의 두 시간 정도다. 1평짜리 방에서는 주로 일과 관련된 업무를 보고 새벽에 일찍 일어날 때는 짧게나마 아침 기도를 하기도 한다. 작은 방에 있는 시간은 보통 가족이 잠든 시간이기 때문에 오롯이 혼자 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밤에는 주로 취미 방에서 보내는데, 보통 누워 있는다. 말랑말랑한 음악을 듣기도 하고, 바느질을 하기도 하고, 가끔 혼술도 하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내 것이라 명명한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비로소 누구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내’가 됐음을 느낀다. 비록 그것이 엄청 대단하거나 중요한 일이 아니라 해도 말이다. 나만의 공간을 만든 후부터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부부 싸움이 현저히 줄었다. 남편과 나는 자기만의 영역이 필요한 사람인데 나만의 방이 생기기 전에는 그 부분이 해결되지 않아서 서로 힘들었다. 다툰 후에도 마음을 추스를 곳이 없어 힘들었는데 지금은 각자의 방에 들어가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며 혼자 마음을 풀고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으니 예전보다 훨씬 좋은 삶 같다. 더불어 일도 확실히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마음을 아무리 굳게 먹어도 설거짓거리와 빨랫감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는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1평짜리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집중 모드가 설정된다.
 
언젠가 시간과 장소,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강릉 외곽에 아주 작은 오두막을 짓고 싶다. 별장 같은 건물이 아니라 7~8평 정도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작은 집. 강릉은 기차로 서울까지 2시간이면 오갈 수 있고, 완벽히 분리될 수 있어 세상과 연결되면서 고립되고 싶은 마음을 펼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숲속의 자본주의자〉 저자처럼 말이다. 주 3일은 서울에서 도시 라이프를 살다가 4일은 시골로 돌아가 오두막을 돌보고 텃밭을 가꾸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날것의 감정으로 혼자만의 공간이 있다는 건 코로나 시대에 큰 축복이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는 개인의 사생활이 필요한 존재니까. 나만의 방을 꿈꾸지만 현재의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공동 영역을 과감히 떼어서라도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개척할 것을 권한다. 만약 그것도 어렵다면 책상 한 칸이라도. 누군가와 같이 쓰는 것 말고 오직 나만 쓰는 어떤 것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나만 쓰는 책상을 확보했다면 그다음에는 거기서 무엇을 할 건지, 공간이 더 커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지 상상해 보자. 그렇게 공간과 생각이 확장되는 거다. 우선 책상에 앉아 연필을 깎든, 책을 읽든, 커피를 마시든, 여하튼 시작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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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사진 맹민화
    컨트리뷰팅 에디터 정윤주
    디자인 민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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