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렌즈 위드 베네핏>의 한 장면. 함께 영화를 보던 딜런(저스틴 팀버레이크)에게 제이미(밀라 쿠니스)가 아주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섹스를 하고 나면 왜 다른 것들도 딸려오는 걸까? 감정이나 죄책감 같은…. 그냥 육체적 행동인데, 이를테면 테니스와 비슷해. 섹스도 테니스처럼 해야 한다고 봐. 그냥 게임이지. 악수 한 번 하고 끝나는 거.”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애인은 없고, 그렇다고 진지하게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섹스는 하고 싶을 때. 몸이 동한다고 해서 누군가를 찾아 밤거리나 데이팅 앱을 헤매기엔 번거롭고, 로맨스에 대한 부담 없이 스포츠처럼 섹스를 즐기고 싶을 때 말이다. 2011년 개봉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프렌즈 위드 베네핏(Friends with Benefits; 이하 FWB)’을 섹스 파트너의 동의어 정도로만 생각했다. 사귀는 것도 아니면서 가끔 만나 섹스하는 사이라면 그게 바로 섹스 파트너 아닌가. 하지만 최근 주변 친구들과 연애 라이프를 공유하면서 FWB가 그렇게 단순히 정의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A는 요즘 만나는 상대의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하면서 다음주에 함께 뮤지컬을 보러 갈 계획이라고 했고, B는 얼마 전 누군가와 3박 4일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모두 상대방이 애인 혹은 ‘썸남(썸녀)’이냐고 물으면 단칼에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대답은 같았다. 그냥 편리한 친구, 그래서 정말 좋은 친구 사이라면서 미묘한 웃음만 지었다.
이게 무슨 ‘쿨병’ 걸린 소리인가 싶겠지만, 세상엔 그렇게 자기방어적인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들의 애매한 표정이 말해주듯 FWB 속엔 섹스와 연애를 아우르는 복잡다단한 감정과 관계가 얽혀 있다. 친밀감의 정도에 따라 간단하게 정리하면 섹스 파트너-커들 버디-FWB로 나눌 수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섹스 파트너는 말 그대로 섹스를 위한 섹스, 동물적 욕구만 채우는 관계다. 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듯 만날 약속을 잡고 섹스가 끝나는 대로 헤어진다. 커들 버디(Cuddle Buddies; 직설적으로 말하면 F**k Buddies)는 좀 더 인간적이다. 섹스 파트너가 침대에서 샤워 부스로 직행하는 관계라면, 커들 버디는 섹스가 끝난 후에도 후희를 즐기거나 침대 머리맡에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정도는 된다. 하지만 커들 버디가 ‘버디’보다는 ‘커들’, 즉 스킨십에 무게중심을 크게 두는 반면 FWB는 ‘프렌즈’ 파트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둘 사이에 우정과 애정 어디쯤의 감정이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베네핏(Benefits)’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이건 반복적인 섹스를 뜻하는 동시에 섹스 외의 다른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드시 섹스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같이 영화를 보거나 술잔을 기울이다가 각자 집으로 귀가할 수도 있으며, 친구 B처럼 짧은 여행을 함께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이 모두 잘 맞는 친구 사이다. 하지만 섹스 파트너든 FWB든, 공통점은 독점적 관계가 아니라는 거다. 원하는 만큼 혹은 능력이 되는 만큼 여러 사람을 동시에 떳떳하게(이론적으로는) 만날 수 있으며, 서로의 사생활을 터치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폴리아모리(Polyamory)’, 즉 다자연애와 무엇이 다르냐고? 결정적으로 FWB는 연애가 아니다. 연인 사이에 주고받는 달콤한 말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일반적인 연애와는 정반대로 ‘사랑해’ 같은 고백을 내뱉는 날엔 그날로 이별이다. 하지만 섹스처럼 사랑도 본능 아니던가? 로봇처럼 정말 테니스 치듯이 섹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밤뿐 아니라 낮도 함께하는데 ‘우정’ 이상의 감정이 생기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서인지 은어, 속어, 신조어 등을 다루는 어번 딕셔너리에서는 FWB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런 주석을 달아놓았다. “관계가 지속될수록 둘 중 한 사람이 연애 감정을 갖게 되거나 진지한 관계를 원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돌이켜보면 내 지난 FWB도 항상 그렇게 끝나곤 했다. 나는 상대방도 우리가 FWB 이상으로 갈 수 없다는 걸 분명히 하면 모든 걸 오픈하자는 주의였다. 처음엔 누구보다 그 사실을 반기면서 나 외의 다른 파트너가 있다는 걸 넌지시 말해준 D는 데이트가 거듭될수록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네가 다른 여자를 만나도 괜찮다는 것이 나 역시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있다(혹은 만나고 있다)는 뜻인 걸 점점 깨닫기 시작했는지, 한 달 만에 그는 다른 파트너를 정리하겠다고 선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가 하면 커들 버디부터 FWB 단계까지 차근차근 거친, 나름 성공적인(?) 케이스도 있었다. 친구의 친구였던 M에겐 내가 먼저 접근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98% ‘섹스팅’에 가까웠고, 평범한 ‘썸’ 타는 관계에서 흔히 물어볼 만한 “지금 뭐해?” “밥 먹었어?” 같은 일상적인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하물며 처음 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 그의 첫 마디는 “집에 가야겠어”였다.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걸 이렇게 교묘하게 분명히 한 남자도 처음이었다. 만나서 섹스만 하는 건 아니지만, 섹스가 아니면 만나지 않았다. 나 역시 그가 그어놓은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하지만 함께 보낸 시간이 두 달이 넘어가자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1주일에 하루나 이틀 메시지를 주고받던 게 매일이 됐고, 일상에 관한 농담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같이 있지 않을 때도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부분 알게 됐고, 가끔 영화를 본 후 놀이공원에 갔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다른 파트너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으며, 나 또한 나의 다른 누군가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 질투한 적 없다고 한다면 당연히 거짓말이다. 가끔 연인이 된 우리를 상상했고 서로 관계의 가능성을 슬쩍 떠보기도 했으며, 그럴 때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농담으로 얼버무렸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끝냈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탓이 가장 컸다. 그와 FWB로 지낸 반년간 남자친구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진짜 연애가 절실해졌다.
미국의 심리학자 수전 라흐만은 웹 매거진 <사이콜로지 투데이>에 이렇게 적었다. “처음엔 FWB라고 관계를 정의하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시작 단계에서만 적용되는 법칙이다. FWB라는 관계는 너무나 모호해서 당신과 당신 ‘친구’의 감정이 무수히 다양한 방향으로 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고 나면 편리하다고 생각했던 FWB라는 이름표가 장애물이 될 것이다.” <프렌즈 위드 베네핏>에서 결국 딜런과 제이미는 우여곡절 끝에 서로가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게 되지만, 영화는 영화다. 현실 속에서 대부분의 FWB는 단기간에만 그 효력을 제대로 발휘한다. A와 완벽한 속궁합을 자랑했던 그녀의 FWB는 서서히 서로에게 흥미를 잃었고(이 정도는 해피엔딩이다), B 역시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대방이 그 이상을 원하는 것 같다며 불평을 쏟아냈다. 그리고 M과 나는 섹스를 멈춘 후, 그제야 진짜 친구 비슷한 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