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의 죽음은 왜 이토록 큰 상처를 남길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반려동물의 죽음은 왜 이토록 큰 상처를 남길까?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후 충분히 위로받지 못한 당신에게

이마루 BY 이마루 2022.08.14
 
“라르장은 잘 있어?” 나를 오래 봐온 사람들이 잊지 않고 안부를 챙기는 내 첫 번째 고양이 라르장은 2007년 봄, 우리 집에 왔다. 그때도 태어난 지 1년을 꽉 채운 성묘였으니 2022년인 올해는 16세에 접어든 셈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반짝이는 녹색 눈과 삐죽이는 수염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느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라르장이 튼튼한 데다가, 반려인을 향한 깊은 애정마저 가진 아주 완벽한 고양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라르장은 갑상선기능항진증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15세 이상 반려동물 68%가 겪는다는 인지기능장애증후군인 것도 같다. 3월부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구석에 쿵쿵 머리를 부딪히거나 멍하니 서 있는 일이 잦아졌으니까. 라르장의 발바닥 젤리와 입가를 매일매일 닦으면서 한때는 7kg에 육박했으나 지금은 한 손으로 거뜬히 들 수 있게 된 2.7kg의 고양이를 안을 때마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생명을 돌보는 일의 애달픔을 느낀다. 하루에 두 번 억지로 입을 벌려 약을 먹이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오줌 묻은 바닥을 닦아내는 것은 꽤 규칙적인 고통이다. 왜 사람은 항상 자기 일이 됐을 때 비로소 알게 될까? 은은한 고통에 잠긴 일상을 보내며 수년간 반려동물을 간병했던 친구들 혹은 먼저 떠나보내는 경험을 한 지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렇게 힘든 일이었구나. 나는 그들이 겪었을 상심에 대해 충분한 위로를 건네지 못했다.
 
미국호스피스재단에서 근무하는 케네스 도카 박사는 2002년 논문에서 펫 로스 증후군을 ‘박탈당한 슬픔(Disenfranchised Grief)’으로 표현한다. 사람의 질병이나 죽음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위로부터 이해나 지지를 받지 못하고, 혹은 반려인 당사자도 그 충격과 상심을 외면하며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복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펫 로스 전문 상담센터 ‘안녕’을 운영하며 온오프라인 상담을 이어오고 있는 조지훈 원장은 2009년 반려견 다롱이를 떠나보냈다. “당시 저는 심리학 학부생이었어요. 슬픈 건 당연하지만 왜 이렇게까지 힘든 건지 알 수 없었죠.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가 길고양이와 인연이 닿아 살게 됐고, 언젠가 이 아이도 먼저 보내야 할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펫 로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이유죠.” 수의학 신문 〈데일리벳〉 대표인 이학범 수의사는 저서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에서 펫 로스 증후군을 ‘반려동물과 이별한 뒤 보호자가 느끼는 우울증, 수면장애, 대인기피증, 불안, 외로움, 공허함, 불안감 등의 정신적 · 심리적 문제’로 정의한다. 반년 남짓 라르장을 간병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살이 눈에 띄게 빠지고, 그루밍을 못해 털이 뭉쳤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어요. 병명을 진단받는 게 두려워 외면한 거죠. 집에 머무는 시간을 늘렸지만, 막상 집에 있을 때는 최소한의 처치만 하고 라르장을 방치해요. 멍하니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죠.” 수의사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예상치 못한 감정이었다. “어느 날 피를 뚝뚝 흘리길래 보니까 오른쪽 뒷다리 종기가 곪아서 터진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될 때까지 의사 선생님이 몰랐을 수 있죠? 2주에 한 번씩 진료받을 때마다 치료비가 20만 원 넘게 나왔는데요.”  돈 얘기까지 포함해 어느새 온갖 이야기를 털어놓는 내게 조지훈 원장은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지 말라는 조언을 건넸다.
 
“아픈 동물을 돌보는 일은 상상처럼 아름답지 않습니다. 반려동물이 평온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많지 않죠. 내가 무기력한 게 라르장 때문인지, 나를 우울하게 만든 다른 이유는 없는지 돌아보세요. 인간이기에 느끼게 되는 부정적인 감정을 대하는 나만의 규칙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귀찮음이나 짜증을 인지한 순간, 오히려 고양이를 껴안아주는 거죠.” 심신이 지친 반려인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쏟아놓는 대상이 수의사다. “정말 악의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내 분노나 원망이 합당한지 돌아보세요. 왜 그 병원을 믿고 다녔는지, 그날의 상황은 어땠는지, 다른 선택권이 있었는지, 내 반려동물의 특이점은 없었는지요.”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할 때 비로소 진정한 애도가 가능하다. ‘안녕’에서는 4회에 걸친 ‘펫 로스 준비 상담’ 뿐 아니라 8회에 걸친 ‘펫 로스 상담’을 제공한다. 제3자의 학대, 사고, 분실 등 특수 상황으로 아이와 헤어졌을 경우 상담 시간이 추가되기도 한다.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내담자가 왜곡하는 사실은 없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부터 물건을 정리하는 방법과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 등 현실적 조언이 상담 과정에서 이뤄진다. 이별의 순간은 언젠가 반드시 다가온다.   반려인의 눈에는 여전히 아기 같아 보이더라도 11세가 된 대형견은 사람으로 치면 무려 87세(소형견은 69세, 집고양이는 60세)에 해당하니까. 버킷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이런 유한성을 인식하는 좋은 방법이다. 함께 바다를 보러 간다거나, 한 번쯤 직접 만든 영양식을 먹여본다거나, 같이 기념사진을 찍는다거나…. 리스트는 다양하다. “아픈 반려동물의 사진은 분명 최고의 사진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때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볼품없고 지저분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1년 전 라르장 사진도 지금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고 윤기 있어 보인다.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된, 라르장이 기분 좋을 때 냈던 ‘골골송’이 녹음된 영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에서 발견한 문장에 가슴을 쳤다.
 
그렇다면 왜 반려동물의 죽음은 우리에게 이토록 특별한 상실감을 안기는 걸까? 어떤 반려인들은 부모가 죽었을 때보다 더 슬퍼하는 자신의 모습에 죄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무조건적 사랑을 주니까요. 부모의 사랑은 때때로 조건적이거나 처벌이 동반되기도 하고, 사람 사이에는 아쉬움과 기대, 실망 등의 감정이 혼재하지만 동물과의 관계에는 오직 사랑만 존재합니다. 사람은 유언을 남기고, 자신의 고통에 대해 표현하지만 동물들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떠나보내기도 해요. 그때의 감정은 비통함에 가깝죠.” 미국에서 펫 로스 모임을 수십 년간 운영해 온 두 저자가 펴낸 책 〈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을 위한 안내서〉도 펫 로스의 특수성을 언급한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지만 그들과 함께 생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매일 이야기하고 만지는 반려동물의 죽음은 우리의 물리적 일상과 삶의 패턴을 변화시킨다. 특히 이혼이나 독립 등 삶의 격동기에 만나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면 그 반려동물의 죽음은 인생의 한 시기가 종료됐음을 느끼게 할 정도로 강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문화는 반려동물의 장례를 치르는 법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제도적 지원도 없으며, 반려동물 전용 추모공원은커녕 합법적인 동물 화장 시설조차 여전히 혐오 시설로 인식된다. 그렇다 보니 슬픔으로 정신없는 중에 미등록 시설이나 부적합한 시설을 보호자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가려내야 하는 부담까지 지게 된다. 사후의 실질적 절차에 대해 반드시 미리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전문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들은 반려동물이 죽은 후에 너무 급하게 장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한다. 여유 없이 장례를 치르거나 혹은 가족 구성원끼리 장례 시기에 대해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후회가 남을 수 있기 때문. 배변 패드를 깔아 항문과 콧구멍에서 나올 사후 분비물을 막고, 헝겊을 두른 보냉제를 배 위에 올려 내장 부패 진행을 늦추는 간단한 사후 처치만으로도 반려동물과 조금 더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문득 본가의 반려견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가 떠올랐다. 실질적 보호자였던 아빠가 가장 힘들 것임을 알면서도 자꾸 분노가 치밀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족들과 상의 없이 곧바로 매장해 마지막 모습을 볼 기회를 영영 잃은 것에 대한 원망이었다.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을 경우 제휴 업체로 바로 사체를 보내는 경우도 있는데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애도의 시간은 각자 다르니까요. 특히 안락사 같은 중대한 결정을 내린 직후에는 보호자도 패닉에 빠진 경우가 많아요. 수의사들은 이런 심리적인 부분까지는 돌보기 어렵고요.” 조지훈 원장의 말이다.
 
가장 가까운 내 친구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편지를 쓰는 것은 죽음을 직면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나의 ○○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라는 문장으로 자신만의 애도의 글을 작성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죠.” 덧붙여 메모리얼 스톤이나 액자를 둔 공간, 수염이나 털, 좋아하던 장난감같이 추억할 수 있는 작은 기념품을 남기는 것은 괜찮지만 일상을 방해할 정도로 많은 물건을 남겨두는 것은 건강한 방식이 아니라고 조지훈 원장은 조언한다. 물품을 기부하거나 봉사활동을 통해 다른 생명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도 있다.〈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을 위한 안내서는 일상의 패턴을 변화시키는 것 또한 상실감을 메워준다. 매일 아침 발을 핥는 반려견 덕분에 잠이 깨고, 함께 산책을 나갔다면 이제 그 시간에 운동을 가거나 수업을 듣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해볼 것을 권한다. 자연은 언제나 항상 위로가 된다. 자연에 둘러싸이는 것만으로도  삶과 죽음이라는 순환에 감싸인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세상은 당신의 슬픔을 이해하는 데 아직 서툴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고작 동물이 죽은 것 가지고 유난스럽다’는 노골적인 시선이 아니더라도 위로라고 건네는 어떤 말들 또한 상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여행도 자유롭게 갈 수 있겠네” “새로운 애를 데려와봐” “맛있는 것 사줄 테니까 기분 풀어” “그래도 오래 살았잖아”와 같이 다른 가족 구성원을 잃었을 때라면 절대로 건네지 않을 말들. 우리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돕고 싶어 하지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솔직하게 알려줘야 한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힘없이 휘청대면서도 내 고양이는 여전히 음식에 눈을 반짝인다. 욕심껏 물을 마시는 모습에서 쪼그라든 육체 안에 남아 있는 삶을 향한 열의를 느낀다. 조용히 끝을 향해 가는 한 생명을 바라보며 한편으로는 언젠가 다가올 또 다른 소중한 이들의 죽음과 나의 죽음을 고요히 연상한다. 그리고 상기한다. 우리의 육체 또한 나이 들어 차갑게 식고 부패할 것이라는 것, 한때 생기 넘치는 생명체도 생의 끝에는 다른 생명의 돌봄이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 그러니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들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기꺼이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사실을. 살아 있을 때도 수많은 감정을 알려줬던 최고의 친구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마터면 잊을 뻔한 사실을 일깨워주고 떠난다. 우리 바로 옆에서, 우리보다 조금 더 빠르게 생을 한 바퀴 돎으로써.  언젠가 세상을 떠났을 때 무지개다리 끝에 작고 따뜻한 생명이 나를 마중 나와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나는 이제 믿는다.
 
 
언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까
이미 반려동물의 상태가 심각한 때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기 마련.  객관적인 노령기에 접어들었을 때부터 관련 서적을 잃는 것만으로도 사별 이후 겪게 될 심리적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다. 특히 반려동물에 대한 감정적 의존도가 높은 1인 가구는 펫 로스 증후군을 겪을 위험도가 높으니 필요시 적절한 도움을 청하자. 다만 감정적으로 격앙된 사별 직후는 상담을 받기 좋은 시기는 아니다.
 
안락사는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안락사는 펫 로스를 다룬 모든 책이 언급할 정도로 중요한 이슈다. 동물은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만큼 보호자의 판단력이 전적으로 요구되기 때문. 현재 반려동물이 고통스러운 상태이며, 상태가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의학적 판단을 토대로 최종 결정은 보호자가 내린다. 아이가 삶을 이어가겠다는 욕구가 있는지, 지금 불행한지 행복한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일 테니까.
 
다시 또 반려동물을 키워도 될까
많은 사람이 엄청난 슬픔을 겪은 이후에도 또 반려동물과의 생활을 택한다. 그러나 충분한 애도가 이뤄지기 전 입양을 결정하거나, 세상을 떠난 아이의 대체재로 꼭 닮은  종을 찾는 것은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활력이 넘치는 어린 생명은 일상에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펫 로스 직후에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시기에 훈련되지 않은 강아지를 데려오는 것이 과연 옳은 결정일지 생각해 보자.
 
같이 사는 동물도 슬픔을 느낄까
이상행동을 하거나 병에 걸릴 정도로 슬픔을 느끼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개의치 않고 반려인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어린 자녀가 있다면 반려동물이 잠시 다른 곳에 갔다거나 곧 돌아올 것이라는 두루뭉술한 핑계를 대지 않고 죽음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도록 설명해야 한다. 슬픔의 감정을 직면하고 나눌 수 있도록.
 
도움말 펫로스 심리상담센터 안녕 조지훈 원장  
참고서적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을 위한 안내서〉, 〈고양이 말기 간호 임종 케어 안내서〉 〈나이 든 반려견을 돌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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