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하는 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LOVE&LIFE

진동하는 밤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곳이 부쩍 늘었다. 그래서 한 번 시도를 해봤다

ELLE BY ELLE 2019.01.19



몇 년 전부터 여성친화적인 섹스토이 매장이 늘어나고, 여성의 자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여성도 많아지면서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본격적인 자기위로의 도구로 핫핑크색 바이브레이터를 하나 장만하게 되었다. 호모파베르, 인간은 도구를 활용하는 존재라곤 하지만 굳이 이 영역에서까지 필요할까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내게 혁신적인 변화였다. 


저렴한 가격대의 상품들도 있었지만 훌륭한 영업 능력을 가진 점원은 나의 질이 가진 잠재력을 높게 평가해주면서 값비싼 독일 수입산 모터가 장착된 것 정도는 써야 수축력이 좋은 질이 바이브레이터를 죄어 와도 버틸 수도 있다고 했다. 100% 방수에 항균 실리콘 소재, 어차피 하나 사는 거 제대로 된 걸 사자 싶었다.
딜도형 바이브레이터라 우선 콘돔부터 씌웠다. (혼자 즐길 때도 이렇게 콘돔 장착은 필수인지라 콘돔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남자는 용납할 수 없다.) 그것을 손에 쥐고 과연 이걸 몸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나의 질은 거창하고 위대한 존재이지 않은가. 큰 힘 들이지 않고 감쪽같이 들어간 바이브레이터는 몸의 내부를 진동시켰다. 질 안이 가득 채워졌기 때문에 만족감이 밀려온다기보다는 그것을 클리토리스에 가져다 댔을 때 더 큰 쾌감에 몸이 뒤틀렸다. (바이브레이터의 크기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은 얼마 후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고 깨닫게 되는 인간이다.)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동안 도구를 쓰지 않았던 것뿐이지 자위를 하지 않는 몸은 아니었기에 내 몸을 손쉽게 On 시키는 스위치의 위치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력한 진동이 이렇게 정확하고 신속하게 나를 달아오르게 만들 줄은 몰랐다.
내 안의 리뷰어 특성이 살아나서 이 놀라운 경험을 A에게 공유했다. 눈을 반짝이며 얘기를 듣던 A는 우리 둘의 섹스에 바이브레이터를 초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A가 어떤 욕망을 품었는지는 너무 뻔했다. 일본 A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이 컨트롤하는 바이브레이터 때문에 극강의 쾌감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었다. 남자들이 그런 욕망을 드러낼 때마다 좀 빈정거리고 싶어진다. 인간의 몸으로는 바이브레이터가 주는 쾌감을 결코 따라갈 수 없다.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겸손해지기는커녕 자기 손에 쥐어진 바이브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여자가 느끼는 즐거움이 마치 자신이 이뤄낸 성취인양 굴 터였다
A가 잘 하지도 못하면서 도구의 힘을 빌려 자기 도취에 빠지려고 하는 사람이었다면 시큰둥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내게 여태껏 도구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했던 남자였기 때문에 수락을 했다. 서랍에 넣어둔 바이브레이터를 꺼내 먼저 알콜스왑으로 잘 닦았다. 깨끗하게 씻어서 잘 말려 놓은 것이긴 했지만 사용 전에는 소독을 철저히 해야지. A가 콘돔을 뜯어서 내게 내밀었다. A는 콘돔을 창작한 바이브레이터를 자신에게 건네주기를 기대했던 것 같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나는 다리를 뻗어 A의 가슴을 밀어냈다. 우리 둘 사이에 거리를 만들었다.
“거기서 지켜봐!”

우리 둘 사이에 바이브레이터가 함께 하는 섹스라면 A는 관람객이 되어야 했다. 남자 손에 이걸 쥐어주면 마구 휘저으며 섬세하게 컨트롤 하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다. 그게 아무리 A라고 해도 미덥지 못했다. 갖다 대기만 해도 곧바로 반응이 올게 뻔한 자극이 센 도구를 타인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A에게 오늘은 AV 로망을 실현시키는 날이 아니라 학습의 장이 되길 바랐다. 내가 혼자서 어떻게 움직이고 홀로 어떤 식으로 자극을 느끼는지 지켜 보길 원했다. 물론 A는 이 행위를 예상치 못한 전개이자 도발로 받아들였다.

남자들은 섹스를 할 때 여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건 자신의 페니스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부심과 자존심을 페니스에 걸곤 한다. 그러나 고작 몸의 일부분이 주는 쾌감은 도구로 대체 가능한 것이고 오히려 그 도구가 훌륭하게 해낸다. 단순히 몸의 쾌감 측면에서만 보면 남자는 쉽게 대체될 수 있다.
여자들이 섹스에서 원하는 것은 육체적 만족만이 아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탐욕스러운 존재라고 말하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몸을 채우는 것만큼이나 마음이 닿길 원한다. 나를 욕망하는 눈빛으로 애가 타고, 동시에 나를 사랑스럽게 여겨 주길 바라는 것이다. 바이브레이터에 질투하는 마음이 돋아나길 바라는 것이다. 진동은 단계가 높아질 때마다 그 마음도 강해지길 바랐다. 지켜보기만 하는 상태에서 분한 마음도 들고, 그래서 나를 더 탐하고 싶어 지길 바랐다. 내게 다가오려고 할 때마다 뒤로 물러서며 침대의 막다른 곳까지 갈 때까지 그 짧은 거리에서도 A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그 마음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오늘의 작전은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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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김은정
    글 현정
    사진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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