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의 파동 위에 선 두 여성의 조우, 스튜디오N 권미경 대표&<시맨틱 에러> 김수정 감독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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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의 파동 위에 선 두 여성의 조우, 스튜디오N 권미경 대표&<시맨틱 에러> 김수정 감독

K콘텐츠'라는 이름이 어느 때보다 당당하게 불리는 지금. 콘텐츠의 장르와 형식이 뒤섞이며 놀라운 시너지를 일으키는 '플랫폼 크로스오버'의 지각변동 위에 가장 뜨거운 두 여성이 서로를 지탱하며 서 있다. 스튜디오N 대표 권미경과 <시맨틱 에러> 감독 김수정은 비록 자라온 세대와 환경은 다르지만 K콘텐츠의 미래를 대하는 '쿨'하고 즐거운 태도는 같은 온도로 반짝인다.

전혜진 BY 전혜진 2022.05.29
 

interviewee 권미경

72년생. 2018년 설립한 네이버 웹툰 IP 브리지 자회사 스튜디오N의 리더. 웹 창작물 기반 콘텐츠 〈여신강림〉 〈스위트홈〉 〈유미의 세포들〉에 이어 〈그 해 우리는〉 까지 성공시키며 장르와 포맷, 플랫폼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광고인으로 시작해 월트디즈니코리아 마케팅 이사와 〈명량〉 〈베테랑〉 〈국제시장〉 등 1000만 관객 영화를 다수 탄생시킨 CJ ENM 한국영화사업본부장을 거치며 국내 콘텐츠 산업의 흐름을 이끌어온 그는 여전히 이 일이 생경하고 즐겁다.
권미경이 입은 블라우스는 Dint. 플라워 이어링은 Danaburton.

권미경이 입은 블라우스는 Dint. 플라워 이어링은 Danaburton.

 

interviewer 김수정

93년생. 동명의 BL 웹소설(2018 리디북스 BL 부문 대상작) 원작 웹드라마 〈시맨틱 에러〉로 OTT 플랫폼 왓챠의 콘텐츠 순위 1위를 차지한 2년 차 감독. 비주류로 일컬어지던 장르를 주류 무대로 끌어올린 대담한 그는 좋은 대본만 보면 심장이 울렁인다.
김수정이 입은 스트라이프 수트 세트업은 Dint. 슬리브리스 톱은 Whole Paper. 이어링은 Danaburton.

김수정이 입은 스트라이프 수트 세트업은 Dint. 슬리브리스 톱은 Whole Paper. 이어링은 Danaburton.

김수정 저는 74세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배우 윤여정을 좋아합니다. 여성 댄서들을 조명한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인기가 한창일 땐 온종일 영상을 찾아봤고요. 각자의 위치에서 무언가를 해내는 여성의 존재를 확인할 때 버티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미래가 아득해지는 순간에도 권 대표님이 지나온 길을 보고 용기를 얻었고요. 다른 여성들도 저처럼 버틸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이 자리에서 대표님의 성취를 맘껏 자랑해 주길 부탁합니다

권미경 그저 운이 좋았던 사람입니다. 물리학을 전공했고, 지금처럼 전공 외 분야에 지원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에도 운 좋게 광고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죠. 광고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달성한 후에는 학창시절 연극 연출을 맡았던 경험이 촉매가 돼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마침 광고업계 출신 직원을 찾던 영화 회사로 향할 수 있었고, 이후에는 투자배급회사로 옮겨 당시 국내 흥행 1~3위를 차지한 영화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광고가 성장하던 시기에 광고회사를, 1000만 관객 영화가 1년에 두 편씩 나올 때 영화시장에, 지금은 모두가 주목하는 웹툰 시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계획적으로 움직이기보단 갈림길과 계속 맞닥뜨렸고, 주어진 길에 최선을 다했어요. 원하는 곳에 처음부터 도달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 단계를 거치고 눈앞의 목표에 최선을 다한다면 결론적으로 닿는 거죠. 그 순간순간의 힘이 제 자랑이에요.
 
김수정 광고와 영화, 드라마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총괄했던 이력은 한계가 없고 다채롭죠. 레거시 미디어뿐 아니라 여러 OTT 플랫폼에서 다양한 포맷으로 〈유미의 세포들〉 〈여신강림〉 〈알고 있지만〉 등 웹툰 작품의 영상화에 성공했습니다. 콘텐츠의 매체나 환경 혹은 시스템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었나요
권미경 그냥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합니다. 광고나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모두 달라 보여도 결국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한 영상 카테고리에 속하죠. 보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이 소통해야 한다는 테두리는 같습니다. 겁 없고 계속 해오던 일을 지속하면 싫증 난다는 점이 동력이라면 동력이겠네요. 늘 같은 곳에 머무르지 않고 그 다음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주변 일에 호기심도 많고, 남이 아는 걸 모르면 답답하죠. 〈시맨틱 에러〉가 재미있다고 소문나면 나도 꼭 봐야 하고, 내가 모르는 유튜버도 없어야 해요(웃음). 매체가 무엇이든, 어떤 변화가 일어나든 지키는 단 하나의 원칙은 시간이 아깝지 않은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것. 감상 시간이 끝난 후 펼쳐질 하루, 일주일, 길게는 한 달 혹은 누군가의 인생에 의미를 남길 작품을 만들려 합니다.
 
김수정이 입은 수트 세트업은 Dint. 슬리브리스 톱은 Whole Paper. 권미경이 입은 레터링 싱글 재킷과 블라우스, 미디스커트는 모두 Dint.

김수정이 입은 수트 세트업은 Dint. 슬리브리스 톱은 Whole Paper. 권미경이 입은 레터링 싱글 재킷과 블라우스, 미디스커트는 모두 Dint.

김수정 웹툰과 웹소설이 다양하게 영상화되며 이야기의 장르나 스펙트럼이 넓어진 걸 체감할 수 있어요. 드라마 원작인 〈그 해 우리는〉의 프리퀄을 웹툰으로 제작하는 신개념의 미디어 크로스오버를 시도했고 이는 또 다른 흐름을 만들 텐데, 앞으로 K콘텐츠는 어떻게 변화하며 창작자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권미경 소비자들은 포맷을 고려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의 그릇이 무엇이든   ‘재밌는 걸’ 보거든요. 넷플릭스에 스틸 컷들이 나열되고, 그게 2시간짜리 영화인지 6부작 시리즈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됐는데 창작자들은 여전히 포맷에 갇혀 있죠. 스튜디오N 또한 원작 작품의 제작 방향을 논의할 때 6부작일지, 러닝타임이 2시간일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그러다 보니 OTT 시스템에 유연해진 것 같기도 해요. 2~3년 전만 해도 방송국은 16부작 편성을 기본값으로 설정했지만, 재작년부터 유연해졌어요. JTBC 〈알고 있지만〉은 10부작이고, 〈마인〉의 이나정 감독과 준비 중인 작품도 12부로 고려 중이죠. 사업적 영역 또한 기존 영화제작사, 드라마 회사라고 분류되던 것을 포함해 많은 부분 크로스오버가 될 것 같아요. 김 감독도 웹드라마 〈나의 이름에게〉를 시작으로 OTT 시리즈에 도전했죠? 영화와 TV 드라마로 영역을 넓혀가며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을 권하고 싶어요.
 
김수정 〈시맨틱 에러〉를 준비하며 BL 장르를 처음 접하거나 낯설어하는 이들까지 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목표로 넓은 타깃 층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했어요. 대표님 또한 20년 넘는 세월 동안 타깃 층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성취는
권미경 국내시장에서 애니메이션은 아이들과 손잡고 가서 보는 콘텐츠란 인식이 있죠. 주로 더빙이 인기고요. 반면 20~30대 관객은 자막을 선호해요. 하지만 극장에서는 더빙 버전만 상영하려 하죠. 〈드래곤 길들이기〉를 시사했을 때 어른들이 더 재밌게 즐길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기존 관행과 달리 어떻게 하면 20~30대가 많이 볼 수 있을지 고민 끝에 그들을 주 마케팅 타깃으로 삼았어요. 극장에서의 반발을 뒤로하고 밀어붙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더빙 버전만 고집했다면 100만 관객도 쉽지 않을 수 있는데 300만 가까운 관객 수를 기록했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디즈니 〈겨울왕국〉의 한글 제목을 적절하게 바꾼 일이에요. 왠지 요거트를 떠올리게 되는(웃음) 〈Frozen〉이라는 원제보다 온 가족이 볼 수 있도록 장소에 관한 관념을 전달하는 〈겨울왕국〉으로 정했죠. 뜨거웠던 반응이 기억나네요.
 
김수정 〈시맨틱 에러〉의 타깃 층을 고려하는 작업도 어려웠어요. 이미 웹툰, 오디오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적 있는 슈퍼 IP 콘텐츠이고, 최초로 드라마화를 진행하며 시나리오보다 더 디테일한 묘사가 담긴 원작을 가장 경계했어요. 상상력에 한계가 생길까 봐요. 대표님이 원작 콘텐츠에 다가가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권미경 보통 원작이 있는 작품이 제작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훨씬 어렵다고 봐요. 원작 팬들은 든든한 지원군이기도, 강력한 적군이 될 수도 있거든요. 또 이야기를 전하는 매체의 형태가 다르기에 원작의 매력을 그대로 구현하기란 어렵죠. 예를 들어 웹툰은 스크롤을 올리거나 한 장씩 넘기며 서사를 읽을 뿐 아니라 주간 업데이트가 대다수이니 소비자가 디테일이나 개연성에 극도로 예민하지 않거든요. 반면 영상물은 장면의 개연성이 관건이죠. 또 시청자뿐 아니라 원작자를 만족시켜야 하는 난제도 있습니다. 시청자 중 과연 몇 퍼센트가 원작을 봤을지, 원작을 봐야 이해되는 부분을 처음 보는 시청자에게 어떻게 이해시킬지가 늘 숙제입니다. 우리 직원들도 한 번에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대본을 몇 차례 엎고 기획개발 단계를 거듭합니다. 실수를 디뎌가며 지향점을 찾아요. 처음부터 100% 확신할 수 있는 콘텐츠란 없습니다.
 
김수정 연출자로서 자질이 있을지 의심 가득했던 제게 〈시맨틱 에러〉는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 작품입니다. 대표님에게도 그런 작품이 있었나요
권미경 〈그 해 우리는〉은 유일하게 스튜디오N이 제작한 작품 중 웹툰, 웹소설 기반이 아닙니다. 한 PD가 그 작가가 글을 정말 잘 쓴다고, 원작이 없는 드라마를 한번 만들어도 될지 묻더군요. “네 마음에 드니?”라고 물으니 “잘 쓸 것 같아요”라고 확신하길래 “그래. 계약하자”고 답했죠. 기획안도 없는 상태에서 PD의 감을 믿은 거죠. 써온 극본은 정말 마음에 들었고, 캐스팅도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했어요. 덕분에 최우식과 김다미 배우를 출연시킬 수 있었죠. 이 프로젝트는 ‘입봉 감독’과 ‘입봉 작가’가 만난 일종의 사건이에요. 베테랑이 아니니 16부를 완주할 수 있을지 의심받고 방송국에서도 다수 거절당했습니다. 답답했죠. 그럼 신인은 누가 키우나요? 마음 졸이던 중 다행히 SBS가 베팅했습니다. 물론 〈그 해 우리는〉이 시청률이 높은 작품은 아니지만 이후 신인 작가들에게 연락이 와요. 일종의 ‘길’을 발견한 것 같다고요. 저는 신인 창작자 발굴에 대한 고민이 깊은데, 혼자 머리를 싸매기보단 업계에 선례를 던져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새로운 성취를 느꼈어요. 선뜻 나서준 배우들, 끝까지 잘 마무리한 제작진에게 고맙죠. 콘텐츠가 잘되는 이유는 수십 가지가 있고, 잘 안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한 가지 이유로 잘되거나 망하지 않거든요. 〈시맨틱 에러〉도 박서함과 박재찬이라는 두 사람, 감독님의 디테일, 왓챠의 긍정적 기운이 모인 거죠.
 
김수정 PD와 대표 사이 중간 관리자가 없다는 스튜디오N만의 유연한 시스템이 새롭고 뛰어난 콘텐츠를 발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권미경 우리 PD들은 제가 직접 뽑은 인재들이고, 그들이 잘될 거라고 믿는 건 당연합니다. 물론 제 의견이 같은 N분의 1 크기로 모든 결정에 작용하진 않겠지만요(웃음). 콘텐츠는 사람이 만드는 일이고, 사람이 바뀌면 그 일은 그대로 진행되지 않죠. 담당자의 마음에 본체가 내장돼 있기에 신뢰해야 하고, 최고의 아웃풋을 내도록 돕는 게 저희 역할입니다. 중간 관리자를 두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개인의 취향’은 입이 많이 담길수록 특유의 ‘에지’가 마모되기 때문이기도 해요. 30대 초반 남성 PD와 40대 중반 여성 PD가 따오는 프로젝트는 확연히 다른데, 또 다른 중간자에게 재단되는 순간 개성은 무뎌질 수 있다고 봐요.
 
김수정 저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연출할 기회를 얻었는데 성별이나 나이로 편견 어린 시선을 받기도 했어요. 대표님 또한 꽤 젊은 나이에 여성 리더로서 대형 제작사를 이끌어온 과정에서 고충이 있었나요
권미경 매번 필드를 바꿔왔기에 기존에 자리 잡은 이들의 텃세가 심했어요. 광고회사에서 영화회사로 왔더니 “물건 팔던 애가 뭘 알겠냐”고, 영화투자회사에 와서도 “마케팅하던 애가 뭘 알겠냐”고, 외화에서 한국영화로 넘어올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냥 실력을 보여주면 되는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제 자신만의 기록을 써낸 김수정 감독에게도 누가 연출 못한다고 하겠어요? 여성 리더로서도 편견과 부딪혀왔죠. 그래도 요즘 달라진 흐름을 느낍니다. 이 고무적인 흐름 또한 그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김수정  국내 콘텐츠 시장을 이만큼 성장시키는 데 여성 소비자들이 기여한 부분이 크다고 봐요. 여성 서사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고요. 콘텐츠를 향유하는 소비자의 변화된 성향을 느끼나요
권미경 개인적으로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기보다 주변인과 약자의 이야기에 주목하기 시작하는 흐름으로 해석합니다. 〈시맨틱 에러〉도 10년 전이라면 이만큼 성공하기 어려웠을 지도요. 다양성이 인정되면서 좋은 작품들이 쏟아지고, 대형 스타나 자본에 기대던 투자배급사들도 서사의 주인공이 누구이며 그로 인한 흥행이 얼마나 될지 부딪히고 시도해 본 다음에 결과를 알게 된 거죠. 기존 성공 사례의 답습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아요. 그게 바로 콘텐츠이고, 이 흐름은 앞으로 또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겠죠. 콘텐츠 플랫폼이 TV와 극장뿐이던 시기의 ‘시청자’와 저마다 성향을 갖춘 OTT ‘소비자’들은 확연히 다릅니다. 국내 소비자들은 굉장히 다양한 콘텐츠를 다량으로 접하니 정말 까다롭죠. 눈높이를 맞추려면 제작자와 창작자들도 끊임없는 연구를 거듭해야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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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전혜진
    사진 이준경
    스타일리스트 박정아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슬아
    메이크업 아티스트 심현섭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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