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옷 입어도 돼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FASHION

매일 같은 옷 입어도 돼요?

매일 같은 옷을 입는 대안 패션에 관한 에세이.

ELLE BY ELLE 2016.10.18

패션위크 스트리트 신에서 가장 불필요한 미덕을 꼽으라면 그건 겸손함이다. 미로슬라바 두마를 비롯해 많은 팔로어를 거느린 스트리트 아이콘들은 쇼 중간에도 두세 차례 옷을 갈아입는 생 쇼를 벌이고, 패피들은 OOTD를 위해 드레스 룸에서 수 시간을 보낸다. 이 극단적인 리얼 패션쇼는 패션위크 현장에서 한 달간 펼쳐진다. 이 기간 중 또 다른 이유로 눈길을 끄는 인물들이 있다. 공작새 같은 ‘잇’ 걸들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선택한 이들, 찍고 찍히는 소란스러움과 동떨어져 그날 그날의 옷차림에 큰 변화가 없는 이 무심한 집단은 패션계의 문외한이 아닌, 하이패션의 최전방에 있는 이들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레이스 코딩턴, 스타 스타일리스트 멜 오텐버그, 에디터 유진 통 등 영향력 있는 패션 피플들은 매일매일 거의 달라 보이지 않는 옷차림을 고수하며 몇 년 후에 봐도 어제 본 모습과 비슷한 자신만의 사적인 유니폼을 입는다. 흥미로운 점은 하이패션 업계로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인사이더들의 패션에서 정제된 유니폼 스타일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디올 시절의 존 갈리아노가 오직 피날레에 입고 나갈 옷을 준비하기 위해 멜 오텐버그를 기용한 건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일 뿐, 하이패션 하우스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대부분은 매일 거의 비슷한 유니폼을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 최고의 힙스터 알렉산더 왕의 런웨이에서 블랙 티셔츠와 블랙 진 차림의 왕을 마주치지 않은 적 있던가? 그의 드레스 룸에는 50여 벌의 블랙 진과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블랙 티셔츠, 40켤레의 블랙 스니커즈가 있으며, 거의 다 비슷해서 비몽사몽 손에 잡히는 대로 입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다. 마이클 코어스 또한 줄곧 블랙 블레이저와 다크 진, 크루넥 톱, 드라이빙 로퍼, 커스텀메이드 스니커즈를 고집해 온 대표적인 유니폼 마니아로, 35년의 커리어를 거슬러 올라가도 한날한시 같은 피날레 룩에 소름이 끼칠 정도. 패션 고수들이 고집하는 유니폼적인 패션 방식을 패션과 유행을 거부하는 ‘안티패션’과 비교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 예컨대 옷장에 똑같은 그레이 티셔츠가 가득한 마크 주커버그, 블랙 터틀넥과 블루진에 뉴발란스 스니커즈만 신었던 스티브 잡스, 블루 수트와 타이만 입는 버락 오바마의 변함없는 옷차림을 패피들의 유니폼과 비교하지 말 것. 한 달이면 8시간에 달하는, ‘무얼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 낭비를 줄이면 효율적인 시간 활용이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자기계발서의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패션 법칙’은 이번 주제와 전혀 상관없다. 그들이 패션의 즐거움을 간과하는 반면, 패션 유니폼을 즐기는 이들은 누구보다 패션의 즐거움을 지지하는 이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이미 크레이지한 패션을 탐닉하던 시절을 보냈으며 여전히 누구보다 진보적이고 파격적인 패션 오피니언을 제시하는 프런티어들이다. 그들은 오랜 패션 커리어를 통해 얻은 안목으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간파하고 디자인적으로 가장 정제된 시그너처 룩의 파이널 버전을 손에 넣었다. 덕분에 패션 고수들이 매일 애용하는 시그너처 아이템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실패 확률 제로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에 관한 정보를 득템할 수 있는데, 그레이스 코딩턴의 프라다 버튼업 셔츠, 조너선 앤더슨의 선스펠 티셔츠, 칼 라거펠트의 생 로랑 턱시도 재킷, 엠마누엘 알트의 BLK DNM 퍼펙토 재킷, 마이클 코어스의 토즈 크로커다일 로퍼가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 사적인 유니폼 패션을 대안 패션으로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암스테르담의 라이징 브랜드 본 레이진(Bonne Reijn)은 수트 몇 벌로 시작해 글로벌한 관심을 받은 케이스이다. “이미 패션계는 포화 상태이고, 사람들은 이제 한 시즌에 6회 이상 새로운 컬렉션을 출시하는 SPA 브랜드의 패스트 패션에 지쳐가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1주일에 7회, 같은 옷을 입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25세의 디자이너 본 레이진의 수트는 패션의 LTE급 속도에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며 글로벌한 공감을 얻어냈다. 결론적으로, 우린 정말 매일 똑같은 옷을 입어도 괜찮은 걸까? “Why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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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주가은
    photo IMAXtree.com, GETTY IMAGES/IMAZINS
    digital DESIGNER 최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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