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최지은 작가가 뉴스레터를 시작한 이유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엘르보이스] 최지은 작가가 뉴스레터를 시작한 이유

섬끼리 잇는 '없는 생활'에 대해

이마루 BY 이마루 2022.08.09
 
내가 뉴스레터를 시작한 이유
하고 싶은 일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는 건 설레면서도 좀 번거로운 문제다. 2년 전, 한국에서 딩크족으로 살아가는 열네 명의 이야기를 담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고 나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마쳤으니 한동안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내게 무슨 이야기가 남아 있는지 모르는 채 헤매던 지난해 어느 날, 한 여성이 온라인에 쓴 짧은 글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딩크족으로 사는 건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 같다.”
 
그 문장을 한참 들여다보고 수시로 생각하면서도 직접 댓글을 달지는 못했다. 그가 느껴왔을 불안, 두려움, 죄책감, 외로움 같은 감정을 나 역시 경험했기에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몇 마디 짧은 말로는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아이 없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조금 길게 천천히, 계속 말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 섬들에 편지를 보내기로.
 
느리고 게으른 사람들은 이해하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특히 긴 예열 시간이 필요하다. 가을과 겨울 동안 그 일을 생각만 하며 보낸 나는 연말이 가까워서야 내년부터 메일링 서비스를 할 거라고 주위에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소문이라도 내둬야 수습할 것 같아서였다. 늘 그렇듯 마음의 준비가 안 됐을 때 새해가 닥쳐왔다. 계획은 조금 수정됐다. 깔끔하게 새 학기부터 시작하자. 3월, 대통령선거 이후 현실도피에 빠져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4월 중순이었다. 마음속으로 배수의 진을 쳤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출간 2주년인 6월 15일이 D데이다! 나만 빼고 아무도 모르는 날짜지만, 아무튼 그러기로 했다.
 
5월이 왔다. 유일하게 아는 이메일 마케팅 서비스 업체 ‘스티비’에 가입했다. ‘도움말’ 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얼른 나왔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따라 할 수 있겠지’라고 내적 허세를 부리면서도 무의식의 심연에서는 ‘몰라. 이게 뭐야. 무서워!’라는 절규가 울려 퍼졌다. 나는 늘 신문물(이라고 해도 될까?)을 접하는 게 두려웠다. 한 것도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일단 홍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의 진행자 셀럽 맷 님에게 광고를 넣고 싶다고 제안했다가 그냥 출연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6월 둘째 주, 〈씨네21〉 이다혜 기자님과 신나게 웹소설(과 BL)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정신 차리고 메일링 서비스를 소개했다. 녹음을 마치고서야 내가 뉴스레터 이름을 빠뜨린 걸 깨달았지만, 홍보 효과는 확실했다.
 
‘없는 생활’이라는 이름은 아이 없이, 별일 없이 사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하면서 나는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구독료는 받지 않는다. ‘아이 없는 삶’이라는 주제와 연결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목표는 그냥 오래 쓰는 것이다. ‘이 삶을 선택한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삽니다. 당신도 잘 지내면 좋겠습니다’ 정도의 마음을 담아 다 읽고 이메일 목록으로 돌아가면 금세 잊히는 편지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다.
 
첫 번째 편지를 다 써놓고서야 스티비와 마주할 용기가 났다(끝까지 미뤘다는 뜻이다). 스티비 시스템은 꽤 친절했지만, 나는 유독 빠릿빠릿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단계마다 헤맸다. 발신 전용으로 메일을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SNS에 쉽게 공유하는 버튼은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하다가 차례로 포기했다. 테스트 발송만 세 번이나 하는 우여곡절 끝에 발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겁이 덜컥 났다. ‘혹시 수신 거부 버튼에 오류가 나서 항의 메일이 쏟아지면 어떡하지?’
 
항의 메일 대신 도착한 것은 다른 섬에서 온 답장이었다. 아이 없는 삶을 이해받지 못해 외롭고 힘들 때가 많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반갑다는 편지를 받을 때마다 기쁘면서도 왠지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32명 정도로 예상했던 수신인은 어째서인지 1000명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1000명이 다시 32명으로 줄어드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망망대해를 향해 계속 신호를 보내고 싶다.
 
최지은 10년 넘게 대중문화 웹 매거진에서 일했다. 〈괜찮지 않습니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런 얘기 하지 말까〉를 펴냈다. 늘 행복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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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마루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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