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건강한 술꾼이 될 수 있을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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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건강한 술꾼이 될 수 있을까?

음주와 건강, 환경보호는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인걸까? 지속 가능한 음주생활을 위한 작지만 큰 움직임을 포착했다.

전혜진 BY 전혜진 2022.07.17
 
 
최근 종영한 〈나의 해방일지〉의 알코올 중독자 구 씨(손석구)를 보며 생각했다. 소주병으로 완성된 방구석 레드 카펫, 하루 두 병이라는 정량, “지치지 않고 신기하게도 매일 마신다”는 비아냥까지. 야근 후 맥주 한 캔의 유혹을 억누르기 힘든 우리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우리는 가끔 한 잔의 즐거움에도 죄책감을 느낀다. 오히려 안주 없이 술만 마시는 구 씨가 살은 덜 찌고, 떡볶이 국물이나 닭발 같은 배달 음식 쓰레기를 양산하는 나보다 환경에도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무엇이든 지속 가능해야 하는 시대. 카페에서 종이 빨대와 텀블러는 너무도 당연시되고, 온갖 유기농과 비건 음식이 식탁을 점령한 세상에서 지속 가능한 음주에 관한 고찰은 어쩐지 더디다. ‘애주 라이프’는 꼭 은근한 죄책감을 동반해야 하는 걸까. 진정 술과 건강은 함께할 수 없는 개념일까. 음주 신에서 ‘환경운동가’는 왜 얼토당토않은 소리로 조롱받는 걸까. 혹은 좀 더 근본적으로 고민해 보자. 왜 음주 신에서 몸과 환경에 대한 담론은 이토록 부족할까.
 
지난해 청담동에 문을 연 칵테일 바 제스트. 시트러스 과일 껍질을 뜻하는 ‘제스트(Zest)’와 ‘제로 웨이스트’의 줄임말을 상호로 사용한 것처럼 이곳은 ‘지속 가능한 파인 드링킹’을 지향한다. 바텐더 김도형에 따르면 바에서 술을 마시는 건 단순한 음주 개념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생각에서다.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기울입니다. 오픈 당시 팀원들과 칵테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무언가를 만들고자 했는데, 그 과정에서 현시대의 과제인 ‘지속 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었죠.” 칵테일 한 잔을 만드는 과정에는 위스키병과 토닉 워터 캔, 한 조각 쓰는 과육 등 꽤 많은 쓰레기가 최상의 맛을 명목으로 쉽게 버려진다. 그러나 이곳은 칵테일에 사용된 과일이나 음식을 다시 쿠키나 피클, 가니시 등으로 활용하는 ‘푸드 업사이클링’을 진행 중이다. 전 세계 연간 13억 톤의 음식 쓰레기가 버려지는 상황에서 미국, 영국 등지에서는 푸드 업사이클링의 흐름이 강세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 “바에서 음식물은 정말 많이 낭비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레몬이나 라임의 주스를 착즙한 후 쓰레기통에 버리는 대신 건조와 침출, 발효, 증류 등을 거쳐 새로운 맛으로 탄생시키죠. 또 가장 많이 쓰이는 아이템 중 하나는 소다나 토닉 워터 같은 탄산음료인데, 직접 개발한 탄산음료 제조 시스템으로 남은 시트러스의 껍질, 과육에 향신료와 허브를 더해 탄산수, 토닉 워터, 내추럴 콜라까지 직접 만들어요. 공산품으로는 불가능한 맛을 낼 뿐 아니라 바에서 무수히 버려지는 알루미늄 캔과 페트병 쓰레기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요.” 허브와 식용 꽃은 남양주 농장에서 농부와의 협업을 통해 재배하고, 바텐더들이 직접 수확해 온다. 더 신선한 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유통 과정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같은 포장재도 줄일 수 있기 때문. “보다 가치 있는 한 잔의 칵테일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소비자에게도 보다 가치 있는 소비를 제안해 단순히 마시고 취하는 음주 그 이상의 문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런 노력은 최근 ‘아시아 베스트 바 50’에 이름을 올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환경과 건강 보호, 풍부한 맛의 경험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철학을 지키는 것도 물론이지만 음료를 맛있게 만드는 것이 첫 번째죠. 우리 칵테일을 마시면 건강해진다거나, 이 작은 바가 지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 작은 공간을 끊임없이 사랑해 주는 분들이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서울 내 흔치 않은 비건 지향 와인 바 낫투길티(NTG)의 태도 또한 눈여겨보자. ‘환경과 몸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 와인을 즐기자’는 운영 철학은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했다. “잦은 회식과 음주로 몸이 망가진 남편을 살리고자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낫투길티의 시작이었습니다.” 현재 플렉시테리언으로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유지 중인 운영자 김지선은 채식이 주는 즐거움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기존에 운영하던 와인 바를 비건 와인 바로 리브랜딩했다. “우리처럼 와인이 주는 기쁨은 포기할 수 없지만 건강하고 싶은 이중적 욕망을 지닌 분들을 위한 곳이에요.” 공정에서 동물성 재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비건 와인뿐 아니라 바게트와 후무스 스프레드, 가지 브루스게타, 현미 떡과 채소로 만든 떡꼬치 등 비건 와인과 환상 궁합을 이루는 안주도 가득하다. 채식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먹고 마시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돌아보게 됐고, 와인 분야에서 일하던 그는 술을 마실 때도 건강하게 마실 방법을 찾는 과정으로 이어졌다고. “채식이나 비건이 낯선 분에게는 꼭 그래야만 한다고 강요하기보다 재미있게, 덜 ‘길티’하게 음주를 즐기는 방식도 있다는 걸 전하는 데 집중합니다. 최근 저도수 주류도 개발 중인데, 저도주로도 정말 건강한 비건 음주 라이프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급성장하는 무알코올 음료 시장과 함께 음주 문화를 더욱 건강한 방식으로 바꾸어나가려는 큰 변화는 분명 포착되고 있다. 호텔 신에서도 마찬가지. 최근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타임스퀘어의 모모바에서는 유럽 베이스로 식물성 음료 트렌드를 이끄는 알프로(Alpro) 제품을 활용한 비건 칵테일 프로모션을 선보였고, JW 메리어트 서울의 모보 바에서는 3월 코코넛과 바나나를 믹스한 비건 칵테일로 인기를 끌었다. 망원동과 홍대 등 MZ세대의 놀이터에서는 서울 최초의 비건 펍 드렁큰비건, 채식 다이닝 바 포인트 프레드릭 등이 들어선 지 오래다. 누군가는 “이게 되겠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오픈할 땐 ‘웨이스트’라는, 다소 부정적으로도 느낄 수 있는 단어가 과연 기존 칵테일을 즐기던 소비자에게 올바른 의미로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컸습니다. ‘버려지는 재료들을 업사이클링한다고?’ ‘굳이 우리가 돈을 내고 그런 칵테일을 마셔야 하나?’ 같은 반응이랄까요. 하지만 같은 고민으로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응원해 주는 소비자가 정말 많고, 오히려 도움을 얻으며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큰 변화는 아니더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도형 바텐더의 당찬 말처럼 애주가인 우리는 분명 언젠가 술과 몸, 지구를 모두 지키고 사랑할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가치 있는 한잔’은 삶의 즐거움을 위해서도, 그것을 견뎌야 하는 몸을 위해서도, 환경을 위해서도 분명 달라져야 할 아주 중요한 문화 흐름이니까.
 
 

제스트

도산대로55길 26 1층.
직접 공수한 참외와 바나나를 증류해 만든 진과 진토닉을 믹스한 Z&T가 시그너처 칵테일이다. 건강하고 풍부한 맛의 칵테일이 가득!
@zest.seoul

@zest.seoul

 

낫투길티

한강대로40길 19-8 1층.
비건 내추럴 와인과 바게트 앤 스프레드, 브루스케타, 국물떡볶이 등 모든 페어 메뉴를 비건 옵션으로 맛있게 즐길 수 있다.
@ntg.kr

@ntg.kr

 

브루독

이태원로27나길 40.
스코틀랜드 수제 맥주 브랜드 브루독의 한국 지점. 대표 채식주의 단체인  ‘비건 소사이어티’에  가입된 브랜드로 비건 수제 맥주를 원한다면.
@brewdogitaewon

@brewdogitaewon

 

드렁큰비건

와우산로30길 13.
국내 최초라 불리는 비건 펍. 비건 와인, 맥주는 물론 식용 꽃과 열대 과일, 레몬을 넣은 시그너처 소주를 맛볼 수 있다.
@drunkenvegan101

@drunkenvegan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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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전혜진
    일러스트레이터 JOHN MOLESWORTH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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