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트라 하버리조트의 전경, 순수함을 잃지않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곳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2. 식도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3. 리조트 곳곳에 다양한 컨셉트의 수영장이 있다.
ME, MYSELF AND KOTA KINABALU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허기에 시달리고 발이 부르트는 여행을 해야 젊음을 사장시키지 않고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라 여겼다. 당시 서점가를 점령했던 오지에서의 고생담을 기록한 여행 서적 탓이 컸다. 미사여구로 점철된 문장과 이국적인 사진에 취해 여행은 자고로 오지로 떠나 현지인들과 섞여 짜릿한 경험과 고생을 해야 제맛이라 느꼈다. 자아를 찾는 순례자의 여정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학교를 나와 사회에 편입하면서 술에 물 탄 듯 묽어졌다. 페달을 밟는 랜스 암스트롱의 발구름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에 휘둘리다 보니 거친 여정 따위에 소진할 열정이나 체력이 남아나지 않았다. 대신 쇠라도 씹을 수 있을 것 같은 혈기왕성한 시절엔 사치라고 여겼던, 쉬고 즐길 수 있는 여행히 필요했다. 이런 유유자적 한가로운 휴식에 ‘바람 아래 땅’이라 불리는 코타키나발루는 최적이었다. 이곳은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북동편에 있는 코타키나발루 섬은 질릴 대로 질린 도시의 모습 대신 동남아 최고봉 키나발루 산과 원시 밀림, 에머랄드 빛 해양공원이 한데 완벽히 어우러져 있다.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에 코타키나발루엔 고급 리조트와 호텔이 수두룩하다. 이왕 쉬고 즐기기 위해 떠난 여행이라면 규모와 편의시설, 서비스가 제대로 된 곳이 좋을 터. 이것저것 따져 보니 수트라 하버 리조트를 첫손에 꼽게 된다. 말레이시아 국왕을 단골이라니 퀄리티에 대한 의심이 싹 사라진다.
PERPECT PLACE TO REST 4시간을 약간 넘긴 비행 끝에 당도한 코타키나발루. 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수트라 하버에 도착하니 일단 아파트 5층 높이의 로비 규모에 압도당한다. 귀빈들이 아지트로 삼고 있다는 로열 리조트의 명성에 걸맞은 위용이다. 마젤란 수트라와 퍼시픽 수트라, 2개 건물로 나눠져 있는 수트라 하버는 객실 또한 매머드급으로 그 수가 956개에 달한다. 어딜 가든 골프 용품부터 챙기고 보는 골프 애호가들에겐 고급 호텔 컨셉트의 마젤란 수트라를 추천한다. 리조트 가까이에 있는 해변을 따라 27홀의 골프 필드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유일하게 야간 조명이 설치돼 있어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피해 바닷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늦은 밤에도 라운딩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골프와 함께할 수 있는 휴가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 남국의 정취와 어울리는 리조트형의 퍼시픽 수트라는 매순간을 달콤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허니무너들에게 딱이다. 해안에 맞닿아 있어 발코니에 서면 고요한 하늘을 가로로 길게 찢어놓은 바다가 손에 잡힐 정도로 풍광이 뛰어나다. 특히 수트라 하버를 거쳐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추천하는 일몰 풍경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힘을 더해준다. 스콜성으로 비가 잠깐씩 쏟아져 운이 좋다면 노을을 가로질러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더없이 완벽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일몰 즈음 리조트 요트를 빌려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는 둘만의 추억을 만드는 것도 좋다. 수트라 하버에선 몇 시에 무엇을 하고,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는 식으로 자신을 닦달할 필요는 없다. 그저 순수함을 잃지 않은 하늘과 바다의 맑은 공기를 흠뻑 마시며 리조트를 산책하거나, 하릴없이 선 베드에 누워 있어도 만족스럽다. 그러다 보면 이곳의 시간은 다른 때보다 좀 더 느릿느릿 흐르고 머릿속에 흩날리던 상념과 고민들은 서서히 정화된다. 리조트 곳곳에 흩어져 있는 시설들은 이런 사치를 200% 향유하는 데 한몫한다. 출출함이 찾아올 때면 15개의 레스토랑과 바 중 한 곳에 들려 미식 여행을 떠나고, 약간의 무료함이 밀려오면 눈앞의 풀장에 뛰어들거나 볼링장과 테니스장에서 가볍게 몸을 풀면 된다. 비행으로 생긴 긴장감과 피로는 ‘만다라 스파’에서 떨쳐내는데 트리트먼트의 안락함에 취해 빠져든 낮잠은 그 어떤 때보다 달콤하다. 하지만 수트라 하버를 찾는 대부분의 투숙객은 크기와 규모 탓에 리조트의 절반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으리으리한 규모 탓에 미로처럼 이어진 복도에서 방을 찾아 헤매는 투숙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짧은 시간, 리조트를 제대로 이용하고 싶다면 자유 이용권과도 같은 골드 카드를 구입하길 추천한다. 추가요금을 부담해야 하지만 리조트 내 레스토랑과 각종 액티비티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어디에서 뭘 해야 할지 난감해 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리조트 이용에 애를 먹는다면 이곳에 상주하고 있는 한국인 직원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몇 년 사이 한국인 투숙객들이 부쩍 늘어 한국인에 대한 서비스와 관리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 돼 있다. 더욱 반가운 건 레스토랑 메뉴를 관리하는 한국인 셰프가 있어 해외 여행 때마다 귀찮게 하는 까탈스런 입맛을 달랠 수 있다.
4.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누칸의 섬의 별장 5. 요트를 타고 툰구 압둘 라만 해양 공원을 누비는 건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 6. 저녁하늘과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코타키나발루의 일몰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SOUND OF NATURE MELODY 아무리 시설과 서비스가 좋다 해도 리조트에서만 지내다보면 하루 정도는 외도를 하고 싶어진다. 그런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 있는지 수트라 하버에선 투숙객들에게 두 가지 옵션을 추천한다. 마누칸 섬과 키나발루 산이 바로 그것. 마누칸 섬은 툰구 압둘 라만 해양공원을 이루는 다섯 개의 섬들 중 하나로 리조트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사실 해안을 매립해 터를 다진 탓에 수트라 하버에는 발끝을 기분 좋게 간지르는 모래 해변이 없다. 이런 아쉬움을 마누칸 섬의 길게 뻗은 고운 모래 융단 위에서 달랠 수 있다. 섬 부근의 바다는 속이 훤히 비칠 만큼 물이 투명해 스노클링, 스킨스쿠버 등의 해양 액티비티를 즐기기에 최적이다.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나가 낙하산에 몸을 맡기는 패러세일링은 마누칸 섬의 레포츠 중 백미. 바람을 품은 낙하산에 이끌려 둥실 떠오르는 느낌은 공포스럽지만 귓가를 스치는 바닷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해양 공원의 풍광을 감상하는 기분은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하다. 섬에는 남국의 정취와 어울리는 수트라 하버 별장이 있어 낭만을 덮고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바다와 하늘을 아우른 푸르름에 익숙해져 새소리, 바람소리로 채워진 숲이 그리운 이들이라면 리조트로부터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키나발루 국립공원으로 향해보자. 거리가 멀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동 내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키나발루 산자락의 위엄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4000m를 훌쩍 뛰어넘는 기암들의 마천루를 보다 보면 대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발하게 된다는 겸허한 순종이 무엇인지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키나발루 산을 찾을 땐 이래저래 준비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우선 두꺼운 옷을 필히 챙겨야 한다. 원시 밀림이 내뿜는 한기가 해안의 따스한 햇살에 길들여진 몸을 유린하기 때문. 그리고 산 정상을 알현하기 위해선 1박 2일 일정을 세워 하룻밤 묵을 산장을 미리 예약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립공원에선 등산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무작정 이곳을 찾다 발길을 돌려야 한다면 등산로 초입, 빽빽한 밀림 사이로 하얀 수증기를 피어내는 온천에 몸을 섞는 것도 좋다. 하늘을 가린 장신 숲을 지붕 삼아 온천욕에 취하다 보면 산에 오르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마음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귀향 비행기가 활주로를 뜨는 순간 빗줄기가 창문을 적셨다. 코타키나발루에 머무는 동안 그토록 쨍쨍했던 날씨가 떠날 때가 되니 한바탕 기승을 부린 거다. 수트라 하버의 친절함, 이곳이 아니면 재회할 수 없을 것 같은 하늘과 바다의 평화로움, 가슴속으로 부서진 노을의 아련함을 잊지 못해 쉽게 떠나지 못할까봐 이 착한 땅이 잘 가라고 괜한 심술을 부린 듯했다. 쉬고 즐기려 떠난 여행에서 일상에 찌든 때를 씻어낸 대신 애틋한 정과 그리움을 마음 깊숙이 묻혀왔다. 평생 지워지지 않도록 말이다.
KOREAN FOOD MASTER 해외에서 만나는 고향 음식은 진수성찬 부럽지 않다. 수트라 하버에서 아침저녁으로 김치를 즐길 수 있는 건 최진숙 셰프가 있기에 가능하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퍼시픽, 마젤란 리조트의 한식 코너를 책임지고 있다. 요즘 들어 갈비와 해물파전의 레서피를 묻는 외국인들이 부쩍 늘었다. 경력이 특이하다. 원래 정보통신을 전공했다. 문득 파티 플래너가 하고 싶단 생각에 호주에서 레스토랑 매니지먼트를 공부했다. 그곳에서 좋은 요리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을 배웠고 셰프의 길로 전향했다.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우선 한식은 기본이고, 양식까지 섭렵해야 한다. 영어에는 한식 용어가 전무해 양식의 사례를 빌려 레서피를 설명해야 하니까. 한국 식자재를 구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레스토랑이 아닌 해외 리조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이곳에서 경험을 쌓아 외국인들의 입맛에 어필할 수 있는 한식을 만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