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묶은 백발의 생머리와 훤칠한 키. 영국 출신의 환경운동자이자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Jane Goodall)은 TV와 사진으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지난 9월 28일 자신의 저서 <희망의 자연>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그녀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와 플래시 세례에도 의연하고 담담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기후 온난화로 인한 환경 파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에 강단이 있었고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한 민감한 질문에는 자신의 생각을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분명 자기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그것이 옳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의 태도였다. 사람보다 침팬지와 찍은 사진들이 더 유명한 그녀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침팬지들과 보냈다. 인생의 위대한 여정들이 모두 그렇하듯 그녀의 모험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됐다. 대학에 가는 대신 비서학교에 진학해 평범한 삶을 살던 중 잠시 떠난 아프리카 케냐 여행에서 저명한 고고학자인 루이스 리키(Louis Leakey)를 만났고, 그 길로 유인원 연구를 자원하게 됐다. 그녀는 지난해 <엘르> 스페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그 아이들을 숫자로 부르는 것을 왜 과학적인 연구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학력도 경험도 없는 여자란 편견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작한 그녀의 침팬지 연구는 인간의 시선으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침팬지의 눈으로 그들을 이해하게 됐다. 사람과 매우 흡사한 침팬지를 통해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제인 구달은 인간들의 삶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동물들의 삶 또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물 멸종 위기의 원인은 가난이다. 누군가 동물을 사냥하고 나무를 베어야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런 행위를 그만두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영장류의 자유롭게 살 권리, 고통받지 않을 권리만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도 중요하다고 여긴 제인 구달은 1997년에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해 아프리카 아이들의 학업 지원과 여성들의 권익 보호, 빈곤층을 위한 무담보 대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올해로 침팬지 연구를 시작한 지 50주년이 되는 제인 구달은 현장 연구에서 물러나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과거 한 발 물러서서 관찰하고 연구하던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려는 그녀의 원동력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인간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파괴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결코 희망을 잃지 않도록 지탱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