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컵아, 만나서 반가워

이딸라 유리컵의 장식이라곤 오직 색뿐이다. 그 색은 비를 닮았고 모래를 닮았다. 단조로움이 지닌 깊은 아름다움과 처음 마주한 순간이 떠올랐다.::유리, 컵, 물병, 예쁜 유리컵, 이딸라, iittala, 핀란드, 가르티오, 그릇, 색, 예술, 디자인, 엘르, elle.co.kr

프로필 by ELLE 2015.06.15

 

 

 

 

 

 

4년 전쯤, 회사 선배와 지금은 이름도 생각 안 나는 생전 처음 가보는 동네에 간 적이 있다. 선배는 꼭 사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너도 내 나이 되면 이런 것들이 좋아질 거야"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때 나는 20대 중반이었고 선배는 30대 중반이었다. ‘이런 것’을 궁금해하며 찾아간 곳은 그릇집이었다. ‘그릇집’이라고 말하기도 뭣하게 유리컵, 유리 물병, 유리 그릇들이 선반마다 그림처럼 놓여있었다. 그 식기들은 ‘이딸라’라고 했다. 나는 ‘2달러’라는 얘기인 줄 알았지만 ‘iittala’라고 적힌 스티커들을 보고 그제야 그것이 브랜드라는 것을 알았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았다. 그때는 국내에 이딸라 공식매장도 없었을 때다. 하지만 사실 있었다 하더라도, 그릇을 그림처럼 감상하는 선배가 신기해 보이던 나는 여전히 이딸라를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선배가 무엇을 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신 내게 갖고 싶은 유리컵을 골라보라던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내내 매장 안에서 졸졸 쫓아다니며 본 선배의 등 대신 유리컵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예뻤다. 물색을 고를까, 모래색을 고를까, 한참을 고르지 못했다. 투명한 물색의 유리컵은 거기에 물을 담아 마시면 물맛이 꿀맛일 것 같았고, 마찬가지로 투명한 모래색의 유리컵은, 유리가 이런 색도 낼 수 있구나 신비로웠다.
당시 수입업체에서 산 이딸라 컵은 ‘가르티오’ 컬렉션이었다. 이딸라의 철학 그대로 ‘색만이 유일한 장식’이었다. 유리와 유리 사이에 영원히 색이 갇힌 듯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컵이 이딸라인지 2달러인지는 몰라도 상관없다. 그저, 아무 장식 없는 유리컵이 이렇게 빛날 수 있구나, 느껴만 봐도 좋겠다. 덧붙여 그때 나는 물을 꿀처럼 먹기 위해 물색 컵을 골랐다. 언젠가 완벽한 내 취향으로 꾸민 내 공간을 갖게 되면 그때 물을 담아 마시려고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 두었다.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형태에 색만으로 색을 입힌 ‘이런 것’들을 보며 갖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심정이 무엇인지 절절히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때 못 산 모래색 유리컵이 아른거린다.

 

 

 

Credit

  • CURTESY OF IITTALA
  • CONTRIBUTING EDITOR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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