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로!

인간은 도구를 사용한다. 손으로 할 수 있는일이 제법 된다. 먹고사는 일에만 골몰하느라 삶이 팍팍해졌다면 주목할 것. 손쓰는 재미로 인생이 풍요로워졌다고 말하는 이들을 소개한다.::핸드메이드,취미,목공예,가죽공예,회화,도예,네오위즈게임즈,서울외국환중개,나이키,나비컴,식탁,원목,가방,지갑,드로잉,작품,스트레스 해소,공방,소품,엘르,엘르걸,엘르 데코,elle.co.kr::

프로필 by ELLE 2013.10.29

 

1 간단한 선반부터 도마 같은 생활 소품까지 직접 제작한다.

2 아들을 위해 만든 침대. 아이의 취향에 따라 미끄럼틀을 추가했으며 이동을 위해 해체와 조립이 가능하도록 제작.

3 설계와 목업 제작을 하는 집 안 작업실. 

4 원목 식탁과 의자. 정면에 보이는 의자는 아이 사이즈에 맞게 작게 제작했다.

 

아내가 원목가구를 좋아하는데 차라리 직접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 공방(우드 스튜디오)에 나가서 배우기 시작한 건 2년 전인데 이젠 장소와 장비만 있으면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수준은 된다. 재료 비용이 만만치 않고 공방에 다니는 비용도 드는 만큼 목표한 걸 꼭 만들어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땐 아내도 반신반의했는데 그럴듯하게 만들어오니까 인정해 주더라. 한 달에 세 번의 주말, 6일 정도는 공방에서 보낸다. 주말 아침에 공방에 가서 온종일 서 있다가 저녁에 돌아오면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주중엔 출근하고, 주말까지 작업하다 보니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모자란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최대한 작업을 빨리 마치고 저녁 시간부터라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목공예는 기획부터 디자인, 작업까지 모든 걸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라 좋다. 직장에선 일의 일부만 담당하다 보니 관여하는 사람이 많아서 스트레스받을 때도 많으니까. 눈에 보이는 걸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것도 좋다. 직장 업무와는 다른 성취감이 느껴진다. 직업상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다가 몸을 쓰게 되면서 건강도 좋아진 것 같다. 그리고 항상 구체적인 다음 목표가 있다고 생각하면 즐겁다. 회사에서도 목표는 주어지지만 능동적인 계획은 아니니까. 예전엔 가구 볼 때 가격부터 봤는데 이젠 어떤 재료를 썼는지 살피게 된다. 예전에 샀던 싸구려 원목 가구들은 분해해서 작업에 필요한 소모품으로 쓰고 있다. 지금은 취미로 하니까 즐겁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직업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1 가죽으로 만든 명함지갑과 반지갑.

2 스터드 장식을 좋아해서 레더백에도 활용했다.

3 레더 브레이슬릿.

 

원래 미술을 좋아해서 예고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집안 반대로 포기했다. 언젠가 화실이나 공방에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가죽 공예에 관심이 생겨서 공방을 찾아보다가 지금 다니는 공방 분위기가 좋아 보여서 수강 신청을 했다. 공방에 나온 기간은 다해서 5개월 정도인데 간단한 명함 지갑을 처음 만든 이후로 스터드가 박힌 백이나 간단히 쓸 수 있는 클러치백 등을 만들었다. 명함  지갑이나 키홀더를 만들고 이니셜을 새겨 선물하면 다들 좋아하더라.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리면 그걸 보고 찾아오는 친구들도 있다. 예전엔 가죽 제품을 보면 갖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젠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 나 혼자만 가진 것이라 생각하면 뿌듯하다. 아직은 초보지만 언젠가 갖고 싶은 걸 완벽하게 만들어서 쓰는 수준이 되면 좋겠다. 직업으로 삼을 수 있어도 좋고. 지금의 직업은 머니 브로커인데 은행간 상품 거래를 연결하는 중개업자라고 보면 된다. 사실 수명이 긴 직업은 아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잡념 없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다 보면 힐링되는 기분도 든다. 스티치 하나만 삐끗해도 전체적인 모양이 삐뚤어지니까 집중해서 꼼꼼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좀 더 자세하게 디자인을 표현하면 좋을 거 같아서 드로잉도 배우고 싶어졌다. 액세서리 같은 것도 직접 만들면 재미있을 거 같다.

 

 

 

 

1 신시사이저 음악계를 이끈 조르지오 모로더에게 헌정한 다프트 펑크 넘버를 모티프로 그린 유화. 

2 스케치북에 그린 알베르 카뮈 얼굴은 콩테로 묘사하고 바탕은 아크릴 물감으로 칠했다.

3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왓치맨>의 캐릭터 닥터 맨해튼의 유화.

 

마음먹은 건 2년 전이지만 5개월 전부터 시작했다.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힘들더라. 미술을 좋아하는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미술관을 자주 찾았고 회화에 흥미를 느꼈다. 미술품 복원에 관심이 생겨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했고, 어학 연수지로 밀란을 선택하기도 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로 배울 순 없었다. 건축 전공이라 스케치를 많이 했지만 유화를 그려본 건 처음이다. 수채화나 아크릴화와는 달리 유화는 칠이 마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계속 덧칠해야 한다. 기다림과 같다. 주말에만 시간이 나니까 유화 하나를 완성하는 데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더라. 완성된 작품을 보면 그동안의 시간들이 새롭게 느껴진다. 반복적인 회사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란 게 퇴근하고 술 마시면서 떠드는 건데 대화 주제라는 게 늘 거기서 거기다. 항상 인풋이다. 하지만 그림은 아웃풋이 된다. 내 관심사나 취향을 가시화 시키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이해하게 된다. 누군가와 취향을 공유할 기회도 생긴다. 물론 심드렁한 사람도 있을 테니까 가까운 친구한테만 보여준다. 그래도 수준이 높아지면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을 것 같다. 내 그림들을 보고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되새기는 계기를 얻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 관심사를 계속 그리고 싶다.

 

 

 

 

1 처음엔 주로 그릇을 만들다가 소품까지 만들게 됐다.

2 스스로 가장 아끼는 작품.

3 모든 도기들을 직접 손으로 눌러서 틀을 잡다 보니 형태가 일정하지 않아서 재미있다.


언젠가부터 취미가 없다는 게 싫어졌다. 뭐라도 배워보자 싶었는데 3년 전에 살던 아파트 주변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두 평 남짓한 도예 공방을 발견했다. 문의해 보니 어른도 가능하다고 해서 수강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 찰흙을 만지는 기분이라 좋더라. 최소한 한 주에 한 번씩 나간다. 물레를 돌리는 대신 손으로 흙을 눌러서 형태를 잡다 보니 저마다 모양이 다른 그릇들이 나오는데 그래서인지 저마다 특별해 보이고, 화로에서 그릇이 나올 땐 조금 떨린다. 가끔 공을 들이는 게 지겨워서 소홀할 때도 있었는데 그런 마음가짐이 결과물에서 명확하게 보이더라. 많이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당장 하기 싫다면 차라리 나중에 하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다. 몇 시간 동안 정성 들여 만드는 만큼 내가 만든 그릇은 다 사용한다. 주변에 선물하기도 하고. 홍보대행이라는 게 어찌 보면 내 것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실물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보람이 있다.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다. 대신 얻은 게 뭘까 생각하면 내가 원하는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자유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면 정말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예전엔 일만 생각하며 살았는데 요즘은 은퇴를 조금 빨리 하고 싶어진다. 그 이후의 삶은 하기 위해서 하는 것 대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마당이나 터가 있는 집을 구해서 공방을 만들고 싶다. 그럼 누군가가 찾아와서 같이 작업할 수도 있고, 내가 가르쳐줄 수도 있을 테니까. 덕분에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도 살 수 있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 도예를 배우지 못했다면 도시에서 무언가를 계속해야 한다고 믿었을 거다. 나는 본래 여유롭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표정도 편안해지고 성격도 유연해졌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때마다 잘살고 있다고 느낀다. 최근엔 회화도 시작했다. 예전엔 고민만 하다가 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지만 이젠 엔터키를 누르는 게 쉬워졌다. 삶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Credit

  • EDITOR 민용준
  • PHOTO 이창주
  • DESIGN 하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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