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결코 무해하지 않은 무해하다는 말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엘르보이스] 결코 무해하지 않은 무해하다는 말

어휘에도 확실히 유행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사랑을 많이 받는 표현은 '무해하다'가 아닐까.

이마루 BY 이마루 2022.11.18
 
무해하다는 말
어휘에도 확실히 유행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사랑을 많이 받는 표현은 ‘무해하다’가 아닐까. 보랭 팩에 쓰여 있는 “인체에 무해하지만 먹지 마십시오” “천연 소재 색소를 사용해 인체에 무해합니다” 등의 문구에서 무해함이라는 표현은 독성이나 오염, 위생 상태에 대한 것이었지만 요즘은 어떤 콘텐츠의 미덕 혹은 인물이 자아내는 호감에 대해 언급하면서 종종 쓰인다. ‘무해함’ 이 먼저 주목받은 영역은 마초적 남성성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무해한 남성성’ 이었다. K팝 신이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에게서 보이던, 고운 피부와 선량한 웃음, 예쁜 춤 선을 가진 미소년적 인물들. 〈롤링스톤〉 매거진 역시 자신들의 커버 스토리에 BTS를 ‘Nontoxic Masculinity’라고 소개한 걸 보면 무해한 남자들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성에 대비돼 급부상한 것이 틀림없다.
 
요즘은 이 말의 용례가 더 넓게 쓰이는 걸 본다. 순진해 보이는 아이돌 스타나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 휴머니티 드라마에 대해 사람들은 ‘무해하다’며 감탄한다. 무해함이 단편적인 행위의 의도나 결과를 넘어 어떤 긍정적 특질 내지는 본질적 정체성인 양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표현이 인기를 얻은 배경에는 한국어 사용자들이 살아가는 사회 환경의 유해함이 있을 것이다. 독하고 폭력적이고 무지막지한 세상에 시달리다 보면 무해하고 안전한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얼마 전에는 열심히 사는 친구를 만나 요즘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을 들었다. “무해한 게 너무 좋아. 그리고 나도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어.” 환경에 나쁜 영향을 덜 미치고,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으며 살고 싶다는 친구에게 공감이 가는 한편으로 묻고 싶었다. 무해해지는 걸 삶의 목표로 삼는 게 가능할까?
 
팟캐스트 〈여둘톡〉(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됐다. 그동안 방송을 좋아해주는 청취자에게서 응원과 격려를 많이 받았다. 재미있게 잘 듣고 있다는 말, 자극적이기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양질의 대화를 정기적으로 공유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면 힘이 난다. 역시 ‘무해하다’는 평가도 자주 접하는데, 누군가를 욕하거나 비방하면서 웃음을 추구하는 방향을 지양했다는 걸 알아봐주는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내가 만들어내는 어떤 것이 ‘무해해서 좋다’는 표현을 들으면서 이런 상태는 언제든 쉽게 깨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흠결이 생기면 안 된다는 압박 같기도 하다. ‘무해하다’는 평가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듯 한 용어를 가져와 쓰고 있지만, 실은 아주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무해함은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옳음이나 선량함이라기보다 ‘내가 보기에 바람직하고 온순하며 나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음’에 가깝게 쓰이면서 평가받는 상대를 납작하게 단순화한다. 해롭다, 해롭지 않다의 기준은 뭘까? 인간에게는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 작은 곤충도 자신을 잡아먹는 천적에게는 독을 뿜는데, 그럴 때 이 곤충은 유해한가 무해한가? 어떤 사람이 무단횡단을 하면서 쓰레기를 주울 때, 이 사람은 유해한가, 무해한가?
 
무해함 유행이 시작되기 한참 전인 2018년에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을 펴낸 최은영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무해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할 때, 관계가 아닐 때 무해한 사람이 되기 쉬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번에 여행 갔을 때도 에어비앤비에서 지내면서 주인한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며칠 동안 노력하고 주인과 잘 지냈거든요. 할 수 있어요. 그럴 때 저는 무해한 사람일 수 있는 것 같은데요. 만약 제가 그 사람과 실제적인 삶에서 엮여 살게 되면 그럴 수만은 없잖아요. 아마도 진짜 관계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무해하다며 좋아하던 사람들이 화면 밖에서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탑승 시위에 대해 피해를 준다며 분개한다. 이렇듯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는 매끄러운 화면 바깥, 서로 부딪치는 진짜 관계가 발생하는 영역이다.
 
무해함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으로 그것을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지는 않고 싶다. 진짜 무해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다. 삶의 모습은 무해와 유해로 단순하게 나눌 수 없다. 서로의 이해관계 충돌로 다투기도 하고, 깜빡 실수도 하고 그에 대한 사과도 하고, 다른 의견을 말하면서 그럼에도 존중하면서 나아가는 복잡성에 가깝다. 그 가운데 스스로 어떤 면으로는 얼마든지 유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경계하면 되지 않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무해하다는 이름표를 붙여주며 아끼는 풍경은 평화롭다. 무해한 것들을 사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무해한 존재가 되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위해 2022년 버전의 또 다른 완벽주의에 스스로 가두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화면 밖에 실재하는 인간이니까.
 
황선우
오랜 시간 잡지 에디터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일과 몸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운동애호가. 인기 팟캐스트 〈여둘톡〉 공동 진행자로 이제 지면을 넘어 목소리를 내고 있다.

Keyword

Credit

    에디터 이마루
    디자인 김희진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