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를 생각하며_요주의여성 #66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안나’를 생각하며_요주의여성 #66

미워할 수 없는 거짓말쟁이, 안나.

김초혜 BY 김초혜 2022.07.15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

 
 “사람들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이 마음을 쿡 찌르고 지나갑니다. ‘수지가 얼마나 예쁜지 보려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지 단 몇 분 만에 이유미 혹은 이안나로 불리는 이 여자의 삶에 빨려 들어가고 맙니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가 깊은 여운을 남기며 6부작으로 종영했습니다. 리플리 증후군, 신분을 속이고 거짓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창작물의 단골 소재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사랑받는 건, 아마도 우리 모두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겠죠.
 
영화 〈싱글 라이더〉의 이주영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는 구구절절 주인공 유미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예쁘고 하고 싶은 것 많은’ 소녀가 실수를 저지르고 인생이 꼬이며 점점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되기까지, 카메라는 물끄러미 유미의 선택과 감정의 동요를 지켜봅니다.
 
유미가 ‘안나’가 된 후에도 이주영 감독은 극적인 상황 전개보다, 자신이 만든 거짓말에 갇힌 유미의 ‘지옥’ 같은 마음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입니다. 자신이 훔친 인생의 주인, 현주(정은채)를 맞닥뜨리게 된 유미는 같은 건물에 사는 현주를 피하기 위해 매일 23층까지 걸어 다니길 택합니다. 구두를 벗어 들고 가쁜 숨을 내쉬며 비틀비틀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유미를 바라보며 시청자들도 숨이 차오릅니다.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에도 유미는 소리쳐 항변하거나 용서를 빌지 않습니다. 그 여자가 무너질까 봐 두려운 것은 오히려 우리들입니다.

드라마 〈안나〉에서 처음 만나는 수지의 얼굴

드라마 〈안나〉에서 처음 만나는 수지의 얼굴

 
우리는 이미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호된 대가를 치르고 추락하고 만 거짓말쟁이 여자들을 봤습니다. 〈안나〉를 보면서, 유미가 신은 하이힐이 점점 더 높아질수록 이후에 찾아올 추락이 얼마나 깊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죠.
 
그런데 〈안나〉는 예상 밖의 결말을 내놓습니다. 유미는 죽거나 파멸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오기를 선택한 그는 ‘더 큰 악’에 대항해(다른 여성들과 협력하여) 싸우고 끝내 살아남습니다. 과거를 불태우고 꿋꿋하게 하얀 눈밭을 헤쳐 나갑니다.
 
유미이자 안나를 연기한 수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완전히 새로 태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해사한 청춘스타인 그에게서 막막한 나날을 견디는 20대 유미의 피로한 얼굴이 비칠 줄이야. 안나로 변신했을 때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수지의 미모가 서사가 되는 순간), 점차 비밀이 드러나며 죄책감과 불안에 떠는 모습까지 과장 없이 섬세하면서 밀도 높은 연기를 펼칩니다. 마지막 회, 보라색 투피스 차림으로 불이 붙은 핸드백을 들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장면과 이어지는 유미의 절규는 머릿속에 꽤 오랫동안 각인될 듯합니다.
 
누구나 매일 조금씩 거짓말을 합니다. 회사에서의 나, 연인과 있을 때의 나, SNS 속의 나는 모두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주영 감독의 극본과 연출력, 수지의 연기가 더해진 〈안나〉. 또 한 쌍의 여성 창작가와 여성 스타가 만나서 이렇게 결이 다른 드라마가 탄생했습니다. 8월에 더욱 풍성하고 세밀한 스토리를 담은 확장판이 나온다고 하니, 마음을 흔드는 이 매력적인 작품을 한 번 더 음미해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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