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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o_Ddf Discussion 랜드마크 유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까? 건축가 배윤경이 구설에 오른 랜드마크들의 역사를 되짚어가며 DDP의 밝은 미래를 제안한다.::피처,데코,전시,라이프 스타일,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배윤경,건축가,에펠탑,엘르,엘르걸,elle.co.kr::

프로필 by ELLE 2014.11.01

 

DDP와 관련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건축 전문지 <Space> 제557호에 실린 파노라마 사진이다. 사진 하단에 소규모의 봉제 공장이 밀집된 창신동의 주택들이 낮게 깔려 있다. 이런 밀도에 떠밀려 흥인지문은 보통의 한옥 지붕처럼 소심해지고, 이웃한 동인장로교회 첨탑의 위세에 기가 눌렸다. 그 너머에서 거대한 공룡 두산타워가 기세등등하다. 왕조의 권위, 종교적 권능은 21세기의 물신주의 앞에서 모두 초라할 따름이다. 저 멀리 응봉산을 배경으로 장막을 형성한 옥수동의 아파트들이 혼재된 상황을 관람자의 시선으로 응시한다. DDP는 이런 가운데 두산타워와 맥스타일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인도네시아 어디쯤에서 잡혀온 코모도 왕 도마뱀 같은 녀석은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게으른 자태다. 둥글 넙데데한 얼굴과 머리에서 몸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곡선은 주로 직선으로 이뤄진 구축물들 사이에서 유난히 도드라진다. 이식된 존재지만 외려 주변을 낯설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 까닭에 개관 이후에도 여전히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곤 한다.

 

누군가 건축을 싫어한다면 그것은 건축이 거대한 이념을 상징할 때일 것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1995년에 해체된 이유는 경복궁의 배치를 어지럽힌 죄도 있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건물의 형태는 익숙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익숙함은 곧 편안함이고 낯선 형태는 시각적 자극이자 피곤함으로 인식된다. 종이를 대충 구긴 듯한 프랭크 게리의 비싼 건물은 종종 후자에 속한다. 비엔나의 미하엘러 광장에 있는 로스 하우스도 형태로 인해 반감을 산 대표적인 경우다.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장식은 죄악이라는 신조에서 비롯된, 간결하고 금욕적인 모습을 형상화했다지만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쇠락해 가는 제국에 대한 상실감을 화려한 바로크 건축으로 위로받고 싶었던 시민들은 뜻밖의 거세에 격노하여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빈의 맨홀’, ‘미하엘러 광장의 쓰레기’ 같은 수식을 곁들인 풍자화가 나돌았다. 프란츠 요제트 황제는 한 술 더 떠 광장 측 입구로 드나들지 않고, 건물이 보이는 방향의 창문을 죄다 가렸다. 이에 건설청은 공사를 중지시키며 건축가인 아돌프 로스와 1년간 다툰 끝에 겨우 창문에 화단을 두는 정도로 합의를 보았다. 물론 두 가지 예에 모두 속한 경우도 있다. 형태로는 너무 거대하고 밋밋하다는 이유로 뉴욕 시민들의 반감을 샀던 WTC(월드트레이드센터)는 이념적으로도 미국식 자본주의의 본산이라는 이유로 건축 역사상 가장 슬픈 결말을 맞았다. 세인트루이스의 아파트 단지였던 프루이트 아이고는 기능주의와 비인간적 환경을 구분하지 못한 건축가 탓으로 주민들에게 외면당하다가 결국 요란하게 철거되며 모더니즘의 종식을 선언하는 계기가 됐다(지독히 불운하게도 두 건물 모두 미노루 야마사키의 작품이다).

 

극적인 전환을 맞은 건축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예는 에펠탑이다. 에펠탑이 지어질 당시 예술가들은 앙상하고 경박한 산업시설에 고풍스런 파리의 경관이 유린당한다고 여겼다. 그들에게는 조립식으로 단기간에 공사를 끝낸다는 혁신이나, 주철에서 강철의 시대로 문명이 진일보하여 기존의 예상을 뛰어넘는 건축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 혹은 오티스 엘리베이터가 높이와 속도 경쟁을 가속화하여 초고층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야심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나는 파리를 떠났고, 프랑스를 떠났다. 에펠탑은 나를 못 견디도록 권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이 거대하고 흉측한 뼈대를 벗겨버리지 않는다면 우리 세대를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스럽다.’ 소설 <방랑생활>의 저자 모파상은 에펠탑을 가장 반대한 인사로 유명하고, 에펠탑을 보지 않기 위해 에펠탑 식당을 애용했던 웃지 못할 일화를 남겼다. 하지만 지금의 에펠탑은 임시 건축물로서 철거될 계획을 무산시키고 파리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남았다. 그렇다 해도 모파상의 태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건축을 평가하는 일은 계획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파리와 같이 역사성이 짙은 도시에서의 건축은 기본적으로 상당한 반대를 예상할 수 있다. 지금은 유럽 현대미술의 상징이자 복합문화공간의 모범과도 같은 퐁피두 센터 역시 고초를 겪었다. 철과 유리를 조합한 건물은 모든 구조와 설비를 외부로 노출시킴으로써 내부에 기둥이 없는 거대한 공간을 가능케 했다.

 

전시장이 단일 목적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전시나 행사를 수행할 수 있다는 유연함을 뜻한다. 영국의 수정궁과 파리 에펠탑의 계보를 잇는 하이테크 건축의 선언이며, 문화적으로는 다양성과 포용력을 시사하는 의미심장한 건축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고전적인 석조 건축이나 고급스런 화이트 큐브를 예상한 주민들에게 파이프가 구불거리는 입면은 인근 슬럼의 연속과도 같았다. 게다가 이렇게 중요한 계획을 맡은 장본인이 무명의 영국, 이탈리아 신예들이라는 데서 자존심을 구긴 듯했다. 이 당돌한 청년들은 대중의 반감을 즐겼다. 참신한 건축 형식이 공간을 이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이끌어낼 것이며, 다양한 문화가 한 장소에서 융합되면서 나오는 에너지가 주변을 활성화시키리라는 것을 자신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공장을 닮은 문화시설은 과감한 시도였다. 각각의 용도를 짐작할 수 있도록 색채로 구분되는 설비/구조, 컨베이어 벨트처럼 관객을 실어 나르는 전면 에스컬레이터, 넓은 공간에 매달린 네온사인 등 방문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다양한 요소들은 이제 지극히 프랑스를 상징하는 감성이 됐다.

 

DDP에게 갖는 반감은 명백하다. 우리의 지난 역사를 다루는 태도가 정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문화재를 콘크리트로 덮어 운동장을 건설한 일제의 만행과 지난 80년간 시민과 함께했던 운동장을 없앤 행위에 과연 차이가 있을까. 심지어 운동장을 해체하며 발굴한 조선시대 관청의 터는 DDP의 공사를 피해 사대문의 영역 밖, 공원으로 옮겨졌다. 다수의 공통된 기억은 도시가 갖는 무형의 자산이며 우리의 일상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마치 위패로 대신하듯 조명탑으로 생색내거나, 작은 전시관으로 위로해 봐야 실체가 사라진 기억은 급속도로 소멸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이 이렇게 벌어진 마당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다수의 원망과 의구심을 외면하며 들어선 낯선 존재와 즐거운 동거를 해야 한다. 앞선 사례에서 언급했던 건축들은 대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치를 발하고 있다. 물론 에펠탑이나 로스 하우스처럼 시대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전세를 역전시킨 건축물이 있긴 하다. 이들은 전적으로 선지자의 능력에 기댄 것으로 볼 수 있다. DDP의 경우 이미 비정형 형태를 숱하게 선보인 ‘자하’ 브랜드의 연장에 불과하므로 이를 통해 한국 건축의 흐름이 뒤바뀔 것으로 전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관광객과 지역 주민 모두를 소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낙후된 지역을 되살린 퐁피두 센터에 주목해야 한다.

 

DDP가 퐁피두 센터에 비해 나은 점은 조선, 일제 식민지, 해방과 전후 근현대사를 모두 아우르는 위치라는 점이다. 흥인지문과 성곽을 두고 유유자적 청계천이 흐르며, 전태일이 몸에 불을 붙이며 노동권을 부르짖던 평화시장이 여전하다. 의류 도소매 단지는 불야성을 이루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24시간 끊이지 않는다. 실상 자하 하디드의 초기 디자인은 이런 에너지를 ‘풍경’으로 ‘환유’하려는 모습이 뚜렷했다. 이간수문을 통과하는 물살처럼 가상의 힘이 휘몰아치며 공원과 건물의 형태로 드러났다. 이제는 벽안의 건축가가 감지한 막연한 망령의 정체를 규명할 때다. 지역 공동체와 상생하는 프로그램을 이어간다면 힘의 실체는 점점 구체화될 것이다. 여러 전문가들이 기대하는 것 중 하나는 의류 네트워크다. 신진 디자이너의 작업이 창신동 봉제공장에서 제작되면 DDP에서 전시와 홍보가 이뤄지며, 최종적으로 주변 상권에서 판매를 맡는 일련의 흐름이다. DDP에서 유치한 서울패션위크가 성황리에 막을 내리며 이런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었다. 단지 스타 건축가의 작업이라서, 첨단 건축물이어서, 많은 자본을 들였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팔팔하게 살아 숨 쉬는 현장이라서 관심이 집중되길 기대한다. 추억과 세금을 집어삼키기만 한 괴물이 아니라 도시의 거대한 소화기관으로서 꾸준히 꿈틀대는 건강한 건축이기를 희망한다.

 

 

 

Credit

  • editor 이경은 writer 배윤경(건축가) photo신영섭(작은 사진)
  • getty images
  • 멀티비츠 design 하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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