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낙이 많은 남자, 이천희

배우 이천희가 책을 썼다. 일명 <가구 만드는 남자>. 이천희는 가구를 만들어왔다. 동생과 함께 ‘하이브로(Hibrow)’라는 브랜드도 만들었다. 이천희는 생각보다 재주가 많고, 낙도 많은 남자였다.::이천희,가구 만드는 남자,책,하이브로,hibrow,인테리어,가구,공방,인터뷰,데코,엘르데코,엘르,엘르걸,elle.co.kr::

프로필 by ELLE 2015.03.08

 

스트라이프 니트는 버버리. 청바지는 마우로 그리포니. 신발은 반스.

 

 

 

 

 

 

셔츠는 오프닝 세레모니. 바지는 꼼데가르송.

 

 

 

 

 

 

1 서핑을 좋아하는 이천희의 취향과 쓸모가 반영된 하이브로의 서핑 보드.
2 제 자리에 정돈된 연장들이 공방 주인들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3 하이브로에서 만든 스툴.
4 하이브로의 슬로건이라 해도 좋을 ‘Enough is enough(그 정도면 충분하다)’. 
5 하이브로의 서핑 보드 거치대와 서핑 보드. 
6 이천희와 이세희 형제를 연상시키는 작업용 안전모.

 

 

 

 

 

 

 

 

7 이천희가 집필한 책의 내지 컷 중 이천희가 딸을 위해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의자.
8 딸 소유와 나란히 앉아 있는 이천희. 이 사진 역시 책에 실릴 예정이다.

 

 

<가구 만드는 남자>라는 책을 썼다. 서문을 보니 집필을 결정하기까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더라 캠핑 지침서를 내보자는 출판사도 있었지만 내가 할 일이 아닌 거 같았다. 그런데 출판사 ‘달’에선 캠핑도 좋아하고, 목공예도 하고, 그런 취미에 접근하고 즐기는 본인의 이야기를 담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일기처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다. 보통은 3~4개월이면 책 한 권 쓴다던데 나는 오래 걸리더라.

 

“만드는 과정보다 생각하는 과정이 즐겁다”는 문장이 흥미롭더라 한번은 원하는 걸 만들고 나서 집에 갖다 놓으려는데 못 들겠더라. 너무 무거웠던 거지(웃음). 집에 가져갔는데 문을 통과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디자인만 생각하고 공간에서의 실용성을 놓친 거다. 나무는 수축하고 팽창하는 성질이 있는데 그걸 몰라서 가구가 터지고 쫙쫙 갈라지기도 했다.

 

시행착오가 많았다. 목공예 학원에 다녔으면 공방장한테 배웠을 텐데 시간도 안되니까 그냥 무작정 만들기에만 바빴거든. 원래 장인들은 겨울엔 틈이 생기고 여름엔 맞물리도록 계산해서 만든다는데 나는 그 정도 수준이 안돼서 최대한 변형 없는 자작나무 합판 같은 걸 쓴다. 시행착오가 많았나 보다 처음 만든 가구는 정말 못 봐준다. 책을 보면 내가 처음 만든 하얀색 가구들이 나오는데 일반 합판으로 각재를 대고 만든 거라 나중에 벌어지고 난리가 났다(웃음). 직접 뭔가를 만드는 이유는 만드는 것 자체를 즐기거나 갖고 싶은 걸 갖기 위해서다. 스무 살 때 처음 내 공간이 생겼다. 천장이 기울어진 다락방이라서 방에 놓을 수 있는 가구가 드물었다. 그래서 이 공간에 최적화된 가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들다 보니까 공구가 필요해서 하나씩 구입하고, 사용법도 익히게 됐다. 만드는 것 자체도 즐겁다.

 

손재주가 좋은 조부와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다던데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직접 집도 짓고, 외양간도 고치셨다. 커다란 나무 궤짝으로 된 연장통엔 오만가지 공구들이 다 있었다. 어릴 땐 어느 집에나 그런 연장통이 있는 줄 알았지(웃음). 나중에 서울로 올라오셨을 땐 시멘트로 계단도 만드셨다. 남자는 당연히 그런 걸 만드는 거라 생각했다. 어렵게 보이지도 않았고. 그리고 비닐하우스 형태인 이 공방의 외관은 아버지께서 다 만드신 거다.

 

캠핑이나 서핑이 유행하기 전부터 시작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걸 찾아 즐기는 타입일까 축구나 농구를 하며 어울리기보단 혼자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타입이다. 4년 정도 캠핑을 하니까 캠핑 붐이 일고 일찌감치 시작한 내가 신기한 사람이 돼 있더라. 서핑도 남들이 하지 않을 때 시작했는데 이제 서핑 붐이 일었고, 처음 가구를 만든다고 했을 때는 사람들이 ‘왜?’ 그랬는데 DIY 가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나한테 그런 걸 보는 눈이 있는 건가.

 

호기심이 많은 편일까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린다. 예전에 1989년식 골프 2세대를 탔는데 주차장에서 내부가 궁금해서 부품을 다 뜯어봤다. 뜯는 데 이틀 걸렸는데 조립하는 데는 일주일이 걸리더라(웃음).

 

구조적인 관심이 큰 편인 거 같다 예전에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했을 때 내 IQ가 148이라고 했다가 지탄받았다. 너는 그럴 리 없다고(웃음). 언어 능력은 낮았지만 공간지각이나 도형추리 능력은 높게 평가됐다. 평소에 길도 잘 찾는 편이다.

 

목공예는 좋은 취미지만 위험한 취미이기도 하다 목수들은 한 번씩 크게 다친다더라. 사실 손가락 걸고 할 일은 아니니까 가끔씩 ‘이러다가 다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이브로’라는 브랜드를 내걸게 된 계기는 ‘하이브로’라는 이름으로 공방을 운영하면서 이미 브랜딩이 시작됐더라. 만들면 사겠다는 사람도 생겨서 지난해 5월에 ‘진짜 제대로 한번 팔아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나 동생은 사업에 대해 전혀 몰랐고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처음엔 핸드메이드 가구만 만들려 했는데 쓰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대량생산이 불가능해서 유통이 어렵더라. 저마다 사이즈가 다르니까 매번 디자인을 변경하면서 만들 수 있을까 는 의문이 생겼다. 그냥 기성품을 만들어서 진열해 놓고 팔아야 하는 건가 고민 중이다. 그리고 브랜드가 더 커져야 가능한 것들이 있다. 유통해 보니까 가격도 적합하지 않은 걸 알았다. 그냥 팔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유통 마진이나 위탁 판매의 개념도 고민해야 한다. 공장에 넣을 건 넣고, 직접 만들 건 만들고, 그렇게 정리하고 있다. 게다가 대단한 브랜드도 아니고, 취미 삼아 시작한 거라 홍보는 생각도 안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연예인으로서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을 텐데 사실 지난 1년 동안 단순히 홍보를 위해 동료 연예인에게 하이브로를 준 적은 없었다. 한번은 공유가 잡지에서 하이브로의 보드를 든 사진이 나와서 그걸 SNS에 올렸는데 ‘공유 보드’가 돼버렸다(웃음). 사실 우리 보드를 협찬해 간 잡지사의 모델이 공유였는데 나는 그걸 몰랐고 잡지를 보고서야 알게 돼서 공유랑 친하니까 찍어서 올린 건데. 좀 놀라긴 했다.

 

연예인이 이런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 얼굴마담이나 월급사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설마 본인이 직접 만들겠어? 척만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1년이 지나니까 믿더라. 연예인이라서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 하이브로 제품을 쓰다가 망가지면 이천희한테 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웃음). 그래서 처음엔 동생이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취미로 목공예를 하다 보니 사업까지 연결됐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인터뷰도 하는 거다(웃음).

 

직원까지 생겼으니까 책임감도 생겼을 거 같다 지난 1년간 동생이랑 직원들과 같이 하다 보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더라. 누구보다 홍보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원이니까. 이젠 어디 가서 하이브로 좀 소개해 달라는 말도 잘한다. 사업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딸의 침대를 만들면서 키즈 라인까지 생각했다던데 유아용 가구를 만드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장롱 문을 뾰족하게 만들었더니 문이 열려 있으면 애가 머리를 찧더라. 아이들 가구가 왜 둥근지 그때 알았다. 1~2년 쓰니까 사이즈가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고, 어렵더라.

 

동생과 함께 일하면 부딪힐 때도 있지 않나 다른 형제들은 어릴 때부터 치고 박고 싸운다는데 우린 우애가 좋았다. 사춘기 시절 이후론 서로에게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동생이 목공예 공방에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잘 만들었다. 나랑 완전 격이 달랐다. 동생은 제작 공정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하나 만드는 데 일주일이 걸리지만 나는 최대한 빨리 쉽게 만드는 편이라 스타일이 정반대다.

 

어떻게 같이 일을 하게 됐나 2008년에 이태원에서 ‘천희 공작소’를 운영할 때 내가 없어도 공방에서 작업을 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생이 보인 거다. 원래 건축사무소에서 일했는데 당시 건축 경기도 안 좋아서 내가 꼬셨다(웃음). 그리고 이름을 고민하다가 이천희, 이세희니까 ‘희 브라더스’라는 의미에서 ‘하이브로’라고 지었다.

 

아무래도 동생의 꼼꼼함 덕분에 본인이 욕을 덜 먹을 것 같다(웃음) 아무래도(웃음). 취미로 만들 당시 나는 대충 만들어서 본드로 칠하고 튀어나오면 깎아버리고, 사이즈가 작아져도 그러려니 했는데 동생은 건축을 했던 탓인지 1mm의 오차도 크게 생각했고, 컴퓨터 도면작업까지 했다. 어쨌든 지금은 사업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디자인만 좋다고 제품을 쓸 사람은 없을 테니까.

 

사업한다고 했을 때 아내의 반응은 좋아했다. 배우들은 작품이 없을 때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친구 만나고, 술 마시고, 아니면 여행이라도 가고. 하지만 그것만으론 채워지지 않는 게 있다. 그리고 필요한 게 없는지 물어보고 만들어오면 너무 좋아했다. 원래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없었는데 나랑 살면서 많이 늘었다. 가끔씩 내가 너무 목수처럼 보이면 지적해 준다. ‘오빠는 본업이 배우야. 관리 안해? 선크림은 발라야지!’ 그때마다 정신이 드는 느낌이지(웃음).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삶의 태도도 달라졌을 것 같다 책임감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결혼 전엔 일이 없으면 안하고, 돈이 없으면 안 먹고, 편하게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유지해야 할 선이 생긴 거다. 그 전엔 더 좋아지건, 더 나빠지건 상관없었는데 지금은 다달이 정확히 필요한 몫이 있으니까.

 

반려동물용 가구에도 관심이 있다던데 원래 동물을 키웠나 안 키웠다.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늘 집에 개는 있었지만 아버지께서 키우시는 거였지. 이젠 개를 키우면서 그 책임을 지고 있다. 산책도 시키고, 밥도 주고, 화장실도 치워주고.

 

그 역시 가족이 생기면서 이어진 변화 아닐까 고양이는 정말 무서워했다. 요물이라 생각했고. 어느 날 아내가 주먹만한 새끼를 주워왔다. 비를 맞고 있어서 데려왔다는데 한 달만 키우자고 하더라. 그때가 11월이라 추워지면 어떡하나 싶어서 그러자고 했는데 보니까 너무 귀엽더라. 만날 데리고 놀다 보니 정도 붙고. 아내가 겨울만 보내고 다른 주인을 찾아주자고 했는데 못 주겠더라(웃음).

 

최근에 개봉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 출연했고, 영화 <돌연변이> 촬영도 마쳤다. 배우로서 다시 활발해진 거 같다  하이브로를 준비하면서 소속사에 잠시 쉬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동생 혼자 준비하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 그런데 이젠 다들 알아서 하니까 내 일을 해도 될 거 같다. 사실 하이브로는 동생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시작은 같이 했지만 동생이 생각하는 대로 키워나가야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어쨌든 나무는 나무다.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서 용도는 달라지겠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문장은 자아 성찰 같기도 했다. 단순히 취미를 자랑하려고 쓴 책은 아닐 텐데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나 예전엔 인터뷰에서 작품 얘기만 했지, 정작 내 얘기는 못했다. 그래서 내 얘기도 해보고 싶었다. 책을 쓰면서 내 인생을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이기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내 선택의 중심엔 내가 있는 거다. 관객보다 나를 위해 연기하는 것처럼 책도 나를 위해서 썼다. 그리고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을 알게 됐다. 어쨌든 이천희가 삶을 즐기며 산다는 걸 긍정적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Credit

  • editor 민용준
  • photographer 김상곤
  • DESIGN 오주희

이 기사엔 이런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